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모든 잘못들을 치유하려면, 이는 매우 벅찬 과업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는 계급 지배‘만‘이 아니라 젠더와 성, 인종적·민족적·제국주의적 억압, 정치적 지배의 전반적인 불균형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창안해야 한다. 또한 경제·금융 위기‘만‘이 아니라 생태·사회-재생산·정치 위기를 낳는 경향들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위기 경향들의 제도적 기반을 해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1세기를 위한사회주의는 사전에 ‘정치‘ 영역이라고 정의된 범위 안에서 의사결정을 민주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관할범위를 광대하게 확장해야 한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을 구성하 - P277

는 바로 그 정의定義와 구획, 바로 그 틀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규정할 경우 21세기를 위한 사회주의의 재검토는 매우 거대한 작업이 된다. 만약 그 작업을 완수한다면(엄청난 가정법이지만), 이는 사회적 투쟁을 통해 획득한 통찰이 강령적사고와 정치조직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키는 식으로, 운동가와이론가를 아우르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결합한 결과일 것이다. 이 과정에 기여하길 바라며 나는 짤막한 성찰의 세 가지 보따리를 풀어놓고 싶다. 그 목적은 앞의 논의들이 어떻게 사회주의 사상의 몇 가지 고전적인 기본 주제에 새로운 빛을 비추는지보여주려는 데 있다. - P278

첫 번째는 제도적 경계선들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 본 대로, 이 경계선들은 자본주의의 제도적 분리, 즉 생산과 재생산의 분리, 착취와 수탈의 분리,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분리,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의 분리에서 발생한다. 이 분리들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위기의 장소가 되고, 투쟁의 판돈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따라서 사회주의자에게는 사회 각 영역들이 내적으로 어떻게 조직돼 있는가라는 물음 못지않게, 이 영역들이 과연 서로 분리되면서 동시에 연결돼 있는가, 그렇다면 그 방식은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중요하다. 사회주의자는 경제라는 우물 안조직에만 일면적으로 집중하기보다는(자연, 가족, 국가에 대해서도 - P278

마찬가지다), 경제를 존립할 수 있게 하는 배경조건들(사회적 재생산, 비인간 자연, 자본화되지 않은 형태의 부, 공적 권력과 경제가 맺는관계를 사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모든제도화된 형태의 불의, 비합리성, 부자유를 극복하려 한다면, 생산과 재생산, 사회와 자연,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다시 상상해야만 한다.
요점은 사회주의자가 이 분할들을 단번에 청산하길 목표로삼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것‘의 구분을 폐지하려 한 소비에트의 재앙적인 시도야말로, 청산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경고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물려받은 제도적 경계선들을 다시상상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최소한 우리의 목표는 이 경계선들을 다시 그음으로써, 자본주의가 ‘경제적‘인 것과 관련지은 긴급한 사안들을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 P279

마지막으로, 21세기를 위한 사회주의는 제도 설계 과정을 민주화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 영역들의 설계와 범위를 결정하는일을 정치적 문제로 만든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가우리를 위해 우리 등 뒤에서 결정해온 것을 이제는 우리가 집단적인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말하자면 법률 이론가들이 ‘영역 재설정redomaining‘이라 부르는 것, 즉 사회의 무대들을 구획하고 각 무대 안에 무엇을 포함시킬지 결정하는 경계선의 재설정에 우리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 이 과정은 ‘메타정치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정치 공간(일차적 정치)을 민주적으로 구성하는, ‘영역 재설정‘의 정치적 과정(이차적 정치)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어떤 사안을 정치적인 문제로 다룰 - P280

것인지, 어떤 정치적 무대에서 다룰 것인지를 스스로 정치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민주적이려면, 사회주의의 영역 재설정은정의로워야 한다. 이것의 의미 중 몇 가지는 이미 분명하다. 첫째, 의사결정은 적절히 포괄적이어야 하다. 즉 숙고하는 모든사안에 대해, 그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지배를 받는 모든 이들이의사결정에 참여할 자격을 지녀야 한다. 더하여, 참여의 조건이 평등해야 한다. 즉 비록 민주주의 안에서 개인 간에 어떤 구조적 우열이 계속 존재하더라도 참여의 권리와 기회는 동등해야 한다. - P281

