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저만 그런 건 아니었나봅니다. 《회색 인간》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김동식 작가를 한 강연장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요. 책을 내기 전 김동식 작가는 낮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지냈고 밤에 글을 썼다고 해요. 한 인터넷 게시판에 연재한글이 인기를 끌어 책을 냈다고 합니다. 자신의 게시글에 달리는 여러 댓글에 기운을 얻어서, 피곤한데도 밤마다 글을 쓸 수있었다고 말했어요. 그때 받은 칭찬이 너무 좋았다고 해요. 이이야기를 듣고 또 한 번 느꼈죠. 우선은 내가 글을 써야 독자가생기겠지만, 읽어주는 사람, 즉 독자가 있으면 글을 쓰게 된다는 사실을요. 이렇게 남은 나를 쓰게 합니다.


마감도 나를 쓰게 하는 강력한 요인이죠.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저는 이 말의 반만 맞는 것 같아요.
아무리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어도 주제를 잘 모르거나 꼭 써야 한다는 절실함이 없으면 단 한 줄의 글조차 나오지 않으니까요. 다른 무엇보다 절실함이 글을 쓰게 하는 가장강력한 동기가 되는 것 같아요. - P34

절실함은 생존 본능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절실함은 두 가지에서 비롯하죠.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힘, 배고픔에서 벗어나려는 힘. 고통스럽고 배고픈 거 너무 싫잖아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죠. 이것들로부터 제 글쓰기도 시작됐고요. 마음이 너무 괴롭고 생각이 엉켰을 때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잠들지 못해서 매일 썼습니다. 자유기고가로 일할땐 기한 안에 글을 납품하지 않으면 원고료를 못 받으니까, 원고료가 없으면 쌀독에 쌀을 채울 수 없으니까 글을 썼어요. 글쓰기의 기한, 즉 마감이라는 사회적 약속 그리고 그것을 지켰을 때 주어지는 원고료라는 보상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 P35

그런데 직업적 글쓰기가 아니면 마감도 없고 원고료도 없잖아요. 그래서 글쓰기 강의나 모임에 참석하는 등 강제 장치를 만들어두는 것도 계속 글을 쓰는 한 방법입니다. 저는 의지가 약해서 제 결심이나 다짐을 믿지 못해요. ‘매일 매일 꼬박꼬박 글을 쓸 거야‘ 하고 아무리 다짐해도 안 쓰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책임감은 강해서 관계의 장 속에 저를 두었을때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고요. 자기 성향을 파악해서 계속글쓰기를 할 방법을 정하시면 됩니다. 글쓰기 모임의 동료들끼리 각자 자기 돈 10만 원을 내놓고 글을 안 쓰면 못 받고 쓰면 되찾아가는 페이백 방식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마감을 만들고 원고료 같은 보상과 격려를 받는 방식을 권해드립니다. - P35

지금까지는 제 경험에 근거해서 무엇이 저를 쓰게 하는지말씀드렸어요. 여러분도 ‘어떤 상황에서 글 쓰는 내가 가장 활성화되는가?‘ 하고 스스로 돌이켜보세요. 자신의 성향에 맞는글쓰기 환경을 설계하고 계속 쓸 동력을 만들어보시고요.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글 한 편 써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 P36

1. 늘 하던 익숙한 글쓰기를 그만둔다.
2. 쉬면서 쓸데없는 일을 하거나 나를 가만히 둔다.
3.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글쓰기를 시도해본다.


영화 보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늘 영화 리뷰를 쓰는 사람이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영화 리뷰도 쓰다보면 어느 순간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죠. 그럼 자기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쓰거나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는 등 일상의변화를 시도해보는 겁니다. 내 경험과 관계가 바뀌어야 삶의자리가 바뀌고 보이는 것이 달라지겠죠. 관점을 바꿀 수 있는조건과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보세요 - P40

그리고 몇 년을 써도 글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을 때는 실력을 가늠하는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 점검해보세요. 글 실력이 왜 안 늘지?‘ 싶다면 ‘내 채점표는 무엇일까?‘ 하고 고민해보라는 뜻입니다. 글을 보는 자기 기준, 잣대가 무엇인지 스스로 말해보세요. 저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관점과 해석에 둡니다. 사물과 현상을 통찰하는 힘이 있는 글인지를 중시해요.
글이 나아지고 있는지 돌아보는 주기도 고려해야겠죠. 저는 넉넉하게 잡아서 10년이에요. 한 주나 한 달 혹은 1년 간격으로 글이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할 수 있겠지만요. 어떻게 해도 시간은 가죠. 글을 쓴 10년과 안 쓴 10년은 분명 다를 거라 - P40

