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에 비해 큰 승복 때문에 그런지 어머니의 조그만 몸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큰 나비처럼 보였다. 아니 아니 헐렁한 승복때문만이 아니었다. 살아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린 그가벼움, 그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여지껏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자유롭고 행복하게 해드린 적이 있었을까. 칠십을 훨씬 넘긴 노인이 저렇게 삶의 때가 안 낀 천진덩어리일 수가 있다니.
암만해도 저건 현실이 아니야,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영주는 그래서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못했다. 그녀가 딛고 서 있는 곳은 현실이었으니까. 현실과 환상사이는 아무리 지척이라도 아무리 서로 투명해도 절대로 넘을수 없는 별개의 세계니까. - P338

아침상에 앉은 세 사람은 모처럼 잘 잤다며 집터가 좋은가 보다고 덕담까지 해주었다. 내 보기에도 그들은 어제보다 훨씬 맑고 개운해 보인다. 어디로 보나 망측하고 지저분한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 같지가 않다. 나는 슬그머니 부아가 나고 샘도났다. 그래서 전혀 생각지도 않은 말을 툭 한마디 내뱉었다.
"내가 풍기면 어쩌려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런 말들을했죠?"
"어떻게 풍겨요. 우리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끼리도 어제 같이 잤지만 서로 그런 거 안 물어봤거들랑요."
용용 죽겠지 하는 투의 ‘소아마비‘의 대답은 옳았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바보처럼 왜 물어봤을까. 어떤 상처하고 만나도 하나가 될 수 없는 상처를 가진 내 몸이 나는 대책 없이 불쌍하다.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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