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탈성장 운동가들은 자본주의에서 성장하지 않을수 없는 것과, 성장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을 뒤섞는 통에 정치적 명확성을 해치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가치‘이며, 후자는지구 전역에서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인간 필요의 엄청난 부분을 만족시키는 데 필요한 재화, 관계, 활동이다.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인 생태정치는 첫째로 완고한 성장의 지상명령을 해체해야 하지만, 둘째로는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인가의 문제를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면서 민주적 숙고와 사회적 계획을통해 결정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라이프 스타일 환경주의나커머닝의 미래 예시적 실험 같은 탈성장의 지향들은 자본주의권력과 대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 P212

게다가 종합적으로 보면, 이 운동들의 진솔한 통찰들을 다 합한다 해도 새로운 생태정치적 상식이 만들어지지는 못한다. 또한, 적어도 원리상으로는 지구를 구할 수 있을 생태-사회 변혁을위한 대항헤게모니 프로젝트로 수렴하지도 못한다. 물론 환경을 넘어서는 핵심 요소들은 이미 존재한다. 노동권,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반제국주의, 계급의식, 친민주주의, 반소비자주의, 반추출주의 등등. 그러나 이것들은 아직은 현 위기의 구조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뿌리에 대한 확고한 진단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갖추지 못한 요소는, (생태적인 것이든 - P212

다른 것이든) 현재 우리의 모든 고통의 뿌리를 동일한 사회적 시스템에서 찾아내고 이를 통해 각 고통을 서로 연결 짓는 선명하고 확신에 찬 시각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 시스템에 이름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필수 배경조건들(비인간 자연, 공적 권력, 수탈, 사회적 재생산)을 포함하도록 확대 인식된 자본주의 사회가 그것이다.
이 배경조건들은 모두 자본의 제살 깎아먹기에 필연적으로 종속되어 있으며, 현재 산산이 부서지며 흔들리는 중이다. 그러므로이 시스템에 이름을 붙이고 폭넓게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완성해야 할 대항헤게모니 퍼즐의 또 다른 한 조각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조각은 우리가 다른 퍼즐 조각들을 맞춰보고 그것들 사이의 긴장과 잠재적 시너지를 밝혀내며 다들 어디에서 비롯됐고 다 함께 어디로 가게 될지 해명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반자본주의‘라는 이 퍼즐 조각은 환경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 지향과 비판 세력을 제시한다. 비판 세력을 통해 생태정치는 더 큰세계에 개방되며, 정치적 지향을 통해서는 주적을 집중 공략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 P213

또한 각 흐름이 그만의 아킬레스건, 즉 자본과 대결하길 꺼리는 성향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압박한다. 그런 아킬레스건은 (환상적인) 연결에서 벗어나기de-linking 로 나타나기도하고, (편향적인) 계급 타협이나 극단적 취약성의 비극적인) 평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퍼즐의 반자본주의 조각은 공동의 적을 지목함으로써 탈성장, 환경정의, 그린뉴딜 각각의 지지자들이 정확한 방향에 관한 동의를 바탕으로 함께 여행에 나설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비록 지금은 그 정확한 방향을 상상하기힘들지라도 말이다.
물론 결국 어느 방향에 닿게 될지, 혹은 지구가 계속 가열되다가 마침내 끓어오르지 않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후자의 운명을 피할 최대의 희망 역시 ‘환경을 넘어서는 반자본주의적‘ 대항헤게모니 블록을 건설하는 데 있다. 이 블록이 정확히어떤 목표점으로 우리를 인도해야 할지는 아직 불분명한 점이있다. 그러나 만약 그 목표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나는 ‘생태사회주의‘를 선택하겠다. - P214

우리는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비해 잘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것은, 이 위기가 정치영역에만 원인이 있는 고립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시되는 상식과는 반대로 민주주의의 위기는 예의 [시민다움]civility"를 회복하거나, 정당 간 화해를 다지거부족주의에 반대하거나,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진실을 지향하는 담론을 옹호한다고 하여 극복되지는 못한다. 또한 최근의 민주주의 이론과도 상반되게 이 위기는 ‘민주적 에토스‘를 강화하 - P219