고 생각합니다. ‘잘 쓰고 있나?‘ ‘왜 안 늘지?‘ ‘이게 맞나?‘ 이런고민, 주저함, 망설임, 회의감이 글을 글답게, 삶을 삶답게 해줄 겁니다. 이런 뒤척임 없이 10년을 보낸 모습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말투와 다른 표정을 갖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재밌슬럼프, 봄바람처럼 그것이 삶에 찾아오거들랑 잠식당하지마시고 글쓰기 인생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서 슬렁슬렁 잘타고 넘으시길 바랍니다. - P41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잡풀처럼 돋아나는 자기 의심과싸워야 하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쓰기 전에는 ‘과연 쓸수 있을까?‘, 쓰는 동안에는 ‘이렇게 써도 되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닌가?‘, 쓰고 나서는 ‘이 글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일까?‘ 등등……. 생각의 잔물결이 밀려오고 밀려가죠. 이런 일을 반복하다가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합니다. ‘나한테 과연 글쓰기 재능이 있는 걸까?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물음은 어떤 면에선 ‘의미도 없는데 살아서뭐 하느냐‘는 물음과 같은 무게로 제게 다가오거든요. 답하기에 아주 조심스럽죠. 그래서 이렇다 저렇다 하며 일반론을 말하기보다 제 경우를 참조해 답해보려 합니다. - P42

개인 경험에 근거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단한 재능이 없어도 글쓰기를 시작할 수는 있지 않을까.‘ 글쓰기에 대한 회의감은 ‘재미‘나 ‘의미‘라는 가치 중심적인 단어보다 ‘재능‘이라는 자기 개발의 뜻을 지닌 단어를 글쓰기에 붙일 때 드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글쓰기를 그만둔다면 재능 없음을 비관해서가아니라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없음을 비관해서일 거예요. 더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 인간에 대한 호기심, 살아가는 일에대한 애틋함 같은 게 없어진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글을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어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재능인가? - P43

우리 사회 가장자리에 있는 삶을 날카롭고 따뜻하게 그려내는 분이죠. 김중미 작가가 쓴 에세이 《존재, 감》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김중미 작가가 강연에서 청소년을 만날 때마다 늘 "어떻게 작가가 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데 그때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사람의 삶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정말 공감했습니다. 사람의 삶을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중미 작가의 말을 저는 이렇게이해했어요. 사람의 삶을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글을 쓰게 한다, 즉 그 노력이 우리를 작가로 만들고 작가로 살게 한다고요. - P44

서.
글쓰기의 출발은 소박하죠. 기억 작업이고 자기 구원입니다. 저도 저 살자고 썼던 게 크고요. ‘아, 사는 게 참 힘들구나.
사람은 고통스러우면 안 되는 존재인데 이렇게 고통을 받으며사는구나.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 고통이 조금씩 견딜 만해지는 과정을 기록하면 이걸 읽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지.‘ 이 정도의 생각으로 글쓰기를 시작해본 겁니다.
글 쓰는 일은 지겹고 괴로운 반복 노동입니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기보다 찬란한 계절에 내가 꽃놀이나 단풍놀이를 안 가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 책상 앞에 앉아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와 씨름할 수 있는지, 그 고통을 감내할 만한 동력이있는지, 나는 왜 쓰고자 하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쓰기의 말들》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쓰는 고통이 크면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글 쓸 때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자기 의심은 오직 쓰는 행위에 몰입할 때만 자취를 감춥니다. - P45

사실 저도 ‘나 같은 사람이 해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 매달 칼럼을 쓰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 말고 다른사람이 쓰면 세상에 더 필요하고 재미있고 질 좋은 글을 쓸 텐데 내가 괜히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쓸 자신이 없어지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져요. 주로 글을 쓰기 싫을 때, 못 쓸까 봐 불안할 때 이런 생각이고개를 듭니다. 단행본 쓸 때도 그래요. 《알지 못하는 아이의죽음》이나 《있지만 없는 아이들》 같은 르포집을 쓰면서는 한숨으로 책상이 내려앉을 판이었습니다. 깜냥도 안 되는 내가왜 한다고 했을까, 노동 문제 · 청소년 문제·이주민 문제에 더해박한 사람, 더 오래 활동한 사람이 써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요. 원고 집필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고, 책이 안 나올 것 같은두려움도 증폭됐어요. 이런 초조함과 불안감은 글을 써야 사라집니다. - P49

