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는 인구 밀집 지역을 방어하고 농경지대와 유럽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기 위해 북마케도니아로 이어지는 바르다르강을 가능한 한 수성하는 것이 우선사항이 된다. 21세기에 그리스는 터키와의 분쟁까지 포함한 여러 분규에 말려들고 있다. 그리스는 자국에 있는 마케도니아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할까봐 이웃에 있는 동명의 마케도니아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뒤 독립하여 탄생한 이 신생 국가에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 문제는2018년에 이르러서야 해결이 났다. 양측이 마케도니아라는 국명 대신 북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그리스 내에서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민족주의자들이격렬하게 들고 일어났다. 어쨌거나 이 조치는 그대로 이행되었고 결국 북마케도니아가 나토에 가입하는 길을 터주었다. - P238

그리스가 여전히 수호자로 자처하고 있는 사이프러스는 전략적 지정학이라는 고속도로의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동부 지중해의 주요 항로인데 최근에는 천연 가스전까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3세기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통치가 종식되자 1878년부터 영국은이 섬을 행정적으로 책임지다가 1914년에는 아예 통합해 버렸다. 전시대의 모든 패권국가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에게해와 레반트 지역에서 군사적, 상업적 움직임을 감시하는 데 사이프러스가 갖는 전략적가치에 주목하고 있었다. 냉전시기에 사이프러스는 지중해를 지속적으로 감시할 뿐 아니라 저 멀리 중앙아시아에서 실시한 소련의 핵실험도 모니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레이더로서 일종의 청음초(listeningpost, 소리로 적의 행동을 탐지하려고 전방에 둔 초소) 구실을 톡톡히 했다. 현재도 영국은 이곳에 비행기지를 두고 수천 명의 자국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 P239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터키의 움직임에는 자국을 위한 자원 확보 못지않게 그리스의 안정을 해치려는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다. 이러한고수위의 위험한 게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싸움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다름없다. 다음 10년은 양측 누구도 전면적인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숱한 화약고들이 만들어질 것 같다.
구제 금융을 받는 그리스에게는 군사적으로 대응할 자금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는 터키는 그 기간 동안 해군력을 증강했지만 나토의두 회원국인 이들의 힘은 아직은 막상막하다. 그리스 해군은 잠수함전력에서는 확실히 우세하지만 터키도 대잠수함전에 꽤 많은 투자를해오고 있다. 게다가 터키는 가용인력이 훨씬 많다. 그리스가 여전히징병제를 폐지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있다. - P242

그리스는 갖고 있지만 터키는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웃 친구들이다. 2019년 그리스는 이집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사이프러스 요르단, 이탈리아와 함께 카이로에 본부를 둔 동지중해가스포럼을 설립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 기구는 에너지 수급에 초점을 맞추고있으면서도 흥미롭게도 해군 합동 작전과 합동 훈련이라는 결과로이어진 안보적인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와 터키가 분쟁에 돌입했을 때 포럼의 다른 멤버들이 곧장 동참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누구에게 도움을 줄지는 분명하다. 이집트와 터키는 일찍이 리비아 같은 다른 지역적 이슈들로갈등을 빚은 바 있다.
갈등이 증폭될 상황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가끔은 뜻밖의 곳에서벌어지기도 했다. 2020년 2월 터키의 소형 구축함들이 사이프러스가스전에 근접해 오자 프랑스는 항공모함인 샤를 드골호를 급파해서나토 동맹국인 터키 해군의 뒤를 미행했다. 1974년에 터키가 사이프러스를 침공했을 때 지스카르 데스탱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이를 맹비난한 이래 프랑스와 터키의 관계는 잘 봐줘야 냉랭하다 할 수 있었다.  - P243