그러나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지침이 되어야 할, 익숙하지 않은 생각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이것을 내는 만큼 받는pay as yougo‘ 원칙이라 칭하겠다. 온갖 형태의 무임승차와 이른바 원시 축적을 피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참으로 냉혹하게 망쳐버린 저 모든 생산의 전제조건들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사회주의 사회는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서 소모하는 모든 부를 보충하거나 수선 혹은 대체하는 과업을떠맡아야 한다.
첫째로, 사회주의 사회는 상품을 생산하는 활동뿐 아니라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사람들을 유지시켜주는 돌봄 활동 등)도 보충해야 한다. 더하여, ‘바깥에서‘ 즉 비인간 자연뿐 아니라 주변 - P281

부 민중과 사회로부터 취하는 모든 부를 대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다른 필요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기댈 언덕이 되는 정치적 역량과 공공재를 보충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유인책을 주며장려하는 동시에 책임을 회피하는 자본주의식 무임승차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단서 조항은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병인 세대 간 불의를 극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를 준수함으로써만 21세기를 위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다양한 위기 경향과 비합리성을 해체할 수 있다. - P282

잉여는 시간으로도 사고될 수 있다. 즉, 잉여는 우리의 필요를 충족하고 우리가 소모한 것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활동 이후에도 남는 시간, 그러니까 자유시간이 될 수도 있었던 시간이라볼 수 있다. 자유시간을 향한 기대는 마르크스를 비롯한 사회주의적 자유의 모든 고전적 내용에서 중심축이었다. 하지만 미래사회주의의 초기 단계에서 자유시간이 엄습할 가능성은 그리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서 물려받을 엄청난 부도어음에 있다. 자본주의가 생산성을 자랑하며으스대기는 하지만, 그리고 마르크스도 이를 잉여를 생산하는실질적인 엔진으로 간주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런 주장을 의심한다. - P283

즉, 기층에도 최상층에도 시장은 없다. 그러나 그 중간은 그럼어떨까? 사회주의자는 중간층을 다양한 가능성의 혼합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상상해야 한다. 시장이 협동조합, 커먼즈, 자주적결사체, 자주관리 프로젝트와 공존하며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다. 시장에 대한 많은 전통적 사회주의의 반대는 내가 여기에서 구상하는 맥락에서는 해소되거나 완화될 것이다. 시장의 작동이 사회적 잉여에 대한 사적 전유와 자본 축적의 역학에 의해 왜곡되지도, 이런 역학에 흡수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최상층과 기층이 사회화·탈상품화된다면, 중간층에서 시장이 맡는 기능과 역할도 변형될 것이다.  - P286

그 장점 중 하나는 통상적 사회주의관의 경제주의를 극복할가능성이다. 또 다른 장점은 전통적 노동운동의 중심 주제를 넘어선 광범위한 당면 쟁점들, 즉 사회적 재생산, 구조적 인종주의, 제국주의, 탈민주주의화, 지구온난화 같은 쟁점에 대해 사회주의가 시의성을 지님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세번째 장점은 제도적 경계선들, 사회적 잉여, 시장의 역할 같은 사회주의 사상의 몇 가지 고전적 기본 주제들에 새로운 빛을 비출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더없이 중요한 사실을드러냈길 바란다. 그것은, 21세기에도 사회주의 프로젝트는 추구할 값어치가 있다는 것, ‘사회주의‘는 단순한 현학적 전문용어 - P287

나 역사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지구를 파괴하면서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사람답게 살 기회를 좌절시키는 시스템에 대한 진정한 대안의 이름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 P288

대식세포 Macrophage, 명사.
현재는 주로 면역학에서 사용된다. 그리스어의 pakpós (makrós, ‘거대한‘)와 paysiv(phagein, ‘먹다‘)에서 유래했으며, 글자 그대로는 ‘대식가‘라는 뜻.


이 책의 대부분은 코비드-19가 발생하기 전에 쓰였다. 확장된 자본주의관을 발전시키고 있던 팬데믹 전 몇 년 동안, 나는공식 경제에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감춰진 장소‘들을 최종 정리하는 데 전념했다. 그 결과 여러분이 이 책에서 마주하는 것처럼, 자본이 반드시 필요로 하지만 책임은 지지않는 필수조건들, 즉 인종화된 수탈, 사회적 재생산, 지구 생태계, 정치적 권력 중 하나에 각각 초점을 맞추는 여러 장들이 집필됐다.
각 장마다 나는, 자신을 존립할 수 있게 해주는 바로 그 토대 - P291

