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너희들의 아버지인 내가 후에 너희들에게 어떻게 비친 것인가? 그것은 상상할 수 없다. 아마 내가 지금 여기서 사라져 간 시대를 비웃고 연민하듯 너희들도 나의 케케묵은 마음가짐을 비웃고 연민할지 모른다. 나는 너희들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너희들은 나를 발판으로 삼아 높고, 멀리나를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은 몹시 쓸쓸하다. 우리들은 그저 이렇게 말만 하며 태연히 있을 수 있을까? 너희들과 나는 피의 맛을 본 짐승처럼 사랑을 맛보았다. 가자, 그리고 우리들 주위의 쓸쓸함을 제거하기 위해 일하자. 나는 너희들을 사랑했다. 영원히 사랑한다. 이것은 어버이로서 너희들에게 보답을 받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쳐 준 너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나의 감사를 받아달라는 것뿐.
죽어 넘어진 어미를 먹어 치우면서 힘을 기르는 사자 새끼처럼 힘차고 용감하게 나를 떨쳐버리고 인생의 길로나아가거라..
내 일생이 아무리 실패작이더라도, 내가 아무리 유혹을이기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의 발자취에 불순한어떤 것을 너희들이 발견할 만한 짓은 하지 않겠다. 꼭 그렇게 하겠다. 너희들은 내가 죽어 넘어진 곳에서 새로운 - P182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를 너희들은 나의 발자취에서 어렴풋이나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아, 불행하지만 동시에 행복한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의 축복을 가슴에 간직하고 인생의 여정에 오르거라. 앞길은 멀다. 그리고 어둡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거라.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앞에 길은 열리기 마련이다.
가거라. 용감하게, 아이들아! (1919)
- 루쉰의 산문 <아이들에게> - P183

그녀의 배 위에 귀를 대고 누우면 맑은 물 흐르는 소리가난다 작은 숨소리 사이로 흐르는 고요한 움직임이 들린다 (…) 이 모든 소리들이 녹아 코가 되고 얼굴이 되려면심장이 되고 가슴이 되려면 잠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 것일까 잠의 힘찬 부력에 못 이겨 아기는 더 이상 숨지 못하고 탯줄이 끊어지도록 떠올라 물결따라 마냥 흔들리고있다 고기를 잡을 줄 모르는 잎사귀 같은 손으로 부신 눈을 비비고 있다
김기택의 시 <태아의 잠 1〉 부분 - P187

관계 역전의 상태에서 가정의 달 5월을 맞았고 ‘어버이날‘ 카드에는 예의 그 칭찬 메시지가 가득했다. 큰 상을 한 번 받았더니 카드 형식은 시시했다. 나는 딸의 사랑을 간구하는 가엾은 엄마가 되어, 요새 왜 그거 ‘좋은 부모상‘ 안주냐고 묻고 말았다. 물어보면서도 상 이름이 그렇게 진부하지 않았는데 싶어갸웃했는데 "아, 자식사랑상?" 한다. 딸아이는 요즘 자기가 소홀했다며 곧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어제는 귀갓길에 딸에게 전화가 왔다. 학교 수업 준비물로 1.5리터 물병이 필요하니사 오란다. 알았다니까 "그럼 나는 그동안 자식사랑상을 준비할게" 한다. 현관문을 열자 딸아이가 돌고래처럼 솟구쳐 오른다. "엄마한테 상장을 안 준지 6개월이나 됐더라." 삐뚤삐뚤 손글씨 대신 의젓한 명조체로 만든 ‘5월 자식사랑상‘. "위 어른은여섯 달 동안 항상 자식을 위해 많고 많은 노력을 하고, 항상 친절히 대했음으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 P190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김행숙의 시 <다정함의 세계>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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