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은 중요합니다. 아니, 글쓰기에서는 모든 문장이 중요해요. 제가 생각하는 잘 쓴 글은 뺄 문장이 하나도 없는 글이거든요. 그러니 첫 문장도 중요하죠. 특히 첫 문장에는 글의 방향이나 주제에 대한 힌트가 있어야 합니다. 그 글을 읽고 싶게만드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문장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나서나중에 고치며 더 낫게 만들면 됩니다.
이렇게 말해볼까요.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인 게 아니라, 나의선택이다." 내가 쓴 첫 문장을 나중에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을 좀 덜 수 있죠. 실제로 저도 글을 다 쓴 뒤 어색하거나빈약하게 느껴지는 첫 문장을 바꿉니다. 그러니 빈 문서 앞에서겁먹지 마시고요. 인용하기, 상황을 묘사하기, 주제를 함축하기등 첫 문장 쓰는 방법을 하나씩 적용해보세요. 그렇게 어서 첫문장을 타고 글쓰기의 세계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 P109

이번에는 시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글쓰기에서 화자의 시점을 일인칭과 삼인칭으로 설정할 경우 각각의 장단점을 말해보고자 하는데요. 쉽게 말해 일인칭은 ‘나는…….‘ 이라며 화자의시점에서 서술하는 방식이고, 삼인칭은 ‘그는...... ‘김여름 씨는……‘ 이렇게 나와 너, 우리가 아닌 제3자 타인의 시점에서문장을 쓰는 방식이죠. 저는 소설에서 삼인칭을 주로 쓰고 산문에서 일인칭을 주로 쓴다고 생각할 정도로 시점 설정에 무심했어요. 언젠가 "삼인칭 단편소설을 써봐야 정말 소설가가되는 거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도 나요. 글쓰기를 통해 나를벗어나서 타인이 되어보는 게 그만큼 고난도 작업이란 뜻으로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산문을 쓸 때는 주로 일인칭으로 쓰고, 르포를 쓸 때는 주로 삼인칭으로 썼죠. 비문학에서 일인칭은 자기 이야기니까 필자가 편안하게 쓰고, 독자도 편안하게 읽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독자가 필자에게 감정을 동일시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입니다. 삼인칭의 장점은 필자가 거리를 두고 상황을 - P110

쓸 수 있다는 점이예요. 문장의 주어를 ‘나는‘이라고 쓰기보다
‘김은유는 이런 식으로 쓴다면 자신의 이야기라도 다른 인물의 일을 묘사하듯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쓰게 되죠. 각 시점의 장점이 다른 시점의 단점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문학, 비문학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책을 읽다보니, 삼인칭이라고 꼭 객관적이고 일인칭이라고 반드시 주관적이지는 않더라고요. 다시 말해 글쓰기에선 몇 인칭으로 시점을 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개인이 아닌 보편의 이야기로 얼마나 힘 있게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풀어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로 시작하지만 혹은 ‘김순자‘로 시작하지만, 글을 다 읽은 독자의 머릿속에 특정 인물만이 아니라 메시지가 남아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P111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보편의 이야기로 읽히는 글을 어떻게 쓸까요? 방법은 주어를 반복적으로 쓰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제가 글쓰기의 최전선> 서문에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을 썼어요. 조지 오웰의 산문 제목에서 제목을 차용했고, 왜 글을 쓰게 됐는지를 짚은 산문이에요.

일과 사랑은 동시에 왔다. 결혼을 하고 노동조합 활동에서 지점 업무로 돌아갔다. 맞벌이가 시작되었다. 가사노동의 최종 책임자는자연스레 내가 되었다. ‘돕는 위치‘에 자리한 남편에게 편지를 써서 불만을 토로하고 출퇴근 길 차에서 여성주의 책을 읽어주면서 - P111

소통을 도모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행복했으나 뭔가 좌우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것 같았다.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은 시시때때 충돌했다. 아이를 집에 두고 내가 강의를 듣거나 영화를 보는게 못할 짓 같았으니 ‘나답게‘ 살기 위한 선택에는 묘한 죄의식이따랐다. 이 감정의 정체가 뭘까."


