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유럽에 공을 들인다. 또한 나토에 공을 들이면서도 때로 미국의 국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행동에 옮길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게 러시아는 대체로 유럽의 문제 가운데 하나다. 물론 그렇다고 감시의 끈을 늦추진 않겠지만. - P76
이제 남은 것은 중국이다. 떠오르는 중국 말이다. 분석가들이 지난 10년에 대해 쓴 것을 보면 대다수가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며 세계의 최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1장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살펴본 이유로 인해 나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적어도1세기는 걸릴 거라고 본다. 경제로만 보면 중국은 미국에 견줄 만큼 성장했지만, 그리고 그 덕분에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과 주빈석의 한 자리를 사들일 수 있었지만, 군사력과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에 수십 년은 뒤처져 있다. 그 수십 년을 미국은 자국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다지는 데 쓸 것이다. 물론 그 간격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듯하지만 - P76
한 예를 들어보겠다. 워싱턴 정부는 적대국인 시리아에서 벌어지는인권 유린 상황에 분개하면서 자국의 입장을 크게 떠들어대는데 반해 정작 바레인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잠잠하다. 바레인 정부의 허락하에 이곳에 정박 중인 미국 제5함대가 이를 덮어버린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원조는 미얀마 정부에게 제안할 수 있는 권한을 사는 것인데 여기에는 곧 중국 정부의 접근을 거절하기를바라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이 사례는 미국이 애매한 위치에 있는 특수한 경우인데 그 이유는 미얀마 정부가 최근에야 바깥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데다 베이징 정부가 일찌감치 이곳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 P77
하지만 일본, 태국, 베트남,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여타 국가들의 경우 미국은 일찌감치 문을 열고 있다. 이나라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이웃에 불안해하며 워싱턴과 관계 맺기를열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나라들 또한 제각기 이런저런 문제로 엮여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중국의 패권 아래차례로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는 한 그 문제들은 크게부각되지 않을 것이다. - P77
어떤 한 지역을 향한 회귀가 반드시 다른 지역의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어느 쪽 발에 얼마만큼 더 힘을 실어주느냐의 문제다. 미국 정부의 대외전략 전문가들 중 다수는 21세기 역사는 아시아와태평양이 주도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이 지역에 거주한다. 특히 인도까지 포함하면 2050년경에는 이지역이 세계 경제 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 P78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에 개입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미국이 점점더 많은 시간과 돈을 이 지역에 투자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 한 예로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 해병대 기지를 건설했다. 하지만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진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적대행위가 발생했을 때 그들을 구하러 미군이 온다는 점을 우방국들이 확신하도록 제한적인 군사 행동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일례로 중국이 일본의 구축함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고 치자. 이는 향후 더 큰 군사 행동으로발전할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미 해군도 중국 해군을 향해경고 사격을 하거나 혹은 직접 조준사격을 가하는 것으로 만일의 경우 전쟁까지 감수하겠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한국을 향해 발포를 하면 한국이 맞대응을 하지만 현재 미국은 그러지않는다. 대신 미국은 군대의 경계 태세를 높이는 것 같은 공식적인 방식으로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만약 상황이 악화된다면 북한을 향해경고 사격을 가한 다음 직접 발사를 할 것이다. 이는 선전포고 없이도전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다.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 P78
흔히 분석가들은 주눅이 들거나 체면이 손상당하는 것을 기피하는 일부 문화권의 특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비단 아랍이나 동아시아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뿐이다. 물론 이 두 문화권에서 그 점이 유독 선명하게 부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외정책 전략가들은 다른 강대국 못지않게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영어에도 이런 사고를 깊이 담고 있는 두 격언이 있다. "1인치를 주면 1마일을 얻을 것이다."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00년에 한 말로 오늘날 주요 정치 어록에 들어간 "말은 부드럽게 하되 힘을 과시하라!"이다. 금세기에 치명적인 게임은 향후 중국과 미국, 그리고 그 지역 다른국가들이 체면을 잃지 않고 서로 분노와 원망의 우물을 깊이 파는 법없이 위기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 P79
