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나는 시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즐겁게 논픽션을 읽는 일이별로 없다. 잘 쓴 에세이에 감탄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더 좋고, 그 생각이 추상적일수록 이해를 못한다. 내 머릿속에서 철학은 우화로만 서식하고, 논리는 아예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나 또 문법 이해는 훌륭하다. 나에게는 문법이 언어의 논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사고방식의 이런한계는 최악이나 다름없는 산술 능력, 체스는커녕 체커도 두지 못하는 무능력, 어쩌면 음악 조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특성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 단어가 아니라 숫자와 그래프로표현된 개념, 아니면 ‘죄악‘이라든가 ‘창조‘ 같은 추상적인 말로 표 - P9

현되는 생각들에 저항하는 방화벽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저 그런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면, 지루하다.
그런 까닭에 내가 읽는 논픽션은 대개 서사가 있다. 전기,
역사, 여행, 그리고 서사적인 면이 있는 과학, 그러니까 지질학, 우주론, 자연사, 인류학, 심리학 등등의 과학.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그리고 서사성만이 아니라 글의 질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옳든 그르든 간에 나는 따분하고 서툰 스타일은 곧 사고의빈한함이나 불완전함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다윈의 정확하고 폭넓고 탁월한 지력은 그의 명료하고 강하고 활력 있는 글로 표현된다고 본다. 그 글의 아름다움이 곧 지성이다. - P10

이 말은, 내가 논픽션을 쓸 때 스스로에게 말도 안 되게 높은 기준을 세워 놓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사가 아니면 쓰기가 힘든 데다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나에게 소설이나 시를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쓰기도 하고, 쓰고 싶어 하며, 무용수가 무용을 하거나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씀으로써 채워진다. 소설이나 시는 나에게서 바로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의문의 여지 없이 스스로를 그 글의 정확도와 정직성과 품질을 판단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강연용 글이나 에세이를 쓰는 건 언제나 학업과 비슷하다. 그 글들은 스타일과 내용 모두 외부 평가를 받을 테고, 그게 당연하다. 내 소설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지만, 내 에세이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에 대해 나보다 훨씬 잘 아는 사람들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 - P10

서평은 흥미롭고 부담스러운 글이다. 그리고 문학적으로나 다른 분야로나 더 넓은 문제들과 관련된 서평에서는많은 말을 할 수 있다.
싫은 책을 다룰 때만 아니면 서평 쓰기는 좋아한다. 서평을읽을 때는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글이 최고지만, 잘 쓰고잘 맞는 악평도 귀하게 여긴다. 형편없는 책에 대한 죽여주는 평을읽으면 죄책감 없이 즐겁다. 그러나 악평을 쓰는 즐거움은, 저자에대한 동료 의식이며 고통을 가하는 것을 즐긴다는 데 대한 부끄러움 등 온갖 죄책감 탓에 우울해진다………. 그렇다 해도 내가 저자가뭘 하려 했는지 이해하고, 내 비평이 절대적이란 환상에 시달리지도 않는 한, 조악한 작품을 대충 넘어가 줄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실린 유일한 진짜 악평은 나에게 심각한 문제를 선사했다.
저자를 많이 존경했지만, 책은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걸 어떻게 평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친구인 소설가 몰리 글로스에게 호소했다. 어떻게 하지? 몰리는 그냥 플롯을이야기하면 어떠냐고 했다. 훌륭한 해결책이었다. 대마(大麻)를 충분히 공급하면 문제가 사라지리니. - P12

이 글들은 사실 모두 다양한 행사에서 다양한 청중들을 상대로 어쩌다 내놓은 조각글들이다.
주제는 책 속에 나오는 동물들, 만들어 낸 언어, 잠, 내가 성장한 집, 아나키즘, 시를 읽는 방법, 그리고 어느 받침대에 대한 시까지 망라한다. 이 글들을 정리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연대순배열이었다. 상당수는 이 책에 싣기 위해 살짝 손을 보았다. 원래글이 궁금하다면, 처음 출간된 곳이나 내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있다.
공공연히 정치적인 글은 딱 두 편뿐이다. 하지만 로빈 모건‘ 같은 사람들에게 배웠다시피,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분리할 수 없다. 많은 글이 문학의 특정한 면을 옹호하는 내용이며,
때로는 상당히 호전적인 옹호를 담고 있다. 상상 소설, 장르, 여성의 글, 경험형 매체와는 다른 읽기 등에 대해서다.
지난 15년간은 상상 문학에 대한 비평적 관심과 이해가 꾸준히 증가했고, - P18