거나, ‘헌법의 규정력‘을 재활성화하거나, ‘경합agonism‘이나 ‘민주적 반추democratic iterations‘를 강화하고 장려하는 식으로정치 영역을 개혁함으로써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제안들은 내가 ‘정치주의‘라 부르는 오류의 포로가 된다. 경제주의와비슷하게 정치주의적 사고는 정치사회 바깥에도 인과적인 힘이있음을 간과한다. 정치 질서가 다른 질서의 영향 없이 스스로 결정된다고 여기는 탓에, 정치를 변질시키는 더 광범한 사회적 모체를 문제 삼지 못한다.
실수하지 말자.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는 사회라는 모체에 두발을 굳게 디디고 있다. 앞 장들에서 분석한 여러 곤경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위기는 광범한 위기 복합체의 한 지류이며, 다른 위기들과 떼어놓고는 이해될 수 없다. - P220

중상주의적 자본주의는 주변부의 숱한 노예 봉기와 식민 본국내 민주주의 혁명으로 주기적으로 들끓었고, 결국은 파멸다. 그 뒤를 이은 자유방임주의는 한 세기 동안은 튼튼히 버티다가 50년간 정치 대란을 겪었는데, 이 대란은 다양한 사회주의 혁명과 파시스트 쿠데타, 두차례의 세계대전, 셀 수 없는 반식민주의 봉기로 점철됐다. 이 국면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 시기와 전후시기를 거쳐 국가관리 자본주의가 들어서며 비로소 끝이 났다.
국가관리주의 체제에서도 정치 위기는 낯설지 않았다. 이 체제는 반식민주의 반란, 전 지구적 신좌파 봉기, 장기화된 냉전, 핵무기 경쟁의 거대한 물결을 헤쳐나가다 결국 지구화·금융화의현 자본주의 체제를 연 신자유주의의 체제 전복에 무릎을 꿇고말았다. - P223

이것이 이 장의 주된 전제다. 이 장에서 나는 우리 시대의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 중 일부로서, 현재 민주주의가처한 재앙을 짚을 것이다. 그러나 더 강력한 명제가 있다. 즉, 자본주의의 이러한 형태신자유주의]만이 아니라 그 모든 형태가 정치적 위기를 초래하는 모순을 장착하고 있다는 명제를 주장함으로써 이전 장들에서 전개한 입장을 이어가고자 한다. 이 책 앞부분에서 논의한 것처럼, 내가 ‘정치적‘ 모순이라 부를 이러한 모순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DNA 안에 새겨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예외 상태가 아니라, 이 모순이 자본주의의 금융화된 현 국면에서 취하는 형태다. - P224

상품 생산에 투입할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도꼭지‘이면서 동시에 상품 생산의 폐기물을 흡수해주는 ‘하수구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은 자신이 발생시키는 생태적 비용에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실상 자연이 저절로 그리고 무한히 스스로를 보충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에도 이 뱀은 자기꼬리를 먹는 습성을 보이면서, 자신이 의존하는 그 자연적 조건을 놓고 제살 깎아먹기를 자행한다. 사회-재생산과 관련된 경우든 자연과 관련된 경우든 영역 간 모순은 자본주의 위기의 여러유형 가운데에서도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는 위기를 초래하는성향의 토대가 된다. 그 위기란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재생산 위기이고, 어떤 경우에는 생태적 위기다. - P226

이제 나는 같은 논리를 현재 민주주의가 처한 고통에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서 ‘정치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의 정치적 곤경은 더는 고립된 문제가 아니며, 또 다른 영역 간 모순에 바탕을 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경우에는 자본축적의 지상명령과 자본 축적의 또 다른 의존 대상인 공적 권력의 유지 사이의 모순일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정당하고 효과적인공적 권력은 자본 축적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자본의 무한한 축적 충동은 자신이 의존하는 그 공적 권력을오랜 시간에 걸쳐 불안정에 빠뜨리는 경향이 있다. 이 모순이 현재 민주주의 위기의 근원이다. - P226

