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저했다. 나는 장애에서 어떤 가치를 보고 있는 걸까?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답해야 하는 걸까? 피터싱어에게 장애가 왜 중요한지 설명할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머릿속을 뒤졌다. 상호의존이나 정상성 비판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핵심 요점이 머릿속에서 채정리되기도 전에, 내 안의 예술가가 불쑥 튀어나와 대답했다.
"저는 예술가예요. 그래서 창조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됩니다. 장애는 이 세계와 소통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저는 누구에게도 입을 사용해 무언가를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어요. 모든 것 하나하나에는 어떤 차원의 창조성과 혁신성이 깃들어 있죠. 누군가는 이로 인해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중 많은이들에게 몸의 모든 측면이 미리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아주 해방적인 일이에요……" 싱어는 즐거워 보였고, 흥미로워했다. "저는 왜 제가 장애나 장애인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는지, 왜 - P236

2달러짜리 알약을 먹지 않으려는지 수많은 목록의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어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서로다른 행성에서 온 두 존재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이 예술가인 것은 아니고, 또 자기 삶을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걸요?" 싱어가 지적했다.
"맞아요, 하지만 예술가만 그런 식으로 느끼는 건 아니에요. 저는 많은 예술가들을 알게 되긴 했지만, 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장애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장애인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싱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확실히 해리엇 (맥브라이드 존슨)도 기본적으로 똑같은 걸 말했어요. 자신이 행복하다고요. 근데 그녀는 예술가가 아니라....… 변호사였죠." - P237

왜 나는 2달러짜리 알약을 먹으려 하지 않는가? 알약을먹는다면 들판을 내달릴 수도 있을 텐데! 달빛 아래서 원을 그리며 춤출 수도 있을 텐데! 계단을 층층이 뛰어 오르내릴 수도 있을텐데!
2앨리슨 케이퍼는 자신의 저서 《페미니스트, 퀴어, 크립》에서 장애를 두고 치료 의제가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현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 문제를 직면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가정하는 현실이야말로 치료 의제에 힘을 실어주고강제적이고 강압적인 권력을 부여한다"고 하며, "이 물음은 피 - P237

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이에 대한 대답은 자명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썼다. 25이런 비장애 중심주의적 가정에도 불구하고, 대개 장애는장애인들의 삶에 스며들어 그 일부가 된다. 장애로 인해 우리가완전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우리가 장애인임을 항상 꼭 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단지 우리가 장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장애가 우리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우리 (혹은 적어도 우리 대부분)는 우리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애석해하면서, 이를테면 ‘장애가 없었다면 맨발로 해변을 걸어 다녔을 텐데‘라는 식으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 P238

싱어에게 장애가 창조적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장애인 무용수이자 예술가, 시인인 닐 마커스 Neil Marcus 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장애는 ‘용감한 고투‘나 ‘역경과 마주하는 용기‘ 같은 것이 아니다. ......장애는 예술이다. 그것은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다."
나는 이 말을 사랑한다. 이것은 예술가로서의 나 그리고일상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집거나 어디엔가 도달할 방법을창조적으로 알아내려고 하는 장애인으로서의 나, 이양쪽 모두와 공명한다. 마커스의 말은 장애가 단순히 결핍이라는 생각에저항한다. 게다가 그의 말은 우리가 효율성, 진보, 자립, 이성을반드시 중심에 두지는 않는 삶의 방식들에서 가치를 찾도록 촉구한다. 장애학 연구자 로버트 맥루어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겪을 장애를 환영하고 그것을 욕망한다는 것은 어떤 - P238