저도 온갖 상념이엄습할 때마다 나에게 책을 써볼 기회가 생겼다면 두려워도도망치지 말고 해보는 게 지금의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일단 막 쓰자, 대충 쓰자‘라며 스스로 달래고 긴장을 풀어주면서 썼어요. 완벽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완벽해지려는 노력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봅니다. - P50

그럴 때 말씀드려요. 글쓰기 수업은 ‘포트락 파티‘라고요.
각자 음식 한 가지씩 챙겨서 모이듯이 우리는 자기 글을 갖고모이는 겁니다. 그런 자리에서 나만 음식을 안 가져오고 남들이 가져온 음식만 먹으면 미안하죠. 글쓰기 과제를 내지 않는건, 나는 빈손이지만 남의 글만 읽겠다는 태도나 다름없습니다. 바쁘고 아프고 힘들고 등등의 사정이 있다면 전에 장 봐놓은 가지 하나, 귤 한 봉지라도 들고 온다는 마음으로 미완의 토막글이라도 내보자고요. 특히 제가 꾸리는 글쓰기 수업은 강사가 일방적으로 팁을 제공하는 강의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활동하는 워크숍 형식의 수업이기에, 서로의 삶과 삶에서 우려낸 글을 내주어야만 그 자리에서 배움이 일어납니다. - P55

이런 모습을 보면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 같아요. 다른사람이 과제를 안 하면 나도 안 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과제를 하면 자기도 하게 돼요. 주변에 영향을 받는 것만이아니라 나도 영향을 끼치죠. 내 주변까지 나인 거예요.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면 소인배, ‘내 한 몸만 내가 아니다‘라고생각하면 대인배입니다.
또 한 가지, 글쓰기는 해방입니다. 나를 풀어줘야 합니다.
스무 명이 배우는 글쓰기 수업에 와서 눈치 보고, 자기 검열하고, 자기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불특정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을 어떻게 낼 수 있을까요? 내가 - P55

나를 풀어주고 자아를 해체해야 또 다른 내가 됩니다. 수업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학인들이 과제랑 후기를 전보다 더많이들 써내고 서로 게시물에 댓글도 달면서 분위기가 훈훈해졌어요. 저는 잔소리 회의론자인데 때로는 잔소리가 효과가있구나 싶기도 해요.


한편, 셀프 글쓰기 수업도 있습니다. 저는 대면 수업이 아닌글쓰기 책으로 하는 비대면 수업을 무척 많이 받았어요. 글쓰기 관련 책을 많이 읽었거든요. 잘 쓰고 있는지 헷갈릴 때마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어서 조급해질 때마다,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 에세이를 찾아봤어요. 글쓰기 책이라는 수업에는 장점이많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수들에게 배울 수 있다는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 나만의 속도로 책장 앞뒤를 오가며 반복하고 건너뛰면서 배움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 등등...………. - P56

글쓰기도 그래요. ‘책 리뷰를 쓰겠다‘ ‘매체에 기고를 하겠다‘ 등 글을 한 편씩 완성하는 과정에서 글쓰기책을 읽어본다면 글 쓰다가 막히는 부분에 대한 해법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미국 소설가 앨리스 매티슨이 쓴 《연과 실》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내가 아는 모든 작가들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을 수업이나 비공식적인 모임, 서평, 책 등에서 배웠다. 우리는 다음에 무엇을 할지, 또는 생각 자체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다.


"다른 사람"이 글쓰기 수업의 동료일 수도 있고, 책의 저자일 수도 있고, ‘글쓰기 상담소의 저일 수도 있겠죠. 쓰겠다고마음먹으면 온 세상이 다 교실이고 만인이 다 스승입니다. - P57

저도 글쓰기가 경쟁이 아니고 나눔이라서 여럿이 함께 10년이상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가 경쟁이었으면 저는 진즉에 병들었을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요. 글쓰기 수업 초반에 위축되고 조급해하는 분에게 읽어주는 문장이 있어요.
미국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가 한 말입니다.