준히 증가했고, 리얼리즘만이 문학이라는 이름을 쓸 자격이 있다는 융통성 없는 시각에서는 멀어졌다. 이렇게 쓰는 동안에도 내가장르에 대해 변호할 필요가 없어져 간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러나 문학의 성차 문제는 괴로운 상태로 남아 있다. 여성들이 쓴 책은 계속 차별당하거나 소외당하며, "중요한 문학상은더 적게 받고, 작가가 죽고 나면 부주의하게 다뤄지는 일이 더 많다.
"여성의 글에 대해서는 들어도 "남성의 글에 대해 듣지 못하는 상황, 즉 남성의 글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한 균형은 맞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흔히 쓰면서 자연히 따라와야 마땅할 반대말인매스큘리니즘은 아예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동일한 특권과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둘 다 필요 없어질 날을 간절히 바란다. - P19

문해력이란 사용설명서를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상상력이 인류가 가진 가장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마주 보는 엄지의 유용성을 넘어설 정도죠. 저는 엄지손가락 없는삶을 상상할 수 있지만, 상상력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게 맞장구치는 목소리들이 들리네요. "맞아요, 맞아!" 이렇게 외치는 목소리요. "창의적인 상상력이야말로 사업에 굉장한플러스죠! 우린 창의력을 중시합니다. 보상도 하고!" 시장에서 ‘창의력‘이라는 말은 더 큰 이익을 낳는 실용 전략에 적용할 수 있는아이디어들을 내놓는다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런 격하가 하도오래 이어지다 보니 ‘창의적‘이라는 말이 더 떨어질 데도 없어졌어요. 저는 이제 창의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자본가와 학자들이좋을 대로 악용하는 데 손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상상력은 차지할 수 없습니다. - P22

상상력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에요. 이윤 추구의 어휘들에 상상력이 낄 자리는 없습니다. 상상력은 무기가 아닙니다. 모든무기가 상상력에서 비롯하고, 무기의 사용이든 비사용이든 상상력에 달려 있으며 다른 모든 도구도 마찬가지지만 말입니다. 상상력은 정신의 필수 도구이며 생각의 본질적인 방식, 사람이 되고 사람으로 남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입니다.
도구라면 다 그렇듯이 우리는 상상력을 사용하도록 배워야 하고, 사용하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신체와 지성,
언어 능력처럼 상상력도 처음부터 가지고 있어요. 이것들 모두가 - P22

인간다움에 필수적인 요소들이고, 사용법과 잘 사용할 방법을 배워야 하지요. 그런 가르침과 훈련, 연습은 유아기에 시작해서 평생계속해야 해요. 어린 사람들은 성장하기 위해서, 건강해지기 위해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아니면 즐거움을 위해서 몸이나 정신의기본 기술들을 훈련해야 하지요. 상상력도 훈련해야 합니다. 정신이 살아 있는 한 계속 해야 해요.
핵심 문학을 들어서 배우거나, (문자 문화라면) 읽고 이해하도록 가르침을 받을 때, 아이들의 상상력은 필요한 훈련의 상당 부분을 수행하게 됩니다.
다른 것들은 대부분 그만한 훈련이 되지 못해요. 심지어 다른 예술이라 해도요. 우리는 말이 많은 종족이거든요. 말은 지능과상상력 양쪽이 다 타고나는 날개랍니다. 음악, 춤, 시각 예술, 온갖종류의 공예, 모두 다 인간발달과 안녕에 중요하고, 세상에 배워서쓸모없는 예술이나 기술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이 눈앞의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힘을 얻고 돌아오도록 훈련하려면 시와 이야기만 한게 없습니다. - P23

중심이 어디인지, 즉 집이 어디이며 집이란 무엇인지를 모르는 아이는 아주 위험한 상태에 놓인 아이입니다.
집이란 엄마와 아빠와 누이와 아기가 아니에요. 집이란 여러분을 들여 주어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아니, 아예 장소가 아닙니다. 집은 상상에만 존재합니다.
상상한 집은 실재하게 됩니다. 그 어떤 장소보다 더 진짜이지만, 여러분의 동족이 어떻게 상상할지 알려 주기 전까지는 도달할 수가 없어요. 그 동족이 누구든 간에 말입니다. 동족이라고는하지만 여러분의 친척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언어를 전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죽은 지 1000년은 지났을 수도 있습니다. 종이에 찍힌 말, 목소리의 유령, 정신의 그림자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동족들이 여러분을 집으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러분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삶을 만드는 방법, 구성하는 방법, 상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런 기술들을 가르침 받아야 하지요. 우리에겐 방법을 알려 줄 안내인이 필요합니다. 안내인이 없으면, 우리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게 됩니다. - P24

