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자들께


죽은 이들이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나만큼-아니 어쩌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리고우리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하죠. 그렇지 않은가요? (겉으로야아닌 척하더라도 말이죠.) 그런데 죽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기울이는 것은 이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저 전통적이고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행위였죠. 그러던 것이,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면 전부 ‘퇴물 취급을 하는 세계 경제질서에 저항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 너무나 다른 여러 역사 속의 망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냘픈 희망이지요. 하지만 살찐 희망은 헛소리입니다. 그러니 이 가느다란 희망을 간직해 나갑시다. 이제 독자여러분께 넘깁니다.


2006년 2월
존 버거

리스본 어느 광장에 가면 한가운데에 루시타니안 사이프러스(그러니까 포르투갈 사이프러스)라고 부르는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나무의 가지들은 하늘을 향하지 않고 밖으로 평평하게 뻗어 나가도록가꿔 놓았기 때문에 햇살도 빗방울도 뚫지 못할 직경 이십 미터의거대한, 그리고 아주 나지막한 우산 모양을 하고 있다. 백 명은 너끈히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다. 비틀리고 육중한 나무줄기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는 쇠 버팀대가 가지를 받치고 있다. 수령은 최소한 이백 년이 넘었다. 그 옆의 공공 게시판에는 지나는 이들을 위한시 한 편이 적혀 있다.
걸음을 멈추고 몇 줄 해석해 본다.


...나는 당신이 사용하는 곡괭이의 자루요, 집의 문이며, 요람의널빤지이자, 관을 짜는 목재이니…. - P11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원칙은 원칙이지.
존,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의 선을 대신 그어 줄 수는 없어. 물론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건 같지않아. 그리고 삶을 존중하려면 선을 그어야 해.
그래서 시간은 중요하지 않고 장소는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다시 물었다.
존, 이건 그냥 아무 장소가 아니라 만남의 장소란다. 이제 전차가다니는 도시는 많지 않잖니. 여기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밤에몇 시간만 빼고.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나요?
리스본 시내에서 전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는 거의 없단다. - P16

뒤늦게야 나도 초를 몇 개 사서 불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누굴 위한 촛불일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순간에 저마다 다른 이유로 바다에 나가 있는 세 명의 친구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제일 길어서 오래도록 탈 초들을 사서 한쪽 테이블로 다가갔다.
가장 가까운 쇠심에 초를 하나씩 차례로 꽂았다. 그러고 나서야 이미 타고 있는 다른 초에서 미리 불을 붙였더라면 다른 두 초를 꽂아놓고 쉽게 불을 옮겨 붙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이제는 그 바람 속에서 성냥을 긋는 것도 힘들뿐더러, 성냥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실수를 깨닫고 있는데 뒤에 있던 조그만 체구의 한 여자가불이 켜진 초를 내게 내밀었다. 그게 누구일지 전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보지도 않고 그걸 받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선 채 새로 밝힌 세 개의 촛불이 깜빡거리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 P46

왜 제 책을 하나도 안 읽으셨어요?
나는 또 다른 인생을 보여주는 책들을 좋아했어. 내가 읽은 책들은 다 그런 거야. 전부 진짜 인생을 다루지만, 접어 뒀던 부분을 다시 찾아 읽어도 그건 나에게 일어났던 인생은 아니었지. 책을 읽을때면 모든 시간 감각을 상실했어. 여자들은 항상 다른 삶을 궁금해하는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지나치게 야심이 큰 나머지 이걸 이해못해. 다른 삶, 전에 살았던 삶, 살 수도 있었던 삶. 그리고 난 너의책이, 또 다른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상상만 하고 싶은 삶, 말없이 나혼자 상상해 보고 싶은 그런 삶에 대한 것이길 바랐어. 그러니까 읽지 않은 편이 더 나았지. 서점의 유리창을 통해 네 책들을 볼 수 있었단다. 내겐 그걸로 충분했어.
요즘은 헛소리를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요.
뭘 쓰더라도 그게 뭔지를 당장에 아는 건 아니야. 늘 그랬어. 어머니가 말한다. 다만 네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니면 진실을 말하려고노력하는지, 그것만큼은 알아야 해. 더 이상은 그걸 혼동하는 실수를 용납할 여지가 없으니까. - P50

리스본은 인고의 도시,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과 애칭의 도시다.
아구아스 리브레스 수도교는 1748년에 완공되었다. 칠 년 후에 대지진이 도심을 강타했지만 이곳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군사공학자들이 수도교의 진로를 잡으면서 지질학적 단층선을 피해 갔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런 재난에도 멀쩡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구아스 리브레스로 흐르는 공급용수의양을 늘리기 위해 여러 수도교들이 추가되고 보완되었다. 회의론자들이 처음부터 경고했던 것처럼 도시의 용수는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 - P53

