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엄마는 울기도 했다. 너무 외로웠다면서.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 난 친구들도 있었고 재수가 좋은 편이었는데, 하지만 그래도 외로웠어.
나는 어떤 면에서 우리 엄마를 존경했지만, 우리 관계는 한번도 쉽지 않았다. 내게 거는 엄마의 기대가 너무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내가 당신의 생을 옹호하고, 당신의 선택을 편들어 주길 바랐다. 나는 내 인생을 엄마가 내건 조건에 맞춰 살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사상을 온몸으로 보여 주는 완벽한 자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그래서 싸웠다. 나는 엄마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에요. 나는 한때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다.
엄마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바람은. - P212

여긴 덥고, 너무 시끄럽다. 주위의 여자들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나지막하게 읊는 음송이라도 날마다 침묵 속에서 지내던 내게는지나치게 시끄럽다. 역시 방구석에는 양수가 터져 나왔을 때 닦은피로 얼룩진 이불 홑청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다. 나는 이제야 그걸 알아챘다.
방 안에서는 냄새가 나고 공기도 텁텁하다. 창문을 하나 열어야하는데, 냄새는 다름 아닌 우리들의 살내다. 유기적인 냄새, 땀과 홑청의 피에서 나는 희미한 철분 냄새, 그리고 또 다른 냄새가 난다.
좀 더 동물적인 이 냄새는 틀림없이 재닌한테서 풍기는 냄새다. 동굴의 냄새, 사람이 살고 있는 동굴의 냄새, 난소를 제거하지 않은 고양이가 침대에서 출산을 했을 때 체크 무늬 담요에서 나던 냄새. 자궁의 냄새. - P213

나는 말한다. 이젠 나도진이 빠지고, 완전히 초주검이 되었다. 젖가슴이 탱탱하게 아파왔고, 심지어 젖이 약간 새기까지 했다. 가짜젖 간간이 이런 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벤치에 앉아 이송되어 간다. 우리는 이제 아무런 느낌도 없어져 빨간 옷 뭉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리는 아파한다.
우리 모두 무릎 위에 유령 하나씩을 존재하지도 않는 아기를 하나씩 품고 있다. 흥분이 사그라진 지금, 우리는 저마다의 실패와 대면해야 한다. - P221

어쩌면 이 모든 일은 통제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가 누구를소유하고, 누가 누구한테 어떤 짓을 해도, 심지어 살인을 해도 벌을받지 않아도 된다든가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구는 앉을 수 있고 누구는 꿇어앉거나 일어서거나 다리를 활짝 벌리고 드러누워야 한다는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진짜 문제는 누가 누구한테어떤 짓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다 마찬가지라는 말만큼은 절대 내 앞에서 하지 마라. - P235

나는 어두침침한 복도와 양탄자가 깔린 계단을 지나, 몰래 내 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불을 끄고, 단추와 후크를 하나도 끄르지 않은 채, 빨간 드레스를 그대로 입은 채로 의자에 앉는다. 옷을 다 입고 있을 때만 맑은 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
내게 필요한 건 올바른 시각이다. 액자 하나와 평면 위에 배열된형상들을 통해 만들어진 깊이의 환영, 원근법이 필요하다. 그렇지않으면 고작해야 2차원뿐일 테니, 원근법이 없으면 벽에 부딪혀 납작하게 으깨진 얼굴로 살아야 할 것이다. 세상 만물이 거대한 전경(前景)이 되어 시시콜콜한 세부 사항, 클로즈업, 털이며 이불 홑청의싸임까지 눈앞에 훤히 보일 것이다. 심지어 얼굴의 분자들까지도 보일 것이다. 내 이 피부 위에 마치 지도(地圖)처럼 불모의 도해가 되어,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작은 길들이 지그재그로 교차하리라.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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