이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심급들이 강력히 융합됐던 이전의 사회 형태들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봉건 사회에서는 노동·토지·군사력에 대한 통제가 군주와 봉신으로 이뤄진 단일한 제도에귀속되었다. 반면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이 나뉘어 각기 저마다 독특한 매체와 작동 방식을 지닌 그만의 공간을 배정받는다.‘ 생산을 조직하는 권력은 사유화되어 자본으로 발전하며, 이는 기아와 결핍이라는 ‘자연적이고‘ ‘비정치적인‘ 제재 수단만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반면 축적의 외적조건을 제공하고 ‘비-경제적 질서를 통치하는 임무는 ‘정당한‘
국가폭력과 법률이라는 ‘정치적‘ 매체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주체, 즉 공적 권력의 몫이 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에서 경제적인 것은 비정치적이며, 정치적인 것은 비경제적이다. - P230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최선의 상태인 적이 별로 없으며, 자본주의가 순응시키려고 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종류든 흔들거리고 불안정해야 한다. 문제는 자본이 본성상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를 그렇게 만들려고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편으로자본주의는 공적 권력의 식객이 되어, 축적에 필수적인 법률 체제와 억압 기구, 인프라, 규제 기관을 마음껏 활용한다. 동시에이윤을 향한 갈망 탓에 자본가 계급의 일부 분파는 주기적으로공적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공적 권력이 시장에 비해 열등하다며 이를 약화시키려고 획책한다. 단기적 이익이 장기적생존을 압도하는 이런 경우에 자본은 또다시 스스로를 존립할수 있게 해주는 바로 그 정치적 조건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 - P231

이런 변동은 제1장에서 내가 ‘경계투쟁‘이라 부른 것의 결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시기 변화를 보여준다. 이를 전경에 놓고 강조하는 시각을 취할 경우, 우리는 앞장들에서 이미 식별했던 네 가지 역사적 축적 체제들의 정치적 대응물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중상주의적 자본주의의 초기 근대 체제, 자유주의 식민주의적 자본주의의 19세기 체제, 국가관리 자본주의의 20세기중반 체제, 자본주의가 지구화·금융화하는 현 체제의 각 경우마다 자본주의 경제의 정치적 조건은 국민적-영토적 수준에서든, 지정학적 수준에서든 서로 다른 제도적 형태를 띤다. 또한 각 경우마다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모순은 서로 다른 외양을 띠며, 위기현상의 각기 다른 조합을 통해 표현된다. 마지막으로, 각 체제에서 자본주의의 정치적 모순은 서로 다른 형태의 사회적 투쟁을 촉발한다. - P233

그러나 한편으로 국가는 농촌 인구를 (이중으로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트로 변화시킨 토지 수탈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 억압적 권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는 임금노동의 대규모 착취를 위한 계급적 전제조건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는 일단 화석 에너지와 결합되자 제조업의 거대한 이륙에, 그리고 이와 연동된 격렬한 계급갈등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일부 식민 본국에서는 전투적 노동운동과 그 동맹 세력이 계급 타협을밀어붙일 수 있었다. 다수 민족에 속한 일하는 남성들은 투표권과 정치적 시민권을 쟁취했고, 이와 동시에 작업장을 지배하고노동자를 착취할 권리가 자본가에게 있음을 사실상 수용했다.
이와 달리 주변부에서는 이러한 타협이 뒤따르지 않았다. 유럽식민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자제하는 듯한 가면도 벗어버린 채군대를 보내 반제국주의 반란을 분쇄했다.  - P235

이 모든 사실은 ‘자유방임 자본주의‘라는 표현에 의문을 품게 만들며, 그래서 나는 이를 ‘자유주의-식민주의적 자본주의‘라 부른다.
게다가 사실상 처음부터 이 체제는 경제적 불안정만이 아니라 정치적 불안정으로도 고통받았다. 민주화하던 중심부 나라들에서 정치적 평등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긴장관계에 있었고, 일부의 의식 속에서 정치적 권리의 확대는 주변부의 가혹한 예속과 불편하게 공존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체제를 좀먹은 것은,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진단했듯이, (제약받지않고 영토를 넘어서는 자유주의-식민주의적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의 추진력과, (제약받고 영토에 얽매인) 자본주의적 민주 정치의성격 사이의 모순이었다. - P236

