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남편 윌리엄에 대해 몇 가지 말하고 싶다.


윌리엄은 최근에 몹시 슬픈 일을 몇 차례 겪었고ㅡ많은 사람이그런 일을 겪었다-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래야 한다고 거의 강박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일흔한 살이다.
두번째 남편 데이비드는 작년에 죽었는데,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과정에서 나는 윌리엄에 대해서도 슬픔을 느꼈다. 슬픔이란 정말로-오, 그건 정말로 고독한 일이다. 그것이 슬픔이 무서운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슬픔은 당신이 유리로 된 아주 높은 건물의 긴 외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당신을 보는 사람이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 P9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사람은 윌리엄이다.

*

그의 이름은 윌리엄 게르하르트, 당시 유행과는 맞지 않았지만, 나는 그와 결혼하면서 내 이름에 그의 성을 붙였다. 그때 내대학교 룸메이트는 말했다. "루시, 그의 성을 쓰겠다고? 난 네가페미니스트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더이상 내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당시 나는 내가 나인 것에 지쳐 있었고, 이미 내 인생 전체를 나로 살고 싶지 않다는 소망에 바쳤던 터라ㅡ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그의 성을 따랐고 십일 년 동안 루시 게르하르트가 되었지만, 한 번도 그 이름이 내게 맞는다고 느낀 적이없었다.  - P10

그래서 윌리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운전면허증에 다시 내 원래 이름을 넣으려고 차량관리국을 찾아갔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절차가 훨씬 번거로워서, 다시 법원에 가서 무슨서류를 준비해 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 오그리고 나는 다시 루시 바턴이 되었다.
우리는 결혼해서 거의 이십 년을 같이 살았고, 그런 뒤에 내가그를 떠났고, 우리에겐 딸이 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오랜 세 - P10

월 친하게 지내왔다ㅡ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건 정확히 모르겠다. 이혼에 대해서라면 끔찍한 이야기가 많지만, 헤어짐 자체를 제외하면 우리 이혼은 그렇지 않았다. 이따금 나는 헤어짐의 고통과 그것이 내 딸들에게 일으킨 고통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지금 여기 살아 있으며, 윌리엄도 그렇다.


나는 소설가라서 이 이야기를 거의 소설처럼 써야 하지만, 이건 진실이다ㅡ내가 써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말하고 싶다ㅡ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윌리엄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한다면, 그가 내게 말해줬거나 내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 P11

나는 윌리엄이 아인슈타인처럼 생겼다고는 전혀 생각하지않지만, 그 젊은 여자가 말하는 게 뭔지는 알 것 같다. 윌리엄의콧수염은 회색이 섞인 흰색으로 풍성하지만 잘 손질되어 있고,머리칼도 숱이 많고 흰색이다. 커트를 했는데, 일부 머리칼은 삐죽삐죽 뻗쳤다. 그는 키가 크고 옷을 아주 잘 입는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아인슈타인은 묘하게 광적인 인상을 풍기지만 윌리엄은 그렇지 않다. 윌리엄의 얼굴에는 보통 유쾌한 표정이 고집스럽고 폐쇄적으로 떠올라 있지만, 아주 드물게 한 번씩은 고개를뒤로 젖히고 진짜로 껄껄 웃는다. 나는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갈색이고 한결같이 크다. 모든 사람이 나이를 먹은 뒤에도 큰 눈을 유지하지는 않지만, 윌리엄은 그렇다. - P12

한 가지 더. 이것은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떠나는 느낌과 관련이 있어서, 자신이 거의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느꼈지만, 그는 어떤 사후 세계도 믿지 않았기에, 어떤 밤에는 그로 인해 내면에 일종의 공포가 차올랐다. 이런 때는 대체로 계속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있었지만, 가끔은 일어나 거실로 가서 창가의커다란 적갈색 의자에 앉아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을 때까지책ㅡ그는 전기를 좋아했다—을 읽었다. - P20

그 시기에 윌리엄은 자신의 실험실로 출근해서 연구를 했다.
그는 기생충학자였고, 뉴욕대학교에서 오랫동안 미생물학을 가르쳤다. 학교에서는 그가 계속 연구실을 쓸 수 있게 해주었고,조교도 한 명 붙여주었다. 수업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학생들을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그는 자신이 그 일을 아쉬워하지않는다는 사실에 놀랐고ㅡ최근에 내게 해준 이야기다ㅡ생각해보니 자신은 학생들 앞에 설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는데, 가르치기를 그만둔 뒤에야 자신이 정말로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왜 이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가? 그건 내가 결코 몰랐기때문일 테고, 윌리엄 역시 전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매일 아침 열시에 학교로 가서 오후 네시까지 근무하면서, 논문을 쓰거나 연구를 하거나 실험실에서 일하는 조교를 지도했다. 이따금ㅡ일 년에 두 번이었을 것이다ㅡ학술 대회에 참가했고, 같은 분야의 다른 과학자들 앞에서 논문을발표했다. - P24