를 놓고 구조적으로 기꺼이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려 하는 사회 질서가 지닌, 모순적이고 위기 친화적인 성격을 드러내려고노력했다. 즉 이 사회 질서는 돌봄을 폭식하고, 자연을 탐식하며,
공적 권력의 내장을 적출하고, 인종화된 인구집단의 부를 먹어치운다. 또한 각 장마다 나는 먹이 떼를 향해 달려드는 이들 포식자 무리 중 어느 것도 다른 것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빠져든, 온 세상을태워버리는 위기 속에서 모두는 한데 뒤엉킨다. - P292

코비드-19의 발생은 이 얽힘을 증명하는 교과서와도 같은 사례를 제공한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4월 현재, 팬데믹은 식인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이 수렴하는 지점이 되고 있다.
즉 자연, 돌봄 활동, 정치적 역량, 주변부 민중을 둘러싼 제살깎아먹기가 죽음을 부르는 난장판으로 융합한다. 그야말로 자본주의 기능 장애의 광란의 파티인 코비드-19는 이 사회 시스템을폐지해야 한다는 요청에서 단번에 모든 의심을 벗겨버린다.
이유를 알고 싶다면, 자연을 생각해보자. 인간이 Sars-CoV-2[사스-코로나바이러스-2]"에 노출된 것은 자본이, 자신을(그리고우리를!) 존립할 수 있게 해주는 바로 그 기둥을 놓고 제 살을 깎아먹은 것에 다름 아니다. 코비드-19의 원인이 되는 코로나바이 - P292

러스는 오랫동안 외딴 동굴의 박쥐들에게 머물고 있다가, 2019년에 어쩌면 천산갑일 수도 있지만 아직도 완전히 확인되지는않은 매개종을 거쳐 야생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됐다. 그러나박쥐가 이 매개종과 접촉하게 하고 그 매개종이 인간과 접촉하게 만든 원인은 이미 분명하다. 그것은 지구 온난화와 열대 삼림파괴가 결합한 결과다. 그리고 이것만큼 분명한 것은, 이 두 과정이 자본의 소산이며 이를 추동한 힘 역시 이윤을 향한 자본의채울 길 없는 갈증이라는 점이다. 두 과정이 한데 합쳐져 무수히많은 종의 서식지를 파헤쳤고, 대규모 이동을 유발했으며, 과거에는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곤란한 처지에 놓인유기체들이 처음으로 근접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들 사이에서병원체의 전에 없던 이동을 촉진했다. 이 역학은 이미 여러 바이러스성 전염병들을 촉발했으며, 이는 모두 박쥐로부터 ‘증폭 숙주‘를 거쳐 인간으로 전파됐다. 후천성 면역결핍증HIV 침팬지를 통해, 니파ipah‘는 돼지를 통해, 사스SARS는 사향고양이를통해, 메르스MERS는 낙타를 통해, 그리고 이제 코비드-19는 아마도 천산갑을 통해 인간에게 옮겨갔다. - P293

이런 질병은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이런 전염병은 자본을위해 자연을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 질서에서는 결코 우발적인부산물이 아니다. 이윤을 긁어모으는 데 전념하는 자본은 생물물리학적 부를 가능한 한 신속하고 저렴하게 전유하도록 유인책을 제시하면서도 수선이나 보충의 책임은 전혀지지 않기에,
열대 우림을 파괴하고 대기에 온실가스를 퍼붓는다. 자본은 어떤 시기든 축적에 광분하지만, 이제는 신자유주의화로 엄청나게 강력해진 탓에 치명적 역병이 해일처럼 쇄도하게 만들고 말았다. - P294

인간에 대한 코비드의 충격은 어떤 조건에서든 끔찍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충격은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구조적 모순에뿌리를 두고 신자유주의 시기에 절정에 이른 현 위기의 또 다른지류에 의해 측량할길 없이 악화됐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자본은 자연만이 아니라 공적 권력을 놓고도 제 살을 깎아먹었다.
공적 권력 역시 자본의 식단에서 빠질 수 없는 성분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발전의 모든 국면에서 자본은 이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우지만, 지난 40년 동안은 특히 광분하며 먹어댔다. 바로 여기에 난점이 있다. 금융화된 자본이 걸신들린 듯삼킨 정치적 역량은 바로 팬데믹을 완화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행운은 허용되지 않았다.
코비드가 발생하기 훨씬 전에 대다수 국가는 ‘시장‘의 요구에 - P294

