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와 본 적은 없지만 그 광장을 아니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나는 마음으로 알고 있었다. 물건에 볕이 드는 걸 막기 위해차양까지 달린 정식 매대를 갖춘 이들도 있었다. 벌써부터 더위가기승이어서, 동유럽의 평원과 숲에서 밀려드는 각다귀 같은 열기에날이 절절 끓었다. 잎사귀의 더위. 지중해의 더위와 같은 확신은 찾아볼 수 없는, 암시로 가득한 더위, 이곳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가장 확실에 가까운 건 할머니다. 다른 장사치들-전부 여자다은 직접 기른 것을 바구니나 양동이에 담아 온 변두리 마을 사람들이다. 당연히 매대가 없고, 집에서챙겨 온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서 있는 사람도 많다. 나는 그 사이를 이리저리 거닌다. - P82
나는 그 사이를 이리저리 거닌다. 나이도 천차만별, 체격도 각양각색, 눈동자의 색도 모두 다르다. 똑같은 머릿수건을 맨 여자들은찾아볼 수 없다. 파를 썰거나 징글징글한 잡초를 제거하거나 붉은무를 뽑을 때, 가끔씩 쑤시는 허리가 고질병이 되지 않도록 허리를보호하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다. 저들이 젊었을 땐 엉덩이로 충격을 흡수했는데, 이제 그 역할을 도맡아야 하는 것은 어깨다. 나는 의자도 없이 서 있는 어떤 여자의바구니를 들여다본다. 그속엔 흐릿한 금빛의 패스트리와 자그마한 파이가 가득하다. 모양은체스의 말, 그 중에서도 캐슬과 비슷하다. 총안이 있는 곳을 위로 향하게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세울 수 있는 캐슬 크기는 하나에 십센티미터쯤 된다. 캐슬을 하나 집어 들고서야 실수를 깨닫는다. 패스트리라고 하기엔 너무 무겁다. - P83
켄은 뉴질랜드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맞은편 벤치에 가서 앉는다. 육십 년 전에 자신의 지식을 내게 나눠 줬던 남자. 비록 그것들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지만. 그는 어린 시절이나 부모님에 대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아마어렸을 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뉴질랜드를 떠나 유럽으로 오지 않았을까 짐작만 했을 뿐이다. 그의 부모님은 부자였을까, 가난했을까?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지금 이 시장에 있는 사람들에게같은 질문을 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었을 것이다. 거리는 결코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뉴질랜드의 웰링턴, 파리, 뉴욕, 런던의 베이스워터 로드, 노르웨이, 스페인, 그리고 내 생각엔 버마나 인도에도 잠깐 머물지 않았을까 싶다. 저널리스트, 학교교사, 댄스 강사, 영화의 단역 배우, 기둥서방, 가게도 없는 책 장수, - P84
크리켓 심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위에 거론한 것들 중에 몇 개는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게 노비 광장에서 마주 앉은 그를 그리는 내 나름의 초상화다. 파리에서는 신문에 삽화를 그렸는데, 이건 확실하다. 그가 좋아했던 붓의 종류-손잡이가 유난히 긴 붓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신발사이즈는 삼백 밀리미터였다. 그가 보르쉬 (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고 끓인 러시아식 수프-역자) 그릇을 내 앞으로 민다. 그러더니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숟가락을 닦아서 내게 건넨다. 검은색 격자무늬의 손수건이 낯익다. 수프는 맑고, 맛이 깊고, 붉은색이 나는 야채 보르쉬인데, 근대가 갖고 있는 천연의 단맛을 조금 중화시키기 위해 폴란드식으로 사과식초를 약간 넣었다. 나는 조금 먹다가 그릇을 다시그에게 밀고 숟가락을 돌려준다. 말은 한 마디도 오가지 않는다. - P85