따라서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이 경제/정치 형세배열이 만성적으로 위기에 짓눌린다는점을 강조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경제 측면에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주기적인 공황과 붕괴, 패닉으로 뒤숭숭하다. 정치측면에서 이는 격렬한 계급 갈등과 경계투쟁, 혁명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 모두는 국제적 금융 카오스, 반식민주의 반란, 제국주의 간 전쟁을 부채질하고, 역으로 국제적 격동이 국내의 격동을부채질한다. 20세기가 되면 이런 형태의 자본주의가 지닌 다양 - P236

한 모순들이 만성적인 전반적 위기로 전이돼, 마침내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새 체제의 안착을 통해 해소됐다.
이 새로운 국가관리 자본주의체제에서 중심부 국가들은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자국 영토 안에서 공적권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4년 미국의 패권 아래 수립된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자본 통제로 역량이 강화된 중심부 국가들은 인프라에 투자했고,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일부를 떠맡았으며, 완전고용에 근접한 상태)과 노동계급 소비주의를 촉진했다. 또 노동조합을 노사정 협상의 파트너로 받아들였으며, 경제 발전을 적극 지휘했고, ‘시장의 실패‘를 보완했으며, 자본 자체의 이익을 위해 자본을 전반적으로 훈육했다. 사적자본의 지속적인 축적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목표였던 이러한조치들은 정치의 관할범위를 넓히면서 동시에 정치를 유순하게길들였다. 즉, 잠재적인 혁명 집단이 지닌 시민권의 값어치를 높여주고 시스템에 지분을 갖게 해줌으로써 이들을 흡수했다. - P237

그 결과 수십 년 동안 안정이 지속됐는데, 여기에는 물론 일정한 비용이 따랐다. 다수 민족에 속한 자본주의 중심부의 산업노동자에게 ‘사회적 시민권‘을 제공한 제도배열은 그만큼 아름답지는 못한 몇몇 배경조건에 의존했다. 즉 가족임금을 통한 여성의 종속, 인종적·민족적 배제, 당시 제3세계라 불리던 곳에서꾸준히 벌어진 수탈이 그것이다. 제3세계 수탈은 식민지 해방이후에도 낡은 형태로든 새로운 형태로든 여러 수단을 통해 계속됐는데, 이는 신흥 독립국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발전을 지휘하며 시장을 통한 약탈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수 없도록 제약했다. 그 결과 정치적 시한폭탄이 설치됐고, 그 폭발은 마침내 이체제를 뒤엎을 다른 과정들과 한데 만나게 된다. - P238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경제/정치 관계를 다시 한 번 개조했다. 이 체제에서는 점점 더 지구화하는 경제의 중재자로서중앙은행과 글로벌 금융기관이 국가를 대체했다. 이제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 관계, 즉 노동과 자본, 시민과 국가, 중심부와주변부,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결정적인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의 가장 중대한 규칙들을 제정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중앙은행과 글로벌 금융기관이다. 그중에서도 채무자와 채권자의관계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 중심을 이루며, 모든 다른 사회관계들에 스며들어 있다. 오늘날 자본이 노동을 놓고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고, 국가를 훈육하며, 가치를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전하고, 사회와 자연의 부를 빨아들이는 일은 주로 ‘부채‘ 를 통해 이뤄진다. 부채가 국가, 지역, 공동체, 가계, 기업을 관통해 흐르기 때문에, 경제가 정치와 맺는 관계에서 극적인 변동이나타난다. - P239

결국 이 체제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사적 (대기업 권력이 공적 권력을 포로로 만들도록 도우며, 또한 국내에서 공적 권력을 식민화하고 사기업의 작동 방식을 본떠 공적 권력의 작동 방식을 짠다.
그 전반적인 결과는 모든 수준에 걸쳐 공적 권력을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라 밖에서는 독단적 명령 (‘시장‘, ‘신입헌주의‘의 요구)을 통해, 나라 안에서는 자본에 의한 흡수(대기업의 포로가 된 신세, 사유화, 신자유주의적 정치 합리성의 확산)를 통해, 어느 곳에서든 정치적 의제가 협소해진 상태다. 한때는 분명 민주적 정치 행위의 관할범위 안에 있다고 여기던 사안들이 이제는출입금지구역이라 선포된다. 그리고 ‘시장‘에, 즉 금융자본과 대기업 자본의 이익에 내맡겨진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 P243