19세기에 이 수도교는 파세이우 도스 아르코스, 즉 아치의 길이라고 불렸는데, 서쪽 마을 사람들이 물건이나 날품을 팔러 도시로 넘어올 때 이 다리를 지름길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알칸타라계곡을 내려가서 물을 건넌 다음에 다시 올라올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하늘을 가로질러 일 킬로미터만 걸어가면 됐다. 서른 개 남짓한알칸타라의 아치에 리아, 아딜라, 카롤리나, 상드라, 이라세나 같은애칭이 하나씩 붙은 건 그런 연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조 아치인, 가운데의 크고 뾰족한 아치에는 마이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수로를 이용해서 도시에 물을 공급하자는 최초의 현대적 제안-로마 사람들이 전에 시도했던이 나온 건 위생이나 만성적인 식수난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화재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도시곳곳이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 P53

수로가 완공되자 후작과 은행가들은 큰 줄기에서 물을 끌어다 쓸수 있도록 개인용 수로를 연결했다. 반면에 물이 나오지 않는 곳에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공공 식수대에 의존해야 했지만, 가뭄이 들면 그마저도 말라 붙었다. 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값을부르는 물장수들에게서 물을 사야만 했다. 아구아스 리브레스, 자유의 물이라는 뜻을 지닌 그곳은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너는 늘 전부를 원하니? 어머니 목소리에 생각이 중단된다.
어머니가 데친 근대 뿌리의 껍질을 벗겨 썰던 모습이 기억난다.
근대와 쌀막한 칼을 쥔 손, 얼룩진 손가락과 보랏빛으로 반짝이던진홍색 단면, 그 색의 강렬함은 어쩐지 지금 당장과 하루하루에 집중하던 어머니의 강렬함하고 잘 어울렸다. - P54

안쪽은 공기가 더 서늘했다. 하늘이 아니라 지하에 있는 것만 같았다. 빛도 달랐다. 밖에서는 반짝이고 투명하던 빛이 터널 속으로스며들면 금색으로 변했다. 둥근 천장에는 빛이 스며들 수 있도록석둥 모양으로 만든 작은 탑이 십오 미터마다 하나씩 있었다. 원경속으로 점점 멀어지는 석등을 통해 빛이 금색 커튼처럼 쏟아졌고,
그 커튼은 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소리도 달랐다. 두 개의 현무암 송수관을 따라 망이 다구아로 흘러가는 물이 고요함 속에서 찰락찰락, 물을 핥아먹는 고양이의 혓바닥처럼 불연속적으로 찰락거리는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는지는모르겠다. 어쩌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십오 년 동안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여의고 나면 자식들의 시간은 두 배로 빨라지거나 가속이 붙을 때가 많다. - P62

마침내 어머니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말했다. 호의를, 존!
어머니는 첫번째 석등에서 쏟아지는 빛의 폭포를 향해 걸어갔다.
양쪽 송수관 수면에 반사되는 빛이 그 물에 띄운 초처럼 출렁거렸다. 어머니가 금빛 속으로 들어가자 그것은 커튼처럼 어머니의 몸을 가렸고, 빛 밖으로 다시 나올 때까지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 때문에 몸은 더 작아졌다. 걸음걸이는 점점 가벼워지는것처럼 보였다. 멀어질수록 더 활기차졌다. 어머니는 그 다음 금색커튼 속으로 사라졌고, 다시 나왔을 땐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몸을 숙여 어머니를 따라 흐르는 물속에 손을 담갔다. - P63

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사진 중에 아마 1980년대 초반, 그러니까 그가 자신의 ‘고국들‘ 가운데 한 곳이라고 주장했던 제네바에서생을 마감하려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기 한두 해 전에 찍은 듯한 사진이 한 장 있다. 사진을 보면 그가 거의 실명했다는 걸 알 수있고, 보르헤스 자신이 시 속에서 종종 언급했던 것처럼 실명이 곧감옥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사진 속의 그 얼굴은 수많은 다른 인생들이 깃들어 있는 얼굴이다. 동반자들이 꽉 들어찬 얼굴. 저마다의 취향을 가진 많은 남녀들이 거의 시력을 잃은 그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욕망의 얼굴, 수세기, 수천 년을지나는 동안 시인들에게 ‘익명‘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대여했을 법한 그런 초상이다.
제네바는 살아 숨쉬는 사람만큼이나 모순적이고 불가사의한 도시다. 이 도시의 신분증은 아마 이렇지 않을까. 국적: 중립, 성별:여성, 나이: (신중함이 개입되는 항목이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임. 혼인 여부: 별거, 직업: 옵서버, 신체적 특징 : 근시로 인해 약간 - P65

구부정한 자세 비고: 섹시하고 신비로움.
유럽의 도시들 가운데 천혜의 환경이 이정도로 숨 막히게 아름다운 곳은 톨레도뿐이다. (도시 자체는 전혀 다르지만) 그러나 톨레도를 생각하면 엘 그레코가 그린 풍경이 떠오르는 반면에, 제네바는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그림이 그려진 적이 없고, 이곳의 상징이라고 해 봐야 호수 위로 물을 뿜어내는 장난감 같은 대형 분수 하나뿐인데, 그것조차 할로겐 램프처럼 꺼졌다 켜졌다 한다.
제네바 하늘의 구름은 바람에 따라 다르지만 ㅡ바람 중에서도 건조하고 따뜻한 편과 차가운 북동풍인 비즈가 가장 악명이 높다-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프랑스, 또는 독일의 라인 계곡 아래쪽, 베네룩스 삼국과 발트해에서 흘러온다. 가끔은 저 멀리 북아프리카나폴란드에서 오기도 한다. 제네바는 수렴의 장소이고, 스스로도 그사실을 알고 있다. - P66