그것들을 내게 직접 건네준 적은 없다. 작가의 이름과 책 제목만말하고 아파트의 벽난로 선반 한쪽에 올려뒀다. 차곡차곡 쌓인 여권 중에서 골라 가기도 했다.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 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집 쪽으로,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 파티』. 로렌스 스턴, 『트리스트럼 샌디』. 헨리 밀러, 『북회귀선』. 이유는 달랐지만 우리 둘 다 문학을 설명하는 것의 효용을믿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그에게 물어본 적도 없다. 그역시 내 나이나 경험에 미뤄 볼 때 이런 책들을 이해하기 어려울지모른다는 식의 얘기를 한 적이 없다. 프레데릭 트레브스, 엘리펀트맨.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파리에서 출간된 영문판). 우리 사이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부분적으로나마 책을 통해 배운다―또는 배우려 한다는 암묵적인 이해가 있었다. 그 과정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그림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고난의 성자 요한. - P93
그는 사 년 전에 총살당했다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를 스페인어로 읽어 주었고, 그걸 우리말로 번역해서 들려주었을 땐, 열네 살짜리 주제에 인생이 무엇이고 뭘 걸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믿었다. 세부적인 몇 가지들을 제외하고, 아마 이런 말을 그에게 했거나, 아니면 은연중에 드러난 나의 무모함이 거슬렸던 모양인지 그가 이런얘기를 했다. 세부적인 것들을 살펴야 해! 나중이 아니라 맨 먼저! 그의 말투엔 언젠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어도, 그 자신이 세부적인 것에서 후회로 남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회한이 어려 있었다. 아니, 그건 아니다. 그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후회가 남은 게 아니라 대가를 치러야 했던 실수. 그는 살면서 후회하지 않은 많은 것에 대가를 치렀다. - P94
스타일을 파악하고 비평의 기본을 처음으로 배운 것은 에지웨어로드에 있는 올드멧 뮤직홀의 그의 옆자리에 앉아서였다. 러스킨, 루카치, 베런슨, 벤야민, 뵐플린은 모두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내 비평의 기본은 올드멧에서 생겨났다. 이층 관람석에서 요란스럽게 환호하고 가차 없이 야유를 보내는 관중에 싸여 그 삼각형의 무대를내려다보면서 갖춰졌다. 그들은 스탠드업 코미디와 아다지오 곡예, 가수들과 복화술사를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게 평가했다. 우리는 테사 오세아가 극장이 떠나가도록 갈채를 받는 것도 보고, 쏟아지는야유에 눈물로 머리카락을 적시며 무대에서 내려가는 것도 봤다. 공연엔 스타일이 있어야 했다. 청중의 마음을 하룻밤에 두 번은사로잡아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쉼 없는 개그 퍼레이드가좀더 신비로운 뭔가로 이어져야만 했다. 인생 자체가 스탠드업 공연이라는 음모적이고 불경한 암시 같은 것! - P95
멜론