예컨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겪는 긴급한 문제들이 기성 질서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 기성 질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 질서 안에서는 해결할 수없다고 직감해야만 그때에야 위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임계치에 도달한 대중이 집단행동을 통해 기성 질서를 변혁할 수 있고또 그래야만 한다고 결의할 때에만 객관적 곤경은 주체를 통해발설된다. 그때에야, 오로지 그때에야, 우리는 결단을 요구하는비상한 역사적 갈림길이라는 좀 더 거대한 의미에서 위기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다. 금융화된 자본주의의정치적 기능 장애는 더 이상 객관적이지만은 않으며, 서로 상관관계에 있는 주체적 요소와 함께한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대중이 기성 정치에서 이탈함에 따라, 옛날 같았으면 논평가들이 ‘즉자적 위기‘라고 말했을 것이 ‘대자對自적 위기‘가 됐다. 가장 극적인 단절은 2016년 글로벌 금융의 두 주요 요새에서 벌 - P246

어졌다. 유권자들이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줌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설계자들을 따끔하게 혼내준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그 전부터 이미 이곳저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상당수 대중이 금융화를 부채질하던 중도파 지배정당들을 버리고, 이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신진 포퓰리스트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많은 곳에서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글로벌 자본과 이민 ‘침략자들, 인종적 혹은 종교적 소수 집단에게서 조국을 ‘되찾겠다‘고 약속하며, 다수 민족에 속한 노동계급의 표를 끌어모았다. 좌익 포퓰리스트들은 비록 선거에서 승리한 사례는우익 포퓰리스트들보다 적지만(라틴아메리카와 남유럽은 제외), 시민사회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였다. 이들은 포괄적으로 정의된
‘99%‘ 혹은 ‘일하는 가정‘을 위하여, ‘억만장자 계급‘의 편인 ‘부패한 시스템에 맞서 싸운다고 외쳤다. - P247

가장 훌륭히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진 상태에서 정치적창의성의 범위가 확장됐고, 지금까지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대안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자본주의의 위기를 키우는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곤경들이 응집하는것‘만‘으로도 현재 헤게모니의 본격적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헤게모니 위기의 중심에 경제/정치의 현 경계선을 둘러싼 공공연한 논쟁이 있다. 공적 계획이 경쟁적 시장에 비해 엄청나게 열등하다는 생각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으며, 심각한 반발을 사고 있다. 기후변화와 코비드-19 팬데믹뿐 아니라 계급적불평등과 인종적 불의의 확산에 대응하는 가운데 새롭게 힘을얻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포퓰리스트들과 민주적 사회주의자들과 합세해 공적 권력을 복권시키려 한다. - P248

소득, 공중보건, 그리고 거주 가능한 지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사회주의자들과 급진 생태주의자들은 이에 동의하지않는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공개적으로 토론된다는 사실 자체가 신자유주의적 상식이 분쇄됐다는 증거다. 이제는 경제/정치의 경계선을 다시 그음으로써 경제를 다스리는 정치의 역량을강화하려고 하는, (비록 내부가 분열되어 있기는 해도) 상당수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존재한다. - P249

공적 권력 강화론은 코비드-19 팬데믹으로 더욱 힘을 얻었다.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자유지상주의 및 경제지상주의 광신도들의 갑작스러운 증가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바이러스는 마치 교과서처럼 공적 권력의 진가를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 공적 권력은 인프라를 유지하고 공급망을 책임지며, 마스크 착용·사회적 거리두기·자가격리를 의무화함으로써 전염의 상승곡선을 완화시켰다. 검사·추적·감염자 격리를 통해 전염속도를 늦추고, 백신과 치료법의 개발·재정지원·시험·승인·분배를 전담했다. 일선 노동자frontline workers"와 위험에 노출된집단을 보호하고, 소득을 지원하며 생활수준을 지탱하고, 돌봄제공과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조직했다. 게다가 이 모두를 부담 - P249