사실을 알고 있다.
몇 세기 동안 이곳을 지나는 여행자들은 나중에 오는 여행자들에게 전해 달라고 편지와 안내문과 지도와 목록과 각종 메시지를 제네바에 남겼다. 제네바는 호기심과 자긍심이 뒤섞인 심정으로 그것들을 전부 읽는다. 그러고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 태어나는 행운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모든 열정을 살아내야만 하는 모양이구나. 열정이란 눈을 멀게 하는 불운인 것을, 제네바의 중앙우체국은 대성당만큼이나 웅장하게 설계되었다.
20세기초에 제네바는 유럽의 혁명가들과 반역자들이 정기적으로모이는 장소였다. 지금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를 위한 만남의 장소가 된 것처럼, 국제적십자사, 유엔, 국제노동기구, 세계보건기구, 세계교회협의회 등은 아예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인구의 사십 퍼센트가 외국인이다.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여기서 살며 일하는 사 - P66

람은 이만오천 명이다. 유엔에는 부서간의 문서 전달을 위해 상근적으로 일하는 사람만 스물네 명쯤 된다.
혁명을 꾀하는 이들에게 고뇌하는 국제 협상가들에게, 그리고오늘날의 경제 마피아들에게 제네바는 평온함과 석회 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과 호수 여행, 눈, 예쁘게 생긴 배, 수면에 비친 황혼,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볼 수 있는 나무에 내린 흰 서리, 세상에서 제일안전한 승강기, 호수에서 잡아 올린 북극의 물고기, 밀크 초콜릿, 그리고 한없이 사려 깊으며 세련되기까지 해서 차라리 도발적인 안락함을 제공해 왔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다. - P67

보르헤스는 열다섯 살이던 1914년 여름에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이곳으로 여행을 왔다가 전쟁이 나는 바람에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됐다. 보르헤스는 칼뱅 고등학교를 다녔다. 누이는 미술학교에 다녔다. 아마 그가 첫 시를 쓴 것도 아파트가 있었던 페르디난드 호들러 거리와 학교를 걸어서 오가는 동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제네바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지루해 한다. 지루해 하면서도 좋아한다. 영원한 탈출을 꿈꾸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그보다는 먼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들은 즐거운, 때론 대담하기까지 한 여행자들이다. 여행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도시에서는, 평소처럼 정성껏 준비한 저녁 식탁에 언제나처럼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모든 음식도 늘 제때 준비되어 애매한 미소를 곁들여 나온다. - P67

공원묘지엔 너른 잔디밭과 큰 나무들이 있었다. 방금 깎은 풀밭위를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깡충거리며 가려 딛고 있었다. 보스니아 사람인 정원사에게 방향을 물었다.
안쪽 구석에서 마침내 무덤을 발견했다. 단순한 묘석 하나, 그리고 직사각형으로 깔린 자갈길 위에는 고리버들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 흙을 담아서 줄기가 굵고, 잎이 작고, 열매가 달린 아주짙은 녹색 관목을 심어 놓았다. 나는 그 나무의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 보르헤스는 엄밀함을 사랑했으니까. 엄밀함은, 글을 쓸 때 그가선택한 바로 그 지점에 정확히 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했다.
그는 평생 동안 정치에 빠져 추문에 휘말리고 번민했지만, 글을 쓰는 지면 위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 P75

나는 상처를 합리화해야 한다.
나의 행운이나 불운은 상관없다.
나는 시인이다.

보스니아 정원사에게 물어 보니 회양목이라고 했다. 그걸 몰라봤다니. 오트 사부아의 마을에서는 이 나무의 가지를 성수에 담갔다가 사랑했던 이의 시신에 마지막 세례를 하며 명복을 빌 때 사용한다. 이것이 성스런 나무가 된 까닭은 부족함 때문이었다. 그 지역에서는 종려주일(부활절 바로 전 일요일-역자)에 쓸 버드나무 잎이늘 부족했고, 그래서 상록수인 회양목 가지를 대신 쓰기 시작했다묘석엔 그가 1986년 6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 있었다. - P76

나는 옷으면서 남은 장갑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카티아도 역시웃으면서 내 뒤에 올라탔다. 신호등이 대체로 녹색으로 이어진 덕분에 금세 론 강을 지나 도시를 뒤로 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고개를 올라갔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에 미지근한 공기가 와 닿았고, 굽은 길에서 카티아는 몸을 기울였다. 카티아가 얼마 전에 엘레아학파인 제논의 역설을 문자메시지로 보냈던 게 기억났다. "운동중인 물체는 존재하는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니라죠. 제겐 이게 음악의 정의 같아요."
그렇다면 포시유 언덕에 오를 때까지 우리는 음악을 연주한 셈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오토바이를 멈추고 내려서 호수를, 알프스를, 그리고 수많은 삶이 깃든 제네바라는 도시를 바라봤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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