일인칭 시점으로 쓴 글인데요. "가사노동의 최종 책임자는자연스레 내가 되었다"라는 문장에만 ‘나‘라는 주어가 있어요.
글을 읽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사람만 남는 게 아니라 특정 상황이 그려져요. 그 장면에 독자는 자신을 대입하며 글을 읽습니다. ‘이거 내 이야기다‘ 하며 감응하게 되죠. - P112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단지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벨라루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10여 년에 걸쳐 100여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일인칭으로 표현했어요. 작가가 개입하지않아요. 다 읽고 나면 굉장한 느낌에 압도됩니다. 이 책을 읽고일인칭, 삼인칭 시점에 관한 편견이 사라졌어요. ‘만약 이 책을삼인칭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만 인상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글에서 저자가 뒤로 사라지고 사건 당사 - P112

자의 목소리가 일인칭으로 나오니까 책에 나오는 인물과 독자인 저 사이에 정서적 밀착감이 컸습니다.
그래서 저도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쓸 때 그동안의르포 작업과 다르게 일인칭 시점으로 시도해봤어요. 처음엔확신이 없고 불안하니까 삼인칭 시점으로도 써보고요. 원고한 편을 일인칭, 삼인칭 두 가지 버전으로 써서 편집자랑 의논했죠. 뭐가 더 나을지 고민했고 인터뷰이의 목소리만 오롯하게 담아낼 때 메시지의 진실도가 더 높아진다는 판단이 들어서 일인칭으로 쓰자고 정했습니다. 책이 나온 뒤, 몰입해서 읽었다는 독자의 반응이 많았어요. 메시지 전달력이라는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었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습니다. - P113

그렇다고 일인칭이 진리라며 안주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다른 르포를 쓸기회가 생기면 삼인칭으로 써보고 싶어요. 어떤 시점으로 쓰는게 적절한지는 글마다, 주제마다 다르니까요.
모든 법칙과 상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러니 일인칭과삼인칭 각각의 장단점에 얽매이기보다 각각 써보고 어떤 시점이 이번 글에 맞을지 판단해보세요. 우리는 무엇을 쓸 수 있고무엇을 쓸 수 없는지 모르니까요. 한 편씩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진리를 찾아내고 그렇게 발견한 진리를 또 과감히 버리는용기로 글쓰기에 임한다면, 혹여 남들이 보기엔 망했어도 최선을 다했기에 덜 부끄러운 글을 써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P113

김포의 꿈틀책방에 갔다가 책을 한 권 사왔어요.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란 책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황현산 선생님은 문학평론가이며 불어불문학과 교수였고 많은 문인과 독자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저는 사유를 밀고 나가는 힘이 어휘의 적절성에 있다는 걸황현산 선생님의 글에서 배웠어요. 어휘가 화려하지 않은데쓰임이 적절하고, 문장이 담백하며 흐름이 유려해요. 한 줄 한줄 읽다보면 끝까지 읽게 됩니다. 비결이 뭘까 싶어서 글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연구해보기도 했는데요, 잘 모르겠지만글쓰기에서 테크닉이나 화려한 수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황현산 선생님의 글을 보여드릴게요. - P114

인터넷 문화를 진심으로 바로잡고 싶다면 질이 좋은 콘텐츠를 그것도 대량으로 제공하는 길밖에 다른 방책이 없다. 물론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아리송한 저 거창한 토목공사에 비하면 사실 과자값에 불과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한 사람 - P114

이 그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역시 어려운 일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특별한 어휘가 있진 않죠. 외려 "아리송한 "과자값" 같은단어들은 소박하죠. 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더 잘 스며요. 저였다면 어떻게 썼을까요.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저 쓸모없는 토목 공사‘ 정도로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쓸모없다‘는 글쓴이의 부정적인 판단이 드러나죠. 독자의 생각을 막는, 닫힌표현입니다. 한편 황현산 선생님이 쓴 "아리송한"이라는 표현이 독자 입장에서 부드럽게 느껴져요. 저는 "아리송한" 같은평이한 단어가 문체를 만든다고봐요. 독자는 그렇게 한 단어한 단어 스미듯이 글을 따라가다가 마지막 문장에 허를 찔리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라는 표현은 사유의 전복을 일으킵니다. - P115

책만 그런 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세포 격인 상품을 우린 거의 모르고 사용한다. 농사짓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쌀을 얻어밥을 먹고, 옷 만드는 사람의 처지와 얼굴을 모르고 옷을 사서 입는다. 결과물만 쏙쏙 취하니까 슬쩍 버리기도 쉽다. 그렇게 편리를누릴수록 능력은 잃어간다. 물건을 귀히 여기는 능력,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능력,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능력. 