우리가 보기에 멜론은, 어딘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가뭄 같은 과일이었다. 바싹 말라붙은 계곡이나 흙먼지 날리는 갈라진 들판을지나가다 멜론을 발견하면, 오아시스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심정으로 그걸 먹었다. 맛은 기가 막히고 지친 심신을 달래줬지만, 사실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멜론은 자르기도 전에 물기 어린 단내를 풍긴다. 그 안에 담긴 한없이 진한 내음. 하지만 갈증을 해소하려면 어떤 예리한 기운이 필요하다. 차라리 레몬이 낫다. 작고 녹색을 띨 때라면 멜론이 젊음을 상징할 수도 있다. 하지만이 과일은 묘하게도 순식간에 나이를 초월해 버린다. 아이의 눈에비친 어머니처럼, 껍질에 난 흠집ㅡ흠집이 없는 경우는 없다-은사마귀나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점 같다. 다른 과일의 경우처럼 오래 됐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저 그 멜론이 개성을 지녔으며, 늘 그래왔음을 확인해 줄 뿐이다. - P107
이걸 한번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겉모양만 보고는 속을 거의 짐작할 수 없다. 자르는 순간까지 결코 드러나지 않는, 녹색으로살짝 방향을 튼 그 진한 오렌지색을 가운데 빈 구멍에 가득한 씨. 옅은 불꽃 같으면서도 촉촉한 색깔의 그 씨앗들이 한데 뭉쳐 매달린모습 앞에서는 제아무리 뚜렷한 질서의식도 무릎을 꿇게 된다. 그리고 구석구석 반짝이지 않는 데가 없다. 멜론의 맛에는 어둠과 햇살이 모두 담겨 있었다. 결코 함께 존재하지 못했을 상반된 것들을 기적처럼 한데 합쳐 놓았다. - P108
복숭아
우리가 먹던 복숭아는 햇볕에 검게 변했다. 엄밀히 말하면 시뻘건검은색이지만, 붉은 기운보다는 검은색이 더 짙었다. 시뻘겋게 달컸다가 꺼내 식히는 중이어서 여전히 뜨겁다는 경계심을 갖기 어려운 쇠의 검은색. 말편자 같은 복숭아. 검은색이 전체적으로 퍼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 그늘이 졌던 부분은 희끔했는데, 그러면서도 그늘을 드리웠던 나뭇잎들이 제 색을 슬쩍슬쩍 칠한 것처럼 녹색이 살짝 감돌았다. 우리 때에는 유럽의 부잣집 여자들이 얼굴과 몸을 복숭아처럼 희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집시들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복숭아는 한 손에 꽉 차게 큰 것에서부터 당구공만큼 작은 것까지크기가 상당히 다양했다. 작은 것의 껍질은 더 섬세하기 때문에 살 - P108
이 짓무르거나 너무 익을 경우 보일 듯 말 듯 주름이 잡히는 경향이있었다. 그 주름을 보면 검게 그을린 팔뚝에서 접히는 중간 부분의 따뜻한피부가 연상되곤 했다. 속에는 씨가 있는데 질감은 짙은 나무껍질 같고, 모양새는 제멋대로인 게 꼭 운석 같다. 이런 야생의 복숭아는 신이 도둑들을 위해 만든 과일이었다. - P109
자두
해마다 8월이면 우리는 자두가 나오길 기다렸다. 실망스러울 때도맡았다. 덜 익었거나 섬유질이 많거나 거의 말라붙었거나, 그렇지않으면 지나치게 무르거나 물컹거렸다. 한입 베어 물 가치조차 없는 것도 많았는데, 만져만 봐도 적당한 온도가 아니라는 걸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섭씨나 화씨로는 잴 수 없는 온도, 햇빛에 둘러싸인 어떤 시원함의 온도, 어린 사내아이가 꽉 쥔 주먹의온도, 그 아이는 여덟 살에서 열 살 반 사이, 사춘기에 짓눌리기 전에 독립심을 키워 가는 나이다. 아이가 손에 자두를 들고 입으로 가져가한입 베어 물면, 과일의 혀는 쏜살같이 목 뒤로 넘어가고 아이는 그것의 약속을 삼킨다. 무슨 약속일까? 아직 아무 이름도 붙지 않은, 이제 곧 아이가 이름을 붙이게 될 뭔가에 대한 약속, 아이가 느끼는 달콤함은 더 이상설탕의 맛이 아니고, 계속 자라나는 가지, 끝이 없는 것만 같은 그것 - P109
의 맛이다. 그것은 아이가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어떤 몸에 달려있다. 그 몸에는 세 개의 팔다리가 더 있고 목과 발목이 있으며, 소년의 몸과 비슷하다. 단지 뒤집혀 있을 뿐. 가지의 구석구석으로 수액이 끊임없이 흐른다. 아이는 잇새에서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소녀나무라고 부르는, 이름 없는 하얀 나무의 수액. 자두 백 개 중에 하나만이라도 이런 느낌을 되살려 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 P110
체리
