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맥과 강들이 물자와 사람의 이동을 어렵게 한 탓에 스페인은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이 때문에 각 지역의 정체성과 언어가 고스란히 보존될 수는 있었다. 스페인정부는 이러한 지리상의 장벽을 철도와 도로망으로 극복하려고 애써왔다. 1848년에 바르셀로나 항만 지역과 마타로를 잇는 길이 29킬로미터의 철도 구간이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개통되었다. 이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노선이 속속 개통되면서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퍼져나갔다. 현대의 도로 시스템은 20세기 후반 들어서야 제대로 연결이 되었다. 1969년에는 다시 바르셀로나와 마타로를 연결하는 최초의 단거리 고속도로가 개통됐다. 그런데 중앙 정부가 <스페인적인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자 카탈루냐, 바스크, 갈리시아를 비롯한 지방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유산을 지키겠노라 결심했다. 이번에도 지리가 그들을 분리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일례로 안달루시아와 메세타를 가르는 장장 485킬로미터의 시에라모레나 산맥을 관통하는 천연도로는 아찔하게 절벽이 펼쳐진 데스페페로스강의 협곡이 유일하다. - P384

1031년에 무너진 칼리프 왕국은 소규모 왕국들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스도교 수장들은 지금이야말로 한때 자신들의 것이었던 이곳을 이슬람의 통치로부터 해방시킬 기회라고 여겼다. 1060년대에교황 알렉산데르 2세는 이 싸움에 가담하는 이들에게는 죄를 사해주겠노라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1085년, 그리스도교 군대는 메세타 중심부로 가는 요충지가 되는 톨레도를 탈환했다. 이는 군사적 결과로나 스페인과 유럽의 발전 측면에서나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었다.
1212년 그들의 군대는 데스페냐페로스강 고개도 뚫었다. 1250년무렵에는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이 그리스도교 세력 휘하로 들어갔다.
단 남쪽에 있는 그라나다 왕국만은 예외였다. 대세를 일찌감치 간파한 그라나다는 카스티야에 공물을 바치기로 결정하면서 이후 250년동안을 무사히 버텨냈다. 어쨌든 250년이라는 세월은 장엄한 알함브라를 비롯한 많은 궁전들을 건설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었다. - P387

사실 레콩키스타, 즉 재정 과정을 일종의 통일 프로젝트로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스페인의 지리 때문에라도 북부의 그리스도교왕국들은 각자 독자적으로 행동하곤 했다. 북동쪽에서는 아라곤이특정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공세를 펼쳤고, 북서쪽에서는 갈리시아가 다시 힘을 모아서 차후의 원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재정 운동은 하나의 물결처럼 진행되었다기보다는 조각조각형태로 진행되었다. 이것은 현대 스페인이 처음부터 <조각난 상태〉로시작됐고 여전히 그 상태로 남아 있게 한 요인이 된다. - P388

이어지는 전투에서 스페인 함대는 심각한 손실을 입으면서 전열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그들은 재정비를 위해 북해 쪽으로 항해했다.
사실 그때 임무를 포기하고 귀향했어야 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라 지오그라피아 만다La geographia manda." 즉
"지리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라고. 그런데 그 지리는 그들 편이 아니었다.
스페인 해군은 남쪽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이번에는 바람이 엉뚱한방향으로 불었다. 게다가 영국 해군은 스페인 군대와 그들이 돌아가야 할 항로 사이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스페인 해군은 하는 수 없이 더 북쪽을 향해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이 북스코틀랜드 끝단을 돌무렵 흔치 않게 북대서양에서 부는 폭풍우에 함대가 휩쓸려 버린 것이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많은 배들이 아일랜드 해안의 바위들에 부딪혀 좌초되고 말았다. 남은 배들까지 모두 귀환한 10월에 항구에 댄배는 고작 60여 척에 불과했다. 이로써 거의 1만 5천여 명의 수군들과 함께 세계 최강의 해군력이라던 스페인의 명성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고 힘의 균형 또한 이동하고 있었다. - P394

프랑코에게도 친구들은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이름이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라는 것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패망하자 프랑코의 스페인만 파시즘이라는 늪에 빠져 홀로 허우적대는 신세가 되었다. 서구 열강은 동부전선에서 나치와 함께 협력하도록 병력 5만 명을 보낸 이 사내를 무시했다. 종전 후 스페인은 따돌림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유엔은 물론마셜플랜, 나토에게까지도.
프랑코는 때를 기다렸다. 그는 영국이 지브롤터의 소유권 때문에라도 이베리아 반도의 안정을 희망하고 있으며 폭력적으로 정권이 전복되는 것을 지지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냉전으로 인해 서구 열강에게 강요된 현실 정치가 스페인에게유리하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유럽이 새롭게 마주한 위협은 파시즘이 아니었다. 바로 소련의 공사주의였다. - P404

