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거프틸은 한때 낙농장을 소유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 낙농장은 일리노이주 앰개시 타운에서 2마일쯤 떨어져 있었다. 그 일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토미는 낙농장이 홀랑 불타버린 그날 밤 느꼈던 두려움에 휩싸인 채 한밤중에잠을 깨곤 했다. 집도 깡그리 불탔다. 바람이 헛간에서 멀지 않은 그의 집으로 불똥을 날려보냈다. 그것은 그의 실수였다-1는 늘 자신의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그가 착유기 전원이꺼졌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화재가 시작된 곳이 바로 거기였기 때문이다. 불길은 일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번져 그곳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들은 거실에 있던 황동거울틀만 빼고 모든것을 잃었는데, 그는 다음날 잿더미 속에서 그것을 찾아냈고, 발 - P9
견한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구호품을 보내주었다. 그가 정신을 수습하고, 자신이 가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모을 때까지 그의 아이들은 꽤 오랫동안 반 친구들의 옷을 입고 학교에 다녔다. 그는 그 땅을 이웃 농부에게 팔았지만 큰돈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와 그의 아내인 키 작고 예쁜 셜리는 옷을 새로 샀고, 그는 집도 샀다. 셜리는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기운을 잃지 않고 감탄스러울 정도로 잘 버텨냈다. 그들은 쇠락한 타운인 앰개시에 집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농장이 칼라일과 앰개시 두 타운을 나누는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이전에는 칼라일에 있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앰개시 소재의 학교에 다녀야 했다. - P10
거대한 불길이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이어 소들이 죽어가며 내지르는 끔찍한 비명을 들으면서 그는 느낀 것이 있었다. 여러 가지를 느꼈으나, 하느님의 현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없는 그것을 명백하게 느낀 것은 집의 지붕이 폭삭 주저앉아 바로 아래쪽, 아이들 사진과 그의 부모 사진이 있는 침실과 거실로 무너져내릴 때, 그 일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볼 때였다. 그 순간 그는 천사들이 왜 늘 날개 달린 모습으로 그려지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의, 심지어 소리도 아닌 것의감각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어 하느님이, 얼굴은 없으나 하느님인 그분이 그에게 몸을 밀착시키고 무언으로 아주 간단하게, 그리고 아주 순식간에 괜찮다, 토미, 라고 그가 알아들은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곧 토미는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의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이후로도 줄곧 괜찮았다. - P13
그럼에도 오늘 같은 봄날 아침에 흙내음을 맡으면 소들의 냄새가, 그것들의 축축한 콧구멍이, 그것들의 따뜻한 배가 그리고 그의 헛간-두 개였다-이 생각났고, 그러면 그는 마음이 자신을 찾아오는 장면 장면들로 자연스럽게 흘러다니도록 내버려두었다. 어쩌면 방금 바턴 씨네 집 쪽을 지났기 때문에 그 가난하고 슬픈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이따금 토미의 농장에서 일했던그 남자 켄 바턴이 그리고 대학에 가면서 집을 떠나 결국 뉴욕시티에 정착한 루시 그는 그 아이를 더 자주 생각했다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녀는 작가가 되었다. 루시 바턴. - P14
한번은 그들이 타운 여자들한 무리를 데리고 수용소를 돌아다니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었는데, 형 말로는 어떤 여자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어떤 여자들은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듯 턱에 힘을 주고 화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그 이미지가늘 토미의 마음에 남아 있긴 했지만, 왜 하필 지금 떠올랐는지그는 궁금했다. 그는 차창을 끝까지 내렸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그는 이미 나이가 들었다 자신이 선과 악의 이 혼란스러운 다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어쩌면 인간은 애초에 이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었다. - P22
토미는 운전하면서 문득 루시가 중학생일 때 앉곤 하던 책상 근처에 자신이 1쿼터를 놓아두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애는 늘 헤일리 선생의교실을 이용했다. 그 선생은 일 년 동안 사회를 가르치다가 군에 입대했는데 아마 루시에게 잘해주었는지, 나중에 그 교실이과학실이 된 뒤에도 루시는 그곳을 자주 이용했다. 그래서 토미는 어느 날 루시가 즐겨 앉는 책상 근처에 1쿼터를 놓아두었다. 학교에 자동판매기가 막 들어온 시점이었고 1쿼터면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사 먹을 수 있어서, 루시가 볼 수 있는 자리에 1쿼터를 놓아둔 것이었다. 그날 밤 루시가 집으로 돌아간 뒤 토미가교실로 가보니 1쿼터가 놓아둔 그 자리에 정확히 그대로 있었다. - P35