체리에는 다른 어떤 과일에서도 볼 수 없는 발효의 풍미가 있었다. 갓 딴 체리는 햇볕이 가미된 효모의 맛이 났고, 그 맛은 유난히 반짝이는 껍질의 윤기와 서로 보완이 됐다. 체리를 먹으면 딴 지 한 시간밖에 안 된 것이라 해도 그 자체의 썩은 맛이 섞여 있다. 체리의 금색이나 붉은색 속에는 늘 갈색의기미가 어려 있다. 살이 물러져서 해체되어 들어갈 색. 체리가 청량감을 주는 까닭은 순수함 때문ㅡ사과처럼―이 아니라, 발효에서 일어나는 기포가 혀를 살짝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살짝 간질이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고 과육이 가벼우며 껍질이 얇기 때문에 체리의 씨는 늘어딘가 느닷없는 느낌이었다. 체리를 먹으면서 씨를 예감하기란 어려웠다. 씨를 뱉어 놓고 보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과육과 그다지상관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내 몸의 침전물. 체리를 먹음으로써 만들어진 불가사의한 침전물처럼 느껴졌다. 체리 한 알을 먹을 때마 - P110
다 체리의 이빨을 하나씩 뱉어냈다. 얼굴의 나머지 부분하고 확실히 다른 입술과 체리는 그 윤기와 말창거리는 것까지 똑같다. 껍질은 둘 다 액상의 피부 같다. 모세관의표면, 우리의 기억이 옳은지, 아니면 죽은 이들이 과장을 하는 건지확인을 해 보라. 체리를 입 안에 넣고, 아직 씹지는 말고, 잠깐 동안그것의 밀도, 그것의 부드러움과 탱글탱글함이, 그걸 물고 있는 입술과 얼마나 완벽하게 일치하는지를 느껴 보라. - P111
큐치
짙고, 작고, 타원형이며, 길이가 사람의 눈동자 정도 되는 자두의 일종. 가을이 되면 잘 익어 나뭇잎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큐치. 익으면 거무스름한 보라색이 되지만, 씻을 때 손가락으로 문질러닦지 않으면 표면에 과분(果粉)이 남는다. 푸르스름한 나무 연기 색깔의 과분. 이 두 가지 색을 보면 우리는 물에 가라앉는 것과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 동시에 생각났다. 노르스름하니 옅은 녹색의 과육은 달콤하면서도 시큼해서 깔쭉깔쭉한 톱니의 느낌이 난다. 자잘한 톱날을 혀로 슬며시 문지르는것 같은. 큐치는 자두처럼 우리를 유혹하지 않는다. 이 나무는 늘 집 가까이에 심었다. 겨울에 창밖을 내다보면 작은새들이 먹이를 찾아 매일같이 몰려와서 이 가지 위에 깃을 쳤다. 콩새, 울새, 박새, 참새 떼에다 먹이를 뺏어 먹는 까치 한 마리도 가끔끼어 있었다. 다시 봄이 오고 꽃들이 막 피어날 무렵이면 그 작은 새들이 큐치 나무에 앉아 노래를 부르곤 했다. - P111
이게 노래의 과일인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큐치를 통에가득 담아 발효시켜서 만드는 놀이라는 슬리보비츠, 그러니까 일종의 자두 브랜디를 불법으로 담가 마셨다. 그리고 기포가 뽀글뽀글올라오는 이 술 한 잔을 마시면 예외 없이 사랑의 노래, 고독과 인고의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 P112
옆에 딸린 야트막한 컵 모양의 공간-직경 사 미터 - 으로 기어들어가 보니 불규칙하게 출렁이는 한쪽 벽에 빨간색으로 곰 세 마리가 그려져 있다. 몇 만 년 뒤에나 전해질 동화처럼 아빠 곰, 엄마 곰. 그리고 아기 곰이 쪼그리고 앉아 바라본다. 곰 세 마리와 그 뒤로보이는 조그만 아이벡스 두 마리. 화가는 깜빡이는 횃불의 불빛으로 바위와 대화를 나눴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은 곰이 앞으로걸어갈 때 앞발에 엄청난 체중을 실어 휘젓는 듯한 느낌을 제대로살려냈다. 갈라진 균열은 아이벡스의 등과 딱 들어맞는다. 화가는자신이 그리는 동물들을 속속들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의 손은어둠 속에서도 그것들을 그려낼 수 있었다. 바위는 화가에게 동물들-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처럼―이 그 속에 있으므로 손가락에 빨간 물감을 칠해서 그걸 바위의 표면으로, 얇은 막 같은 그표면으로 불러내어 바위에 몸을 비비고 냄새를 묻히게 할 수 있다고말해 주었다. - P136