은 파시즘이특히 미국은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할 때 스탈린의 부대 일부가 남서쪽인 스페인까지 진격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미국은 자국의 전략적 깊이의 측면에서 스페인을 바라보았다. 즉 소련의 붉은 군대를 라인강에서 저지하지 못했을 때 방어선을 구축하고 뒤로 물러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말이다. 1947년에 미국합동전쟁계획위원회가 수행한연구에서는 소련이 서유럽 공격을 개시한다면 3개월 이내에 피레네산맥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20일이 걸려 산맥을넘고 대서양 연안을 따라 리스본으로, 지중해 연안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진격할 수 있다. 거기서부터 소련은 40일 내에 지브롤터에 도달해서 지중해와 대서양의 접근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열린 잠정 협상에서 스페인은 미군에게 전략적 기지 사용권을 부여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 P404

그 협상이 조인될 때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1951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스페인에 대한 정책이 바뀔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미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프랑코를 좋아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지만,
내 개인적인 감정이 당신들 군인들의 신념을 무시하게 하지는 않을것이다."
2년 뒤 마드리드 조약이 맺어졌다. 스페인은 향후 20년간 20억 달러의 군사 및 경제 원조를 받는 대신 미군에게 육군과 공군, 해군기지들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만에 하나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군이 프랑스의 방위를 포기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시나리오에서 민주주의 유럽의 최후의보루는 파시스트의 나라 스페인이 되는 셈이었다. - P405

트루먼이 프랑코를 만날 일은 없었다. 이 명예 아닌 명예는 후임자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에게 주어졌다. 1959년, 그는 처음으로스페인을 방문한 현직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프랑코가 히틀러와 나란히 걸으면서 나치의장대에게 파시스트식 경례를 하는 장면이 찍힌 지 채 20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이제 프랑코는 미국 대통령과 함께 스페인 군악대가 연주하는 텍사스의 노란 장미 The Yellow Rose ofTexas」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드리드 거리를 행진했다. 민주적인스페인을 갈망하는 사회 각계각층에게는 쓰라린 일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생활은 조금 나아졌다. 미국과의 합의를 따르려면스페인은 무역 규제를 좀 더 느슨하게 풀고 외국인 투자도 허용해야했다. 자급 경제를 슬그머니 포기하자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긴 했지만 - P405

어쨌거나 1960년대의 스페인은 경기가 살아나서 국민들은 너도나도 세탁기와 텔레비전 같은 서유럽에서 표준이 된 상품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이르자 스페인의 독재자는 자신의 사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흔여섯이 되던 1969년, 건강이 쇠락해진 상태에서 프랑코는 자신의 뒤를 이을 국가의 수장이자 국왕으로 후안 카를로스 왕자를 지명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프랑코는 카를로스 왕자가 기존의 정치 구조를 따르리라 믿었다. 정권은 왕자가 그들의 꼭두각시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으며, 대중 또한 그가 자신들의 삶을 바꿀 의지나 능력이 있을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잘못된 믿음이었다는 것을 그는 증명했다. - P406

스페인은 가만히 앉아서 카탈루냐를 잃을 생각이 없다. 이런 입장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국가의 위신과 경제 문제도 있지만 때로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바로 지리적 문제다. 스페인 역사를 돌이켜보면 북쪽의 침략자들은 대개 피레네 산맥 양측에 좁게 펼쳐진 나지막한 땅을 통해 이 나라로 진입했다. 그곳이 바로 북서부의 바스크 땅과북동부의 카탈루냐 땅이다. 북쪽에서 스페인이 펼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는 이 통로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카탈루냐나 바스크가 분리 독립해버린다면 스페인에게는끔찍한 저주가 될 것이다. 이 두 지역이 스페인 중앙 정부에 적대 세력이 된다면 악몽이나 다름없다. 현재는 피레네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이 뚫려 있지만 군사적으로 보면 이 터널도 쉽게 봉쇄될 수 있다.
이 통로는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서 스페인의 주요 지상 보급로로 연결되고, 카탈루냐와 바스크 두 지역은 바르셀로나와 빌바오를 포함한 스페인 주요 항구의 본거지가 되기도 한다. - P414