아이에게 필요한 것, 아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타당해 보이는 선을 따라가는 삶을 상상하며 살았으면서도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하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 사람들의말에 귀 기울이는 겁니다. 수동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귀를 기울여야 해요.
귀를 기울인다는 건 공간과 시간과 침묵이 필요한 공동체행위지요.
읽기는 귀 기울이기의 한 방법이고요.
읽기는 그냥 듣기나 보기처럼 수동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행동이죠. 여러분이 하는 행동. 끊이지도 않고 알아들을 수도 없이 지껄이고 외쳐 대는 매체의 돌격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속도대로 읽는 겁니다. 여러분을 압도하고 통제하기 위해 빠르고 거세고 큰 소리로 밀어붙이는 내용이 아니라,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 있고 받아들이고 싶은 내용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분이 어떤 당부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강매를 당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읽을 때는 보통 혼자라 해도 다른누군가의 정신과 교감하지요. 세뇌를 당하거나, 조작당하거나, 이용당하는 게 아니에요. 상상력의 현장에 함께한 거죠. - P26

문학은 상당수가 그런 조작에서 자유로운데, 그건 많은 책들이 죽은 사람의 작품이고 죽은 사람은 정의상 탐욕스럽지 않기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출판사야 비열하게 베스트셀러를추구할지 몰라도, 살아 있는 시인과 소설가 다수는 이득에 대한 욕망보다는, 그럴 여유만 있다면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 해도 계속할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에 더 움직입니다. 그 일이란 예술이죠. 뭔가를 잘 만들고, 제대로 만들고 싶은 거예요. 문학은 아직 놀랍게도비교적 정직하고 신뢰할 만하답니다.
물론 책이 "책"은 아닐 수도 있어요. 목재 펄프에 잉크로 찍힌 물건이 아니라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의 깜박임일 수도 있지요.
지금 실정으로는 일관성 없고 상업화했으며 포르노와 광고와 헛소리에 좀먹긴 했어도, 전자출판은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활성 공동체로 가는 새롭고 강력한 수단을 제공합니다. 중요한 건 기술이아니에요. 중요한 건 말이지요. 말을 공유하는 것. 말을 읽음으로써 상상력을 활성화하는 것.
문해력이 중요한 이유는 문학이야말로 사용 설명서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매뉴얼, 우리가 여행하는 ‘삶‘이라는 나라에 가장 유용한 안내서예요. - P27

제가 낳은 그 태아의 생명은 다른 세 태아 또는 아이, 또는생명.…… 뭐라고 부르건 간에 그 아이들이 태어나지 못하게 막았을 거예요. 제 아이들, 제가 실제로 낳은 세 아이, 원해서 낳았고 남편과 함께 만든 세 아이들을 말입니다. 제가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그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이는 1953년에 퀸메리호를 타고 프랑스로 가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이었는데, 저는 1953년에 퀸메리호를 타고 프랑스로 가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저는 교육을 받다 말고 직업도없이 세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부모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며 혼인하기에도 부적합한 "미혼모"로, 먹여야 할 입 하나와 쓸모없는 여자 하나로밖에 공동체에 기여하지 못하는 존재였겠지요. - P30

하지만 제가 되살려야 하는 건 그 아이들, 제 자식이며 제기쁨이자 자랑이자 사랑인 엘리자베스와 캐럴라인과 시어도어예요. 제가 법을 어기고 아무도 원치 않았던 생명 하나를 낙태하지않았다면, 그 잔인하고 편견 심하고 무분별한 법이 지금의 제세아이를 낙태시켰을 겁니다. 제 아이들은 결코 태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생각만 해도 견딜 수가 없군요. 여러분에게 우리가 구해야만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고, 편견과 성차별이 그 소중한 권리를 다시 빼앗아 가게 하지 마시라고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쟁취한 바를,
우리 아이들을 지켜 주세요. 아직 너무 늦기 전에, 젊은 여러분이여러분의 아이들을 구해 주세요. - P30

리얼리즘의 소재는 판타지를 제외하면 어느 장르보다 더넓습니다. 그리고 리얼리즘은 20세기 모더니즘이 선호하는 양식이었지요. 판타지를 아동물이나 쓰레기로 폄하하면서 모더니스트비평가들은 리얼리즘 소설에 판을 넘겼습니다. 리얼리즘이 중심이었죠. 장르라는 말은 그보다 못한 뭔가, 열등한 무엇인가를 암시하기 시작했고 흔히 설명 용어가 아니라 부정적인 가치판단 용어로잘못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장르"라고 하면그 칭호만으로도 열등한 소설 형태라고 이해하는 반면, 리얼리즘소설은 그저 소설이나 문학이라고만 불립니다.
그러니까 우린 소설 유형의 위계를 받아들이고, 뭐라고 딱정의가 되지는 않지만 거의 철저히 리얼리즘만으로 구성된 "문학적 소설‘을 그 위계 꼭대기에 올린 겁니다. 다른 모든 부류의 소설, 즉 "장르"들은 빠르게 하강하는 열등 계급으로 매겨지거나 아니면그냥 위계의 바닥에 쌓인 쓰레기 속에 던져집니다. 모든 근거 없는위계가 다 그렇듯이, 이 판단 체계는 무지와 오만을 부추깁니다. - P32