그러자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고, 나는 베카를 끌어안았다. 크리시가 다가왔고, 딸들은ㅡ내 생각에ㅡ거의 늘 그렇듯 서로를 다정하게 대했다. 두 아이는 항상ㅡ내가보기엔ㅡ거의 부자연스러울 만큼 가깝게 지냈다. 그애들은브루클린에서 서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산다. 나는 그애들의 남편들과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크리시의 남편은 금융계에서 일하는데, 윌리엄과 내게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야이지만, 그건 단지 윌리엄은 과학자고 나는 작가라 우리가 그쪽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영민한 사람이라는 건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한편 베카의 남편은 시인인데,
오 맙소사 가여운 사람, 내 생각에 그는 자기중심적이다. 그 순간윌리엄이 다가왔고, 우리는 누군가가 그를 부르기 전까지 한동안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리를 뜨기 전에 그가 허리를숙이고 말했다. "와줘서 고마워, 루시. 당신이 와줘서 좋았어." - P36

유쾌한 거리감과 온화한 표정을 지닌 그는, 가슴속에 묵직한두려움 덩어리를 지닌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실상은 그보다 더 나빴다. 그의 고양된 유쾌함 이면에는 청소년이나 할 법한 불평불만이 깔려 있었고, 영혼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번뜩였다. 아랫입술을 쑥 내밀고 이 사람 저 사람을 탓하는ㅡ그는 나를 탓했고, 나는 종종 그것을 느꼈다―퉁퉁한 소년같았다. 우리의 현재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뭔가로 나를 비난했고, 나를 "여보"라고 부르면서 커피를 내려ㅡ당시에 그는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았음에도 매일 아침 나를 위해 한 잔을 만들었다ㅡ내 앞에 순교자처럼 내려놓으면서도 나를 비난했다.
그 바보 같은 커피는 그만 됐어, 나는 이따금 외치고 싶었다.
내 커피는 내가 만들어 마실 테니. 하지만 나는 윌리엄이 내민커피를 받고 그의 손을 만지면서 "고마워, 여보" 하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하루를 시작했다. - P37

불빛을 보고 대학 입학 첫날에 나를 태워다준 진로 상담 교사,내시 선생님을 떠올렸다ㅡ오 나는 그녀를 정말로 사랑했다! 그날 선생님은 나를 태우고 달리다가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차를돌려 쇼핑몰로 들어가더니 내 팔을 톡톡 치며 "내려, 내리자" 하고 말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쇼핑몰로 들어갔고, 그녀는 한손을 내 어깨에 올리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십 년 뒤에갚으면 돼, 루시, 알겠지?" 그러고는 내게 옷을 몇 벌 사주었다.
긴소매 티셔츠를 색깔별로 여러 벌 사주고 스커트 두 벌, 블라우스 두 벌을 사주었는데, 그중 한 벌은 예쁜 페전트블라우스였다.
하지만 기억에 가장 많이 남은 것은 선생님이 사준 옷이었고,그것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 P40

내가 그때까지 본것 중 가장 예쁜 작은 속옷 뭉치. 그리고 선생님은 내 몸에 맞는청바지도 사주었다. 그리고 여행용 가방도 사주었다! 베이지색바탕에 붉은색 테두리가 둘린 것이었는데, 차로 돌아갔을 때 그녀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 있어. 여기 안에 전부 담자." 그러더니 차 트렁크 안에 가방을 넣고 연 다음, 옷의 가격표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나는 난생처음 보는 아주 작은 가위 -나중에 그게 손톱 손질용 가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로 잘라냈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 가방 안에 내 물건을 전부 담았다. 그녀가 그렇게 해준 것이다. 내시 선생님이 선생님은 그로부터 십 - P40