잠시 뒤 토미는 백미러를 흘끗 쳐다보았고, 피트 바턴이 간판을 망치로 때려부수는 장면을 보았다. 그것을 때려부수는 방식에 담긴 무언가ㅡ힘ㅡ때문에 토미는 운전하면서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가 지켜보니 그 아이ㅡ그 어른ㅡ는 간판을 내려치고 또 내려칠 때마다 점점 더 강한 힘을 싣는 것 같았다. 차가 살짝 내리막길을 지나며 그 모습이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을때, 토미는 이렇게 생각했다. 가만있어봐. 그리고 차가 다시 오르막을 오를 때 백미러를 보니, 거기 분노에 차 맹렬하게 간판을때려부수는 그 아이ㅡ어른이ㅡ다시 보였다. 그 남자가 간판을 두들기며 표출하는 분노가 토미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토미는 자신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불온하게 느껴졌는데, 그 행동에서 엿보이는 걱정이 그 아이의 아버지가 그날 헛간 뒤에서 하고 있던 행동만큼이나 은밀한 느낌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토미는 차를 몰면서 깨달았다. 오ㅡ문제는 어머니였어. 어머니가 문제였어. 그녀가 정말로 위험한인물이었던 거야. - P36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토미는 타이어 바람이 빠져버린 듯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자신을 지금까지―평생―지탱해오던 내부의 공기가 이제 완전히 빠져나간 것처럼. 그는 운전을 하면서 공포감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던 것을 말해버린 것이다화재가 일어난 그날 밤 하느님이 그를 찾아왔다는 것을. 왜말했을까? 어머니의 간판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때려부수던 불쌍한 아이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 아이에게 그것을 말했다는 사실이 왜 문제가 되는가? 토미는 확실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토미는 자신에게 끼워져 있던 플러그를 쓰로 뽑아버린 기분이었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한 그것을 말함으로써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작은 사람으로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그에게 정말로 공포를 일으킨 것은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걸 믿으세요? 피트 바턴은 그렇게 말했다. 토미는 더이상 자신이 자신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 P43
패티는 마치 자신의 머리가 잘려나가 몸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로이상한 느낌이었지만, 그 느낌은 계속되었다. 그녀와 언니들은아버지가 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욕설을 내뱉고 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전에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울지도 않았고 욕설을 내뱉지도 않았고 돌처럼무표정한 얼굴을 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그 모든 것을 하는 사람이 되었고, 가정-그전에는 그들 모두 호수 위의 보트 안에서 천진난만하게 앉아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은 사라져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뭔가로 변해버렸다. 타운 사람들의 쑥덕거림은 그치지 않았다. - P73
루시 바턴의 회고록에서 루시는 사람들은 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게 느낄 방법을 찾는다고 썼는데, 패티는 그것이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밤 달은 거의 패티 뒤를 따라오다시피 했고, 그녀는 백미러를 쳐다보며 달에게 윙크했다. 그녀의 마음에 언니 린다가 떠올랐다. 린다는 패티가 어떻게 청소년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패티는 운전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린다는 결코 모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서배스천 말고는어느 누구도 결코 모를 것이었다. 시비가 죽은 뒤 패티는 심리치료사를 찾아갔다. 그 여자에게 다 털어놓을 작정이었다. - P79
하지만감청색 블레이저를 입은 그 여자는 커다란 책상 뒤에 앉아 부모의 이혼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패티에게 물었다. 기분이 안 좋았죠, 패티가 말했다. 패티는 이 심리치료사와의 상담을 어떻게그만둘지 방법을 궁리하다가 결국 비용을 더 감당할 수 없다고거짓말을 했다. 진입로로 접어들던 패티는 나갈 때 켜두었던 불빛을 보았고, 그 순간 루시 바턴의 책이 패티를 이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다. 책이 그녀를 이해한 것이었다. 입안에 노란 캔디의 달콤한맛이 남아 있었다. 루시 바턴에게는 자신만의 수치심이 있었다. 오, 세상에, 그녀는 정말로 자신만의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다. - P79