나이 든 작가는 젊은 작가에게 어떤 충고를 해야 할까? 그는 자기가 몇 년 전 들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만 이야기해줄 수 있을 뿐이다. 기죽지 마라! 곁눈질을 하거나 당신을 다른 동 - P61

료들과 비교하지 마라! 글쓰기는 경주가 아니다. 아무도 진짜로 이기지 못한다. 만족은 노력에서 나오고, 그 결과 보상이 따른다 해도 그런 보상은 아주 드물게 오는 법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 가슴 속에 있는 것을 써라.


정말 좋지 않나요? 이 아름다운 충고를 제 언어로 정리하면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네요.


잘 쓴 글을 보고 기죽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니 기죽는다는 사실엔 기죽지 말고,
내가 기죽었다는 사실을 글로 써보자.
그게 글 쓰는 사람의 임무다.


오늘도 글감을 여러분 곁에 살며시 놓고 갑니다. - P62

공적 글쓰기에 반대편에는 사적 글쓰기가 있고 대표적으로일기가 있죠. 일기에도 자기 생각과 감정을 쓸 테니까 언어의표현 능력을 기른다는 측면에서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겠지만결국 일기는 나만 보고 나만 이해하는 글이잖아요. 언어적 소통 능력을 향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적 글쓰기를 권해드려요. 나 아닌 타인이 본다는 점에서 SNS나 블로그, 브런치, 온라인 카페 게시판, 지면 같은 데 쓰는 게 다공적 글쓰기죠. 그리고 오프라인 글쓰기 수업, 글쓰기 모임 등에 참여해 쓸 수도 있고요. - P63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어떤 평가라도 받아들여야하지만 동시에 경계해야 할 것도 있거든요. 학교의 창작 수업이나 등단 준비반, 언론사 취업 준비반 같은 곳에서 자기 글을내보였다가 너무 호된 평가를 받아서 글쓰기가 두렵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들 하세요. 들었던 강렬한 일화가 떠오릅니다. 한교수가 책상 위에 있는 볼펜을 탁 쳐서 떨어뜨린 다음에 "이게니 글이야. 가치도 없어"라고 했대요. 또 교수에게서 "네 글은똥이야"라는 말을 들었다는 분의 이야기도 접했습니다. 끔찍합니다. 글에 대한 의견을 왜 꼭 상대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모욕이 정말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지, 저는 회의적입니다. 만약에 제가 저런 말을 들으면 자극받아서 더 잘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기보다는 반발심만 생길 것 같거든요.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책이든 기사든,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가 그저 말로 하는 것보다 언어를 조심스럽게 고르고 표현 - P66

을 다듬는 일인데, 거칠고 뒤틀린 언사로 글쓰기를 배운다면모순이 아닐까 싶어요. 엄연히 언어폭력이기도 하고요. 김수영 시인의 시에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 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글쓰기를 배우는 과정도 사려 깊어야죠.
물론 글쓰기 합평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덕담을 나누는 자리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어떤 모욕을 당해도 결과적으로 합격만 하면 된다거나 책만 내면 다 되는, 성공의 지름길을찾아가는 자리는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합평을 통해서 남이 써낸 글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방법 그리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 자기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런 방법을 배우고 잘 해내는 것은 글을 잘 쓰는 방법과 다르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관계라도 가까워지면 그만큼 서로를 다치게도 합니다. 흠을 내지 않는 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요.
말들이 오가는 합평에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시고요. 사람이 쉽게 안 바뀌듯이 글도 쉽게안 바뀌거든요. 쉽게 바뀐 건 금방 원 상태로 돌아오고요. 그러니까 기분 전환하시고 힘을 비축해서 다시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아까 합평 후에 눈물을 흘렸다는 학인이 쓴 후기의 한 구절을 공유해볼게요. - P67

제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작가 리베카 솔닛도 걷기를 좋아했습니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 현장을 돌면서 글을 쓰는 환경운동가이자 르포 작가인 그는 인문 에세이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썼을 정도로 걷기 예찬자죠.
글을 엉덩이로 쓴다지만 엉덩이로만 쓸 수 없는 게 글입니다. 앉아 있다고 해서 글이 나오진 않지만, 앉아 있는 시간을 배신하진 않는 것 또한 글이고요. 그러니 옷을 성심껏 골라서 갖다놓고, 발품을 팔고, 매일 문을 열어놓는 마음으로 여러분도끈기 있게 앉아서 솟아나는 생각을 곱씹고 언어화해보세요. 손 - P71

