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라에게는 코알라의 잔이 있고, 나무늘보에게는 나무늘보의 잔이 있고,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운명의 한계로 오인되지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잔의 외형이나 크기로 인해 차별당하거나 파괴당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규모를 존중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 P25

그제야 나는 눈금자를 0에 맞추고 나에게 ‘저금‘ 되어 있던 말들을 하나둘 떠올려보았다. 희연아, 환히 지내라. 희연아, 너는 너를 좀 더 사랑해야 하겠다. 겨울 창문에 붙어 있는 마른 나뭇잎 같은 말. 성냥갑에 딱 하나 남은 성냥 같은 말.
공중으로 날아오른 풍선은 터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날아오른 풍선은, 날아가는 시간만큼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대기권에서 바라본 지상의 모습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는 오직 풍선만이알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게 된다. 다행히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
그러니 성냥 같은 말들을 쥐고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내 안에서 내가 피어나는 날 초에 불을 붙일 수있게. 축하 케이크를 잘라 먹으며 무구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 P29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벽에 새겨진 작가의 한 문장이었다. ‘가장 간단한 것이 가장 힘 있다고 생각한(I think that the simplest thing is the most powerful thing),
작품에 대한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설명을 얼마든덧붙일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겨우 한 줄이지만, 강력한 한 줄이었다. 그의 주악 앞에서 나의 거울이 와장창 깨지는 경험을 했다. 내 안의 너무 많은 나들, 칭얼거리며 튀어 오르고 무한 증식하는 나를 두더지 잡듯 몽둥이로 내려치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끝은 고요와 적막. 새하얀 벽.
이제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으로 나의 주악을 찾고자 한다. ‘간단하면서도 짜임새가 있다‘는 뜻의 간결. 당분간 내 삶의 모토는 그것이다. 분별과 선택, 집중의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다. - P34

‘세상엔 경제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정도가 아니라 세상 만물에는 영혼이 스며 있고 그것들이 삶의 목격자이자 때론 신의 역할을 대리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무릇 시인이란 ‘보는 자여야하고, 그냥 보기만 해서는 안 되고 ‘똑바로‘ 보고 ‘현상 너머까지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들어왔다(내가 교수자의 입장이 되어도 늘 그것을 강조하게 된다). 그것이 습관이 된 탓인지 때로는 너머의 너머를보느라 몸이 아예 현실의 울타리를 넘어가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비유적으로 말했지만 현실감각이희박해질 때가 종종 있다는 뜻이다(이 나이에도 관공서와 은행이 치과보다 무섭다). 그러니 식물로부터 재테크를 연상할 줄은 모르고 신화적이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방향으로만 연상을 이어가는 것일 테다. - P37

그런데 사실 최고의 수확은 다른 데 있다. 우리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심판에게 진격의 거인처럼 달려가 따지던 김연경 선수의 포스 말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절대 못 하는 소심의 왕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저 당당함. 부당하다고, 재고하라고, 할 말 끝까지 하는 (심지어는 영어로) 저 똑 부러짐. 자기 과실일 땐 미안해서 입을 꾹 다물고, 다른 선수 과실일 땐 "괜찮아!" "할 수 있어!" 어깨든 팔뚝이든 꼭한번 두드려 독려하며 공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저너른 품. 그러니까 김연경 선수가 짱이라는 결론.
나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시의 시작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매 순간 버저 비터를 던지는 심정으로쓰는 사람. 깊고 넓고 높고 알록달록하고 날카롭고 - P57

따뜻한 거 다 하지만 그럼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시.
단전에서부터 에너지를 끌어올려 외쳐본다. 우리 존재 파이팅! 나의 시도 파이팅! - P58