년이 안 돼 돌아가셨다. 자동차 사고가 죽음의 원인이었고, 그래서 나는 은혜를 갚을 기회를 잃었으며, 그뒤로 한 번도 그녀를잊은 적이 없다. (캐서린과 함께 쇼핑하러 갈 때마다 나는 내시선생님과의 그날을 생각했다.) 그날 우리가 대학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시 선생님에게 농담처럼 "선생님이 제 엄마인 것처럼 해도 돼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말했다. "그럼, 그래도 되지, 루시!" 내가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진 않았지만, 그녀가 나와 함께 기숙사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해주었으니, 사람들은 선생님이 내 엄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늘-오, 늘! - 나는 늘 그 여인을 사랑할 것이다. - P41

우리는 캐서린을 사랑했다. 오, 우리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우리 결혼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캐서린은 활기가 넘쳤다. 얼굴은 종종 빛으로 가득했다. 내 대학 친구는 그녀를 처음 만난 뒤 내게 말했다. "캐서린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빨리 호감을 느꼈던 사람이야."
나는 그녀의 집이 놀랄 만큼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집은 매사추세츠주 뉴턴의, 나무가 줄지어 심긴 거리에 있었고 근처에는다른 집들도 있었다. 내가 그곳에 처음 갔을 때 햇빛이 부엌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하얀 식탁이 놓인 커다란 부엌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깨끗했다.  - P53

조리대는 하얀색이고, 큰 아프리카제비꽃 한송이가 개수대 위쪽 창가 선반에 놓여 있었다.
개수대 위에 아치형으로 돌출된 수도꼭지는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나는 천국에 들어온줄알았다. 캐서린의 집 전체가 깨끗했다. 거실의 나무 바닥은 광채가 흐르는 벌꿀색이었고, 침실에 달린 흰색 커튼은 풀을 먹인 듯했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그걸 잊을수가 없었다. - P53

그러니 캐서린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러 갔을때 나는 그 집의 우아한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나는 그녀가 사회 계급에서 제법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나는 미국에서의 계급이라는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완전히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건 내가 밑바닥 출신이고, 그렇게 태어나면그 사실은 절대 당신을 진정으로 떠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건내가 정말로 그것을, 내 출신을, 가난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는뜻이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 같다. - P54

예전에 한번은 캐서린이ㅡ윌리엄과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였다ㅡ내게 우리 가족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는 입을 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내가 "말을 못하겠어요" 하고 말하자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귤색 카우치의 내 옆자리에 앉아 두 팔로 나를 안으며 말했다. "오루시." 캐서린은내 팔과 등을 어루만지며 계속 그 말만 했고, 내 얼굴을 자기 목에 갖다댔다. "오 루시." 그날 캐서린은 내게 말했다. "나도 우울해질 때가 있어." 그래서 나는 놀랐다. 내가 아는 누구도, 어떤 어른도 그런 말을 해준적이 없었고 게다가 그녀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캐서린은 나를 다시 안아주었다. 나는 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그런 다정함이 있었다.
- P59

"나는 크리시의 눈물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베카의 눈물에대해서도내가 아이였을 때 부모님은 오빠나 언니나 내가 울면 무조건몹시 화를 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우리가 울지 않을 때도자주 화를 냈고, 우리 중 하나가 울면 두 분 다 우리에게 거의 미친 사람처럼 화를 냈다. 전에도 이 이야기를 썼지만 여기서 다시언급하는 건 몇 년 전 내가 아는 한 여자가 해준 이야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느 수녀가 자기에게 ‘눈물을 흘리는 재능‘이 있다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베카도 가진 재능이다. 심지어 크리시도 필요할 때는 그 재능을 보인다. 내게 운다는 건 대체로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하려는 말은, 나도 울지만 울면서아주 많이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윌리엄은 그걸 잘 받아주었다.
내가 정말로 서럽게 울면, 데이비드라면 겁을 먹었겠지만 윌리엄은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살 때는 한 번도 첫 결혼에서처럼 그렇게 울지는 않았다. 아이처럼 서럽게 흐느끼지는않았다.  - P64

그해에 윌리엄이 내게 책을 읽어주던 게 기억난다. 어린이용책이었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었고, 그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책이었다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한 소년에 대한 내용이었다. 매일 밤 우리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그가 몇 페이지씩 읽어주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다른 무엇보다 윌리엄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가 불을 끄고내 몸에 손을 뻗지 않으면-대부분의 밤에 손을 뻗었다-공포와 상실감을 느꼈다. 나는 그 정도로 그를 원했다. - P72