21세기에 태평양에서는 강대국들 간에 이뤄야 할 타협들이 점점더 많아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100퍼센트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른 나라들에게 분쟁 지역 내로 들어오기 전에 통지할 것을 요구하며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중국과 일부러 통지하지 않고 비행을 강행하는 미국 간의 타협 여부가 초기 사례로 부각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을 지정하고 쟁점화하면서 얻은 게 있다. 또 미국은이를 준수하지 않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얻은 것이 있다. 결국은 기나긴 게임이 될 것이다. - P80
중국은 자국의 상품들이 전 세계로 전달되는 항로 대부분의 경비를 미국이 담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영향력이 중국에 지나치게 근접하지 않는 선에서의 얘기다. 물론 논쟁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때로 민족주의를 국민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양측은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다만 서로의 입장을 잘못 해석하거나 지나친 도박을 걸 경우 사태는 위험해진다. 이 경우에도 발화점은 있다. 미국과 대만이 맺은 조약에 따르면, 중국이 자국의 23번째 성으로 주장하는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개입하게 되어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을 촉발할 임계점은 미국이 대만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경우나 대만의 독립선언이다. 그러나 아직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이 지역의 수평선에서 중국군이 쳐들어오는 장면은 보기 어려울 것 같다. - P81
미국 제5함대는 바레인에 있는 기지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것도 콘크리트 블록의 한 조각이어서 미국은 섣불리 포기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카타르의 원유가 미국의 불빛을 밝히고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데 더 이상필요하지 않게 됐을 때 미국 국민과 의회는 물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바레인에 기지가 필요한가?" 만약 대답이 단지 "이란을 견제하기위해서"라고만 하면 이는 논쟁을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이란의 핵 보유 문제를 두고 테헤란 정부와 협상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을 두고 보면 더 그렇다. - P82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정책은 파나마운하의 개방을 연장하고, 파나마 운하의 대안으로 떠오른 니카라과 운하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브라질이 세력을 키워 카리브 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를 대비해 지속적으로 주시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놓고 중국과 경쟁하겠지만 쿠바에서만큼은 카스트로 사후 내지 공산당 이후의 지배권을 확고히 다지려고 갖은 공을 들이고 있다. 쿠바와 플로리다의 근접성, (비록 혼합된 것이지만) 역사적 관계, 그리고 중국의 실용주의로 볼 때 미국이 새로운 쿠바에서 반드시 지배 세력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프리카에서도 미국은 천연자원을 찾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중국이 선점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주의자들과의 싸움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도 지상에서9천 미터 이상을 넘지 않는 선에서 지나친 개입은 피하려고 한다. - P83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그 외의 지역에서 미국은 약소국들과 부족들의 정신력과 지구력을 과소평가한 감이 있다. 물리적 보안과 통합이라는 자국의 역사 때문인지 미국은 자신들의 민주적이고합리적인 논쟁의 힘을 과대평가했다. 그래서 수니파와 시아파, 쿠르드족, 아랍, 또는 무슬림이 됐든 기독교도가 됐든, 타협과 각고의 노력, 심지어 투표를 통해 인간 본연의 뿌리 깊은 타인에 대한 역사적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국은 사람들이 하나로 통합되고싶어 한다고 전제한다. 사실 많은 이들이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경험적으로 떨어져 사는 것을 더 선호하는데도 말이다. 이는 인류의슬픈 현실이지만 시기와 장소를 막론하고 역사에서 자주 드러났던불행한 진실이기도 하다. 미국의 행동들은 당장은 진실을 밑바닥에감춘 채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을 열어젖힌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이 현실이 일부 교만한 유럽 외교관들이 믿고 싶은 대로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을 나약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국인들은 "할 수 있다."와 "고칠 수 있다."는 입장을 더욱 견지하는데 이생각이 늘 맞아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 P84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이 나라는 이제 에너지 자급자족마저 - P84