"너는 열다섯 살이야. 나는 어른이고 잘못한 사람은 나여야 해." 패티는 소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놀랐고, 소녀는 손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그냥 피곤해서요." 라일라가 말했다. "그냥 너무 피곤해서요." 패티가 일어서서 상담실 문을 닫았다. "얘야." 그녀가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얘야. 내가 너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너를 대학에 보내줄 수 있다고. 돈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아까 말했듯이 네 등급은 훌륭해. 나는 네 등급을 보고깜짝 놀랐고, 네 성적은 정말로 뛰어나. 나는 너만큼 등급이 좋지 않았어. 그런데도 내가 대학에 간 건 우리 부모님이 나를 대 - P82
학에 보내줄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야. 나는 네가 대학에 가게 해줄 수 있고, 그러면 너는 가는 거야." 소녀가 패티의 책상에 올려놓은 자기 팔에 머리를 내려놓았다. 소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잠시 뒤 소녀가 젖은 얼굴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 "죄송해요. 하지만 누군가가 저한테 잘해주면…………오 이런, 그러면 마음이 미칠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아." 패티가 말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소녀가 다시 울었고, 계속 소리를내어 훌쩍였다. "오 이런 "소녀가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패티가 화장지를 건넸다. "괜찮아.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다괜찮아질 거야." - P83
그날 오후 패티가 우체국 계단을 올라가는데 환한 햇살이 그위로 쏟아져내렸다. 우체국 안에 찰리 매콜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패티." 그가 말하고 고개를 까딱했다. "찰리 매콜리" 패티가 말했다. "요즘 어딜 가나 만나네요. 어떻게 지내세요?" "살아내는 중이죠." 그는 문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 P83
나중에, 앞으로 다가올 세월 동안 패티는 그들이 계단에 앉아있던 것과, 그것이 시간의 바깥에서 일어난 듯 느껴졌던 것을 되돌아볼 것이었다. 길 건너 철물점이 있었고, 더 멀리로는 오후햇살을 받아 건물 측면이 환히 빛나는 파란 집이 있었다. 패티의마음에 키 큰 하얀 풍차들이 떠올랐다. 그 길고 가는 팔들은 일제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지만, 이따금 풍차 두 개의 팔이 동시에돌며 하늘을 배경으로 같은 위치에 놓일 때를 빼고는 결코 똑같이 돌지 않았다. 마침내 찰리가 말했다. "요즘 잘 지내는 거죠, 패티?" 그녀가 말했다. "네, 저는 괜찮아요." 그러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은 그 속으로 영원히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그만큼깊었다. - P84
잠시 뒤 찰리가 말했다. "중서부 출신이로군요. 괜찮다고 하는걸 보면요. 하지만 늘 괜찮지는 않을 텐데요." 그녀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울대 바로 위에는 면도하는 것을 잊은 듯 흰 수염 몇 가닥이 남아 있었다. "물론 뭐가 괜찮지 않은지 내게 말할 필요는 없어요." 그가 이제 앞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도 물어볼 생각이 전혀 없고요.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건 가끔은 "그가 그녀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고, 그녀는 그의 눈동자가 옅은 푸른색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끔은 그렇게 괜찮지는 않다는 거예요. 절대로 그렇지 않죠. 늘 괜찮은 건 아니에요." 오, 그녀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고, 자신의 손을 그의 손 위에없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 그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사실을 그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P85
린다 피터슨-코넬은 이번 한 주 동안 그들의 집에 묵기로 한여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오, 이 여자가 되겠군. 여자의 이름은이본 터틀로, 사진 페스티벌에 참가한 또다른 여자인 캐런-루시토스의 소개로 그들의 집에 오게 되었다. 캐런-루시는 린다가이본을 맞이할 때 이본 옆에 말없이 서 있었다. 이본은 키가 매우 컸고 약간 굽슬굽슬한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왔는데, 십년전에는 상당히 예뻤을 것 같았다. 지금은 눈 밑에 주름살이 생겨 파란 눈빛이 주는 강렬함이 약해졌고, 분명 마흔을 넘겼을 나이치고 화장이 너무 진했다. 린다는 쉰다섯 살이었다. 이본의 샌들은 높은 코르크 웨지 굽이어서 그녀의 키를 더욱 커 보이게 했다. 린다는 그 구두를 보고 이본이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 - P89
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눈치챘다. 늘 구두가 단서였다. 린다와 제이 피터슨-코넬의 집 정원에는 알렉산더 콜더의 조각상 두 점이 있었는데, 두 작품 다 크고 눈부시게 푸른 수영장한편에 있었다. 집안 거실 벽에는 피카소 그림 두 점과 에드워드호퍼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손님들이 사용하는 구역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복도 끝에는 필립 거스턴의 초기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 P90