이 글에서 눈에 띄는 어휘는 "자본주의 사회의 세포" 정도같아요. 이 표현은 마르크스의 글에서 얻어왔습니다. 마르크스가 상품을 ‘자본주의의 세포‘라고 하거든요. 옷 만드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라고 썼다가 무엇을 모른다고 하는지 뜻하는 바가 모호해 보여서 "처지와 얼굴을 모르고"라고 바꿨어요.
글쓰기에서 어휘를 다채롭게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사실과 현상을 정확하게 견인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 P116

글을 쓰며 어휘력이나 문체의 빈약함이 문제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일상어로도 충분히 깊이 있는 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어휘가 화려한데 남는 게 없는 외화내빈 글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글이 있어요. 이영광 시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당신은 연인이라는 인연이었으나 당신은 인연이라는 연인이 되어……‘
- P118

새벽에 꿈에서 깨어 이런 문장을 떠올려봤다. 내가 내 머리로 생각한 문장이지만, 책임질 수는 없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에서주운 돈 가방을 파출소에 가져다줘야 하는 때처럼, 내려놔야 하는문장 같다. 그럴싸한 생각들이 다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주중에 샀다가 주말 저녁에 구겨버리는 로또 복권 같은 것들. 이 문장을 내인생이 소화시키지 못한다.


글 쓰는 사람은 어휘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영단어 1만개를 외우듯이 우리말 단어를 외운들, 적절한 쓰임을 찾아 쓰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겠지요. ‘아리송하다‘ ‘처지‘ ‘세포‘라는단어를 우리가 몰라서 못 쓰진 않아요. 글을 쓸 때 마침 떠올라서 단어를 배합하고 언어를 조탁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평소말할 때도 이 단어, 저 단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는 연습이필요합니다. 이미 아는 단어를 ‘나는 모른다‘는 생각으로 사전을 찾아보고 일상에서 써보기를 반복하다보면 글을 쓰다가 적절한 단어가 불현듯 떠오를 것입니다. - P119

할 때 불필요한 단어와 표현을 넣진 않았는지 의심하면서 골라내요. 그러다보면 가장 먼저 지우는 것이 습관적으로 쓴 형용사나 부사예요. ‘따뜻한 국밥‘의 "따뜻한"이나 ‘빠르게 내달렸다‘의 "빠르게"와 같이 동어반복이거나 불필요한 수식이요.


부사나 형용사를 적절히 빼야 글이 좋아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형용사는 명사를, 부사는 동사를 꾸미잖아요. ‘휘영청 밝은 달.‘ ‘빠르게 뛰었다.‘ 이런 식으로요. 자칫동어반복이거나상투적 표현이 되기 쉽죠. 전달해야 할 정보를 생략하기도 합니다. ‘나는 물을 많이 마신다‘보다 ‘나는 하루에 1.5리터를 마신다‘가 더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죠. ‘많다‘의 기준은 저마다다릅니다. 형용사가 정보의 자리를 대신하면 상황의 고유성을드러내지 못한 예입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님도 부사의일종인 첩어를 과하게 쓰는 문제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 P121

글에 의성어와 의태어를 많이 쓰게 되면 글 쓴 사람의 사고가 너무 단순하거나 게으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 있다. 이런 말들은 글에 현실감을 주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구체성을 없애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숲에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고 말할 때
‘살랑살랑‘은 바람의 세기와 성질을 어느 정도 전달하지만 그 바람을 개별화해주지는 않는다. ‘살랑살랑‘을 쓸 수 있는 바람은 많지만 글 쓴 사람이 표현하려고 하는 바람, 그 시간 그 숲에 불었던 바 - P121

람은 유일한 바람이다. 똑같은 바람이 두 번 다시 불지는 않는다."