의미일 수 있는가?"25 이러한 정서는 우리가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대안적인 방식들에 깃든 관능성, 예측불가능성 그리고 아름다운 잠재력을 보도록 자극한다. 장애는해방적일 수도 있고, 신나는 일일 수도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정상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지속적인 공세에서 벗어나게해주는 자유의 장소일 수도 있다.
다양한 자폐 프라이드 autistic pride와 매드 프라이드mad pride운동이 증명하듯, 이런 시각은 비단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과만 관련되지 않는다. 이성과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능력이없는 개인들의 창의적이고 미적이고 관능적인 세계를 이해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구드DavidGoode의 작업을 생각해보자. 그는 1960년대부터 수십 년간 구어를 쓰지 못하고 대부분 지적장애도 있는 장애 아동들을 관찰했다. 구드는 자신의 작업에서 크리스와 함께했던 일에 대해 썼다. - P239

크리스는 시설에 수용된 어린여자아이로, 청각장애와 시각장애,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구드는 자신과 크리스가 상이한감각 세계에 살고 있음을 이해했고, 그래서 그녀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고생각했다. 크리스는 머리를 특정한 각도로 구부린 채 딸랑이나숟가락을 치며 반복해서 몸을 흔들었다. 그녀를 몇 시간에 걸쳐 관찰한 구드는 그녀의 한쪽 귀와 한쪽 눈에 어느 정도의 청각과시각이 있다고 판단했다. 크리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 잘 파악하기 위해 구드는 그녀의 감각적 지각을 느껴보려고 자신의 귀와 눈을 덮었다.  - P239

우리 대부분이 자신의 고통과 경험을 쉽게 분리해 명명할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은 이 딜레마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장애인 저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하는 일라이 클레어Eli Clare는 이렇게 쓴다. "어느 괜찮은 날엔 ‘내 몸 안으로 향하는 분노‘와 ‘바깥의 일상적인 망할 비장애중심주의로 향하는 분노‘를 분리할 수있다. 하지만 전자의 분노를 후자의 분노로 바꿔서, 후자를 더욱타오르게 만드는 일은 그리 간단하거나 깔끔하지 않다."3" 외적으로 드러나는 비장애 중심주의, 차별, 억압과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 고통, 슬픔, 상실이 서로 불가피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은 장애를 매우 어렵고,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풀기 힘든 경험으로 만든다. 장애를 고려할 때 고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여지를 두는 것(이는 많은 장애인들의 근본 경험이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신체나 정신으로 살아가며 마주할 수 있는 슬픔의 여지를 두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 P249

만약 내가 내 신체의 접근권을 주장하며 그 행사에 참가했다면, 내가 내 몸이 드러나는방식에 대해 갖는 그런 자신감은 오인을 초래했을 것이다. 다시말해 내가 동물과 맺는 관계 그리고 동물과의 친밀감을 논하는것조차 장애에 대한 내 사랑의 제스처로 오인되지 않았을까? 내행동이 행사를 망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다른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편의를 요구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식탁 친교를 주장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 밤 내 말들의 뼈대를 만든 것은 공간의 접근 불가능성이었다. 그 불가능성은 나로 하여금 동물 억압과 장애 억압을그저 당연시함으로써 비가시화하는 방식에 주목하도록 했다.
스티어를 저녁식사로 제공하고 장애인을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도록 만든 것 말이다. - P269

나는 장애인 공동체가 먹는 음식이 동물, 인간환경을 황폐화하고 잔혹성과 연관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이 많거나 소위 자족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들만이 취할 수 있는 음식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연 우리는산업화된 현 음식 시스템이 남용되는 현실과 그 부적절성을 문제제기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자족적으로 먹을 수 있는 수입과 시간, 욕망(능력은 물론이고)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동물들을 그저 착취할 수 있고 상품화할 수 있는 의존적인 신체 이상의 존재로 바라보는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미래에 관한 더 급진적인통찰은 단순히 환경이나 소비자 개인의 건강에만 이로운 것이아닌, 비장애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를 포함한 위계와 억압의역사적 패러다임에 저항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아울러야 한다. - P296

