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에 동물을 사용하는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치열한논쟁을 야기했다. 설령 의학적 목적에서 수행된 경우라 해도 말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종이 다르다는 것을 근거로 언급하며 동물들이 인간의 건강을 위한 실험 표본이 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치료법이 종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고, 심지어 양질의 연구들조차 간혹 신뢰할 수 없는 결과들을 도출한다." 예컨대 HIV를 위한 다양한 치료법들은 영장류 연구에서는효과적이었으나 인간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암 연구도 신뢰할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암의 원인과 결과 모두 종의 경계를 넘어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동물실험의 실패로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아마도 1960년대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탈리도마이드는 동물들에게 처방됐을 때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약물이었기에 곧 입덧을 진정시키는 용도로 임신한 여성에게 처방되었다. 그러나 이 약물 때문에 수천 명의 아이들이 사지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 P332
DIIAAR의 가장 위대한 힘은 이 단체가 갈등과 모순이 들끓는 어려운 공간에 들어섰다는 데서 비롯된다. DIIAAR는 동물실험의 수혜를 입은 장애인으로서 동물실험을 비판하고, 동물실험이 치료법을 찾아줄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다른 장애인들과 맞섰다. 그렇게 DIIAAR는 동물 권리 운동과 장애에 대한 권리 운동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가장 열띤 영역으로 곧장 진입했고, 충돌이 아닌 연대를 위한 기회를 창출했다. DIIAAR는 동물에게 필요한 것과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이 역사적으로 상충했던 지점들을 인정하는 것이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을 위한 투쟁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 P335
2007년의 어느 날 밤 나는 몇몇 장애인 동물운동가들과술을 마시러 갔다. 유일한 이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모임은내가 드디어 비건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다른 장애인동물 옹호가들과 이야기하며 나는 단지 나 자신의 편의 때문에동물을 상품화하고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시스템에 가담하고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건이 되기 위해 내 삶에서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또한 내 몸의 한계를동물성 식품에 대한 나의 집착과 분리해서 보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 P336
내가 위와 같은 현실을 인정한다는 점에근거해서 말이다. 이는 정당한 비판이다. 여기서 내 목표는 종차별주의를 한 가지로 고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우리 중 누군가는지금의 이 어지러운 세계에서 음식 선택을 통해 동물 착취에 대항하기 좀 더 수월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스프링이 말했듯, "우리 자신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과거에는비록 동물에게 기댔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비거니즘을 불구화한다는 것은 곧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이라는 목표를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진 서로 다른 능력들이우리를 서로 다른 속도와 방법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말이다. - P343
페미니스트들은 오래전부터 상호의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의존적인 이들"을 돌보는 것이 역사적으로 여성들, 특히유색인 여성들의 부담이 되었던 방식을 비판하든 아니면 돌봄의 윤리(돌봄이 우리의 정의 개념 안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방식)에 주목하든, 페미니스트들은 인간(그리고 종종 비간인)을 서로에게 기대는 상호의존적 존재로 이해해온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이론은 돌본다는 것의 의미에 심혈을 기울인 데 비해, 돌봄받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다루지 않았다. 나는 돌봄이라는 것과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장애인으로서 나는 돌봄을 핵심 요소로 하는 상호의존의 철학을 지지한다. 그와 동시에 나는 돌봄(특히 선의나 자선의 형태를띠는 돌봄)이 나에게 더 자유로운 삶을 가능케 할 거라고 생각하 - P344
는 관점에 저항한다. 돌봄을 받는다는 건, 꼭 아이 취급을 당하거나 억압적이지 않더라도 거북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돌봄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장애학자 크리스틴 켈리Christine Kelly는 <접근 가능한 돌봄으로 다리 놓기〉라는 글에서 이렇게 쓴다. "장애학의 이론 작업은 암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돌봄을 학대, 강제, 시설화의 역사 (물리적 차원의 시설화와 비유로서 언급되는 시설화), 행위 능력의 부인 등을 포함하는다층적인 억압 형태로 위치시킨다. "30 역사적으로 장애에 대한권리를 옹호하는 이들은 돌봄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그 대신권리와 서비스, 나아가 장애인들의 참여와 기여를 제한하지 않는 접근성이 확보된 사회를 원한다고 선언해왔다. - P345