굴복하여, 공중보건 인프라와 기초과학 연구를 포함한 사회적지출을 대폭 삭감했다. 쿠바 같은 주목할 만한 몇몇 예외가 있지대다수 국가는 구조 장비 (개인 보호장구, 인공호흡기, 주사기, 의약품, 검사키트) 비축분을 줄였고, 진단 역량(검사, 추적, 수학적 모델링,
유전자 염기순서 분석)을 빈껍데기로 만들었으며, 협력과 치료 역량(공공병원, 중환자실, 백신 제조·저장·유통설비)을 위축시켰다. - P295

게다가 공공 인프라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뒤 우리의 지배자들은 필수 보건 기능을 (이윤 동기를 따르는 공급자, 보험회사, 제약회사, 의약품 생산업체에 내맡겨버렸다. 공공성에 구속받지도않고 관심도 없는 이 기업들이 이제 전 세계의 보건 관련 노동력, 원자재, 기계, 생산 설비, 공급망, 지적재산권, 연구기관, 연구원의 알짜를 통제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개인적 차원으로나 집단적 차원으로나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들이다. 이기업들은 자기네 수익 흐름을 지키는 데만 전념하며, 인류를 위한 공동의 공적 조치를 가로막는 사적 불가항력을 구축한다. 그결과는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놀랍지는 않다. 죽느냐 사느냐의문제를 ‘가치 법칙‘에 종속시키는 사회 시스템은 애초부터 구조적으로, 이루 셀 수 없는 사람들을 코비드-19에 희생시키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미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공적시스템의 붕괴는 사회적 재생산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구조적 - P295

모순과 수렴한다. 항상 자본의 소비 목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돌봄 활동은 최근 몇 년 동안 게걸스러운 폭식의 대상이됐다. 공적 돌봄 인프라를 처분해버린 바로 그 체제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임금을 삭감함으로써 각 가정당 유급 노동시간을늘리도록 강요했는데, 1차 보호자 primary caregiver 의 경우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는 돌봄 활동을 가족과 공동체에 떠넘기면서도 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빨아먹음으로써, 사회적 재생산을 불안정에 빠뜨리는 자본주의의 내적 경향을 극심한 돌봄 붕괴로까지 비화시켰다. - P296

코비드의 출현은 위기의 이러한 지류 역시 강화했으며, 새로운 돌봄 노고를 가족과 공동체에 특히 여전히 무급 돌봄 활동의핵심을 맡는 여성에게 떠넘겼다. 록다운 상황에서 아동 돌봄과학교 교육이 가정으로 장소를 옮기는 바람에 부모가 부담을 떠안게 됐고, 설상가상으로 이런 일을 해야 할 공간은 이런 목적에는 맞지 않는 제한된 집 안이었다. 많은 피고용 여성들이 아이들과 여타 친척을 돌보기 위해 결국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또 다른 많은 여성들이 고용주에 의해 해고됐다. 두 집단 모두 노동현장에 복귀할 경우 전보다 더 낮은 지위와 급여에 직면한다. 제 - P296

3의 집단은 집 안에 꽁꽁 갇힌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돌봄 활동을 수행하면서도 재택 원격 근무를 하며 일자리를 유지하는 특전을 누렸지만, 전보다 훨씬 더 정신없이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만 했다. 그리고 특정 젠더로 엄격하게 한정되지 않는 제4의 집단은 ‘필수노동자‘라는 영예를 떠안았지만, 박봉을 받고 일회용품 취급을 당했으며, 다른 이들이 자가격리할 수 있도록 물품을생산하고 유통하기 위해 감염 위험과 가족한테 전염시킬 수 있다는 공포를 매일 감내해야 했다. 이 모든 경우에, 이제 팬데믹으로 더욱 증폭된 사회적 재생산 활동은 (자본주의 역사의 모든 국면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주로 여성의 몫으로 남았다. 그러나 어떤 여성이 결국 위 네 집단 중 어디에 속하게 될지는 계급과 피부색에달려 있다. - P297

무엇보다도 구조적 인종주의는 자본주의 시스템 발전의 모든 국면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좌익의 정통 교리와는 달리, 자본 축적은 이중으로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의 착취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과 법적으로 유효한 권리를 빼앗긴 종속적 인구집단의 수탈을 통해서도전개된다. 착취와 수탈의 이러한 구분은 전 지구적인 피부색의경계선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내장된 특징인 인종적-제국주의적 약탈은 현 위기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있다.
지구적 차원에서는 대규모 생태 파괴의 지리학에 피부색을 - P297