저는 이 글을 읽었을 때 "똑같은 바람이 두 번 다시 불지는않는다"라는 문장이 몸에 감겨서 한 번 더 소리 내어 발음해보았네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도 떠오르고요. 자연과 만물은 변한다는 뜻입니다. 글 쓰는 일이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인데,
제각기 고유한 것들을 수많은 ‘살랑살랑‘ 속에 묻지 않아야겠지요. - P122

특히 접속 부사, 즉 접속사는 어떨까요? 글에 논리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그래서‘ ‘그리고‘ ‘그런데‘ ‘그러므로‘와 같은 접속사를 쓰게 되는데요. 논리로만 글을 끌고 가기보다 리듬을만들어야 글맛이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접속사가 많은 글을읽다보면 독자의 생각이 글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하고 접속사에서 탁탁 걸리고 끊어지거든요. 그렇다고처음부터 접속사 없이 쓰려면 의식되고 부담스러워서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게 되니, 저는 일단 초고는 경계심 없이 쓰고 퇴고할 때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면 접속사를 빼는 식으로 씁니다. 물론 과도한 사용을 자제할 뿐,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어색할 땐 접속사를 써야죠.
여기까지 설명하고 나니 접속사를 비롯한 부사 그리고 형 - P122

용사를 여름철 모기를 대하듯 잡아 없애자고 말한 것 같은데요. 잘 쓴 부사와 접속사가 얼마나 글맛을 살려주는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글 잘 쓰는 작가들은 형용사와 부사를 능숙하게 부려요. 《시와 산책》을 쓴 한정원 작가도 그런 분이죠. 한구절을 보여드릴게요.
몸을 단번에 일으키고 커튼을 걷으면 아, 눈이 거기 있다. 창을 내내 올려 보다가 내 얼굴이 뜨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힘차게 흔드는 애인처럼.
눈을 그렇게 발견하는 날은, 사랑을 발견한 듯 벅차다.  - P123

"단번에" "환하게" "힘차게"와 같이 부사와 형용사가 거듭나오지만 거슬리기보다 말의 운율이 느껴지고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환하게 그려지는 듯했어요. 글의 흐름을 타고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러니 부사와 형용사를 빼더라도 무엇을 위해빼고 있는지, 간결한 게 아니라 앙상한 글을 만드는 건 아닌지한 번 더 살펴보세요. ‘글에서 부사와 형용사, 접속사 빼라‘라는 주장 뒤에 감춰진 속뜻은, 단순하고 모호하며 표준화된 글을 만들기도 하는 부사와 형용사, 글의 흐름을 이어주는 게 아니라 흐름을 끊어버리는 접속사를 남용하지 않게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 P123

글쓰기에 몰입하다보면 정작 메시지를 놓치고 다른 이야기를 쓰는 데 열중하는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원고도 쓰다가 막히면 서두로 돌아가서 질문이 뭐였는지 되짚어봤어요. 한 번씩 글의 메시지를 스스로 환기하는 거죠. 다시 말해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돌파구를 찾는 방법은 ‘글에서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라‘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주제와 방향을 확인하고 나면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든가, 자기 의견과 생각의 근거를 들여다본다든가, 비슷한 주제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품을 들이는 겁니다. - P124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쓰다가 막힌 부분이 안 풀릴 때가있어요. 이럴 때 저는 글을 묵혀둡니다. ‘방치한다‘가 아니라
‘묵혀둔다‘입니다. 한글 파일은 닫아도 생각은 열어둬야죠. 제가 애용하는 방법이기도 해요. - P125

타인의 일을 쉽게 말하는 모습에서 일상 언어의 폭력성을착안했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붕어빵과 성착취 이슈를 연관 지어 글을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막힌 글을 내려놓고삶을 살다보면, 삶이 글의 길을 터주기도 합니다.


앞선 두 방법을 다 시도해봤는데 그래도 글을 쓰다가 막힌 - P127

다면 ‘포기‘라는 방법을 써보세요. 네? 어떻게 쓴 글인데 포기하냐고요? 아까워도 써볼 만합니다. 저도 컴퓨터 폴더에 미완성 원고 파일이 많아요. 쓰다가 막힌다는 것, 글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생각이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죠. 익지 않은 땡감은 따도 먹지 못해요. 떫은 글이 됩니다. 글이란 ‘내가 무엇을 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버리는 것도 실력입니다.
일단 뭐든 써보세요. 글을 쓰다 막히면 상기하거나 묵혀두거나 포기한다는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세요. 쓴 사람만이덜 익은 글도, 만숙의 열매처럼 뚝 떨어지는 잘 익은 글도 거둘수 있을 테니까요. - P128