님 한명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 문을 여는 옷 가게 주인처럼 글이 안 써져도 또 책상 앞에 앉는 거죠. 특히 개점 초기 1년은 매일 문을 열 듯이,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적어도 1년은 산책하며 사유하고 앉아서 쓰는 습관을 들이길 권해드리고싶습니다.
오늘의 질문,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는데, 맞나요?"에 대해 저는 니체의 명언으로 답변해보겠습니다.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 - P72

정확히 보는 것, 저도 글을 쓰며 중시하는 점입니다. 제 사생활이 많이 담긴 책 《올드걸의 시집》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의 독자들한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작가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솔직하게 글을 쓰나요?"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글을 쓸 때 솔직하게 쓰겠다고 마음먹진 않았거든요. 다만 정확하게 쓰려고는 노력했어요.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 말이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는지 자문자답하면서 본 것, 들은 것, 한 것을 최대한 빠짐없이 재현해보려고 노력하며 글을 썼죠. 그렇게 쓴 글을 독자는솔직하다고 느꼈고요.
솔직하고 정직하게 글을 쓰자는 말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있을 것 같아요. ‘정확하게 쓰자. 정확하지 않으면 나만의 고유함을 지닌 글이 되기 어렵고, 고유성이 없는 글은 어디선가 - P75

솔직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솔직함 그 자체가 남는 게 아니라 솔직함을 통과한 메시지가 남습니다. 무엇을 위한 솔직함이고 정직함인지 글을 쓰는 동안 놓치지 말아야겠죠.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자기 경험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쓴 글은 다른 피해자에게 용기를 줍니다. 피해자가 자기 잘못이 아니란사실을 깨닫고 자기가 처한 현실을 바로 보게 하고 고통에서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한 번도 이야기되지 않은 집안일, 즉 봉인된 가족사의 말하기는 왜 중요할까요? 여성이나약자의 희생과 피해로 굴러가는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안전한 관계다‘ ‘믿을 것은 가족뿐이다‘
라는 관습적인 말과 믿음으로 유지되는 가족 신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쓴 글은 삶의 진실을 견인합니다. 그래서 저는 "솔직하고 정직한 글이 좋은 글인가요?"라는 물음에 이런 표현으로 되묻고 싶어요. - P76

자기 경험을 쓴다는 것은 아프기만 한 것 같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는 일인데, 자기가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고어떤 시늉과 가식으로 문장을 채워서 가공한다면, 우리가 힘겹게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나에게 힘을 준 글이 남에게도 힘을 준다는 것, 용기도 전염된다는 것을 되새기며 주저하던 ‘그것‘을 꼭 한번 써보시길 바랍니다. - P77

=인 행예전에 성폭력 피해자를 인터뷰했을 때 들은 말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느냐는 제 물음에 그는 성폭력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기는 무관한 사람인것처럼 입 다물고 있기 싫었다고 말했죠. 자기 잘못도 아닌데위축되고 당황하고 그 기억에 끌려다니는 게 괴롭다는 거였어요. 고통을 글로 쓰고 공적인 장에 내놓으면 조금은 담담해질수 있을 테고, 그런 점에서 글쓰기가 글쓴이에게도 치유가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일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서사의 편집권을 가짐으로써 그 일을 다스릴 수있게 되죠.
고통을 글로 쓰면 고통스럽던 경험이 사회의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내 고통이 이 사회에서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 P81

《여섯 개의 폭력》 서문을 쓰며 류은숙 인권활동가의 말을인용했습니다. "고통을 말하는 이유는 고통의 전시장을 구경하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얘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고통 없이 살 수 없다면 글쓰기 없이도 살 수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글쓰기의 최전선》에도 썼지만 제게 글쓰기란 ‘고통의글쓰기예요. 글쓰기로 고통을 씻겨내고 극복하는 게 아니라,
내 고통을 글로 공유함으로써 타인의 고통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성장과 치유가 됩니다. 고통을 글로 풀어내는 일이 간단치않지만 시간을 낭비할 용기를 갖고 책상 앞에 앉아보시길 바랍니다. - P82