덧칠하는데, 자본은 주로 인종화된 인구집단에게서 토지, 에너지, 광물자원을 가샘으로써 값싼 자연‘을 향한 갈증을 해소한다. 자기방어 수단을 빼앗긴 채 정복, 노예화, 인종 학살, 자산 박탈에 휘둘리는 이들 인구집단은 전 지구적 환경부담에서 터무니없이 많은 몫을 짊어진다. 그들은 자본주의 중심부에 비해 과도하게 독성 폐기물 투기와 ‘자연재해‘, 지구 온난화의 다양한 치명적 충격에 노출된 상태이며, 이제는 코비드 예방접종과 치료를 기다리는 줄에서도 맨 뒤에 서야 하는 신세다. - P298

게다가 피부색은 계급과 깊숙이 얽혀 있다. 이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현 국면에서는 특히나 심하다. ‘필수노동자‘ 범주가 보여주듯이, 실제로 둘은 분리가 불가능하다. 의료 전문가들을 논외로 한다면, 이 명칭은 떠돌이 농장 노동자, 이주민도축· 정육 노동자, 아마존사 창고 관리 노동자, UPS 차량 운전사, 노인요양원 조무사,병원청소부,
슈퍼마켓 진열대·계산대 담당자, 식료품과 포장 음식을 배달하는 긱-노동자를 아우른다. 코비드 시기에 특히 위험천만한 이 일자리들은 대개 저임금에다 노동조합도 없고 불안정하며 수당과노동보호 규정이 전무하다. 이 일자리들은 기분 나쁜 감독과 통제를 받으며, 승진과 숙련 획득의 전망이나 자율성 따위는 눈곱만큼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압도적으로 여성과 유색인으로채워져 있다. - P299

은 더 이상 백인 남성 광부, 공장 직공, 건설 노동자로 전형화될수 없으며, 이제 그 전형은 돌봄 노동자, 긱- 노동자,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다. (어쨌든 급여를 받을 경우에는 재생산 비용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는 이 현대 노동계급은 착취를 당하면서 동시에 수탈도 당한다. 코비드는 이 추악한 비밀까지 폭로했다. 팬데믹은이들 노동계급 업무의 ‘필수적‘ 성격과 이에 대한 자본의 체계적인 저평가를 대비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커다란결점을 입증했다. 노동력 시장이 일의 진짜 값어치를 정확히 계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 P300

즉, 전반적으로 코비드는 말 그대로 ‘자본주의의 비합리성과불의‘의 광란의 파티다.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내적 결함을 그한계점까지 돌이킬 수 없이 증대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든 ‘감춰진 장소‘들에 날카로운 빛줄기를 드리운다. 이 감춰진 장소들을 그림자에서 끌어내 햇빛에 노출시킴으로써 팬데믹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들을 만인의 눈앞에 펼쳐보인다. 그 모순들이란, 자연을 놓고 제살 깎아먹기를 벌여 지구를 불지옥일보 직전까지 내모는 자본의 충동,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진정으로 필수적인 활동에서 역량을 빼가는 자본의 충동, 자본주의 시스템이 발생시키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지경까지 공적 권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리는 자본의 충동, 인종화된 대중의건강과 점점 줄어들기만 하는 부를 먹어 치우는 자본의 충동, 노 - P300

동계급을 착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탈까지 하는 자본의 충동이다.
여기까지가 사회이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의 최대치다. 그러나 이제는 더 어려운 문제와 마주해야 한다. 이 교훈을사회적 실천 속에서 실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어떻게 이 야수를 굶주리게 만들지, 어떻게 식인 자본주의를 최종종식시킬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 P301

국제적으로 낸시 프레이저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첫번째 계기는 현실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신자유주의가 확고한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1990년대에 착수한 ‘정의‘론 작업이었다. 프레이저는 정의에 ‘분배‘와 ‘인정‘이라는 두 가지 차원이 공존한다는 이차원적 정의관을 제기했고,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입장을 끈질기게 발전시켰다. 프레이저는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존 롤스식 정의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197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한 여성운동, 흑인운동, 성소수자운동 등이 제기하는 또 다른 정의관, 즉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중심에 둔 정의관을 적극 수용했다. 하지만 오로지 인정에만 바탕을 두고 분배 중심 정의관을 폐기하려는 시도에도 한계가 있다고 보았고, 그래서 분배와 인정 모두를 정의의 두 축으로 포섭하고 둘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중심에 두는 정의관을 제시했다.  - P303