지난 수년간 페미니스트 장애학 연구자들과 이런 복잡한문제들에 다리를 놓고, 돌봄대상자와 돌봄 제공자 모두의 가치및 억압적인 역사를 인식하는 돌봄 이론을 정립하고자 노력한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작업에서 고려된 측면 중 하나는 돌봄받을 필요가 있다고 역사적으로 간주된 사람들(즉 "의존적인 자들" 내지는 "burdens" 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자신이 맺는 관계, 사회 그리고 더 넓은 세계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또한 동물복지 논쟁에서 가장 많이 드러났듯, 돌봄 이론과 상호의존 이론은 동물 옹호와 관련된 논의들 안에서 다양한방식으로 나타난다. 가축화된 동물이 인간에게 생존을 의존한다는 식의 수사는 동물을 돌봐야 할 우리의 책무가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들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행위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빈번히 사용되었다. - P345
일반적으로 장애인은 의존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우리는돌봄 제공자에게 신체의 안녕을 의존하고, 많은 경우 정부에게경제적 복지를 의존한다. 동물 역시 통상 의존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가축화된 동물들은 분명 인간에게 의존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먹이, 주거, 건강상의 보살핌, 심지어 종종 출산과 성교 보조까지 받는다. 이와 매우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야생동물 역시 우리에게 의존한다. 서식지나 식량원 등을 인간이 결정하는건 물론이고, 개별 동물을 사냥하거나 도태시킬지 그리고 그 종을 미래에도 살아남게 할지 여부까지 인간이 결정한다. 자유주의자였던 우리 할머니는 장애인인 내가 얻는 것 모두에 감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숲속에 그대로 남 - P348
겨진다면 "거기서 죽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자연 상태"에서 내가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의존적이 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누군가가 자신의 산딸기를 친절하게 나눠주지않는다면 혹은 (할머니가 그랬듯) 고기 한 조각을 내게 나눠주지않는다면 나는 금세 굶주리고 말 것이다. 굉장히 특이한 성격이었던 할머니에게 토를 다는 말이 되겠지만, 할머니의 기본 명제는 흔히 마주하는 사회적 통념과 다를 게 없다. 자연에는 장애인을 위한 자리가 없고, 장애인은 다른 사람들의 선의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통념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비장애인인 내 동생들 역시 인간의 도움이나도구 없이 혼자 남겨지면 결국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놓쳤다. 나보다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그들 역시 금방 죽게 될가능성이 더 높다. - P349
미국에서는 자립independence과 자족 self-sufficiency이 특히 강조된다. 미국은 누구든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나라로 낭만화된다. 이 나라에서 자립은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는 가치가 된다. 특히 그것이 "자유"로 표현될 때 더욱 그렇다. 이는 장애인들에게는 삶이 자동으로 비극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어떻게 진실일 수 있을까? 장애학자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 역시 다른 장애 이론가들처럼의존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자립을 누군가의 조력 없이 설거지하고, 옷을 입고, 화장실에 가고, 요리하고, 식사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한다. 즉 그들은 자립을 자기돌봄 행위self-care activities의측면에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자립을 다르게 정의한다. 즉 장애인은 자립을 혼자서 혹은 도움 없이 어떤일을 하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삶을 관리하고 그 삶에 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으로 간주한다 " - P350
다수의 장애인들이 의존을 바라보는 방식과 사회의 나머지 다수가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은 서로 다른데, 이러한 차이는개인의 신체적 자율성에 대한 강조에서 비롯된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자립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자족적인 것을 뜻하기보다는 제공받는 서비스(전기·의료·교육 서비스든 사적인 서비스)를 관리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는 장애인들뿐 아니라 모두에게 그렇다. 의존의 부정적인 귀결 대부분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경제권 박탈이든 사회적 소외든 시설 감금이든 사회적·문화적·건축학적 장벽이든 말이다. 장애인들이 겪는 사회적 처우는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인구 집단들이 마주하는 조건들이 더욱 두드러진 형태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비장애인과 장애인모두 똑같이 의존적이라는 점이 아니라, 자립과 의존의 이분법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 P351