그리고 장르 개념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장르에 따라판단한다는 건 더더욱 어리석고 유해해요.
우리의 훌륭한 도구가 가진 또 한가지 문제가 그겁니다. 이스크루드라이버는 녹고 있고, 스크루가 다 비틀어졌어요. 이제 가장 뛰어난 소설은 상당수가 장르에 들어맞지 않고, 여러 장르를 결합하고 교차하고 혼합하고 넘나들며 다시 만듭니다. 70년 전 버지니아 울프는 사실적인 소설을 쓴다는 게 가능한지 정직하게 의문했습니다. 많은 정직한 작가들이 그런 시도를 포기했고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든가 "슬립스트립" 같은 용어들은 문학이 종래의 서사 구조에 점점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틈과 부딪치면서 주섬주섬 갖다 붙인 용어입니다. 이 용어들은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는 게 많고, 설명해 주는 바가 없어요. 중요한 소설가들은기존의 카테고리 바깥에서 나타나죠. 주제 사라마구가 쓰는 게 어떤 종류의 소설인지 말해 보세요. 리얼리즘은 아닙니다. 확실히 아니죠. 하지만 그의 작품은 분명 문학입니다. - P33

책의 결말에 대해 말하다 보니 아무래도 첫 독자이자 첫 비평가로, 제 아나키즘 원고를 마르크시스트의 무자비한 눈과 친구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봐 준 다코 수빈에게 한 번 더 고마워해야겠네요. 그때는 챕터가 열두 개였고 깔끔하게 원점으로 돌아가는결말이었지요. 열두 챕터라고? 다코 수빈은 격분해서 외쳤어요. 챕터 수가 홀수여야지! 게다가 이런 종결이 뭐야? 이 글을 닫으면 안되지! 원이 열린 거야, 닫힌 거야?
원은 열려 있습니다. 문은 열려 있어요.
문을 열어 두려면 집이 있어야 하고요.
제 외풍 심한 상상의 집을 짓는 데 도움 주신 분들, 그리고관대한 의견과 날카로운 통찰을 가져와서 방마다 울려 퍼지는 끝없는 토론으로 집이 살아나게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서오세요, 암마리(형제들) - P57

언어가 음악으로 들리는 큰 선물이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것이지만, 시라든가 만들어 낸 이름과 언어 같은 현상에 맞닥뜨렸을 때 소통 기능과 의미 구성은 노래의 선율처럼,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 된다. 작가는 귀기울여야 하고, 독자는 들어야 한다. 분절적인 소리, 그리고 그 소리의 상징적 이용이 주는 즐거움이 시 창작자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가상 언어의 창조자를 움직이는 힘이다. 설령 그 언어를 말하는 것은 창조자의 혀뿐이고 그 음을 들을 귀도 창조자의 귀뿐이라해도 그렇다. - P78

태초에 말이 있다. 언어를 상상하는 게 누가 그 언어를 말하는지 상상하는 것보다 먼저일 수 있다. 톨킨은 분명히 그랬다. 즐거워서 언어를 가지고 노는 언어학자였던 톨킨은 자기가 만들어내 언어가 어떤 사람들의 신화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따라서 중간계의 인류학과 역사와 지형과 모든 광대한 서사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반대 방향으로도 가능하다. 상상 세계를어느 지점 이상으로 발전시키려면, 거기에 맞는 언어를 개발해야한다. 내가 쓴 『언제나 집으로 돌아와』는 그런 경우였다. 나는 케시인들의 언어로 단어 수십 개만 만들면 케시인의 핵심 개념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이미 태평하게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번역하기란 꽤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를 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작곡가 토드 바튼은 이 책에나오는 계곡(Valley)의 음악을 쓸 때 노래에 넣을 케시 가사를 필요로 했다. 나는 정직한 여자가 되어 앉아서 케시어를 만들어야 했다. 최소한 이전에 케시어로 존재하기도 전에 영어로 번역한 척했던 시들을 제대로 쓸 수 있을 만한 문법과 구문과 어휘는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과장할 필요도 없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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