우리는 윌리엄의 어머니가 회원인 어느 컨트리클럽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의 대학 친구 몇 명과 그의 어머니의 친구들이참석한 아주 작은 결혼식이었고, 결혼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쯤전에 클럽 위층 어느 방에서 드레스를 입던 중에ㅡ내 부모님과언니 오빠는 참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한 뒤로 내게 무언가를 보내지도 편지를 쓰지도 않았다ㅡ나는좀 야릇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설명하기 아주 까다로운데,
이 모든 상황이 완전히 현실 같지는 않다는 그런 느낌과 비슷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윌리엄 옆에 서서 치안판사를 앞에 두고결혼 서약을 할 때는 거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윌리엄은 내가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주려는 듯 큰 사랑과 다정함 - P72

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사라지지않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뒤돌아섰을 때 나는 그의 어머니가 몹시 기뻐하며 손뼉을 치는 것을 보았고, 아마ㅡ확실하지는 않지만ㅡ그 순간 내 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줄곧 어머니를 보고 싶어했을 수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방금 묘사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혼식이 끝나고 열린 조촐한 피로연에서도 내가 정말로 거기 존재한다는 느낌은 들지않았다. 내가 그 자리로부터 제거된 것처럼, 모든 것이 조금 멀리 있는 듯 느껴졌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그리고 그날 밤호텔에서는 평소처럼 남편에게 나를 자유롭게 맡길 수 없었다.
그 느낌이 여전히 내게 머물러 있었다. - P73

진실은 이것이다. 그 느낌은 영영 사라지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와의 결혼생활 내내 나는 그것을 느꼈고밀물과 썰물처럼 오갔다―그 느낌은 정말 끔찍했다. 윌리엄에게,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내 옆에 종종 머물러 있는 은밀하고 조용한 공포였고, 밤에그와 함께 침대에 있을 때도 나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윌리엄이 그걸 알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지만 그는 당연히 알았고, 결혼하기 전 그가 내게 손을 뻗지 않은 밤에 느꼈던 - P73

절망감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결혼해서 살 때 그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수치스럽고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윌리엄이 행복을 덜 느끼게 되고 작은 일에서 마음의 문을닫아버렸기 때문이다. 내 눈앞에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은 덮어둔 채 우리의 삶을 살았다. - P74

어린 시절 나는 언니든 오빠는 거짓말을 하면, 심지어 하지 않았더라도 부모님이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입안을 비누로 씻어야 했다. 그것이 그 집에서 우리에게 일어난최악의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 지금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하려고한다. 우리는 작은 거실의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고, 거짓말을한 사람이 누구건 간에 예를 들어 언니 비키가 거짓말을 했다고 치면-나머지 두 아이, 오빠와 나 중 하나는 언니의 팔을 잡아 누르고 나머지 하나는 언니의 다리를 잡아 눌러야 했다. 그러고 나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접시 닦는 행주를 가져다가, 욕실로가서 그것에 비누를 묻힌 다음 비키가 혀를 내밀면 입안에 행주를 쑤셔넣은 뒤 구역질을 할 때까지 계속 문질렀다.
나이를 먹고 생각하니, 부모님이 이 행위에 나머지 아이들을개입시킨 것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아주 잘 쓴 것 같다. 그 집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그랬듯, 그게 우리를 갈라놓았다. - P81

이걸 한번 이해하려고 해보라.
대형 코르크판이 있고 그 판에 지금껏 살아온 모든 사람의 핀이 꽂혀 있다면, 거기 내 편은 없을 거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나는 내가 투명인간이라고 느낀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깊은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설명하기가 아주어렵다. 그리고 설명하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정으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게 내가 하려는 말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건 내가자랄 때 우리집에는 욕실 세면대 위에 높이 걸려 있던 아주 작은거울 말고는 거울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처럼 단순한 이야기일수 있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주적인 수준에서 나를 투명인간으로 느낀다는 말 외에는. - P82

그러고도 조앤에 대해서는 그뒤로 석 달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조앤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내가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자들에 대해 들을 때도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이미 했었다. 하지만 이 조앤이라는 여자는 수도 없이 우리집에 찾아왔고, 어느 여름 내가 아파서 병원에입원했을 때 내 딸들을 병실로 데려오기도 했으며, 예전부터 남편의 친구이자 내 친구였다.


내 안에서 튤립 줄기가 툭 꺾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튤립은 꺾인 채로 내 안에 남았고, 결코 다시 자라지 않았다.