이룰 참이다. 여전히 탁월한 경제 대국으로 남아 있으며, 나머지 나토국가들의 방위비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국방력 증강과 발전에 투입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인구는 유럽이나 일본처럼 고령화하지 않았다. 2013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25퍼센트가이민을 갈 경우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미국을 꼽았다. 같은 해, 상하이 대학은 전문가들이 뽑은 세계 최고의 대학 20개를 발표했는데 그가운데 17개 대학이 미국에 있다. 프로이센의 정치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세기도 훨씬 전에 이중의 의미가 담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은 바보들과 주정뱅이들, 그리고 미국에게 특별한 섭리를 베푸신다." 이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 P85
근대 세계는 좋든 나쁘든 유럽으로부터 나왔다. 이 광대한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전초 기지는 계몽주의를 탄생시켰고 이는 산업혁명의모태가 되어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영위하는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고마워하거나 혹은 비난할 수 있다. 유럽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말이다. 걸프 만이 키워준 <기후의 축복>을 받은 이 지역은 대규모 경작에적합한 강수량과 생육에 좋은 토양을 지녔다. 이 같은 조건은 이 지역 인구가 느는 데 일조했다. 한여름은 물론이고 사시사철 일할 수 있으니 인구가 느는 건 당연하다. 겨울 또한 실질적으로 덤을 제공했다. 기온은 실내에서 일할 수 있을 만큼 온화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골칫거리 오염원인 세균들이 살 수 없을 만큼 춥기 때문이다. - P90
서유럽에는 진정한 의미의 사막이 없다. 빙하는 일부 북쪽 지역에한정돼 있는데다 지진이나 화산, 대규모 홍수 또한 드물다. 하천들은길고 평탄해서 선박을 띄워 교역하기가 좋았다. 여러 바다나 대양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들은 서쪽, 북쪽, 남쪽의 연안지대로 흘러가면서 천연 항구를 여럿 만들었다. 알프스의 눈사태로 고립되었다거나 홍수로 넘친 다뉴브 강물이 빠지기만을 기다린다는 소식을 접하다 보면 실상 유럽의 <지리적 축복>도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지구상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유럽이 상대적으로 축복받은 곳임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최초로 산업화된 민족 국가들이 세워지고 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전쟁을 수행케 한 요인들이 되었다. - P91
그렇다면 왜 이 지역에 유독 많은 민족 국가들이 존재하는가? 유럽전체를 놓고 볼 때 눈에 띄게 많은 산맥과 강, 계곡들을 보면 이내 납득이 간다. 미국은 하나의 지배 언어와 문화 덕분에 발전이 빠를 수밖에 없었으며 거기에 적극적으로 서쪽으로 진출한 덕분에 거대 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은 기본적으로 천 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성장해온데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리적, 언어적으로 분리돼 있다. - P91
일례로 이베리아 반도의 다양한 민족들은 피레네 산맥 때문에 프랑 - P91
스 쪽으로의 진입을 방해받았고 따라서 수천 년의 세월을 두고 차츰안으로 모여들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형성했다. 그런데 오늘날카탈루냐 지역의 독립 요구가 점점 높아가는 스페인조차 완전한 통일 국가로 보기는 어렵다. 또 프랑스도 피레네 산맥, 알프스 산맥, 라인강, 대서양 같은 천연 방벽으로 인해 형성된 나라다. 베오그라드에서 다뉴브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사바 강을 제외하면유럽의 주요 강들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왜 유럽에 상대적으로 소규모 국가들이 많은지 이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대다수 강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탓에 어떤 면에선 이 하천들이 천연 국경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저마다 권리에 따라 경제적 영향권을 형성했다. 이런 양상은 각 하천 유역마다 적어도 하나의 주요 도시를 발전시켰다. 그리고여기서 성장한 일부 도시가 수도들이 되었다. - P92
그 길이가 2,858킬로미터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다뉴브 강은 이를 적절히 보여주는 사례다. 다뉴브 강은 독일의 블랙 포리스트(BlackForest, 독일 남서부 삼림지대에서 발원해서 남쪽으로 흘러 흑해로 간다. 이 여정을 거치는 동안 무려 18개 나라에 영향을 주는 다뉴브 연안은그 자체로 천연 국경을 형성한다.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세르비아와 루마니아, 그리고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국경선이 그것들이다. 2천 년도 훨씬 전에 다뉴브 유역은 로마 제국국경의 일부였다가 이후 중세에 들어와서 주요 교역로로 정착되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수도들인 비엔나,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의 수도), 부다페스트 그리고 베오그라드(세르비아의 수도)가 다뉴브유역에 탄생했다. 한편 이 경로는 서로 이어지는 두 개의 제국인 오스 - P92
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천연 국경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 각 민족들이 부상하더니 마침내민족 국가들로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다뉴브 지역의 지리, 특히 최남단의 지리를 보면 북유럽평원의 큰 나라들에 비해 왜 유독 이지역에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들이 많은지 수긍이 간다. - P93