연중 이맘때에는 집집마다 포치에 제라늄과 페튜니아가 심긴 큰 화분들이 가득했다. 타운에는 키 큰 오크나무와 검은호두나무가 심겨 있었고, 쥐엄나무와 초크체리 가지들은 출렁출렁 늘어져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없으면 나무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은 물푸레나무의 잎들이 살랑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꽤오래전 파산해 결국 문을 닫아야 했던 사립 고등학교 교실-그일부-이 아직 사진 페스티벌 강의실로 쓰였다. 그 건물로 가려면 무성한 덤불과 나뭇가지를 헤치고 나아가야 했기 때문에, 타운의 집들은 지나는 길에 흘끗 쳐다볼 수 있을 뿐이었다. 거의동화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타운 자체가 그랬다. 이본 터틀이캐런-루시 토스에게 그렇게 말하자 캐런-루시는 자기도 그렇게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환영회가 열리고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 P93
그것은 그녀의 부모와 형제들이 견뎌야 하는 절망과 공포를 더욱 가중시켰다. 이 년 동안 타운은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그 기간 동안 린다 피터슨-코넬은 가슴속 깊은 곳에 어두운 혼돈의 원판 같은 것을 지닌 채 살아갔고, 남편이 신문기사를 읽고텔레비전으로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는 모습을 보면서 종종 진땀을 흘렸다. 그녀는 자신이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몸이왜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지, 마음이 왜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지못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종결되었을 때, 마침내, 마침내 종결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그런 식으로 느꼈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가끔 기억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실제로 겪었던 신체 증상이 다시 나타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기억날 때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어리석은 여자야. 나는 불평할 게 아무것도 없어, 정말로, 그렇겐 못하지, 오맙소사. - P99
린다는 일어서서 거실로 들어가 카우치 한쪽 끝에 앉았다. 그녀는 영혼이 얼마간 육체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다시 어려져 이른 여름 어느 저녁, 학교의 여자 친구들과 길을걸으면서 옥수수밭을, 또 옥수수밭을 지나고 이어 콩밭을 지나는 느낌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새생명의 연초록빛으로 가득했고, 해가 넘어가면서 온 하늘이 찬란한 축하의 색깔을 입었다. 맨팔에 닿던 공기도 떠올랐고, 그 모든 자유, 그 모든순수함, 그 웃음도...… - P117
"오, 차일드, 당연히 그렇겠네요. 정말 미안해요." 그녀가 시선을 린다에게로 돌렸지만 초점은 여전히 먼 곳에 닿아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당신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입장은 아니네요. 내가 유리로만들어진 집에 돌을 던졌어요." 미안해요."
그것은 거의 언제나 놀라운 일이다. 예전에는 영원히 닫힌 장소로 보이던 곳으로 들어가도록 허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고그것이 놀라서 멍해 있던 린다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린다는 그날 콘칩 봉지들 위로 햇살이 쏟아지는 편의점 안에 서서 그 같은동정의 말-캐런-루시는 자신의 남편이 어떤 마음 상태였는지몰랐던 반면, 린다는 남편의 마음 상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없었다—을 들으면서 그 일의 결말이 결 - P124
국 어떻게 될지 감지했다. 이본 터틀과 캐런-루시는 이 타운에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재판은 열리지 않을 것이며, 카메라에 대한 언급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린다가 남편과 함께 밤에뉴스를 보거나 전원을 산책하거나 레스토랑에 앉아 담소를 나눌때, 그는 자신이 궁지에서 벗어난 것이 아마도 혹은 부분적으로아내의 신중함 덕분이라는 것을 언제나 의식하고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그뒤로 더이상 다른 여자는 없을 것이기에, 게스트룸은 아마 누구도 들어가지 않고 벽에 캐런-루시의 금 간 접시 사진이 걸려 있는 햇볕 잘 드는 서재가 될 것이기에, 린다는 자유의 상태에서 남편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 P125
의 상태에서린다는 그날 그 사건의 본질을 느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고 그 여자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린다는 그녀의 손을 잡고싶어졌다. 심지어갑작스럽고 놀랍고 다급하게-그녀의 뺨을어루만지고 싶어졌다. 캐런-루시가, 자신이 줄곧 중요하고 사랑받는 존재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사라진 것을 알고 뒤통수를 맞은 듯 괴로워하던 그 프리티 나이슬리 걸인 것처럼.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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