"당사의 눈동자에게 건배"라는 저 유명한
 <카사블랑카>의 대사가 세기의 고백일 수 있었던 까닭을 생각해본다. 이 문장은 조도가아니라 휘도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내가 여기 있어서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먼저 거기있기에 이렇게 나도 당신 눈 속에 담길 수 있습니다.
저 혼자 빛나는 사람은 없다. 탄생부터 죽음까지우리는 모두 타인의 보살핌 속에서, 관계망 속에서살아간다. 영악하다는 말은 욕이어도 영리하다는 말은 칭찬이다. 너 때문이라는 말은 힐난이지만 너 덕분이라는 말은 상찬이다. 그러니 어떻게 말할 것인가. "비올라에 있어 위대한 날이에요"라는 문장이 반사하는 겸손하고도 따뜻한 빛을 오래도록 기억하려한다. 네, 나도 당신을 통해 나를 보고자 합니다. 내모든 당신들의 눈동자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살고싶어요. - P62

이 세계가 광산이라면 신은 성실하게 인간 광물을 캐낼 것이다. 그것이 신의 일이니까. 어떤 원소를포함하고 있는지에 따라 광물은 제각기 다른 책을띤다. 금인지 은인지, 흑연인지 석탄인지, 그도 아니라면 그냥 버려지고 말 버력인지 일단은 캐봐야 한다. 시작해봐야 알고, 끝나봐야 안다. 그러니까 나라는 인간의 최후를 미리부터 결론 내지 말고 일단은나를 잘 다듬어가는 게 맞다. 적어도 내 삶을 버력의자리에는 두지 않기 위해서. - P73

씨앗에 독이 있다? 순간 그 말이 벼락처럼 나를가르고 지나갔다. 내가 상상하는 씨앗은 한없이 맑고 여린 존재였기 때문이다. 엄마 배 속에 막 자리 잡은 생명 같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충분한 보살핌이 없다면 영원히 캄캄한 땅속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시혜적으로 바라보기 쉬운 생명 말이다. 그런데 씨앗에 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게다가 그 독이라는 게 식물로 하여금 외부 물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까, 세상 모든 씨앗을 달리 보게됐다.  - P76

그 즈음 읽었던 책의 한 대목도 겹쳐졌다. 세계적인 작가 존 버거와 그의 아들 이브 버거가 주고받은편지 모음집 《어떤 그림》(열화당, 2021)에서, 부자는회화 작품을 사이에 두고 예술과 삶 전반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다. 모든 페이지, 모든 사유가 아름다웠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나의 시선을 붙잡았던건 ‘흰 물감‘이 등장하는 대목이었다. 화가인이브버거는 종종 흰 물감을 만들어 사용한다고 했다. 물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료에 기름을 섞어 부드럽게 개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자신의 창틀에는 몇 년째사용 중인 "린시드유 병들이 놓여 있고, 그 기름 "표면에 형성된 주름진 피막 아래" "벌집에서 딴 벌꿀" 같은 "황금빛 기름"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었다.  - P77

병 안에 담긴 기름에 피막이 생기기까지의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하루아침의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몇 년에 걸쳐, 병 속의 기름이 이곳에 ‘고인‘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빚어진 결과 아닐까. 그 피막이라는 거, 사랑하고 미워하기를 반복하며 어렵게 어렵게 건너온 시간의 주름일 것이다.
과학적으로 틀린 설명이라 해도 상관없다. 모든현상을 과학적, 논리적으로만 설명하려 들면 세상모든 신비는 몸을 틀어 삶의 반대편으로 떠나버릴테니까. 신비가 아니라면 씨앗이 품고 있는 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안의 가장 여린 마음에까지 독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그때의 독은 악이 아니다. 안간힘이고 사랑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약하다 해도 인간은 저절로 강한 면이 있다. 씨앗이 품은독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리라. - P78

우리는 모두 찢기기 쉬운 피막을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피막에 함부로 막대기를 꽂아휘저을 수 없다. 대단한 무엇이 파괴되어서가 아니다. 한 인간을 둘러싼 피막이 손상될때인간은 죽는다. 아주 작은 찢김으로도 상한다. 그러니 겪고 뒤척이면서 두터워지는 수밖엔 없다. 이 여름, 이 겨울을지나면 또 한 겹의 피막이 생겨나겠지. 이 사랑, 이터널을 빠져나가도 또 한 겹의 피막이 생겨나 있을것이다. 그 시간을 믿으며 가야겠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 P79