지만 굴하지 않고 썼습니다. 남한텐 시시해도 저한텐 절박한문제였으니까요. 그랬더니 저처럼 밥하는 일로 힘들고 고통받는 분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공감했다며 같이 눈물 흘려주는독자가 되었습니다.
일찍이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도 말씀했습니다. "자기 내부의 불씨를 살라야지요. (...) 제 눈에 보여야 하고 마음속에 있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라고요. 마음속에는 누구나 글감을 품고 있으며 고상한 글감, 시시한 글감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뭐라도 좋아요. 글감에 위계를 두지 않고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을 쓰면 그것이 좋은 글감입니다. 내가 내 삶을 풀어가는데 도움을 준 글이라면 다른 사람의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요.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 P94

제 글쓰기의 첫 공정은 자료 조사입니다. 내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세상에 꺼내놓는 일이 글쓰기잖아요. 생각이든, 정보든, 느낌이든, 지혜든, 무엇이든지요. 가진 것이 없으면 내줄 것도 없겠지요. 반대로 자기가 많이 알고, 오래 붙들던 주제라면 그것에 관해 주제 장악력이 있겠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도있듯이 알아야 씁니다. 그리고 글로 써봐야 내가 얼마나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도 드러나고요.
저한테 "축구에 대해서 글 써라." 하면 못 쓰지요. 축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요. 누군가 제게 "블랙핑크에 대해서써라." 하면 뭐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적어도 멤버들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다큐멘터리를 봤고, 음악을 좋아하고, 호감이 있으니까요. 의욕적으로 인터뷰 기사도 찾아 읽고 팬카페도 들어가보는 식으로 쓸 준비를 하겠지요. 그다음에 "책 읽기에 대해서 써라."하면 이전 주제보단 더 수월하게 쓸 수 있습니다. 매일 보는 게 책이니까요. 잘 아는 주제로 글을 쓰면 자신감이 차오르진 않더라도 막막함은 덜해요. 자료 찾기는 자 - P99

신감을 ‘셀프‘로 충전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유기고가로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만드는 간행물에 실리는 글을 쓸 때, 먼저 간행물의 기획자가 정한 주제를 받았습니다. "가야금 명인을 인터뷰해주세요." "연말정산에 대해 써보면 좋겠어요." "올해가 흰 소의 해니까 흰 소에 대해 써주세요." "요새 핫한 비건 식당이 많다는데, 망원동의 비건 식당 탐방기를 써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글 청탁을 받으면 글을 써서 납품했어요. 5년 정도 이런 일을 하다보니 잘 모르는 주제를 두고도 기한 내 글을 써내는 순발력이 생겼습니다. 습자지처럼 넓고 얇은 지식만 있어도 꾀부리지 않고 자료를 열심히찾으면 웬만한 글을 쓸 수 있겠다, 글이란 것은 어떤 사실을 토대로 필자가 재구성하는 일이다, 감각적인 글발을 발휘하는게 아니라 탄탄한 자료로 내실 있게 글을 써야 한다는 감을 잡았죠. - P100

등록 이주노동자, 즉 비자 기한이 만료되어 국내 체류자격을상실한 이주노동자의 자식을 말해요. 어머니, 아버지가 미등록 상태라서 아이도 미등록 이주아동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미등록 이주아동이 유엔인권아동권리협약에 의해서 고등학생 때까지는 국내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현실은외국인등록증이 없어서 학교 홈페이지 가입, 핸드폰 구입, 의료보험 가입, 다 불가능합니다. 교육받을 권리는 있고 살아갈권리는 없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불법체류 단속에 걸리면강제로 출국해야 합니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말을 쓰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아이들이랑 놀면서 한국 학교를 다녔는데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아이들. 성장기 내내 투명 인간으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성인이 되면 한국 밖으로 추방당하니까 삶이 불안정해요.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습니다. - P101

이 모든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의 존재가 드러나야 한다. 책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써내자‘라는 마음으로 집필을 결정했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집필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책 구매죠. 관련된 책을 검색해보고 열 권가량 구매했습니다. 그리고는 읽어야죠. 관련 단체에서 발간한 자료집도 전달받아서읽고요. 해당 이슈를 다룬 신문 기사도 스크랩해두고요.  - P101

자료 찾기 작업은 참 번거롭습니다. 체력과 시간을 많이 투여하니까요. 책 한 권을 읽기만 해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다읽은 책 내용을 일일이 정리하려면 손가락도 아픕니다. 그래도 이 과정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글쓰기의 필수 공정이라고생각하면서 중단 없이 해냅니다. 김밥을 만들 때 장을 보고 시금치에 묻은 흙을 털어 씻고, 당근을 깎아서 채치는 등의 손질을 안 할 수 없잖아요. 마찬가지예요.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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