서유럽 국가들은 일부 남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부유하다. 북쪽이남쪽보다 일찍 산업화를 이룬 덕분에 경제적인 성공도 그만큼 크게이루었다. 서유럽 국가들 상당수가 유럽의 심장부를 이루는데 이 덕분에 교역 라인을 지속하기도 훨씬 수월했다. 이는 곧 한 부자 이웃이또 다른 이웃과 교역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와 달리 스페인은교역을 하려면 피레네 산맥을 넘거나 아니면 포르투갈과 북아프리카같은 제한된 시장을 바라봐야만 했다 - P94
북쪽 국가들의 프로테스탄트 노동 윤리가 그 나라들을 보다 높은수준의 번영으로 끌어올린 반면, 남쪽에는 그곳의 지배적인 가톨릭정서가 그 지역을 퇴보시켰다는 이론은 이견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나 또한 바이에른 지방의 뮌헨을 방문할 때마다 이 이론을 새삼 떠올린다. 차를 몰고 가다 BMW, 알리안츠생명, 지멘스 본사의 휘황찬란한 사옥들을 지나치다 보면 어찌 그 이론에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독일 인구의 34퍼센트가 가톨릭 신자이고, 특히 바이에른은 가톨릭이 지배적인 지역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편향성이 남유럽 지역의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그리스인들이 일을 더하고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주장에 딱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 P94
북유럽평원 지역에 속한 나라들 가운데 지리적 이점을 가장 많이누리는 나라는 뭐니 뭐니 해도 프랑스일 것이다. 유럽에서 북쪽과 남쪽을 전부 아우르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국은 프랑스 말고는 없다. 프랑스에서 서유럽에 면한 지역에는 광대하고 비옥한 대지가 펼쳐져있을 뿐 아니라 상당수의 강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 서쪽으로 쭉 흘러가다 대서양에 이르는 강이 있는가 하면(센강), 남쪽을 흐르는 론 강은 지중해로 흘러들어간다. 이 지리적 특징은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형과 어우러져 특히 나폴레옹 시대부터 지역 통합을 이루고 권력을중앙으로 모으는 데 적합했다. - P95
물론 현재의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고 믿을 만한 이유들이없지는 않다. 그러나 갈등의 잠재적 거품들이 수면 아래서 보글보글피어오르고 있다. 게다가 유럽인들과 러시아인들 간의 긴장은 언제갈등을 유발할지 모른다. 그 적절한 예가 역사와 지리적 형태 바꾸기라는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폴란드의 대외정책이다. 현재 폴란드는 평화를 구가하고 있고 이제는 3천8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보유한, 유럽연합 내에서도 대체로 큰 국가로 자리 잡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리적으로도 폴란드는 대형 국가군에 속하며 철의 장막 뒤에서모습을 드러낸 뒤로 경제 규모 또한 두 배나 늘었다. 그런데도 미래의안위를 도모하는 데에 여전히 과거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유럽평원의 통로는 북으로는 폴란드의 발트해 연안과 남으로는카르파티아 산맥의 초입 사이, 즉 가장 좁은 곳에 위치한다. 러시아군의 편에서 보면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지점은 없다. 또 공격자들의 입장에서는 러시아로 진격하기 전에 병력을 바짝 집결할 수 있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 P100
독일과 러시아의 지리적위치에 결부된 폴란드인들의 경험으로 인해 바르샤바 정부가 이들 나라와 자연스레 동맹 관계를 맺을 수 없는건 당연했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폴란드 독일을 유럽연합과 나토의 틀 안에 묶어두기를 원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목격한 폴란드인들은 코앞에 있는 러시아에 대한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공포를 떠올렸다. 수세기동안 폴란드는 밀물과 썰물처럼 러시아가 제 땅에 드나드는 것을 보아왔다. 소비에트 제국 말미에 마지막 썰물이 빠져나간뒤이 나라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유럽연합 내에서 독일과의 균형추로서 영국과 폴란드와의 관계는1939년의 뼈아픈 배신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회복되었다. 당시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가 독일로부터 침공을 당할 시 지원을 약속하는 조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막상 공격이 시작되자 독일의 전격전(기습 공격)에 대한 응답은 교착전, 소위 앉은뱅이 전쟁이었다. 영국과프랑스 양동맹국은 독일이 폴란드를 삼키는 동안 팔짱을 낀 채 마지노선 뒤에 앉아 있었다. 이러한 쓰라린 기억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폴란드의 관계는 확고한 편이다. 물론 1989년 새로이 해방된 폴란드가찾아 나선 주요 동맹국은 미국이지만. - P101
이 긴장감은 저 위 북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뻗어 올라간다. 덴마크는 이미 나토에 가입했고, 최근 스웨덴에서는 근 2세기 동안이어온 중립국의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에 가입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을 촉발한 계기는 2013년 한밤중에 러시아 제트기들이 스웨덴에 모의 폭탄을 투하한 사건이었다. 당시 스웨덴 방공망은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제트기들의 출현을 감지하는 데 실패했다. 정작 러시아 전투기들의 궤적을 감시하고 영공을 지킨 측은 덴마크였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에서는 나토 가입에 반대하는 입장이 여전히 우세하다. 이 논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모스크바는 스웨덴이든 핀란드든 어느 쪽이든 나토에 가입할 경우 응분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 P103