정의관은 분배, 인정에 더해 ‘대표‘의 차원을 정의의 또 다른 축으로 삼는 삼차원적 정의관으로 재구성됐다. 분배와 인정의 측면에서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적 대표의 측면에서 만인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프레이저는 이러한 정치의 무대가 과거와 달리 국민국가에 한정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구화 시대에 정치가 제 역할을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적인 공론장이마련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구화 시대의 정의: 정치적 공간에대한 새로운 상상》(김원식 옮김, 그린비, 2010)이 이러한 정의론 갱신 작업을 결산한 저작이다. - P304

경제 위기, 극우 포퓰리즘의 창궐, 기후 급변 등으로 어지러웠던 2010년대에 프레이저는 이제까지 벌인 이론 작업의 탄탄한 토대 위에서 다른 어떤 사회이론가보다 더 맹렬히 현실에 개입했고,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삼차원적 정의관으로 무장한 프레이저는 신자유주의전성기에 정체성 정치만 강조하며 분배 요구를 등한시한(이를테면 ‘인정‘ 편향 사회운동들을 비판했고, 신자유주의가 쇠퇴한 뒤에 좌파가 아니라 극우 포퓰리즘이 상당수 대중에게 대안으로선택받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통렬히 지적했다. 프레이저는 특히 페미니즘의 대중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판적 지지‘ 식의 낡은 틀에 갇혀 있는 여성운동을 향해 자기 성찰과 노선 전환을 촉구했다. - P304

여성운동만이 아니었다. 프레이저는 "낡은 것은 무너지는데도 새것은 나타나지 않는"(안토니오 그람시) 궐위기가 하루빨리종식되려면 무엇보다도 사회운동과 좌파정치 전반이 환골탈태해야 함을 역설했다. 2020년 미국 대선 직전에 펴낸 팸플릿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전망》(김성준 옮김, 책세상, 2021)에서 프레이저는 민주당 주류의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도널드 트럼프의 극우포퓰리즘이 발호하도록 만든 원흉이기에 트럼프주의를 극복할대안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트럼프주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과 상당수 중간계급의 동맹에 바탕을 둔 ‘진보적 포퓰리즘‘뿐이다. - P305

바로 이 책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에서 드디어 프레이저의 새로운 자본주의관은 전모를 드러낸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 시스템이 아니며, 자본임금노동 관계만도 아니다. 비-경제 영역이라 치부되는 사회적 재생산, 인간과 비인간 자연 간 관계, 인종화된 집단에 대한 수탈, 공적 권력의 작동 등이 없이는 착취도, 축적도, 성장도 이뤄질 수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이러한 배경조건들까지 포함한 특정한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이해되어야 한다. 자본주의관이 이렇게바뀌면, 당연히 시스템의 모순과 위기 역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변형해왔고 앞으로 이를 극복할 가능성을 지닌 동력에 관해서도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계급투쟁뿐만 아니라 프레이저가 ‘경계투쟁‘이라 부른 투쟁들, - P306

들, 즉 사회적 재생산, 인간과 비인간 자연의 관계, 착취와 결합된 수탈, 정치 등의 영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투쟁 역시 중요해진다. 이 투쟁들이 한데 이어지지 않고서는 복합적 사회 질서인자본주의를 변형하거나 극복할 수 없다.
이것은 이 책의 핵심 주장에 관한 지극히 빈약한 요약이지만,
굳이 여기에서 본문 내용을 다시 장황하게 정리하지는 않겠다.
이 책 곳곳에서 프레이저가 워낙 상세하게 반복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서문"을 읽으면 낯선 개념이나 비유, 용어들 탓에 어렵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후의 장들을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저자의 논의가 익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만큼 이 책에서 노학자는 열정을 남김없이 쏟아부으며 자신의 학문과 실천 역정을 총결산한다. - P307

