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반 강간 반 결혼지참금 캠페인을 통해 인도에서 여성운동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는 점은 강조할 만하다. 이 캠페인을 통해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수입된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인도 여성이 가부장적이고 여성차별적인 남녀관계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에도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캠페인 과정에서 분명해진 또 하나의 어두운 사실은 여성에대한 폭력이 중산층 여성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성에대한 강간과 잔혹행위들은 봉건적 혹은/그리고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인도 좌파의 표준적인 설명은 더 이상 견지될 수없게 되었다.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노동자나 가난한 집안의 여성만이 강간 피해자인 것은 아니었다. 존경받고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도 마야 티아기Maya Tyagi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피해자가 되었다. - P330

부유한 농가 출신의 23세 여성인 마야는 남편과 함께 자동차를타고 조카 결혼식장에 가는 길이었다. 마야는 임신 중이었다. 길 위에서 타이어가 펑크가 나자, 그들은 바그파트에 있는 경찰서 부근에 차를 세웠다. 사복차림의 한 경찰이 자동차로 와서 티아기를 성희롱하기시작했고, 그러자 티아기의 남편이 그 경찰을 때렸다. 경찰은 경찰서로가서 경찰 부대를 모두 동원해 데리고 왔고, 이들에게 불을 질렀다. 이들은 경찰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지만, 차 안에 두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총을 맞고 숨졌고, 다른 남성도 곧 총을 맞고 숨졌다. 이후마야는 차 밖으로 끌려나와 구타를 당하고, 장식품을 모두 강탈당했으며, 옷이 벗겨진 채로 시장을 끌려다녔다. 경찰서로 끌려간 마야는 7명의 경찰에게 강간을 당하고 구속되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자신들의 오줌을 마시게 했다. - P331

경찰은 보고서에서 이는 강간 사건이 아니며, 사망한 남자들은도둑이고, 마야는 두 남자 중 한 명의 ‘정부‘라고 했다(Economic andPolitical Weekly, 26 July 1980; Manushi, August 1980).
다른 어떤 사건보다 이 사건은 많은 대중적 저항과 의회의 항의와여러 여성 조직의 집회, 그리고 엄벌에 대한 요구를 낳았다. 그러나 정부는 경찰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자신의 정통성을 위협하고 ‘법과 질서‘를 지킨다고 여기는 집단의 세력이약해질 것을 우려했다. 가정주부 장관이 마야를 만났고, 진상조사위원회에게 마야가 수상인 인디라 간디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진상조사위원회가 서술한 내용이다.

한 여성이 야만적인 대우를 받은 사건에 대해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 - P331

기 위해서라도 그녀(인디라 간디)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수상과 일정을 약속하고 그녀와 함께 갔다. 수상은 우리의 말을 듣고 나서 영어로 다음과 같이 간단히 말했다. ‘글쎄요. 거기에는견해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수상은 마야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나중에 그녀가 마야에게 딱 두 개의 질문만 했다는 것을 전해들었다. 첫째는, 당시 그녀가 금붙이를 얼마나 지니고 있었으며, 그날했던 장신구 목록은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누구의 조언 아래 델리까지 오게 되었냐는 것이었다(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26 July 1980). - P332

인도 정부의 이런 대응을 길게 인용한 것은, 이런 무시무시한 사건도 여성 수상을 비롯한 정치가에게는 정치적 필요를 위한 것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야당도 이사건을 인디라 간디의 정부가 인도에서 여성을 ‘보호‘하고 ‘존중할 수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에 이용했다.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서, 언론에서 여성에 대한 강간과 다른 잔혹행위 기사가 더욱 더 넘쳐나게 되었다. 경찰관에 의한 집단 강간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경찰관만 여성을 강간한 것이 아니라 일반남성 사이에서도 강간범이 나왔다. 그중에는 신부, 승려, 우편배달부,
시집형제, 10대 소년, 여성의 고용자, 노동자, 지주 등이 있었다. 집단강간은 전국적으로 유행중인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강간사건은 힌두, 무슬림, 기독교 등 모든 공동체에서 발생했다. ‘다른‘ 공동체의 여성만이아니라 같은 공동체에 있는 여성도 강간을 했다. 앞서 비의 경우도 무슬림 경찰들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  - P332