과 혜택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적 개입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필요사항 가운데 어느 것도 사적 부문을 통해서는 충족될 수 없음이 증명됐다. 그리고 극단적인 소득 격차가핵심 문제임이 명확히 드러났다. 감염률 완화와 인명 구제를 놓고 보면, 공적 권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광범하게 적극 배치하는 데 동의하는 정치문화를 지닌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공적 권력을 경시하고 그 활용을 제한하는)보다 훨씬 나은 성과를보였다.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합리적이라면, 신자유주의는이미 지나간 기억이 됐을 것이다. - P250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으며, 이 세상은 그 본성 자체가 비합리성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작금의위기가 신속하게 혹은 투쟁 없이 해결되리라 가정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금융·대기업 자본의 대변자들이 초국적이고 전 지구적인 수준에서 권력의 제도적 지렛대를 계속 꽉 움켜쥘 것이며,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인 규칙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길을 뚫으려는 민중의 노력을 가로막을 것이다.
게다가 일국 수준에서는 자본의 대리인들이 공공연한 저항에도 굴하지 않으며, 정치권력을 견지하거나 되찾기 위해 계속책략을 꾸밀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런 책략은 먹혀들 것이다. 현 체제에 맞서는 포퓰리스트 도전자들이 집권했다가 실망 - P250

감을 불러일으킬 때조차, 아니 바로 그때에야말로 기성 체제의대변자들은 지지 기반을 더욱 굳건히 다질 것이다.
이 마지막 시나리오는 2016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트럼프가 선거운동 중 외쳤던 친노동계급 정책을 저버리고, 친대기업 대안으로 돌아설 때 실제 상영됐다. 희생양을 만들어 때리기에 광분하면서 지지자들의 주의를 돌리려는 초인적인 노력을 했건만, 몇몇 주요 경합주에서는 2020년 트럼프에게 패배를안겨주기에 충분한 수의 지지자들이 돌아섰다. 승자는 하필이면진보적 신자유주의라는 이전 질서로 돌아가겠다고 맹세한 오바마의 전 러닝메이트 [조 바이든]였다. 트럼프주의를 초래한 핵심요인을 만들어낸, 그리고 앞으로도 트럼프주의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먹이를 대줄 체제가 바로 그 진보적 신자유주의인데도 말이다. - P251

그 결과가 해방과는 거리가 멀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신성하지 않은 동맹은 다수 대중의 생활 조건을 황폐하게 만듦으로써 우파가 힘을 얻을 토양을 만들어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페미니즘이나 반인종주의 등을 신자유주의와 결부시킴으로써, 마침내 댐이 무너졌을 때 인민대중이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나 반인종주의 등까지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반동적 우익 포퓰리즘이이 상황의 주된 수혜자가 된 이유다. 또한 이것이 현재 우리가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은 떼돈을 벌어들여 장막 뒤에서 웃음을 그치지 않는데도, 우리는 반동파와 진보파가 각기 양쪽에서 간판스타 노릇을 하며 경쟁하는 싸움에,
사람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짜고 치는 그 싸움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 P253

자본이 책임을 저버린 이러한 배경조건들을 식별함으로써우리는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애초의 물음에 비정통적인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자본주의는 경제가 아니라 사회의 한유형이다. 이 사회에서는 경제화된 행위 및 관계의 무대가 다른비경제화된 영역들과 분리돼 그 바깥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경제화된 영역은 비경제화된 영역들에 의존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나 몰라라 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정치‘ 혹은 정치적 질서에 의존하면서도)와 구별되는 ‘경제‘, ‘사회적재생산‘ 영역에 의존하면서도)과 구별되는 ‘경제적 생산‘의 무대,
무책임하게 내버려진 수탈 관계에 의존하면서도)와 구별되는 착취 관계의 조합, 비인간 자연의 물적 토대에 의존하면서도)와 구별되는 인간 행위의 사회역사적 영역이다. - P268

협소한 자본주의관을 지닌 비판가들은 자본주의가 세가지 중대한 잘못을 범했다고 본다. 불의, 비합리성, 부자유가 그것이다.
첫째, 그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 불의가, 자유롭지만 무자산 상태인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의 착취라 규정한다. 노동자는 많은 시간을 보상 없이 일하며, 엄청난 부를 생산하면서도 자기 지분이 전혀 없다. 이익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 계급에게흘러들어가며, 자본가는 노동자의 잉여노동과 그것이 발생시킨잉여가치를 전유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시하는 그들 고유의목적, 즉 더 많은 축적을 위해 이를 다시 투자한다.  - P269