또 다른 주요 해군기지는 카나리아 제도에 있다. 이곳에는 육군과공군 시설도 있다. 기니만을 마주하고 있는 이곳은 스페인에게는 주요 교역로일 뿐 아니라 해저 통신선이 지나가는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곳이다.
교역로는 물론 화물선과 어선들의 방어를 위해 스페인 해군은 130여척의 함선과 2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사시에는 11만 5천명의 해병대원도 동원할 수 있다. 이들은 스페인 육군과 공군은 물론미군과 나토의 지원도 받고 있다. 미군은 지브롤터에 인접한 로타 해군기지와 세비야 남쪽 50킬로미터에 위치한 모론 공군기지 등 기지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스페인은 또 EU가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벌이는 해적 퇴치 임무인 아탈란타 작전에도 참여하고 있다. 영국이EU에서 탈퇴하자 이 임무의 작전권이 스페인과 미국이 사용하고 있는 로타 해군기지로 이양됐기 때문이다.

이제껏 저지른 여러 실수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오늘날 스페인은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 이 나라는 2008-2009년의 경제 위기에 - P420

서도 살아남아 유럽의 경제 강국 중 하나라는 지위를 되찾았다. 또 훌륭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최고의 기대수명을 가진사람들이 활동하는 활기찬 도시들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경쟁국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또한 기후변화나 인구 이동,
각종 경제적 문제, 그리고 분열된 정치와도 힘겹게 씨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스페인은 이를 감당할 만한 위치에 있다. 석탄은 고갈됐고 석유나 천연가스도 풍족한 적이 없었던 나라지만, 현재필요한 에너지의 6분의 1을 수력 발전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태양광발전량도 풍부한 편이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특히 태양광과 풍력이라는 재생 에너지를 선도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이 나라는 계속해서 외부의 압력에 직면하겠지만 가장 큰 도전은뭐니 뭐니 해도 내부, 즉 지리에 근거한 것이다. 1500년대에 하나로합쳐졌던 이 왕국은 가까운 미래를 위해 여러 지방 정부가 모인 하나의 민족국가와 거기서 야기되는 긴장감을 균형 있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프랑코 시대에 흔히 들었던 "스페인은 유럽이 아니고 유럽이었던 적도 없다."라는 정서가 이 나라에서덜 타당하게 여겨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P421

우주,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이나이라크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달에 식민지를 세운다면 당신은 식민주의자일까? 러시아와 중국은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그 말도 일리가 있긴하다.
우리가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나가서 무한대 속으로 1밀리미터쯤파고 들어갈 수 있게 된 뒤로 우주 공간은 정치적 각축장이 되었다.
이 이슈의 중심에는 달이나 화성 같은 물리적 영토를 주장하는 것만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앞선 세기에서 보아왔듯 그곳으로 가는 데필요한 연료 보급소와 병목지점들 또한 주요 이슈다. 만약 그것들의사용에 관한 규칙과 우리가 도달할 영토를 관리할 법적인 틀을 합의하지 못한다면 지구 위에서 인류의 역사 내내 벌였던 꼭 그대로의 싸움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한데 어찌하랴, 우리가 그들을 위해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별에 적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우주 레이스>는 한층 가열되고 있다. - P426

우주 경쟁에는 늘 군사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 개척자 중 한 사람인로켓 공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은 우주 비행에 너무도 집착한 나머지1930년대에 나치 독일에 협력하기까지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조인된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의 재무장을 금지했지만 로켓에 대한언급은 일절 없었다. 나치는 폰 브라운의 연구를 지원했고 그 결과물인 V-2 로켓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런던에 투하됐다. 1944년에 최초로 우주 공간에 쏜 발사체가 된 V-2는 수직 이륙 후 고도 176킬로미터까지 날아올랐다. 종전 후 폰 브라운과 120명의 과학자들은 문제의 V-2와 함께 미국으로 옮겨가서 미국의 우주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그로부터 24년 뒤, 그는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최초의 달 착륙선인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러시아인들 또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따금 이 경주에서 앞서가기도 했다.  - P428

우주 탐사라는 사업은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든다. 결국 미국은 달 착륙 장비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몇 개의 깃발과 발자국, 96개 정도의 쓰레기 상자를 남겨둔 채 말이다. 이제 그들은 돈이 덜 드는 것으로 눈높이를 낮추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실험을 수행할 우주 정거장과 그 건설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궤도에 위성을 안착시키는 스페이스 셔틀(우주왕복선) 사업이다. 닉슨 대통령은 마지막 아폴로 계획 3개를 폐지했고 NASA는 목표를 수정했다. 그들은 아폴로 계획 시절의 남은 조각들을 그러모아 만든 2층짜리 실험실을 궤도에 쏘아 올렸다. 이 스카이랩(Skylab, NASA의 유인 우주 실험실)은 세인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지만 각종 실험을 수행하고 인간이 우주 공간에서 오랜 기간 머무를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인간의 지식을 향상시키는데에 기여했다. - P431