여성운동만이 아니라 언론, 정치인, 그리고 몇몇 학자도 ‘여성에 대한 잔혹행위‘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그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인도의 인구학자는 인도에서 여성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인도가 간디가 꿈꾸었던 평화로운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교육받은 중산층에게는 일종의 쇼크이다. 결혼지참금 살해와 강간을막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여성조직과 언론, 그리고 마침내 몇몇 학자도 인도에서 여성이 왜 점점 더 남성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지, 왜여성은 점점 더 원치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숙고하게 되었다.
고전적인 좌파적 설명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여성은 남성과경제적으로 평등하지 않고, 따라서 남성 폭력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혹은 법들이 통과되지만 제대로 집행되지는 않고 있으며, 따라서 정부가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주장이다(Gita Mukherjee, 1980).  - P334

여성을 ‘비생산적이고 의존적인 가정주부로 보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지참금 살해, 여아낙태, 강간, 어린 여아에 대한 방치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이 결국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여성은 부담이자 짐이기 때문이라는 이론적 전제로 귀결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반여성적 경향은 엥겔스의 유명한 말처럼 여성이 사회적 생산으로 다시 진입하게 되면, 즉 여성이 ‘돈 버는 취업을 하게 되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인도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나 존재하는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최소한 여성의 40%가 집 밖에서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서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내 구타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모든 계급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취업을 해서 돈을 버는 여성뿐아니라 ‘한낱‘ 가정주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소련에도(Women in Russia, Almanac, 1981 참조), 중국에도(Croll,1983), 짐바브웨(성매매가 금지된 곳이다), 유고슬라비아 등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있다.
- P339

‘적자생존‘ 즉 강한 남성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복자, 승리자가 항상 옳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강간 법과 강간 신화의 뒤에 자리한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종류의 과학을 수용하는 이들은 파시즘이나 제국주의도 수용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알지 못하겠는가?
심리분석학파의 창시자이자 잠재의식의 발견자인 프로이트 SigmundFreud조차도 이런 신화와 진화주의자에 의해 정당화된 ‘과학적‘ 주장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문화가 이런 폭력적인 남성의 성적 욕구를 억압하고 승화시킨 것에 기초한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이론은 기본적으로 어머니라는 하나의 성적 대상을 놓고아버지들과 아들들이 벌이는 남성의 성 경쟁 이론이다. 또한 그는 남성 섹슈얼리티가 능동적이고 공격적이며, 신경증적 형태로, 가끔은 가학적이라는 이론을 수용한다. 그리고 여성 섹슈얼리티는 수동적이고 심디어 피학적이라고 여긴다. - P350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의 ‘타고난‘ 여성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만, 즉 그녀의 ‘미숙한 음핵(클리토리스) 섹슈얼리티를 포기하고 남성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데필수적인 질의 섹슈얼리티로 옮겨가는 것을 통해서만 완전히 성숙한섹슈얼리티에 이를 수 있다. 프로이트와 같은 권위 있는 학자가 질의 오르가즘이 여성 섹슈얼리티의 ‘성숙한 형태라는 이론을 강화시켰다고 하는 것은 놀랍다. 프로이트는 질에는 신경말단이 없기 때문에 오르가즘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음핵이 여성의 적극적인 성기이며, 따라서 여성은질을 통한 삽입 없이도 오르가즘을 생산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남성 섹슈얼리티에 몰두했던 프로이트는 여성을 불완전하거나 거세당한 남성이고, 음핵은 작은 남근이며, 사회에서 종속적인 역할을 바꾸려는 여성의 시도는 남근선망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 P351