고이 항구의 위치는 수세기 동안 변치 않았던 영국의 전략은 물론 지난 70여 년간 러시아를 그리스로부터 떼어놓으려는 미국의 전략에도기여해 왔다.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 러시아 해군기지는 흑해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연결돼서 마르마라해를 통해 에게해로 가서 지중해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러시아가 남쪽에서 발칸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세력 기반을 갖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러시아가 수세기 동안 시도해 오고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는 곧 사이프러스가 어째서그토록 전략적으로 중요성을 갖는 섬이며 영국이 왜 그곳에 군사기지를 계속 두고 있는지를 얼마간 설명해 준다. 모스크바는 사이프러스가 외세로부터 벗어나도록 지속적인 로비를 펼치고 있다. 그렇게하면 동부 지중해에서 중동의 서부와 북부 해안까지 잇는 나토의 세력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 P245

그리스는 이 지역에서 미국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동맹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미국은 다음과 같은 대책을 세워두고 있다. 미군이 이지역에 확실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이 점을 이용해서 터키가 믿을만한 나토의 파트너로 다시 서도록 압박하고, 시리아 국경 가까이 있는 터키의 인시르리크 공군기지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재정 붕괴로 인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지리와 역사 때문에라도그리스는 비슷한 규모의 경제를 가진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계속 지출해야 한다. 이러한 사정은 워싱턴에서 잘 먹힌다. 동맹의 군사 및 재정 부담을 줄이려면 나토의 강국들이 더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와 서구의 관계가 너무 악화돼 터키 정부가 나토를 떠나게 된다면그리스는 동맹의 최남단을 담당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 P246

여기서 러시아는 양쪽을 왔다갔다하면서 게임을 펼치려고 애쓰고 있다. 때로는터키랑 손을 잡다가도 그리스 지도자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는 식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것이 큰 모험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겠지만, 시리아에 있는 작은 기지를 보완하기 위해 지중해에서 쓸 만한 해군기지를 얻을 수 있다면 러시아의 전략적 야심에서 이보다 더 경사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는 더 이상 영국, 러시아 또는 미국의 것일 필요가 없다. 그리스는 그리스다. 그런데도 또다시 외부 세력에게 이 나라는 중요한부동산이 되었다. 위기 상황에 처한 러시아 해군이 흑해에서 탈출해야 할 때 그리스는 2차 방어진지가 될 수 있다. 또한 그리스는 유럽의난민 위기 최전선에 있는 데다 동부 지중해에서 나오는 가스 파이프 - P246

라인의 핵심 경로가 될 운명으로 보인다.
이 세 가지 이슈 모두 가까운 장래에 전략적 사고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나토와 화해하려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그리스는 수많은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앞으로도 몇 년씩이나 수용해야 할 것이며, 터키와의 해묵은 적대 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으니 잠재적인 군사행동 가능성도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는형편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해묵은 지리상의 분열은 여전하다. 아직도아테네를 마뜩잖게 바라보는 여러 지역들이 있고 현대 국가의 평범한 일상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곳들도 남아 있다. 모든 그리스인들은 여전히 바다에서 100킬로미터 이내에 살고 있고 그들의 정신 속에, 산업에, 그리고 교역에서도 바다는 늘 가까이 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그리스인들이 염려하는 것은 제우스, 아폴론, 아프로디테가살고 있는 올림포스산을 올려다보던 그 시절과 딱히 달라진 것이 없다. 그 사이 신들은 떠났고, 제국들은 왔다 갔고, 동맹도 바뀌었다. 그러나 그리스를 만들었던 그 상수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산과 바다 말이다. - P247

터키,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았지만친구는 별로 없다

당신은 아마 터키인들이 원래부터 터키에서 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안그런가? 어쨌거나 튀르키예Türkiye‘라는 말은 <터키 사람들의땅이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원래 터키인들은 아주아주 먼 곳, 그러니까 몽골에 있는 알타이 산맥 동쪽에서 왔다. 그리고 현재 모국이 되는 곳으로 와서 확실하게 터키라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대단한 여정이었다.
먼저 그들은 드넓은 아나톨리아 고원을 건너야 했다. 터키의 서쪽끝단에 있지만 현재는 이 나라의 핵심이 된 지역이다. 북서쪽으로는마르마라해와 접해 있고 동쪽과 서쪽 해안지대에는 저지대가 펼쳐져있다. 터키에는 광대한 평야나 물자를 옮길 만한 길고 평탄한 강들은없을지 모르지만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비옥한 땅과  - P252