앞서 봤듯이 프랑스는 유럽의 기후와 교역로 그리고 천연 국경선의수혜를 가장 많이 누리는 최적의 위치를 점한 나라다. 하지만 프랑스는 현재 독일 땅이 된 북유럽평원의 평야지대로 인해 지리적으로 완전히 보호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독일이 단일 국가가 아닐 때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랑스는 러시아에서도 꽤 멀고, 몽골 유목민들과도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으며, 영국과는 해협이가로막고 있다. 이는 곧 전면적인 공격 시도나 프랑스 전 국토에 대한점령 시도는 격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프랑스는 모스크바 턱밑까지 치고 들어가 세력을 과시할 수 있었을 정도로 유럽대륙에서는 막강한 나라였다. 그런데, 독일이 통일되고 말았다. - P104
독일이 처한 지리적 위치라는 딜레마와 호전성은 흔히 독일 문제로알려진 상황을 야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 이후 실제로는 수세기에 걸친 전쟁을 뒤로하고 유럽이 이에 대한 해답으로 삼은 것은 유럽 땅에서 유일한 압도적인 세력, 즉 나토 설립을 주도하고 향후 유럽연합의 태동을 가능케 한 미국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거였다.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러나 미군에 의해 보장받은 안전으로 유럽인들은 경이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바로 서로를 믿으라는 요구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 P106
유럽연합의 설립에는 프랑스와 독일이 더 이상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지 못하도록 서로를 꼭 끌어안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생각은 멋지게 들어맞았고 이윽고 세계 최대의 경제권을 아우르는 드넓은 지리적 공간이 태어났다. 무엇보다 이 국면은 1945년의 잿더미를 딛고 일어나 한때 그토록 두려워했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게 된 독일에게 보탬이 되었다. 독일은 유럽 최고의 제조업 국가 자리에 올랐다. 독일은 평원 너머로 군대를 보내는 대신, 일류를 상징하는 <메이드 인 저머니 Made inGermany〉 상표를 붙인 상품들을 보낸다. - P106
독일은 선량한 유럽 국가로 남아 있기로 했다. 독일인들은 유럽이분열되면 자신들에 대한 해묵은 공포가 다시금 고개를 들 것이라는 걸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특히나 현재로선 8천만 명의 인구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인구로 보나 경제 규모로 보나 가장 큰 유럽 국가이니 더욱 그렇다. 실패한 유럽연합은 독일 경제에도 좋을 것이 없다. 세계 3위의 수출 대국인 독일로서는 가장 가까운 시장이 보호주의로인해 분해되는 것이 반갑지 않다. 2015년 여름에 그리스를 두고 벌어진 골치 아픈 논쟁 이후 유로존 국가들이 진정한 재정 연합을 이루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독일이 이끌어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는 이제껏 유럽에서 볼 수 없었던 회원국들 간의 예산 공유 같은주권들을 일정 수준 단일 체제 안에 모으는 형태가 요구될 것이다. 만약 이 작업이 진행된다면 여전히 독일이 통솔하는 연방화한 유럽 국가들과 나머지 국가들로 구성된 이른바 <서로 상반된 경제 양상이 동 - P108
거하는 유럽>의 윤곽이 보다 선명해질 것이다. 그 역사가 채 150년이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민족 국가는 유럽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강대국이 되었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의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독일은 나긋나긋한 목소리 한편으로 유로화라는무기를 내세우며 으름장을 놓는다. 전 유럽대륙은 독일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독일은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대외정책에서만은 얌전하기 그지없다. 가끔은 아예 실력 행사 자체를 혐오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는 여전히 독일에 드리워져 있다. 미국과서유럽은 소련의 위협 때문에 결국은 독일의 재무장을 용인해 주려했다. 하지만 독일은 거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재무장을 했으며 그나마 갖고 있는 무력을 사용하는 것조차 꺼린다. 독일은 코소보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약한 역할만을 담당했으며 리비아 사태 때는 아예 뒤로 물러앉아 있었다. - P109
대서양을 마주보는 대륙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술수들을 지켜보는영국은 때론 유럽 대륙에 발을 들이밀기도 하고 때론 <영광스러운 고립splendid isolation>을 택하면서 향후 유럽에서 자기들보다 더 강한세력이 부상할 수 없음을 입증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하기야 아쟁쿠르 전투와 워털루 전투 또는 발라클라바 전투의 주인공이 영국이었던 만큼 유럽 외교가에서도 이를 부인키는 어려울 것이다. 영국은 할 수만 있다면 유럽연합 내에서 프랑스독일 동맹 사이에끼어들려고 한다. 만약 이 시도가 실패하면 영국이 동의하지 않는 사안에 반대하고 나설 만한 보다 작은 나라들과의 동맹을 모색한다. - P110