학자들은 이런 이론들을 자신들의 이론적 틀에 적용하기 전에 아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이론들은 남성과 여성 섹슈얼리티가 생물학적으로만 결정된다는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론들은 남성과 여성 몸의 일정한 부분이 왜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주목을 받는지, 다른 부분은 왜 주목을 받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음핵을 독립적인 여성 성기로 재발견하게 된 것은 서구의 페미니스트운동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는9~12세 사이의 소녀가 할례를 통해 음핵을 제거 당한다. 그러나 유럽을 비롯한 다른 세계의 여성도, 그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오르가즘이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는 할례를 당해왔다.
여성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남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 P351

위에서 비판한 강간과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자기개념 속에 보완적 내용들을 갖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공격자들은 종속된 이들이 상황을 자연이 부여한 것으로, 혹은같은 의미지만, 신이 부여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지 않으면, 자신이 정복하고 종속시킨 이들에 대한 통제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가없다. 남성에 대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창안자들은 여성에 대해서도 그에 어울리는 이데올로기를 창안해 왔다. 이는 영원한 희생자의이데올로기, 자기희생의 이데올로기 (근대 서구적 버전으로는 여성 피학성의 이데올로기)이다. 힌두교와 민간 신앙은 어머니와 빠띠브라따Pativata  역할을 해내는 자기희생적인 여성을 이상화한다. 여성은 고유의 정체성을 갖지 않으며, 다른 이들에게, 주로 남편과 아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다. 여성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몸,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수단이며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 P352

그러나 여성은 어떤 부르주아적 의미에서도 자유로운 역사적 주체로 규정된 적이 없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의 여성이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여성도 스스로를 소유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 자신, 자신의총체적인 인격, 자신의 노동력, 자신의 감정, 자신의 자녀, 자신의 몸, 자신의 섹슈얼리티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편의 것이다. 그들은 재산이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공식 논리에 따라 그들은 재산의 소유자가될 수 없었다. 남성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재산소유자의 범주에 들지만, 여성은 재산소유자의 범주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자유‘ 시민 혹은 역사적주체도 될 수 없다. 이는 부르주아 혁명의 시민적 자유가 여성에게는아무 의미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여성이 그렇게 늦게 투표권을부여받게 된 깊은 이유이며, 결혼 관계 내에서의 강간이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 P361

여성은 재산 소유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재산인 존재이다. 그렇기때문에, 부르주아 논리를 따르면, 여성은 자유로운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은 계약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이에 비해,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어 원하는 사람에게는팔 수 있는 ‘자유‘ 프롤레타리아는 계약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노동계약은 두 자유로운 주체가 등가교환의 관계로 들어간다는전제에 기초해 있다. - P361

여성을 남성과 자본축적과정 아래 폭력적으로 종속시키는 일이대대적으로 수행된 것은 유럽의 마녀 사냥이 그 시작이었다. 이 일을기반으로 해서 이른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수립되었다. 말하자면노동력을 소유한 이들과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 사이의 계약 관계가 수립된 것이다. 큰 의미에서 자유롭지 않은, 강제로 종속된 여성이나 식민지 노동력의 이런 기반이 없었다면, 자유 프롤레타리아의 강제적이지 않은 계약 노동관계의 수립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과식민지인은 재산과 자연으로 규정되었다. 이들은 자유로운 주체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했다. 둘 다 무력과직접적인 폭력을 통해 종속되었다.
민중이 여전히 생산수단을 이용할 권리를 어느 정도 갖고 있을 경우, 경제적 차원에서 이런 폭력은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농민은 자발적으로는 외부 시장을 위한 상품 생산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이 소비하지 않는 물품을 생산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밭에서 쫓겨나게 되거나, 부족 차원에서 강제로 영토에서 쫓겨나 전략 마을들에 재정착하게 된다. - P362