더 큰 틀에서는 이로써 자본이 끝없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자본의 생산자인 바로 그 노동자를 지배하는 적대적 권력으로 부상하는결과가 나타난다. 이것이 협소한 자본주의관에 따라 정의된 핵심 불의, 즉 생산 지점에서 벌어지는 임금노동의 계급적 착취다.
그리고 그 장소는 자본주의 경제, 더 구체적으로는 경제적 생산영역이다.
둘째로, 협소한 자본주의관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주된 비합리성은 경제 위기로 나아가는 내적 경향이다. 영리기업이 사적 - P269

으로 전유한 잉여가치의 무한 축적을 지향하는 경제 시스템은본래 스스로를 불안정에 빠뜨리지 않을 수 없다. 기술 향상으로생산성을 증대시켜 자본을 확장하려는 충동은 이윤율의 주기적하락, 상품의 과잉 생산, 자본의 과잉 축적을 초래한다. 금융화와같은 교정책은 심판의 날을 뒤로 미루기만 할 뿐이며, 오히려 다가올 심판이 훨씬 더 혹독해지도록 만든다.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발전 과정은 주기적 경제 위기로 중단되곤 한다. 즉 경기 순환, 주식시장 폭락, 금융 패닉, 연쇄 부도, 가치의 대규모 청산, 대량 실업 등이다. - P270

서 더불어 인종·제국주의적 억압 역시 끝내야 한다. 요컨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불의에 대한 치유책이 되려면, 자본주의경제‘만‘이 아니라 제도화된 질서 전체, 즉 자본주의 사회를 바꾸어야만 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확장된 자본주의관은 자본주의의 ‘위기‘
라 이해되는 바두 번째 잘못인 비합리성]에 관한 우리의 관점 역시넓힌다.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에 내장된 것을 훨씬 넘어선몇 가지 내적인 자기 불안정화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사회적 재생산을 놓고 제 살을 깎아먹음으로써 돌봄위기를 부채질하는 체계적 경향이다. 자본이 자신이 기대는 무급 돌봄 활동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하는 한, 이 활동의주된 제공자인 가족, 공동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에게 주기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가하게 된다.  - P273

금융화된 현재 형태의 자본주의 사회는 오늘날 바로 이런 위기를 발생시키는데, 예를 들어사회서비스의 공적 제공을 감축하길 요구하면서 동시에 여성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각 가정마다 유급 노동시간을 늘리길 요구한다.
둘째, 확장된 자본주의관은 생태 위기를 초래하는 내적 경향역시 눈에 잘 띄게 만든다. 자본은 비인간 자연에서 취하는 투입물에 대해 실질적인 대체원가replacement costs" 따위는 결코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토양을 고갈시키고, 바다를 더럽히 - P273

며, 탄소를 흡수하는 숲에 침범하고, 지구의 탄소 순환 용량을 훨씬 넘어서는 탄소를 배출한다. 자본은 천연자원의 덕을 보면서도 이를 보충하거나 수선하는 비용은 나몰라라 하기 때문에, 자연의 인간적 구성요소와 비인간적 구성요소 사이의 물질대사적상호작용을 주기적으로 불안정에 빠뜨린다. 오늘날 우리는 그후과와 격돌하고 있다. 지구를 태워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은절대로 ‘인류‘가 아니며, 바로 자본주의다.
셋째, 사회-재생산과 생태의 위기를 낳는 자본주의의 경향은인종화된 인민으로부터 부를 수탈하려는 자본주의의 구성적 필요성과 분리될 수 없다.  - P274

예를 들면, 자본은 강탈한 땅, 강제 노동,
약탈한 광물에 의존하며, 유독성 폐기물의 쓰레기 처리장으로서인종화된 지역에 기대고, 점점 더 전 지구적 돌봄 사슬로 조직되는 돌봄 활동의 공급자로서 인종화된 인민에 기댄다. 그 결과 경제적·생태적·사회적 위기는 제국주의와 인종적-민족적 적대감과 한데 뒤엉킨다. 신자유주의는 이 대목에서도 위험을 고조시킨다.
마지막으로, 확장된 자본주의관은 정치 위기로 나아가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경향을 드러낸다. 이 경우에도 자본은 공공재 - P274

