"아가씨 남편도 좋아할 리가 없어요." 베라가 또 새된 웃음을 웃으며 말했죠. ‘손에도 안 좋아요. 내 손을 봐요!" 베라는 손을 내밀었어요. 손가락 마디에 옹이가 지고 피부는 거칠었으며 손톱은 짧고 각질이 삐죽삐죽 일어나 있었죠. 마술 반지를 낀 우리 어머니의 날씬하고 우아한 손가락과는 전혀 달랐어요. "험한 일을 하면 손에 나빠요. 남편도 아가씨한테서 빵 반죽 냄새가 나는 걸 원치 않을걸요."
"아니면 표백제나." 로사가 거들었어요. "걸레질해서."
"수를 놓는 거 같은 일이나 그냥 열심히 하면 좋아할 거예요." 베라가 말했죠.
"십자수." 로사가 말했어요. 그 목소리에 조롱이 섞여 있었어요.
나는 자수에 소질이 없었어요. 스티치가 느슨하고 칠칠치 못하다고 늘 흠이 잡혔죠,
"나는 십자수 싫어, 빵 만들고 싶어."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어요." 질라가 부드럽게 말했어요. "아무리 아가씨라도요."
"그리고 가끔은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해요." 베라가 말했어요.
"아무리 아가씨라도요." - P35

"우리 모두 우리를 시험하려고 하느님이 보내는 고난을 인내해야하는 법이에요."질라가 말했어요. "희망을 놓아서는 안 돼요."
무슨 희망? 나는 생각했죠. 희망할 게 이제 뭐가 남았다고? 내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상실과 어둠뿐이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이틀 밤이 지난 후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아침까지 알지 못했어요. 불치병에 걸리고 또 내게 말해 주지도 않은 그녀에게 화가 나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게 말을 해 주긴했던 거예요. 어머니는 고통이 곧 끝나기를 기도했으니까요. 그 기도는 응답을 받았죠.
회를 다 내고 났더니, 내게서 조각 하나가 툭 잘려 나간 느낌이 들었어요. 내 심장 한 조각, 그것도 같이 죽은게 틀림없었어요. 나는어머니의 침대를 에워싼 천사 넷의 이야기가 어쨌든 진실이기를, 그래서 천사들이 어머니를 지켜보다가 노래 속에 나오는 것처럼 영혼을 멀리 데리고 갔기를 바랐어요. 천사들이 어머니를 높이, 높이, 황금빛 구름 속으로 데리고 날아오르는 장면을 눈앞에 그려 보려 애썼어요. 하지만 도저히 진심으로 믿을 수가 없었어요. - P43

어젯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면서, 나는 머리카락, 아니 그나마남은 머리에 꽂은 핀을 풀었다. 꽤 오래전에 아주머니들에게 각오를다지는 훈화를 하며, 우리의 엄격한 금욕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기어드는 허영심을 경계하라고 설교했다. "삶에서 중요한 건 머리카락이 아닙니다." 나는 그때 그렇게 말했는데, 반만 농담조였다. 그 말은 사실이지만, 머리카락은 삶을 말해 준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머리카락은 육신이라는 초의 불꽃이고, 그 불꽃이 잦아들면 육신도 쭈그러들어 녹아 없어진다. 한때 정수리에 높이 틀어 올려 묶는 머리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나도 따라 할 만큼 숱이 있었다. 올림머리의시대에는 뒷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그러나 이제 내 머리카락은 아르두아 홀에서 우리가 먹는 끼니 같다. 듬성듬성하고 부족하다. 내 삶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다.  - P47

나는 어떻게 끝날까? 궁금해졌다. 온후하게 홀대받는 노년까지 살아서 점진적으로 화석화될까? 나 자신의 영예로운 조각상이 될까?
아니면 체제와 내가 함께 쓰러지고 내 석상이 나와 함께 끌려 나가회한한 수집품으로, 잔디밭 장식품으로, 엽기적인 키치 예술품으로팔려 갈까? 요괴물로 재판을 받고 형장에서 총살당하고 가로등에 매달려 대중의 구경거리가 될까? 성난 군중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꼬챙이에 머리가 꽂힌 후 거리를 전전하며 놀림감이 될까? 나는 충분히 그럴 만한 분노를 유발해 왔다.
지금 당장은 아직 이 문제에 내가 선택할 여지가 있다. 죽을지 말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 그것도 일종의 자유가 아닌가?
아, 그리고 누구를 같이 끌어내릴지도. 나는 명단을 작성해 두었다. - P48

내가 사는 현재에서 나는 전설이다. 살아 있으나 산 것 이상이고죽었으나 죽은 것 이상이다. 나는 교실을 가질 만큼 신분이 높은 여자애들의 교실 뒤편에 액자로 표구되어 걸려 있는 머리로서, 음침한미소를 띠고 말없이 설교한다. 나는 하녀들이 어린애를 겁줄 때 쓰는 귀신이다. 착하게 굴지 않으면, 리디아 ‘아주머니‘가 와서 잡아갈거야! 나는 또한 본받아야 할 완벽한 도덕성의 모범이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네가 어떻게 하면 좋아하실까? 그리고 상상 속의 모호한 종교재판을 주재하는 판관이자 입법자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이런 경우에 뭐라고 하실까?
물론 나는 권력으로 한껏 부풀었으나 또한 그로 인해 성운처럼 모호하다. 형태도 없거니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나는 어디에나있고 아무 데도 없다. 심지어 나는 사령관들의 마음속에도 심란한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떻게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정상적인 내 크기로, 평범한 여자의 크기로 다시 줄어들 수 있을까? - P49

그러나 내가 에둘러 명확히 해 둔 바대로 그건 내 안위가 보장될 때만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수표와 예금잔고의 신봉자였다.
이런 보안 조치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안일하게 방심하도록 용납하는 일은 없다. 길리어드는 위태로운 곳이다. 사고는 빈번하게일어난다. 누군가 이미 나의 장례식 추도사를 써 두었다는 사실은 굳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전율한다. 누구의 발이 내 무덤을 밟고 걷고 있는가?
시간을, 나는 허공에 대고 간청한다. 약간의 시간을 더 다오. 그게내게 필요한 전부다. - P93

내 삶은 아주 다를수도 있었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고, 시야를 넓게 가지기만 했더라도, 일부가 그랬듯, 충분히 이른 시기에 짐을 싸기만 했더라도, 그래서 그 나라를 떠나기만 했더라도. 하지만 나는여전히 바보같이 그 나라가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몸담았던 나라와같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 후회는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다. 나는 선택을 내렸고, 일단선택을 내리자 점차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었다. 두 갈래 길이 노란숲속에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간 길을 갔다. 그런길이 다 그렇듯 그 길에도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당신도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나의 시체는 그 가운데 없다.
사라진 나의 국가에서, 상황은 수년째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홍수, 화재, 토네이도, 허리케인, 가뭄, 물 부족, 지진, 이건 모자라고저건 넘치고 퇴락하는 하부구조……. 어째서 너무 늦기 전에 누군가 그 원자력 발전소들의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던가? 침몰하는 경제, 실업, 추락하는 출생률.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그러다가 분노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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