깨끗한 물이 있다. 그리고 호수나 다름없는 바다를 끼고 있어서 교역을하기에도 수월하다. 이런 조건은 이스탄불이라는 핵심 도시가 해상에서 공격을 받더라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마르마라해를 중심으로 서쪽 끝단에는 다르다넬스 해협이 있는데 이곳을 통해 에게해로 진입할 수 있다. 반대로 동쪽 끝단에는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있다. 터키가 이 두 관문을지배하는 것은 방어의 측면에서 엄청난 이점이 된다.
이것들이 합쳐져 결과적으로 한 민족국가를 존속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나라를 마르마리아Marmaria 라고 부르겠다. 문제는 이 마르마리아가 아주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곳처럼 목 좋은 곳은 늘 외부 세력들이 호시탐탐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눈독을 들이기마련이다. 특히 동, 서, 남, 북, 사방팔방으로 향하는 무역선들이 최종목적지로 가려면 이곳을 통과해야만 했으니 그들로부터 꽤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가 이곳을 지배했을 때가졌던 입장이며 로마, 비잔티움, 그리고 사실상 오스만 제국의 형태로 있던 투르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 P253

비엔나에서 당한 패배를 만회할 능력도 없었던 오스만은 결국 철문쪽으로 퇴각했다가 아예 그 아래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이 지역은 제국에서 가장 쓸모가 많은 곳인 데다 머나먼 북아프리카의 전초기지에 비하면 수도에 훨씬 가깝기도 했다. 하지만 팽창하는서구 제국주의가 그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점점 산업화를 이뤄가는서유럽 국가들이 부상하는 데 반해 오스만 제국은 기술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그들과 겨룰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서유럽 강대국가운데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을 중동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1912년부터 1913년까지 이어진 발칸 전쟁에서 콘스탄티노플이 불가리아에 거의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 <유럽의 병자>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가 자명해졌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잘못된편을 선택했을 때 그들 자신의 사망 확인서에 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1915년 갈리폴리 전투에서 영국을 패배시킨 것은 터키 검구 역 - P260

사에 기록될 만한 전공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을 잃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18년의 휴전 협정에 따라 제국의 수도는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했고, 결국 1922년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었으며 술탄 체제는 폐지됐다. 이 와중에 터키어를 쓰는 일부 주민들은 새로운 국경 바깥에, 즉 그리스와 사이프러스에 남겨졌다. 마찬가지로 백만 명이 넘는 그리스인들은 터키 안에 남겨지게 되었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이어진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무스타파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이 이끄는 터키군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 - P261

다. 이후 양국의 주민들이 교환됐지만 두 나라에는 여전히 그리스계또는 터키계 소수 주민들이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이 상황은 지난 세기에 양국 간에 긴장을 높인 요인이 되었다. 일부 조항에 대해 두고두고 억울해 하는 터키는 그리스가 터키 연안의 섬들 대다수를 지배하게 된 것과 시리아에 있는 쿠르드족 땅과 아랍 영토를 잃게 된 조약을그때도 인정하지 못했고 현재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 P262

에르도안이나 시시 모두 자신들 조국의 역사는 낭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지역 내 역할에 관해서는 대립적인 시각을 가진 민족주의자들이다. 두 나라 사이의 이념과 전략적 상이함은 결국 리비아에서 부딪히면서 동부 지중해에서 경쟁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시시에게리비아는 자기네 뒷마당이나 다름없는데 터키가 무슬림형제단과 연계된 정부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이전의 오스만 제국 영토에서 활개치는 꼴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P273