머스크가 상업적인 우주 기업을 이끌고 있다면, 아마존의 창업자제프 베조스는 자신의 블루 오리진 컴퍼니를 통해 머스크의 뒤를쫓고 있다. 이 회사가 내세우는 비전은 수백만 명이 우주에서 살고 일할 수 있는 미래다. "우리의 손자들과 그 손자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고향인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 우리는 무한한 자원과 에너지를 찾아우주로 떠나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 용어는 <무한>이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우리는 달에서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광물, 이를테면 티타늄을 비롯한 값진 광물들을 발견할 기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지구에서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우주 정거장과 달기지들도 원 없이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 P435

저궤도는 우주선이 달 너머로 갈 때 연료를 재급유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화성까지는 달보다 수백만 마일이 더 먼데 지구중력의 경계를 벗어나려면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저궤도에서 화성으로 가는 것보다 지구 표면에서 달로 가는 것이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그런데 어떤 강대국이 이 통로를 전면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일종의 문지기가 되는 것이며, 이 안에서 경쟁국들이 연료를 재충전하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더 멀리 나가는 능력도 방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유용한 비유를 제공하는 지구 위의 상황들이 있다. 현재 한 흑해 국가의 군함이 지중해를 통해 대서양으로 진출하려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고 싶다면 터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만약긴장감이 고조된다면 그 허가는 반려될 것이다. 따라서 저궤도의 통제 또한 동일한 권력이 될 수 있다. 의미 있는 조약들, 그러니까 소위우주 정글에 대한 법칙이 없다면 말이다.
게다가 상업적인 고려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엄청나게 커다란 패널로 태양광을 모아 발전을 위해 지구로 보낼 수 있을 만한 기술이 개발된다면 이 기술을 저궤도에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공간은 장거리 여행을 위한 주유소이기도 한 만큼 혹시 채굴 목적으로 운석에접근하고자 하는 측은 문지기 국가에 소정의 통행료를 지불해야 할수도 있다. - P442

그래서 미국이 만든 것이 이른바 우주군이다. 우주군의 창설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주에서 미국의 우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주군은 공격을 단념시키고 궁극의 고지대를 통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비교적 힘이 약한 국가들이라고 해서 우주를 보는 시각이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우주 탐사와 그에 수반된 군사적 차원 양쪽에서 최첨단에 있는 것은 역시 이 빅3 국가(미국, 중국, 러시아)다.
이제 이들 세 나라는 전 영역에서 우세>라는 군사 개념에 우주를포함시키고 있다. 저궤도부터 달까지, 궁극적으로는 그 너머까지 말이다. 1980년대에 미국은 전략방위구상을 통해 이러한 이득을 얻기위한 초기의 제한적인 시도를 했다. 다시 말해 핵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기 위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 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미국이검토했던 옵션들 가운데 하나가 우주를 기반으로 한 무기의 범주를다양화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스타워즈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우주군사화의 전조였다.
이제는 음속보다 20배 이상 빨리 날아가는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이이 분야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기존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는 달리 극초음속 미사일은 포물선을 그리며 비행하지 않고 방향과 고도도 변환할 수 있다.  - P445

각국의 인공우리가 공상과학 소설을 계속해서 현실화시키는 한 상황은 점점 더복잡해질 것이다. 그 한 예가 2020년 7월에 발생한 사건이다. 러시아의 코스모스 2542 군사 위성이 미국 위성인 USA 245를 스토킹하던중 상당히 가까운 거리라 할 수 있는 150킬로미터 이내까지 접근했다. 그러고 나서 그 안에 있던 미니 위성인 코스모스 2543을 발사했다. 미군은 이것을 러시아 인형이라 부르곤 한다. 이 아기 코스모스는러시아의 세 번째 위성을 향해 이동하기 전에 미국의 위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미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시속 7백 킬로미터로 움직이는 고속 발사체를 발사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크렘린궁은 이에 대해 단지 위성의 상태를 점검한 것뿐이라고 밝혔지만 영국과 미국 국방부 모두 이것이 무기 실험의 형식을 띠고 있다고 믿고 있다. - P446

