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몸속에 들어와 자리 잡은 채 강하게 요구하는 강력한 무언가가 이 소설을쓰게 했을 것이다. 그 비참하고 끔찍한 죽음에 대해서 쓰지 않고는 다른 글을쓸 수 없게 하는 막막함, 절박함, 사무침, 애통함, 몸속에 갇혀 있던 그런 것들이눈물처럼 반짝거리면서 줄줄이 흘러나와 이 소설을 쓰게 했을 것이다. 빙의라고해도 좋고, 아룬다티 로이의 어법으로 표현하자면 현기영이 4·3을 소설로 쓴것이 아니라 4.3 으로 죽어간 참혹한 영혼들이 현기영을 선택해 제주도우를쓰게 한 것이다. 자기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하게 한 것이다. 

도종환 시인

4.3 의 역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아시아를 살고 있는 우리들 삶의일부였다. 아름다운 바다 함덕을 품은 조천리에서 일본 군국주의 전쟁 말기제주도를 향한 미군기의 폭격으로부터 해방정국의 흉년과 콜레라, 그리고강제공출과 양과자 강매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이야기가 이 작품에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야학에서 배운 노래에는 "피도 조선, 뼈도 조선/이 피 이 뼈는 조선 것이네/살아 조선, 죽어 조선, 조선뿐이네"라는가사가 있었고, 해방 이후 귀국한 강제징용자들은 "북조선도 남조선도 아니고제주도"라고 외쳐야 했다. 4·3은 그 과정에서 왔고 그렇게 지나갔지만,
『제주도우다』는 이 역사가 잊힐 수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4·3은 지금도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그러한 분위기에서 목청껏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웅변은 인기가 좋았다. 자신의 주장을 소리 높여 호소하고 정당하게 분노를 터뜨리는 정열적인 연설이 웅변이라고이민하는 말했다. 웅변 원고를 쓰고 외우는 일은 어떤 것보다 공부가 되었다. 웅변 공부가 곧 표준어 공부였고,
조선 역사, 인민정치학의 복습이었다. 워낙 무뚝뚝하고필요한 말만 하는 섬사람들은 일제의 억압으로 더욱 입이 무거워졌었는데, 이제 갑자기 입이 트였다. 물렸던 재갈이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혀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새 세상에 나가려면 무엇보다 말을잘해야 하고, 그것도 표준어라야 했다. - P15

미군정이 충격적인 명령을 내린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공식 출범한 미군정이 인민위원회 해체를 명령했던 것이다. 미군정이 삼팔선 이남 조선에서 유일한 정부라고 했다. 인민위원회 체제가 미군정의 행정체계에 반영되기를 원했던 도민들에게 그것은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해방의 기쁨과 열광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도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민위원회 간부들 중에서미군정에 발탁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개는 친일파의 재등용이었다. 일제의 착취 기구에 종사했던 자들이미군정의 부름을 받고 그 자리로 복귀하다니, 하급 관리들은 그만두더라도 친일파의 고위직 재등용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면서기를 하던 자들이 버젓이 면장으로 승진하여 복직하기도 하고, 순사 노릇 하던 자들이경찰서장, 지서 주임이 되었다.  - P26

조천소학교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년별자치회가 생겼는데, 상급생들 중에 열명이 뽑혀 새로 생긴 인민위원회 소년부로 들어갔다. 지도 교원은 정두길이었다. 소년부의 별칭은 샛별소년대로 구성원은 나이 제한을 두어열세살부터 열다섯살까지였다. 창세도 대원이 되었다.
샛별소년대는 일요일 새벽마다 조기회를 열었다. 십여명의 소년들이 정두길의 지도 아래 어슴푸레 동녘이밝아올 무렵 비석거리에 모여 빗자루를 들고 마을 길을청소하다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우르르 바닷가로달려갔다. 수평선 위로 미끈하게 솟아오르는 태양!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일출의 광경이 이제는 창세에게도 사뭇 달리 보였다. 찬란하게 퍼져가는 햇빛을 가리키면서 정두길은 희망의 빛, 해방의 빛, 승리의 빛이라고 말했다.  - P49

추석 명절을 지내자 곧 추수철이 왔다. 모처럼 장모가찾아와도 굽힌 몸 펼틈이 없어 엉덩이로 인사한다는 바쁜 나날이었다. 마을마다 사람들이 목장에 올라가 월동용 건초를 장만했고, 이어서 서리 내릴 무렵에는 조를 추수했다. 풍년은 아니었어도 추수의 육할 이상을 빼앗아가던 공출이 사라지자 집집마다 어느 정도 곳간을 채울수 있었다. 점심은 굶고 저녁에는 톳나물죽을 끓여 먹기일쑤이던 그 지긋지긋한 시절이 이제는 끝이 났다. 추수를 마친 마을 전체가 흐뭇하게 배불러 보였다. 가을철 최상의 먹을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향기롭고 빛깔 고운 노랑 햇쌀밥에 살진 갈칫국인데, 사람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그것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즐거워했다. - P61