인도 헌법에서 시민권이 잘 보장되고 있다고 해서 상당한 정도의 폭력과 강압에 기초한실제의 생산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성이 사유재산을 소유한 ‘자유로운 주체로 구성된 형제단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계속되는자본의 원시적 축적‘에 내재한 요소인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장 빠르고 가장 ‘생산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을 갈취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인 셈이다. 폭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적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 발명해내야 했다. 세계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 임금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면, 이윤을 착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3세계에서부터 제1세계까지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창녀 등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이다. - P363

제3세계여성은, 민족해방투쟁 혹은 그런 투쟁 이후의 국가건설과정에 관여한 경우, 서구페미니스트의 이런 도덕적 딜레마를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그런 고민할 시간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일부러 현실에 눈감으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그 문제를 피할 수가 없다. 지난 해 경찰의 반성매매 검거로 잡힌 짐바브웨 여성처럼, 이것이 그녀의 형제들이 죽어가며 만들어낸 국가인가하는 것을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Sunday Mail, Harare, 27November 1983) - P369

이 여성이 구속되었을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치비에서 곡물을 키우며 아버지의 가축을 돌보고 있다. 나는 15세이며, 경찰이든 경찰이 아니든, 나에게 명령할 남성이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나의 어린 두 남동생이 숲속에서 사망하고, 오빠가 엉덩이 아래 오른쪽 다리를 모두 잃어가며 성취한 독립이고 자유인가?
왜 성매매가 있냐고 질문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위원회는 필요없다. 우리 모두 이유를 안다. 교육받지 못한 소녀에게는 일자리가 없다. 그러나 가뭄에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는 식량을 살 돈이 필요하다.
공무원에게 더 지불하는 것은 국가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 소녀들에게 일자리를 주라. 낯선 이에게 몸을 팔고 싶어 하는 여성은 없다(Patricai A. C. Chamisa,
Sunday Mail, Harare, 27 November 1983). - P369

맑스-레닌주의자는 남녀갈등을 둘러싸고 여성이 독자적으로 조직하고 모이는 것을억압받는 이들의 단결을 해치는 것으로, 통일전선을 와해시키는 것으로, 따라서 태생적으로 반혁명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들의 혁명 개념속에서, ‘여성문제‘는 부차적 모순이며, 제국주의와 계급관계의 주요모순이 해결된 이후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룰 문제라고 여겼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의 딩링 Ding Ling이나 소련의 콜론타이Alexander Kollontai처럼 가부장제에 대한 투쟁을 다른 ‘일반적 투쟁 속에복속시키려고 하지 않았던 페미니스트들이 고립되고 ‘망각‘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반여성적 경향의 경험이나 베트남 여성연합이 토로한결코 사라지지 않는 남성의 봉건적 태도에 대한 불만은 인민의 의식이 문화혁명이나 이데올로기적 투쟁만으로는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런 문화혁명은 다른 어느 곳보다 강하게 중국에서 시도되었던 바 있다. - P408

이 과정은 강조점이 민족에서 국가로 이동하는 것에도 반영된다.
해방투쟁 동안 전체 민족은 심리적 역사적 동일성으로 표현되던 것에비해, 해방 이후 국가와 그 기관들은 공공선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근대경제를 구축하는 것과 강한국가를 세우는 것이 대개 같은 것이된다. 앞서 언급했던 혁명 포스터에서처럼, 민족에 대한 여성적 이미지가, 이 단계에서는 건국의 아버지 이미지로 대치된다. 몇 명만 꼽아 보면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리, 마오, 호치민, 카스트로, 무가베 등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회주의적 가부장의 갤러리 속에 여성은 없다. 이들은 정말 사회주의 국민이 아니라, 국가의 아버지들이다. 다른 가부장제와 마찬가지로 국가형성의 전체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을 이상화하는 과정에서 은폐되었다.  - P4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