2020년 터키는 시리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이스라엘, 이란, 아르메니아, 그리스, 사이프러스, 그리고 프랑스와도 사이가 틀어진다. 바로 S-400 신형 지대공 미사일을 나토의강력한 라이벌인 러시아로부터 들여오기로 하면서 모든 나토 동맹국들의 원성을 산 것이다. 미국 또한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고 분노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미국은 터키 방위 산업에 제재를 가하면서 문제의 S-400은 미국의 F-35 스텔스 전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에르도안의 수석 고문은 앞으로 터키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는 그리스가 1922년에 받은 것과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터키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에게해에서 헤엄치는 법을 가르칠 것이라는 신랄한 논평을 내놓았다. 그리고2021년 초 터키 정부는 두 번째 S-400 구매를 위해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개시했다. - P279

터키 내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대략 1천5백만 명으로 추산되는데이는 이 나라 총인구의 18퍼센트를 차지하는 숫자다. 이들 대다수는이란 이라크, 시리아와 마주보는 동부아나톨리아 산악지대에 살고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의 접경지대에도 또 다른 1천5백만 명 정도의쿠르드족이 살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로 들어오면서 터키 내 쿠르드족이 도시로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현재 이스탄불에만 2백만 명이 살고 있다. 이제 쿠르드족은 이 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소수 민족이 되었다.
흔히 쿠르드족을 <나라가 없는 가장 큰 민족>이라고들 한다. 7천5백만 명쯤 되는 인도와 스리랑카의 타밀족을 고려한다면 그 전제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2백 년 가까이 독립 쿠르드 국가를세우기 위한 운동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나톨리아의 쿠르드족은 오스만제국의 통치자들과 충돌했고 현재도 터키공화국에 지속적으로 저항해 오고 있다. - P282

그런데 에르도안은 이 건축물에서 다른 이득을 기대했다. 그는 터키어와 영어로 된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에서 일종의 포용력을 찬양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외국인이든 지역 주민이든, 무슬림이든 아니든....… 인류애라는 유산을 공유한 하지아 소피아는 보다 진실하고독창적인 방식으로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에서 관리하는 아랍어 웹사이트의 어조는 사뭇 다르다. 하지아 소피아의 이슬람 사원으로의 조치는 예루살렘 통곡의 벽 위쪽에 위치한알 아크사 모스크(아랍어로 <가장 먼 모스크>라는 뜻으로 이슬람교 성지 중 하나)의 해방을 예고하는 전조라는 것이다. 에르도안의 결단은 누가 봐도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는 모든 이슬람 땅에서 우리의 가치와 상징을 대상으로 한 혐오스러운 공격에 대한 대답이다……. 전지전능하신 알라의 도움으로우리는 이러한 축복받은 길을 내 한몸 희생하여 담대하고 꿋꿋하게지치지 않고 쉼 없이 걸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말이다" - P286

현재 에르도안과 그가 이끄는 AKP 당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음은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온건파 쿠르드족의 지지를 잃었다. 도시에서는 잠식당하는 자유와 이슬람화되어 가는 공화국에 대한 불안감이 이는 가운데 새로운 도전자들이 출현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이 나라의 정치 및 사회는 마르마라 지역의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층과 상인 계층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나톨리아 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신앙심이 깊고 문화적으로보수적인 사람들이 도시로 대거 유입되었다. 그들은 AKP 당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세대가 흐를수록 이 새로운 도심지 주민들의다수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띠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이 나라의 가슴과 정신, 세계 안에서 자신들의 국가 역할을 둘러싼 양측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P287

외교 전선에서 터키는 점점 더 고립으로 치닫고 있으며 신뢰 또한 잃어가고 있다. 터키 정부는 스스로 유리한 패를 쥐고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나토의 남측 지역의 주요 수호자이며 인시르리크에는 미 공군기지를 유치했고, 이즈미르에는 나토의 지상 기지가 있으며, 이 나라 한복판인 쿠레시크에는 조기 경보 레이더 시스템까지 설치해 두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것이 정말로 그렇게강력한 패라면, 터키가 그 패를 쓰지 않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생각이 들 때 나토가 꺼내들 수 있는 다른 패들도 있다. 꼭 그래야 할상황이 온다면 나토는 그리스와 루마니아에 있는 시설들을 증강해서지중해와 흑해에서 터키에게 잃었던 부분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 P288