저는 글을 쓰고 나서 처음부터끝까지 읽으며 주제라고 생각하는 핵심 문장에 밑줄을 그어요. 글 한 편에 밑줄을 여러 개긋기도 해요. ‘아,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해.‘ 이럴 땐 글의 메시지가 한 가지가 아닌 거예요. 한 번에 다 말하려고 하면 한 가지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합니다. 주제별로 글을 독립시켜주세요. "곁길로 새지 않고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물음에 답변이 됐을까요? ‘하나의 글에는 하나의 주제만 쓰자‘ 즉 ‘한 편의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만담자‘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잘 기억하시고요. - P131

저도 글을 쓰다보면 이야기가 곁길로 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인생사가 그렇듯이 글쓰기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우리가 여행하다가 잘못 들어선 길에서 색다른 풍경을 보게 되듯이, 한 편의 글이 옆길로 새서 다른 지점에 도달한다는 건 그 글을 쓰지 않았으면 몰랐을 자신의 생각을 만난다는 의미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는 사실에 좌절도 하지만
‘아, 나한테 이런 생각도 있었구나‘ 하는 발견의 기쁨도 느낍니다. 원래 글 하나, 곁가지 글 하나. 이렇게 글감을 자꾸자꾸 만들어둡니다. 이러다보면 글 부자가 되겠지요.
작가에게 쓸거리가 많은 건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마시고요, 곁길로 새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오늘도 글 한 편 쓰시길 바랍니다. - P133

글쓰기는 시작도 어렵지만 마무리도 만만치 않게 어려워요.
무언가 한가득 써놓았는데 그 이야기가 점점 가지를 치고 양도 늘어나서 감당이 안 된 경험이 다들 있으실 거예요. ‘이 글을 왜 쓰려고 했지?‘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글이 애초의의도에서 멀어지고 수습이 안 돼서 당황했던 적이 저도 많습니다. 이럴 때 끈기를 갖고 ‘생각을 생각하기‘라는 방법을 써봅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의 근원을 파헤치는 거죠.
글을 마무리하는 방법은 사실 글의 구조나 개요 짜기와 관련이 깊죠. 사람에 따라서는 글의 구조와 개요를 짜놓고 정해둔 결론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도 해요. 한편 저는 ‘이글이 어떻게 끝날지 알지 못한다‘라는 입장을 지닌 채 결론을열어놓고 쓰죠. 결론을 모른다는 점에서 막막하지만, 그렇기에 글을 쓰면서 나도 몰랐던 생각과 의외의 문장을 만나는 짜릿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에게 글쓰기의 기쁨이란 곧 발견의 기쁨입니다. - P134

가령, 《다가오는 말들》에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기>라는글이 있습니다. 제가 강연장에 선 몇몇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에요. 한번은 서울에 있는 한 작은 마을공동체에 초대받아 강연을 하러 갔는데요. 강연 중 한 남성 청중이 제게 한 어떤 말에 모욕감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원래도 잘 울어요. 잘 우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 사회엔 안 좋은편견이 있죠. ‘감정적인 사람이다‘ ‘이성적이지 못하다‘와 같이요. 세상은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고 단호한사람을 높이 쳐주죠. 저도 그런 잣대로 저를 판단했고, 우는 저자신을 미성숙하다며 부끄러워했었어요. 강연하다가 분에 못이겨 또 울고 마는 제 자신이 창피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상한 거예요. ‘눈물이 왜? 잘 우는 게 왜 안 좋지? 말이 되지 못해 흐르는 게 눈물인데, 눈물도 언어 아닌가?‘ - P135

잘 우는 사람은 눈물로 타인을 억압하진 않잖아요. 못 울고안 우는 사람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보면나쁜 일도 많이 저지르더라고요. 감정적인 게 나쁘고 이성적인 게 좋다고 이분법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거 같았어요. 이럴 때 생각의 희열을 느끼죠. 상식을 뒤집어보면 꼭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내 삶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거죠.
강연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혼란스러워하면서 ‘눈물이란 무엇일까?‘라는 문제의식을 떠올렸을 때 마침 리베카 솔닛의 책《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읽었어요. 책에도 솔 - P135

닛이 여성이기 때문에 강연장에서 겪은 무례한 일이 사례로나와요. 읽고 굉장히 놀랐어요. ‘리베카 솔닛도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이건 젠더의 문제구나‘ ‘나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그때의 이야기를 글에 빌려왔고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내 나약함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목표를 바꾼다. 울지 않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이렇게 쓰고요. 마지막엔 솔닛의 문장으로 한 번 더 제 생각을 다지며 마무리했습니다.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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