이제 인공위성은 더 이상 전화나 TV 방송을 중계하는 데만 필요한것이 아니다. 위성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현대전에서도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위성을 떨어뜨리거나 방해하면 자동차의 GPS 시스템이 먹통이 되고 신용카드가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려고 텔레비전을 켜도 깜깜한 화면만 나온다. 며칠 지나면 슈퍼마켓의 배달시스템까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GPS가 없다면 선박과 비행기들이 제 길을 찾는 데 고생하는 것은 차치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력망이 다운되는 것이다. 일기예보를 듣는 것 같은일은 아예 포기하는 게 좋다.
군사적인 차원에서 모든 선진국은 정보와 감시 활동을 위성에 의지하고 있다. 어떤 나라의 군사위성이 타격을 입는다면 그 나라의 최고사령부는 그 즉시 그것을 지상 공격의 전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핵공격 조기 경보 시스템도 망가질 수 있어서 차라리 먼저 공격을 감행하자는 결정을 촉발시킬 수 있다. 비록 기존 방식의 싸움이남아 있더라도 상대편은 적을 정밀 타격하고 눈에 띄지 않게 군사력을 이동시키는 데 유리할 것이다. 암호화된 통신을 보내는 상대 국가의 능력이 제약을 받게 될 테니 말이다. - P447

우주는 무한하다. 더불어 그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 공상과학 소설이 그토록 재미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현재의 지식에 구속돼 있으면서도 그 지식으로 인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다른 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비록 현재까지의 역사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지만, 그리고 구속돼 있다는 것은 우리의 지식으로는 광대한 우주 전체를 아우를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연법의 구속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이동하거나(어쩌면 영영 어려울지도) 적어도 그와 - P452

비슷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은 태양계를 넘어서려고애쓸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이 너무 먼 곳에 있기때문이다. 프록시마 켄타우리가 발사한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는 4.25년이 걸린다. 다시 말해 40조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밤하늘에서 보는 안드로메다 별자리는 적어도250만 년 전의 모습이다. 이 어마어마한 거리 때문에 광속의 10분의 1 속도로 추진력을 얻는 데도 적어도 수십 년은 걸릴 것이기 때문에 우주 깊은 곳으로 여행하는 문제는 공상과학 소설가나 선구적인이론가들 그리고 미래 세대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 P453

우주 탐사가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있다 보니 우리로서는 어느 방향으로 발을 딛고 싶은지 결정할 필요가 있다. 각 국가들은 상호 인정한영토에 주권을 행사하는 시스템의 실패한 역사를 지겹도록 보여준우주판 베스트팔렌 개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보편적 인간성과 우주 여행에 도사린 도전을 인정하고 지구라는 집을 벗어나 저멀리 모험을 감행하는 하나의 국민처럼 행동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조금은 더 친숙한 패턴을 따랐다. 땅과 바다의 위대한 발견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경쟁, 힘겨루기, 승자가규칙을 정하고 선을 긋는 것 말이다. 이 장면을 우주로 옮긴다면, 이제껏 우리가 아는 지식으로는 현재는 쫓겨날 소유주가 없고 위험을부담하면서 모험을 감행하고 투자하는 측은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 P456

아직 발견되지 않은 소행성들이나 다른 목표물을 발견하고 추적하는 데 협력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다. 특히 1908년에 시베리아숲의 수백 평방킬로미터를 초토화시켰던 퉁구스카 운석처럼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소행성이나 다른 물체들을 발견하고 추적하는데 협력이 필요하다. 동일한 궤도에 그보다 훨씬 더 큰 물체들이 있을수 있다. 공룡들은 그것들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했겠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해 무언가를 해볼 수 있다.
우주에서의 협력이 꼭 지구상에서 국가들 간의 적대감을 종식시키는 것은 아니다. 미국 우주비행사들이 러시아 우주선에 있는 국제 우주 정거장을 탈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양국 사이의 긴장이 부활하고고조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수십 년 전 양국 사이에 전쟁의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었을 때 기술 협력은 긴장 완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1975년의 소유스 아폴로의 도킹을 이뤄냈다. - P458

양 진영의 우주비행사들이 함께 그랬던 것처럼, 우주 공간에서 <창백한 푸른 점(pale-blue dot, 우리 지구)>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태초부터 우리를 감염시켜 <우리>와 <그들>로 갈라놓게 한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길이다. 우주는 그 무한대 속으로 우리 인간의 정신이 뻗어나갈기회를 주고 있다. 인간은 늘 위를 바라보았고 깜깜한 밤하늘의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면서 꿈을 꾸어왔다. 실제로 우리는 높은 곳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높이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서로 힘을 합친다면 훨씬 빨리 도달할 수 있다. 우주에는 한계가 없으니까. -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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