예컨대 사지마비인 사람은 비장애인과 같은 형태의 신체적인 자율성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의존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사람이 보조 서비스를 거의 혹은 전혀 이용할 수 없다면, 다시 말해이용 가능한 주택이나 교통수단 등을 획득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타개할 아무런 수단도 갖지 못한 채 최악의 경우 요양 시설에 감금될 것이고, 최선의 경우라 해도 가족이나 자원봉사자의 변덕에 내맡겨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를 얻을 수 있고 활동보조인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의존적이기보다 상호의존적인 것이 된다. - P351
별은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많은 장애인들, 즉 끊임없이 의존적이고 짐스럽다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들이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 의존적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모두가 실제로는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이 점이 더욱 중요하다)을상기시키는 건 정말로 중요하다. 물론 모든 장애인들이 자기결정 self-directing을 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마이클 베루베가 썼듯, "자율성과 자기표현은 심지어(혹은 특히) 장애인에게서도 매혹적인 이상으로 남겨져 있다. 그는 생존의 모든 측면을 타인에게 의존하며 신체적 자립뿐 아니라 자기 삶에 관해 결정을 내릴 능력조차 없는 개인들이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 P352
가축화된 동물들은 우리에게 의존적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그들을 인간과 전혀 상호작용하지 않는 상태로 내버려둘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는 어떤 동물(인간이든 아니든)에게도 실제로 이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항상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심지어 환경과도 그렇다). 우리 모두는때로 끔찍이 친밀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존한다. 어쩌면 의존이 이토록 불편한 건 친밀성을 요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축화된 동물들과 많은 장애인들에게는 교류와 개입이 필요하다. 자립의 환상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어떤 차원에서는 이 취약성이 강제력을 정당화하는 소름 끼치는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취약성에는 새로운 존재 방식과 지원 및소통의 방식, 즉 능력과 종의 차이를 관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새로운 방식 또한 잠재되어 있다. - P363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베일리가 나 그리고 데이비드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시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지내고 있다. 베일리는 내 곁에 있는 자신의 잠자리에 누워있다. 내가 아는 어떤 인간보다 크게 코를 골면서 말이다. 그 잠자리는 책상 아래 있던 담요로 베일리가 직접 만든 것이다. 나와함께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는 일은 이제 거의 없지만, 이 책을쓰며 보낸 한없이 긴 시간 동안 베일리는 내게 값을 매길 수 없을만큼 귀중한 반려 생활을 선사했다. 나는 베일리가 우리의 삶에와준 것에 크게 감사하지만, 우리 관계의 아이러니함이 내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처음에 나는 내 삶을 더 편하게 해줄 개를 원했는데, 결국에는 장애견과 함께 있게 된 것이다. 데이비드와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베일리의 보조 인간인 셈이다. - P371
베일리는 여전히 내 보조견이다. 베일리는 나의 감정과나에게 필요한 것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주고, 매일 함께 산책할 때 내가 마주하는 비장애 중심주의를 자신의 존재 자체로 매개해준다. 나는 가능한 한 내 자신이 베일리의 보조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나는 베일리가먹는 약에 땅콩버터를 바르고, 베일리가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게 하고 (내가 아는 한 베일리는 냄새 나는 엘리베이터를 가장 좋아하는 유일한 반려자다), 불안해하거나 아파할 때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다른 디스크가 밀려나와 베일리에게 - P371
엄청나게 큰 고통이 생겨나고 내가 베일리를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한계에 이르게 될까 두렵다. 간혹 나는 베일리의 척추 몇 마디를 제거해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혹은 베일리를 허리를 없애주는 마법 기계에 넣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면 베일리를 치료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문득 깨닫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구이고 의존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능력 없는 인간이 비효율적이고 의존적고불구인 개를 돕고또 그의 도움을 받는 것에는 무언가 적절하다는 느낌, 아니 사실무언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있다. 종이 다른, 취약하고 상호의존적인 두 존재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일말이다. 서툴고 불완전하게, 우리는 서로를 돌본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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