현재도 영국인에게는 <위대함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남아 있다. 이 기억에 따르면 세계가 그렇게 되길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영국은 그것을 해야 할 나라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여전히 많은 영국인들에게 설득력을 지닌다. 영국은 유럽 가운데 남아 있으면서도 여전히 유럽 바깥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영국을 유럽연합의 바깥쪽으로 자꾸 내모는 두 가지 쟁점은 서로연결돼 있다. 그것은 바로 <주권>과 <이민자 문제다. 일부 유럽 통합회의론자들의 지지를 받는 반유럽연합 정서는 유럽연합이 정하는엄청난 분량의 법률과 그 내용에 반발한다. 하지만 회원국들간의 합의의 일부이므로 영국도 이를 준수할 수밖에 없었다. - P112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몰려오는 경제적 이민과 난민의 물결 속에서영국에 오기를 희망하는 이민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반유럽연합 정서 또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영국인들은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이 더 많은 이민자들을 영국으로 보내려 한다고 믿고 있다.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은 최근 유럽이 겪고 있는 경기 침체로 인해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 영향은 대륙 전체에 걸쳐 우파 정당의 약진등 범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일체의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럽연합이라는 구조도 약화시킨다. 유럽의 전통적인 백인 인구는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 추세다. 현재인구 추계가 다수의 노인 인구가 상부를 차지하고 이들을 돌보거나세금을 내는 젊은이들은 적은 역삼각형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빠르게 변해가는 세계를 보는 영국 토박이 주민들의 반이민 정서 기세는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P113
유럽인들은 이제 방위 비용을 진지하게 다시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쓸 돈이 그리 많지 않은 상태라 그들은 어려운 결정에 직면해 있다. 이 결정을 놓고 토론을 벌이던 그들은 묵혀두었던 지도를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외교관들과 군사 전략가들은 샤를마뉴, 나폴레옹, 히틀러, 소련의 위협은 사라졌을망정 북유럽평원과 카르파티아 산맥 그리고 북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역사학자 로버트 케이건은 미국 VS. 유럽 Of Paradise and Power』에서, 서유럽인들은 낙원에서 살고 있지만 일단 그들이 권력의 세계로 이동하고 나면 더 이상 그 낙원의 법칙에 따라 운영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로존 위기가 진정되면서 우리는 낙원을 둘러보게 된다. 옛날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불과수십 년 만에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지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지리는 인류가 〈지리의 법칙>을 극복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그 법칙들이 우리를 이길 거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속하는 영토로서 지역적으로 연속하는 영토를 여전히 두고 있다. - P116
1998년에 헬무트 콜이 독일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했던 경고도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마지막 세대의 총리로서 그는 전쟁이 초래한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2012년콜은 독일의 최대 일간지인 <빌트Bild>에 기고한 글에서, 재정 위기를겪는 현재의 유럽 지도자들 세대가 전후 유럽인에게 맡겨진 <서로간의 신뢰>라는 실험을 성공시킬 가능성이 여전히 낮은 건 사실이라고썼다. "특히 전쟁 시절을 겪어보지 않고 현재의 위기를 맞은 이들은 유럽의 통합이 무슨 이득을 가져다주는지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유럽은지난 65년 이상 유례없는 평화의 시기를 누려왔다. 비록 우리 앞에는여전히 극복해야 할 문제와 난관이 있지만 해답은 그것밖에 없다. 평화 말이다." - P117
러시아는 넓다. 가장 넓다. 아니 넓다 못해 광활하다. 면적이 무려 1천7백9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며, 표준시간대 time zone 또한 무려 11개나 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나라다. 이 나라의 숲과 호수, 얼어붙은 툰드라, 스텝, 타이가, 산맥 또한 마찬가지로 넓다. 이 어마어마한규모는 오래도록 우리의 집단의식에 스며들어 있었다. 어느 쪽으로가도 러시아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러시안 베어 Russian Bear가산다. 그러고 보면 이 광활한 나라의 상징이 곰이라는 것은 순전한 우연이 아니다. 이 땅에 웅크리고 앉은 곰은 겨울잠을 자기도 하고, 때로는 위엄 있게 그러나 험악하게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곰이라는 러시아 단어가 있지만 정작 러시아 사람들은 이 짐승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꺼린다. 그 이름에 내포된 어두운 부분을 두려워해서다. - P122
이 곰의 속내를 알아내고픈 작가들이 흔히 인용하는 유명한 말이있다. 1939년에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러시아를 관찰하고 나서 이런말을 했다. "러시아라는 <수수께끼>는 <미스터리>라는 포장지로 여러겹 싸매져서 <불가사의 > 안에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몇 마디 더 덧붙여져야 한다. "하지만 열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의 국익이다." 이 말을 한 지 7년 뒤에 처칠은 이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 본인의 답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확신하건대, 강인함만큼 러시아인들이 경외하는 것은 없으며 나약함보다 경시하는 것은 없다. 특히 군사력에서 말이다." 처칠의 말은 겉으로는 민주주의라는 망토를 두르고 있으면서 안으로는 국익 추구라는 권위주의 잔재가 남아 있는 현 러시아 정권에도 여전히 해당된다. - P123