그렇기에 여기에서는, 어쭙잖은 해설을 덧붙이기보다 프레이저의 자본주의관이 사상사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는지만 간략히 짚겠다. 돌이켜보면, 고전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에도 자본- 임금노동 관계가 그 바깥에서 작동하는 전혀 다른 사회관계와 함께하지 않고는 존립할 수 없음을 명확히 지적한 예외적인인물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로자 룩셈부르크다. 룩셈부르크는<자본의 축적>(황선길 옮김, 지만지, 2013)에서, 유럽 세계 바깥의식민지 인민에 대한 수탈 없이는 유럽 안에서 착취를 통해 자본축적이 계속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발상은 <좌파의 길: 식인 - P307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에서 프레이저가 발전시키는 수탈론의원형이다.
그러나 룩셈부르크에서 프레이저에 이르는 거의 한 세기에걸친 세월 동안 룩셈부르크의 명제는 자본주의 중심부의 좌파사이에서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발상이 확대될 경우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만으로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를 설명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주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분명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자본임금노동 관계에 포섭되지 않는 사회관계가 오히려 자본-임금노동 관계의 전제조건이 되며 자본주의 전체의 필수적이고구성적인 요소라는 발상은, 프레이저가 지적하는 것처럼, 흑인마르크스주의의 비판적 인종 연구나 제국주의 및 그 후속 세계체제에 대한 연구 등에서만 계승·발전되었다. - P308

이러한 상황에서 돋보인 또 다른 예외적 사상가가 있었다. 프레이저가 이 책에서 직접 거명하는 미국의 생태사회주의자 제임스 오코너(1930-2017)다. 오코너는 생태주의의 문제의식이 아직 사람들에게 낯설었던 1970년대부터 마르크스주의의 생태적전환을 고민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저널 《자본주의, 자연, 사회주의Capitalism, Nature, Socialism》를 창간해 생태사회주의 사상개척의 국제 실험실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오코너는 역사유물론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주장을 내놓았다. 생산력과 생산관 - P308

계의 모순만으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설명할 수 없으며, 또 다른 기본 모순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코너는 그것이 생산력/생산관계와 생산조건의 모순이라 주장했다. 생산을 무한히 확장하며 축적을 지속하려는 자본과 그 생산의 조건이 되는유한한 비인간 자연이 서로 모순을 빚으며 자본주의의 위기를낳는다는 것이었다.
역사유물론 자체를 다시 쓰려는 오코너의 시도는 이후 존 벨러미 포스터 같은 후속세대 생태사회주의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자본임금노동 관계의 외부에서 생태문제의 원인을찾으려 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착취와 생태문제 사이의 유기적연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게 비판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오코너의 기본 구상을 높이 평가하면서, 생태 문제가 자본주의 ‘경제‘와 그 외부(그러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적 일부인)의 경계선에서 발생한다는 이 책의 핵심 주장을 통해 오코너의 구상을 발전시킨다. - P309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 무어와 파텔은 이윤의 기반이되는 상품가격 이면에는 자본주의가 ‘저렴한 것‘으로 취급하며착취/수탈하는 일곱 가지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노동뿐만 아니라 자연, 돈(화폐),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이다. 프레이저가 정리한 자본주의 경제 외부의 네 가지 주요 영역과 깔끔하게 들어맞지는 않지만, 그 함의만은 비슷하다. 무어·파텔과 프레이저 모두,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자본이 거두는 막대한 이윤의원천은 자본임금노동관계만이 아니며 돌봄 활동, 비인간 자연,
남반구 등에 대한 수탈이 그만큼 필수불가결하고 구성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런 인식의 전환은 현재 인류 문명을 격동시키는 자본주의의 위기와 모순을 좀 더 복합적이고 역동적으로바라보게 할 뿐 아니라, 중심부의 자본-임금노동 관계만을 특권화했던 좌파의 전통적 시각 또한 뒤집는다. - P310

프레이저의 새로운 자본주의관이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의 교착 상태를 돌파할 대항헤게모니 블록을 구성하려는 필사적인 집단적 노력에 아주 중대한 기여를 한다는 점만은 일단 인정해야 한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려는 이들은 여전히 현실의 노동운동을 자본주의를 극복할 계급투쟁과 동일시하며 특권화하고, 오직 이를 보조하는 요소로서 다른 사회운동들을 바라본다. 반면에 이런 정통적 사고를 뛰어넘으려 한 선구적 이론가인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는 현실에 다양한 사회운동이 존재함을 단순히 전제하고는, 구체적인 정세 속에서 다분히 우발적인 담론적실천을 통해 이들 사회운동들을 대항헤게모니 블록으로 모을수 있다는 전망을 내세운다. 그러나 왜 현실에 하필이면 특정한복수의 사회운동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해당 정세속에서 왜 어떤 담론적 실천이 다른 시도에 비해 더 커다란 효과를 내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관 자체를 교정하기보다는 이를 우회한 채 ‘자본주의 경제‘와 구분되는 ‘민주주의 정치‘라는 층위를 설정하고 이 층위안에서 사회운동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 탓일 것이다. - P311