나는 그후로 좀더 진실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P98

데이비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이야기를읽는 당신도 이 사실은 알아야 할 것 같아 말하려 한다.
윌리엄 말고는 내게 집이 없었다고 말할 때 그건 사실이다. 데이비드는 이 얘기는 이미 했지만 하시드파 유대인이었고,
시카고 근교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는 열아홉살 때 그공동체를 떠났고 추방된 채 살았으며, 거의 사십 년 뒤 누이가연락해올 때까지 가족과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당신이 알아야할 것은,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이 그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둘다 자라면서 바깥세상의 문화를 접하지못했다. 우리 둘 다 자랄 때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다.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도 모호하게만 알다가 나중에 스스로 깨우쳤다. 우리가 성장한 시기에 유행한 노래를 알았던 적도 없었고ㅡ들어 - P100

본 적이 없었으므로ㅡ더 자랄 때까지는 영화를 본 적도 없었으며, 일반적으로 쓰이는 관용구를 알았던 적도 없었다. 그렇게 바깥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자란다는 게 어떤 것인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집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ㅡ둘 다 그렇게 느꼈다ㅡ스스로가 뉴욕시티의 전화선 위에 내려앉은 새들 같다고 느꼈다.
이 남자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말하겠다!
데이비드는 키가 작았고, 어린 시절 사고로 한쪽 골반이 반대쪽보다 더 올라가 있어서 심하게 절뚝거렸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그는ㅡ키가 크지 않았기에ㅡ약간 과체중이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가 윌리엄과는 ㅡ거의ㅡ이보다 더 다를 수는 없다 싶을 만큼 딴판으로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윌리엄과결혼했을 때 내게 일어난 반응이 데이비드와는 전혀 일어나지않았다. 내가 하려는 말은 데이비드의 몸이 늘 내게 엄청난 위로가 되어주었다는 말이다. 맙소사, 그 남자는 내게 위로의 존재였다. - P101

내 어머니와 관련된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은 이미 썼고, 어머니에 대해서라면 정말로뭐든 더는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려면 몇 가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몇 가지란 이것이다.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폭력 이외의 방식으로 접촉한 기억은 전혀 없다. 어머니가 사랑한다. 루시, 하고 말한 것을 들은 기억도 없다.  - P105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캐서린은 내게 뭘 갖고 싶은지물었다. 나는 서점 상품권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서점으로 가서책을 몇 권 산다고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들떴다.
내 생일에 그녀는 나를 바깥 차고로 데려가 골프채가 들어 있는가방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생일 축하한다." 그녀가 두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네 골프 세트야." - P109

그때 이후로 나는 내 일 때문에 세상을 돌아다녔고ㅡ책이 출간되자 외국 출판사들이 나를 초대했고 세상 곳곳에서 페스티벌이열렸다 그러니까 그때 이후 아주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비행기일등석에 탔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칫솔과 치약과 안대가 들어있는 작은 키트를 준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숱하게 경험했다.
삶이란 얼마나 신기한가. - P117

우리 사회에는 이럴 때 엄마들이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의사누구? 엄마가 같이 갈까? 정확히 문제가 뭔데? 하고 말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 문화에선 그렇지 않다. 나는청교도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님 두분 다 청교도 집안 출신이며ㅡ그분들은 그걸 자랑스러워했다ㅡ우리는 서로 그런 식으로대화하지 않았다.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집에서는 대화 자체가많지 않았다.
하지만 헤어질 때 나는 늘 그러듯 딸들에게 키스했고, 아이들과 헤어질 때는 매번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이번에는 심장이 약간더 많이 아팠다.
행운을 빌어요! 행운을 빌어요!" 아이들이 길 건너 계단을 내려가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면서 내게 소리쳤다. "연락 주세요.
소식 알려주세요! 안녕, 엄마! 안녕, 엄마!" - P119

나는 윌리엄과 라과디아공항에서 만났는데, 멀리서부터 그를알아보았고, 그의 카키 바지가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그 사실에마음이 조금 아팠다. 그는 로퍼를 신었고, 양말은 파란색으로진청도 아니고 연청도 아니었는데, 바지 밑단 아래로 몇 인치가드러나 보였다. 오 윌리엄, 나는 생각했다. 오윌리엄!
그는 몹시 지쳐 보였다. 눈 주위에 다크서클이 드리워 있었다.
그가 말했다. "안녕, 버튼." 그러더니 내옆에 앉았다. 바퀴 달린작은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왔는데, 두 가지 색조의 짙은 갈색이었다. 내가 알기로 비싼 것이었다. 그는 나의 바퀴 달린 강렬한보라색 가방을 쳐다보았고, 이어 말했다. "정말로 이런 걸?"
"오 그만." 내가 말했다. "이건 결코 잃어버릴 일이 없어."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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