에 기생해 살면서도 그 비용은 지불하려 하지 않는 양다리 걸치기를 한다. 조세를 회피하고 국가 규제를 약화시킬 만반의 태세를 갖춘 자본은 자신이 기대는 바로 그 공적 권력을 빈껍데기로만드는 경향이 있다. 금융화된 현재 형태의 자본주의는 이 게임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았다. 거대 기업은 영토에 매여 있는 공적 권력을 한참 앞질렀고, 글로벌 금융은 자신에게 맞서는 선거 결과를 무효로 만들거나 반자본주의 정부가 대중의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방식으로 국가를 훈육한다. 그 결과는 거버넌스의 심각한 위기다. 지구 곳곳의 인민대중이 기성 정당과 신자유주의적 상식에 등을 돌림에 따라 현재 이위기는 헤게모니의 위기까지 동반하며 전개되고 있다. - P275

즉, 확장된 자본주의관은 자본주의가 경제적인 것을 훨씬 넘어서는 다양한 위기 경향들을 장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5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는 이런 다양한 위기 경향들을 ‘영역 간‘ 모순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칼폴라니와 제임스 오코너James O‘Connor)를 따른다. 이 영역 간 모순은 자본주의 경제와그것을 가능케 하는 비-경제적 배경조건들을 분리하면서도 동시에 연결하는 접합부에 고정돼 있다.앞장들에서 설명한 네가지 D의 논리에 사로잡힌 자본은 자신의 전제 자체를 침식하거나 파괴하거나 고갈시키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불안정에 빠뜨리는 내적 경향이 있다. 우로보로스처럼 자본은 자기 꼬 - P275

리를 먹는다. 제살 깎아먹기 또한 자본주의 사회의 잘못 중 일부다. 따라서 이는 사회주의가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민주주의의 결핍은 자본주의에 내장된 숙명이다. 이 세번째 잘못[자유] 역시 우리가 이 사회 시스템에 관해 확장된 관점을 취할 경우 훨씬 더 크게 드러난다. 문제는 단지 작업 현장에서 사장이 명령을 내린다는 것만이 아니다. 또한 정치 영역에서 민주적 목소리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위장이 경제 불평등과 계급 권력 탓에 우스워지는 것만이 문제인것도 아니다. 정치 영역이 처음부터 심하게 모서리가 잘려 있다는 점 역시 위의 문제들만큼이나 중대하다. 사실 경제/정치 분할은 민주적 의사결정의 범위를 사전에 심각하게 축소한다.  - P276

생산이 사기업에 내맡겨지면, 제4장에서 살펴봤듯이, 우리가 자연과맺는 관계, 지구의 운명과 맺는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을 어떻게 할당할지, 우리의 필요를 어떻게 해석하고 충족할지, 그래서 결국 우리의 일과 일 바깥의 삶이 어떤 모양을 떨지를 결정하는 것도 자본가 계급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경제/정치 결합체는 자본가에게 사회의 잉여를 사적으로전유할 백지 위임장을 써줌으로써, 사회 발전 과정의 틀을 짜고그리하여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모든 쟁점들은 정치 의제에서 사전에 - P276

배제된다. 축적 극대화에 광분하는 투자자가 우리 등 뒤에서 이를 결정한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자체만 놓고 제살깎아먹는 짓을 벌이는 게 아니라 우리도 그 식탁에 올려놓는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함께 결정할 집단적 자유를 게걸스레 먹어 치우면서 말이다. 이런 형태의 제살 깎아먹기를 극복하려면, 사회주의는 현재의 참담한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민주적인 정치적 자치의 범위를 확장해야만 한다. - P277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모든 잘못들을 치유하려면, 이는 매우 벅찬 과업이 될것이다. 사회주의는 계급 지배‘만‘이 아니라 젠더와 성, 인종적·민족적·제국주의적 억압, 정치적 지배의 전반적인 불균형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창안해야 한다. 또한 경제·금융 위기‘만‘이 아니라 생태·사회-재생산·정치 위기를 낳는 경향들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위기 경향들의 제도적 기반을 해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1세기를 위한사회주의는 사전에 ‘정치‘ 영역이라고 정의된 범위 안에서 의사결정을 민주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관할범위를 광대하게 확장해야 한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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