러시아 입장에서 이는 <양날의 칼>이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군대를이동시켜야 할 때는 상대적으로 좁은 통로지만, 반대로 적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시킨다. 그런데 V자가 넓어지기 시작하는지점부터 러시아 국경까지 거리는 장장 3천2백 킬로미터가 넘는다. 게다가 모스크바와 그 너머는 평지다. 이쯤 되면 제아무리 대군이라해도 전선 전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어찌 보면 이 전략적 깊이 덕분에 이 방향으로부터정복당해본 적이 없다. 만에 하나 모스크바로 접근해 온다 해도 적군은 이미 길어질 대로 길어진 보급로를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1812년에 나폴레옹이 그랬고 1941년에는 히틀러가 이 실수를 되풀이했다. - P124
연방 붕괴 이후 러시아는 나토에 가입하지 않기로 약속한 나라들과협력을 다지는 한편으로 나토의 접근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1999년의 체코공화국에 이어 헝가리와 폴란드, 2004년에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가 그리고 2009년에는 알바니아까지 나토에 가입한다. 이에 대해 나토는나토대로 나토에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는 약속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여느 강대국들처럼 러시아도 향후 100년 안에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1세기 전만 해도 미국의 군대가 모스크바에서 겨우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폴란드와 발트 해 국가들에 버젓이 주둔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또한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가 있은 지 고작 15년이 지난 2004년 무렵에 러시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이 나토나 유럽연합에 가입하리라고 그 누가 생각했겠는가? - P126
러시아는 무역을 장려하고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면서 유럽의 맹주들 가운데 하나로 세력을 키워갔다. 이제 보다 안전해지고 강력해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카르파티아 산맥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 발트해 국가들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손에 넣었다. 그리하여 육로는 물론이고 발트해 방면의 침략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러시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모스크바를 에워싸는 거대한고리가 형성되었다. 이 고리는 북극에서 시작한다. 이어 발트 해 지역으로 내려와서 우크라이나를 지나고 카르파티아 산맥, 흑해, 캅카스산맥과 카스피해, 우랄 산맥을 두루 돌아 다시 북극권 한계선까지 뻗어 올라간다. 20세기에 공산주의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을 결성했다. "만국의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 뒤에 있는 소비에트 연방은 러시아제국 그 자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뒤에도 러시아는 태평양부터 베를린까지, 북극에서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이르기까지 확장을꾀했다.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에 대적할 만한 명실상부한 초강대국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 P129
20세기 후반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돈을 쏟아 부었기만 했지인민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닌 복마전 경제와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서의 패배는 결국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이어졌다. 러시아 제국의 유럽 경계선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에서 종결됐고 공산주의 이전과 비슷해진 형태로위축되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반反공산주의 무슬림 게릴라들을 소탕하려는 당시 아프간 공산정권의 지지하에 이뤄졌지만 정작 아프간 국민들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희열을 알게해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늘 그랬듯이 이는 만일의 사태를 막기위해 그 지역의 통제를 공고히 하려는 모스크바 정권의 의도일 뿐이었다. - P133
대양으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부동항의 부재>는 늘 러시아에게는 아킬레스건이었다. 북유럽평원만큼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가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러시아는 지리적 약점을 지녔지만 그나마 석유와 천연가스 덕분에 더 약한 나라로의 추락만은 모면했다. 일찍이 1725년에 표트르 1세가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긴이유도 납득이 간다. "할 수 있다면 콘스탄티노플과 인도로 가까이 접근하라. 누가 되든 그곳을 통치하는 자야말로 세계의 진정한 통치자가 되리라. 그러므로 꾸준히 싸움을 도발하라. 터키뿐 아니라 페르시아에서도! 할 수있는 한 페르시아 만 멀리 침투할 것이며, 할 수 있는 한 인도의 안까지도 깊숙이 들어가라." - P134