독일에는 ‘블라이기센(Bleigießen)‘이라는 풍습이있다고 한다. 12월 31일 밤이 되면, 납을 녹여 그림자의 형태나 굳은 모양을 보고 한 해의 운을 점치는 것이다. 마트에 가면 블라이기센 키트(kit)를 팔기도 하는데 1~2유로면 구입이 가능하단다. 내가 녹인납이 권총, 칼, 토끼, 그 밖에 어떤 모양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모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다만 그 작은 의식을 통해 각자가 살아낼 일 년의 모양을 예감해보는 것이겠다. 그 순간 무형의 삶은 깜빡, 하고 빛난다. 얘야, 삶이란 흘러가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손에잡히기도 한단다. 지금 여기 네 손안에 분명하게 들려 있잖니, 하고. - P83

‘모루‘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 건 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의 책 《슬픔의 위안》(현암사, 2012)을 통해서였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우리가 쓰고자 한 것은 ‘grief‘, 즉 ‘슬픔‘이었다고 고백한다. 슬픔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그들은 사별을 경험한 이들과 수많은인터뷰를 진행해왔고, 그 고유한 슬픔이 어떻게 한사람을 통과해가는지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폈다. 그리고 이 책을 썼다. 요약하자면, 슬픔과 위안이라는 두 단어 사이의 거대한 협곡을 끝끝내 건너가는 이야기였다. - P87

모든 글이 투명하고 아름다웠지만 그중에서도 1부〈슬픔의 무게>에 수록된 ‘모루‘ 꼭지는 몇 번을 읽어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이 유리처럼 깨진다. 모루는 대장간에서 재료를 올려 두드릴 때 쓰는 판이다. 현실에선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주로 만화영화에서 주인공(혹은 악당)의 머리 위로 떨어져 눈을튀어나오게 만드는 역할로 출연한다고 책은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도 그를 ‘후려치는‘ 모루가 있다고 했다. 괜찮다고, 이미 지나간일이라고, 방금 전까지 씩씩하게 웃어 보이던 이가뒤돌아서서 홀로 짓는 표정을 상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 P88

그런 혼잣말들로, 눈물로, 한밤의 달리기와 그네타기로, 시와 음악으로 우리는 모루에 대항한다. 연필 한 자루가 산책의 근사한 핑계일 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연필은 이미 충분하니까. 애초에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신발 끈을 고쳐묶고 문을 열었다면 슬픔에서 위안으로 가는 협곡을뛰어넘는 중이라고 여겨주기를. 썩고 난 뒤에야 묻을 수 있다. 땅이 아닌 가슴에 묻는 것이더라도. 너는여전히 대답이 없구나. 그는 그다음 말을 향해 온 마음으로 가는 중일 것이다. - P90

그렇게 적갈색 얼굴로 집에 왔다. 그때 내겐 삼촌 차를 타고 병원에 갔던 기억밖엔 없는데. 환자복을 입은 엄마를 간병인용 간이침대로 밀어내고 병실 침대를 떡하니 차지한 채 쿨쿨 잔 기억밖엔 없는데.
이 글은 그 시간을 통과해 온 엄마를 위해 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하루가 있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눈물이 있을지라도 우리 삶의 구체성으로 말미암아이 페이지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페이지가 될 거라고 귀퉁이를 접어 두고두고 펼쳐보며 엄마의 아팠던 시간, 그림자의 그림자까지 끌어안겠다고.
사과의 갈변은 사과가 운 흔적일까? 유루증은 생각할수록 슬픈 병이다. 적갈색이 생각할수록 슬픈색인 것처럼. - P95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내력벽이라는 건 모든 걸 부숴도 부서지지 않는 최후의 보루, 영혼의 핵심인 셈이니 그 자체로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이겠다.
팔을 들어 슬픔을 받치고 선 모양. 나란한 두 개의기둥.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다. 그러니팔이 아프면 조금 꾀를 부려도 좋아. 오늘은 나의 친구들에게 그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써야겠다. 당분간은 내가 받치고 있을게. 손으로 안 되면 발로라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그러니까 다녀와. 커피도한 잔 마시고 숲길도 걷다 와, 기다릴게.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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