배낭 속에는 신문 외에 다른 물건이 들어 있기도 했다.
작은할아버지의 건재한약을 고객에게 배달할 때도 있었고, 보름에 한번꼴로 작은할아버지와 함덕리의 송장의 어른이 주고받는 한시를 배달하기도 했다. 창세는 배달할 때 말고도 어지간한 거리는 뛰어다녔다. 전에는 어디에 걸터앉으면 한쪽 다리를 덜덜 떠는 버릇이 있어 어머니로부터 복 털어낸다고 야단을 맞곤 했는데, 달리기를 시작하자 희한하게도 그 버릇이 없어졌다.
발목이 잘록하게 가는 말 다리여서 그랬을까, 창세는말처럼 달리기가 좋았다. 지난번 마라톤 경기에서 일주도로를 가득 메운 아이들을 하나하나 따돌리면서 내달 - P63

릴 때의 그 쾌감이라니! 난생처음 느껴본 짜릿한 감각이었다. 저번에 이등을 했으니 다음번에는 꼭 우승을 하고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렇다고 마라톤 선수가 되고 싶은것은 아니었고 그냥 달리기가 좋았을 뿐이다. 두길 선생처럼 시를 좋아하는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그날 마라톤 출발에 앞서 두길 선생이 아이들을격려하던 말이 생각났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와 같은 것이니 쉬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침착하게 달려라. 창세는 자신의 삶이 이제 막 출발선을 벗어난마라톤과 같다고 생각했다. - P64

창세는 누나 만옥과 함께 상뒷동산 풀밭에 앉아 눈앞에 넓게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았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광활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쪽 멀리 일주도로에 회오리바람이 일어 먼지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일주도로 건너편에 조천리가 있고, 그 너머로 푸른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상뒷동산 아래 사방으로 초원 지대가 질펀하고, 한라산 쪽으로 새미오름, 당오름, 바농오름과 지그리오름, 아래쪽엔 기시네(구그네)오름이 보였다. 드넓은 초원 여기저기에 수백마리의 소와 말이 끼리끼리 무리 지어 풀을 뜯는 풍경이 평화로웠다. 말들이 풀을 뜯다 말고 서로 주둥이로 갈기를 다듬어주고, 벌렁 드러누워 네 발로 허공을 차며 요동질하면서 흙목욕하는장면도 눈에 들어왔다. 소똥, 말똥 무더기에 까마귀들이날아들어 헤집으며 먹을 것을 찾았고, 거기서 알싸한 냄새가 풍겨왔다. - P70

"만옥아, 잘 들어라이. 말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잘 사귀어야지 이기려고 하면 안 되여. 탈 나고 말아. 말은 사람에 의해 길들여지지만, 사람 또한 말에 의해 길들여지는 것이다. 농사짓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라 농사라는 거는 사람과 땅이 서로 의좋게 사귀는 일이여. 땅은 사람에 의해 길들여지고, 사람 또한 땅에 의해 길들여져지는 거주. 알았주이, 만옥아?"
만옥이 그 말에 감복하여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예, 알았수다!"
"자, 게민 다시 못에 가서 말에게 물 먹영 오라. 기를 팍 꺾어놨으니 이젠 그렇게 날뛰지 않을 거다. 그래도 이 말을 완전히 느 말로 만들려면 앞으로 보름동안 매일 두시간 이상 가르쳐야 될 거여." - P82

칠만명 일본군의 취사용 숯을 마련하기 위해 수없이벌목된 잡목숲도, 항공유용 송진 채취로 도끼에 찍히고톱으로 잘린 소나무숲도 이제 그 상처를 아물리는 중이었다. 일본인의 건착선, 잡수기선 들이 싹쓸이하던 제주바다도 해방을 맞아 갈치, 고등어, 소라, 전복 등이 살찌고 있었고, 온갖 노역에 시달리던 말들도 목장으로 돌아와 건강을 회복하는 중이었고, 날마다 백여마리씩 도살당해 그 수가 확 줄어든 소들도 다시 불어날 터였다. 전쟁 전에 제주 산야에는 소 삼만마리, 말 이만마리가 방목되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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