또 아랍에미리트를 회유해 미 공군기지를 유치하게 해서 인시르리크를 잃은 타격을 만회할 수도 있다. 터키는 홀로 갈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수도 있겠지만 상황은 바뀔 수 있고 살벌한 동네에 살고 있음 또한잘 알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라크, 시리아 등 4개 나라에서 분쟁이 발발했다. 물론 이란은 늘 반대 세력이었다. 에르도안과 푸틴이 서로 배짱이잘 맞는다고 해서 러시아가 꼭 우호적이라는 법도 없다. 어쩌면 프레너미(frenemy, friend와 enemy가 합쳐진 조어로, 한쪽에서는 서로 협력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경쟁하는 관계)라는 말이 이들 사이의 관계를 훨씬 잘 설명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터키는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실리를 챙기기는 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터키가 푸른 조국 전략으로 그리스와총격전이라도 벌인다면 이내 사이프러스, 프랑스, 이집트,  - P288

아랍에미리트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상황에서 터키가 지중해에서 맞닥뜨려야할 반발에 비견될 만한 것은 별로 없다.
오늘날의 터키는 탈냉전과 9ㆍ11 이후의 세계를 경쟁자들이 바글거리는 정글>로 보고 있다. 그 세계의 맹수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 터키는 무기의 국산화를 모색해 왔고 세계 최고의 무기 수출국이 되고픈 희망을 품을 만큼 성공적으로 방위 산업을 구축해 왔다. 터키군의 장비와 설비 가운데 70퍼센트가 자국 내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나토 동맹국들의 주문량이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이 나라를 세계 14위의 무기 수출국으로 만들어 주기에는 충분하다. 터키의 야심 찬 계획은 2030년까지 F-16을 대체할 최첨단 전투기인 TF-X 이다 TF-X는 좀 더 일찍 날았어야 했다.  - P289

터키가 러시아의 S-400 신형 지대공 미사일을 들여오자 미국은 롤스로이스와BAE 시스템스(영국의 군수 산업체)를 설득해서 터키와 협력을 끊도록했다. 하지만 터키는 자국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서 현재는 탱크와 장갑차, 상륙용 주정(병력, 보급 물자, 장비 따위를 육지로 나르는 날쌔고 작은 배), 드론, 저격용 소총, 잠수함, 소형 구축함까지 생산한다. 그리고 2020년에는 공격용 헬리콥터와 무장한 드론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경항공모함을 처음으로 진수시키기에 이른다. 또한 터키는 카타르와 소말리아에 군기지를 설치했고 외부 세계에 덜 의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리아와 리비아에 자체 부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이점에 있어서 에르도안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 꼭 푸틴이 관심을 요구하면서 얻었던 것과 비슷하다. 에르도안도 이주민부터 에너지, 무역,
그 외 많은 쟁점이 부각될 때 터키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미국 행정부는 가치에 기반을 둘 - P289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는 나토 동맹국들과 이 가치를 공유하고 싶다는 의중을 밝힌 것이기도 하다. 현실 정치에서는 터키가 갖는 가치 때문에 나토가 지난 시절 터키의 군사 독재를 눈감아 주었는데, 만약에르도안의 권위주의 통치가 더욱 강화된다면 미국 대통령의 수사학적표현도 도전받게 될지 모르겠다.


오스만제국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알았던 아타튀르크 초대 터키 대통령은 서구화에 중심을 맞추면서 터키를 20세기로 끌어들였다. 반면 에르도안의 터키는 지난 10년간 수평선을 360도 골고루 둘러본 뒤보다 남쪽과 동쪽을 향해 천천히 초점을 움직여 가고 있다. 현재도 이여정은 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변화할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 다시 말해 현실 정치는 아직 작동하고 있어서 터키정부가 뜻하지 않은 장애물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터키가 아무리 멀리 가려 해도 늘 그 여정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나라의 지리다. - P2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