붕괴된 소비에트 연방은 15개 국가들로 나뉘어졌다. 소비에트 이념이 지리에게 복수의 일격을 당한 뒤 보다 논리적인 지도가 등장했다. 이 지도는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분리되는지, 어떻게 저마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발전시켰는지를 산과 강과 호수와 바다를 통해 알려준다. 그런데 이 지리적 법칙에도 예외가 있으니 바로 타지키스탄처럼 이른바 이름이 <스탄>으로 끝나는 국가 집단이다. 이들의국경선은 스탈린에 의해 치밀하게 그어졌다. 이를 통해 스탈린은 거대한 소수 민족 집단을 다른 지역으로 유입시킴으로써 각 나라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 P135
혹시 우리가 외교관이나 군사 전략가들처럼 긴 안목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소비에트 연방을 만들었던 국가들, 그리고 바르샤바조약의군사동맹 이전의 일부 국가들에게 기대를 걸어볼 만한 게 여전히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들 국가들은 세 가지 성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립 성향, 친서방 그룹, 그리고 친러시아 진영이다. 먼저 중립 성향의 국가들로는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을 꼽을 수 있다. 이 나라들에는 러시아나 서방과 손을 잡을 명분이 별로 없다.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있으며 안보나 무역을위해 굳이 어느 편의 신세를 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친러시아 진영에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벨로루시, 그리고 아르메니아를 넣을 수 있다. - P135
다음은 친서방 성향의 국가들로, 지난 시절 바르샤바조약 체제의 일원이었다가 현재는 나토나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들이다.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체코공화국, 불가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알바니아, 루마니아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소비에트 압제 시절 큰 고통을 받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나라들 외에 조지아, 우크라이나, 몰도바를 더할 수 있는데 이들은 서방의 양대 기구에 가입을 원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의 지리적 인접성도 그렇거니와 러시아 군대나 친러시아 군대가 그들 나라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나라 가운데 한 나라만 나토에 가입하더라도 즉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노선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던 2013년 무렵, 모스크바가 이 문제에 유독 심하게 몰입했던 것도 이 같은 현실을 설명해 준다. - P136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정부가 수도 키예프를 계속 지배하는 한 러시아는 자국의 완충지대가 손상되거나 북유럽평원을 지키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이나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며 부동항인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항의 임대차 계약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는 등 신중한 중립국의 행보만 보인다면 우크라이나를 용인할 수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중립적 행보의 폭을 점차 넓혀가는 우크라이나가 괘씸하더라도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그런데만약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고 나토와 유럽연합이라는서방의 양대 기구에 가입하려는 야심을 품고 러시아 선박의 흑해 항구 입항에 반대한다면? 한 술 더 떠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군함을 받아들이는 날이 온다면? 물론 이는 현재로서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 P137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양측을 오가는 게임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서방에 추파를 던지면서도 모스크바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푸틴이 그를 용인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의 대규모 무역협정에 서명을 앞두고조만간 유럽연합 회원 가입으로 이어질지 모를 상황이 되자 푸틴은나사를 조이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외교 정책 엘리트가 보기에 유럽연합 가입은 나토 가입의위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 P137
일종의 레드 라인 (red line, 불화나 협상 시 한쪽 당사자가 양보하지 않으려는 쟁점이나 요구)을 넘는 행위로 본다. 푸틴은 야누코비치를 압박하는 한편으로 도저히 거절하기 어려운 당근을 제시했다. 그러자 야누코비치는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깨고 모스크바 쪽과 협정을 맺으려 했다. 결국 이 행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사임으로까지 몰고 갔다. 독일과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했다. 특히 독일쪽에서는 전前 세계 복싱 챔피언이었다가 정치가로 변신한 비탈리 클리츠코를 내세웠다. 서방 측은 서부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민주 세력을 육성하고 자금을 대면서 지식인 사회와 경제계를 자기들 편으로끌어들이려 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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