그들은 얼마나 자주 이 동굴을 찾았을까? 화가들은 대대로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을까? 대답이 없다. 그저 위험과 생존, 두려움과보호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그것을 추억에 담아 가기 위해 이곳에 왔을 거라는 추측으로 만족해야 할까? 어느 시대건 그 이상을 바라는 건 무리일까? 쇼베 동굴에 그려진 대부분의 동물들은 맹수지만, 그림에는 두려움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존경심, 그렇다. 우정 어린, 친밀한 존경심, 그리고 그것은 여기 그려진 모든 동물의 이미지 속에서인간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즐거이 드러난 존재. 이곳의 모든 동물들은 인간 안에서 안온하다. 이상한 조합이지만 이론의 여지가 없다. - P137
쇼베 동굴의 특징은 이곳이 봉쇄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만 년전에 동굴 입구-널찍하고 빛이 스며드는-의 천장이 무너졌다. 그때부터 1994년까지, 화가들이 마주했던 어둠이 왜냐하면 어둠은그들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뒤에서부터 들어와서 그들이 남긴 모든 것을 묻어 보존했다. 석순과 종유석은 계속 자랐다. 몇몇 곳에서는 방해석이 백내장처럼 세밀한 부분들을 덮어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표현의 비범한 신선함은 대체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런 즉시성은 선형적인 시간감각을 방해한다. - P139
서쪽으로 가는 몇 무리의 동물들. 그 속에, 멀리 있는 거대한 동물들과 닿아 있는, 아주 작게 그려진, 가까운 동물들. 건기에 불을 제대로 놓으면 순식간에 번질 수 있기 때문에 그걸지켜보고 있으면 공기가 쏠려 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크로마뇽인들의 그림은 가장자리를 중시하지 않았다. 흘러야 하는 곳에서 흐르고, 가라앉고, 덮어씌우고, 이미 그곳에 있는 이미지를 가라앉히고, 그러면서 싣고 가는 것의 비례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크로마뇽인들은 어떤 상상의 공간에서 살았던 걸까? 유목민에게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의 경험에종속된다. 지나가 버린 것, 또는 기다리는 것은 어딘가 다른 곳에 숨겨져 있다. - P140
사냥을 하는 쪽이든 사냥을 당하는 쪽이든 생존의 전제조건은 잘숨는 것이다. 목숨은 은신처를 찾아내는 데 달렸다. 모든 것이 숨는다. 사라진 것은 숨어 버린 것이다. 빈자리 - 죽은 이의 부재처럼ㅡ는 버림받은 느낌이 아닌 상실의 느낌을 안겨 준다. 죽은 이는 어딘가 다른 곳에 숨어 있다. - P141
타일러 선생님은 이차대전 직후 오십대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가스난로인지 집이 다 타 버린 화재인지, 아니면 문을 닫은 채 차고 안에서 시동을 켜 놓은 자동차 사고인지와 관련이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잊어버렸는데, 체계적이고 깔끔하고, 퉁명스러우리만치 숫기가 없었으며,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무심하게 또는 부주의하게 죽어 버렸다는 또는 생에 종지부를 찍어 버렸다는 - 인상을 풍겼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것들은 잊어버리는 편이 낫다. 저희는 곧 떠날 거예요. 그의 팔꿈치께에 선 키르케가 나지막하게말한다. 차가 커서 선생님의 짐을 실을 자리도 넉넉하답니다. - P156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바르샤바와 모스크바를 잇는 대로를 따라동쪽으로 가고 있다. 양쪽 다 통행량이 많다. 몇 년만 지나면 여기는고속도로가 될 것이다. 길은 수많은 숲의 언저리를 스쳐 가거나 관통한다. 여름의 빛이 녹색을 띠고, 가문비나무 줄기가 높이 자랄수록 깃털 같은 오렌지색으로 변하는 북쪽의 숲들. 새들에게 붉은 가문비나무의 꼭대기는 물고기들에게 산호가 갖는 의미와 같다. - P160
우리네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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