또한 프레이저는 대항헤게모니 블록의 기반이 될 ‘새로운 상식‘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에 관해서도 우리의 눈을 열어준다.
그것은 생산 현장의 계급투쟁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그 ‘외부‘에서 지식인이 생산해 주입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에 따라 경계투쟁들이 활발해지면, 사회적 재생산, 인간과 비인간 자연의 관계, 수탈 대상이 되는 인구집단, 공적 권력 등의 영역을 각기 지배하는 다양한 가치와 규범이 새로운 상식의 재료(새 상식 자체는 아니지만)로 변형된다. 대항헤게모니 전략을 제안하는 최근의 여러 저작들, 가령 무폐의<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좌파 포퓰리즘과 정동의 힘》(이승원 옮김, 문학세계사, 2022)이나 파올로 제르바우도의 《거대한 반격: 포퓰리즘과 팬데믹 이후의 정치》 (남상백 옮김, 다른백년, 2022)가 제안하는 전략 방향은 이러한 프레이저의 자본주의 분석과결합할 때 더욱 명쾌해지고 실천적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P312

옮긴이가 덧붙이는 군말은 이쯤에서 그치겠다. 이 책의 본문에 담긴 저자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옮긴이의 부족한 능력 탓에 이러한 본문 내용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다. 특히 이 책에서 프레이저가 새로고안해 사용하는 개념이나 비유를 과연 우리말로 적절하게 옮겼는지 고민이 남는다. 그래서 중요한 번역마다 옮긴이 주를각주 형태로 달아, 혹시 있을지도 모를 오해나 혼동을 줄이려 했다. 그럼에도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질정과 비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부디 이 책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세상을 위해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과 격려의 원천이 되길바란다. - P313

나를 포함, 흐느끼며 일상을 견디는 이들에게 희망의 목소리가 당도했다. 한계 없는 자본주의의 위장이 터지기 직전인 당대, 이 책은 기존의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포괄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인간이라는 시한폭탄을 품고 붕괴가 임박한 지구를 알고 싶다면, 인문학 용어가 정확히 번역된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권한다. 적실한 자본주의입문서를 구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 정희진 여성학 박사,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낸시 프레이저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스트 전통에 입각한전설적인 급진 철학자이지만 흑인, 생태, 이민자, 성적 자유 운동에대한 그의 진정한 포용과 심오한 이해는 그녀를 당대 지식계에서 독보적인 인물로 만든다! 이 책은 암울한 우리 시대에 고전의 반열에오를 단 하나의 보배다.
ㅡ코넬 웨스트Cornel West, Race Matters) 저자

21세기에 걸맞은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론에 대한 자신의 수많은선구적인 공헌을 훌륭하게 종합한 아름다운 글!
-볼프강 슈트렉Wolfgang Streeck, (How Will Capitalism End?> 저자

이 책은 자신이 번성하는 바로 그 땅, 노동력, 자연세계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괴물을 소환한다. 저자는 특유의 명확하고 독창적인산문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변천, 서로 얽힌 역학을 풀어냄으로써 겉보기에 이질적인 위기와 사회적 폭력 사이의 상호관계를 드러낸다. 그를 통해 우리는 반인종주의적, 생태사회적 재생산 비평의강력한 잠재력을 보게 된다. 그리고 왜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작업장과 거리, 숲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반자본주의 투쟁을 구축하는 사회주의 좌파에 달려 있는지를 알게 된다.
ㅡ슈퍼거슨Sue Ferguson, Women and Work》 저자

저자는 우리 시대의 가장 우아한 자본주의 이론을 내놓았고, 이제 우리는 그 체제를 심판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협소한 경제적 의미에서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완전한 잡식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자본주의,
주변 모두를 집어삼키는 짓을 멈출 수 없는 체제이자 사람과 자연의생명을 파괴하는 체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위기의 시대를 구할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다.
ㅡ안드레아스 말씀Andreas Malm, 《How to Blow Up a Pipeline》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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