다행히도 지속 가능성 운동은 획일적이지 않고, 그런 주제들에 무심하지도 않다. 무수한 운동가, 단체 조직가, 농부들이 환경 문제와 복잡한 사회문제의 분리 불가능성에 대해 매우다채로운 생각을 보여준다. 예컨대 국내외의 음식 정의 food justice와 음식 주권food sovereignty 운동들은 저렴하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음식, 음식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 커뮤니티가 자신의 음식 시스템을 직접 관리할 권리 등을 요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운동들이 항상 장애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아니고, 비거니즘이나 베지테리어니즘을 촉구하는 일은 더욱더 드물지만,
그럼에도 커뮤니티의 관리와 역량 증진에 대한 강조,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더 정의로운 미래에 대한 통찰 등은 비 - P296

장애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에 반하는 틀을 구축하게 하는 급진적 잠재성을 이 운동들에 부여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연결하는 조직들도 있다. 예를 들어 오클랜드에 기반을 둔 비건 음식 정의 단체인 음식을 통한 역량 증진 프로젝트 Food EmpowermentProject는 음식 접근성, 농가와 저소득층 커뮤니티를 위한 정의,
인종주의, 장애, 동물 학대, 환경문제 같은 이슈들을 연결한다.
이 프로젝트는 음식 운동들이 교차적으로 사고하도록(그리고 동물의 고통과 비거니즘을 진지하게 고려하도록 촉구하며, 동물 옹호가들에게도 교차적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비건과 베지테리언에게 전통적 채식주의자의 목표인 "잔혹 행위없음 cruelty free"의 개념을 식물을 기반으로 한 음식을 기르고 수확하고 처리하는 인적 비용을 포함하는 수준으로까지 확장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이 단체는 초콜릿 생산에서 발생하는 아동 착취, 우리가 소비하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극도로 열악한노동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 P297

공장식 축산 농장과 도살장처럼, 전쟁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형태로, 부상을 입은 군인과 민간인의 형태로, 또한 오랫동안 남게 되는 전쟁 독극물이 중에는 에이전트 오렌지 AgentOrange*나 열화우라늄 처럼 의도적인 것도 있고, 하수 시설이 없는구덩이에 묻어버린 비행기 탈지제처럼 우발적인 것도 있다)의 영향이라는 형태로 장애를 만들어낸다.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그 후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부재하는 경우도 많다. 상호의존적으로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과 그것을 지원하는 기관들이부재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전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대부분은 결국 빈곤해지고, 낙인찍히고, 일자리와 의료서비스,
커뮤니티의 지원 등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이 장애인들은인류 공포의 상징으로 구축된다. - P320

장애운동가와 학자들이 장애가 이 세계에 무언가가치 있는 것을 제공한다고 할 때, 그것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장애를갖도록 만들어야 한다거나 사람들이 장애를 갖게 될 때 축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전쟁, 도살장, 농업, 산업 오염물, 화학물중독, 사고, 병, 빈곤 혹은 사회적 서비스의 부재 등 그 원인이 무엇이든 장애는 흔히 끔찍한 불의가 가져온 결과이다. 설령 그 원인이 비교적 덜 유해한 경우에도 장애는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 장애를 경험하는 데서 비롯되는 가치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P321

만약 내 몸에 대한이해가 단순히 "미군과 그 폐기물이 내게 장애를 가져왔다"에그친다면, 장애가 있는 내 친구들이 스스로를 불의를 나타내는표상으로밖에 여기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더욱 공허해질 것이다. 대안적인 존재 방식, 소통하고 공간을 이동하는 대안적인 방식,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대안적인 방식 그리고 특히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지금도 끼치고 있는그런 불의에 저항하는 대안적인 방식들의 가능성이 더욱 사라져버린 그런 공허한 세계 말이다. 단순히 좋거나 나쁜 것으로 치부하기에 장애는 너무나 복잡하다. 하지만 장애를 만들어내는산업과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 판단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쉽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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