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에서는 광활한 요새인 이란과 그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페르시아만을 마주한 채 맞서고 있다. 태평양 남쪽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우리 시대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리매김하려고 애쓰고 있다. 지중해에서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와터키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당장 내일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인다. 서기 2020년대에 오신 걸 환영한다. 미국과 소련이 전 세계를 지배했던 냉전시대는 이제 아득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우리는 새롭게 등장하는 열강들이 서로 대립하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수많은 주연 배우들은 물론 단역 배우들까지도 서로 밀치며 중앙 무대로들어서기 위해 혈투를 벌인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대기권 위의 달과 - P8
그 너머까지에 대해서도 권리를 주장하는 나라들이 등장하면서 지정학적 드라마는 지구 영역 바깥으로까지 튀어 나가고 있다. 몇 세대에 걸쳐 고착된 질서가 일시적인 것으로 변하면 불안을 유발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한동안 우리는 다극화된 세계를향해 달려 왔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극 체제로 재편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체제가 한편에 있었다면, 반대편에는 소련과 중국이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공산주의 체제가 있었다. 이 시대는 당신이 어디에 선을 긋느냐에 따라 50년에서 80여 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미국의 힘이 거의 요지부동이던, 분석가들이 이른바 단극의10년이라 이름 붙인 시기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양극시대에서 벗어나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규범과도 같았던, 여러 열강들이 경쟁하는 <다극화 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 P9
10년간 러시아는 게임의 바깥에 있었다. 쇠약해진 데다 확신도 없는, 그저 희끄무레한 과거의 잔영 속에 갇힌 채 말이다. 러시아는 나토가 자기네 서쪽 국경지대 쪽으로 전진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 또 한때 자신들이 지배했던 국가의 국민들이 몇 번이고 나토 또는 EU에 가입하는 문제를 두고 실시한 찬반투표에서 찬성 쪽에표를 던지는 것도 보아왔다. 게다가 라틴 아메리카와 중동에서도 그들의 영향력은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다 1999년에 모스크바는 서방세력과 맞설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것도 여기까지였지만. 그기준선이 바로 코소보였다. 옐친 대통령은 러시아 군단에 개입을 명령했다. 비록 차후에 떠오르게 되는 강경 민족주의자인 블라디미르푸틴이 그 같은 결정을 내리는 데 한 역할을 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 P10
이른 아침에 러시아의 기갑 부대가 도심으로 밀고 들어와서 시내외곽에 있는 코소보 공항으로 진격해 갈 때 나는 프리슈티나에 있었다. 당시 클린턴 미 대통령은 내가 작성한 기사를 통해 나토군에 앞서 러시아군이 코소보로 밀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러시아인들이 도심으로 밀고 들어옴으로써 세계무대에 복귀했다."라고 썼다. 물론 그 기사가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역사의 한 장면을 증언하는 초안으로서는제 몫을 했다고 본다. 러시아는 그해에 가장 중요한 사건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겠다면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역사의 파고가 이제는바뀔 것이라고 천명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미국을 능가할패권은 없어 보였다. 서구는 국제 정세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반발의 기운이 야금야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 P10
우리 시대에 가장 경이로운 발전을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지정학상의 권력 투쟁이 지구라는 한계를 넘어 우주로 투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누가 우주를 소유할 것인가? 그 결정은 어떻게 내리는가? 사실상 진정한 최후의 개척지는 있을 수 없겠지만 그곳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개척지들은 거친 무법천지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일정 고도를 넘어가면 고유 영토라는 개념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네 나라 바로 위로 레이저로 무장한 위성을 쏘아 보내고 싶을 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여러 나라가 우주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각축을 벌이고 심지어 민간 기업들까지 그 경쟁에 뛰어든 마당에 우주라는 무대는 위험천만한 최첨단 무기들의 격전장으로 변해갈것이다. 과거 우리가 범한 실수에서 배우고 국제 협력을 통해 얻을 수있는 이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선은 지구의 아래쪽부터 시작해 보겠다. 오래도록 고립된미지의 세계로 알려진 그곳이 이제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상황을이끌어가는 힘을 갖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 이야기의 핵심 주역이 되는 그곳은 섬이자 대륙인 나라, 바로 오스트레일리아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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