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좋을대로


어느 기고자가 나를 "부정적"이고 "언제나 무언가를 공격하는 사람이라며 꾸짖었다. 사실 우리는 크게 기뻐할 일이 별로 없는 시대를 살고있다. 하지만 나는 칭찬할 게 있을 땐 기꺼이 칭찬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여기서 울워스‘에서 산 장미에 대한 칭찬 몇 줄을 적어볼까 하는데,
지나간 일에 대해서라는 건 유감이다.
울워스의 물건값이 6페니를 넘어가는 게 없던 좋은 시절, 가장 괜찮은 것 중 하나가 장미였다. 그것들은 아주 어린 묘목이었지만 두 번째해가 되면 꽃이 폈는데, 내 경우엔 한 그루도 죽은 적이 없다. 제일 재밌는 건 꼬리표가 맞게 붙은 장미는 아예 없거나, 있어도 극히 드물었다는점이다. 한 번은 ‘도로시 퍼킨스‘ 장미인 줄 알고 산 게 피고 보니 속이노란 예쁜 백장미였는데, 내가 본 덩굴장미 중에서 최고였다. 노랑 폴 - P175

리앤사 장미라는 꼬리표가 붙은 건 피고 보니 짙은 빨강이었다. 또 한번은 앨버턴 장미라고 해서 산 게, 앨버턴을 닮긴 했지만 꽃잎이 더 많아 아주 화사했다. 이 장미들은 하나같이 깜짝 과자 봉지 같은 재미를선사했고, 언제나 뜻밖의 새로운 품종이 나타나 별난 이름을 붙여봄 직한 기회를 누리게 해주었다.
지난여름 나는 전쟁 전에 살던 작은 시골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내가심을 땐 아이들 새총보다 크지 않았던 조그만 백장미가 거대하고 왕성하게 우거져 있었고, 앨버틴 또는 그 비슷한 무엇은 분홍 꽃송이를 구름처럼 터뜨린 채 울타리 절반을 뒤덮고 있었다. 둘 다 내가 1936년에 심은 것들이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전부 겨우 6 페니 주고 산건데!" 였다. 나는 장미가 얼마나 오래 사는지 알지 못한다. 평균수명이 10년은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덩굴장미는 해마다 한달 내지 6주 동안 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고, 덤불장미는 적어도 넉달에 걸쳐 꽃이 피고 지기를 거듭할 것이다. 전부 겨우 6 페니 주고 산것이었다. 전쟁 전 기준으로 플레이어‘ 담배 10개비, 마일드 생맥주 한잔반, <데일리 메일 일주일 구독료, 공기 텁텁한 극장에서 보는 영화20분 정도에 해당하는 값이었으니! - P177

민족주의 비망록


바이런은 어디선가 ‘롱괴르 longueur‘라는 프랑스어 단어를 쓰면서지나가는 말로, 영국에는 딱히 그런 ‘단어‘는 없지만 그런 ‘개념‘은 상당히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리 습성 중에는 워낙 두루 퍼져 있어서 거의 모든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면서도 아직 이름은 없는 게 존재한다. 그런 것 중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나는 ‘민족주의nationalism‘라는 단어를 골라봤다. 단,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민족주의가 일반적인 의미와는 좀 다르다는 건 잠시뒤에 밝히도록 하겠다. 그것은 내가 민족주의라는 말로 이야기하고자하는 감정이 민족nation이라는 것, 즉 단일한 인종이나 지리적 영역에만 속하는 건 아니라는 점만으로도 그렇다. - P179

우선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인류를 곤충 분류하듯 나눌수 있으며 수백만이나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싸잡아 좋으니 나쁘니 하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습성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는(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신을 단일한 나라 또는 다른 집단과 동일시하되, 그것을 선악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습성을 뜻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를애국주의와 혼동해선 안 된다. 두 단어 모두 대개 아주 모호하게 쓰이고있기 때문에 어떤 정의든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대립되는 개념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애국주의patriotism‘ 란 특정 지역과 특정 생활양식에 대한 애착이며,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 믿되 남들에게강요할 마음은 없는 것이다. 애국주의는 속성상 군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방어적이다. 그에 비해 민족주의는 힘에 대한 욕구와 분리할 수 없다. 모든 민족주의자의 변치 않는 목적은 더 많은 세력과 위신을 확보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고서 섬기기로 한 나라로 또는 다른 어떤 집단을 위한 일이다. - P180

이런 개념은 독일이나 일본 등의 나라에서 있었던 보다 악명 높고 알아보기 쉬운 민족주의 운동에 적용하면 모든 게 명백해진다. 바깥에서볼 수 있는 입장에서 나치즘 같은 현상과 대면할 경우, 그것에 대한 의견은 거의 모두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앞서 언급한 말을되풀이해야 한다. 즉, 내가 ‘민족주의‘ 란 단어를 사용하는 건 더 나은말이 없기 때문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보다 확대된 의미의 민족주의는 공산주의, 정치적 가톨릭주의, 유대주의, 반유대주의, 트로츠키주의, 평화주의와 같은 운동과 경향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반드시 어느 정부나 국가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조국‘
에 대한 충성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집단이 실제로 꼭 존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분명한 예로 유대민족, 이슬람,
기독교계, 프롤레타리아, 백인종을 들 수 있는데, 모두 열렬한 민족주의적 감정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중대한 의문점일 수 있으며, 그중 어느 하나에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정의가 없다. - P181

모든 민족주의자는 과거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자기 시간의 일부를 역사적 사건이 자기가 바라는 대로 일어나는 공상의 세계(이를테면 스페인 무적함대가 승리를 거두거나 러시아혁명이 1918년에 분쇄되는 세계)에서 보내며 이 세계의 단편들을 가능한 한 역사책에다옮겨놓으려고 한다. 우리 시대 선전선동가의 저술 중 상당수는 노골적인 허위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사실은 억압당하고, 날짜가 바뀌어버리며, 인용은 맥락이 제거되고 조작되어 의미가 달라져버린다. 일어나지말았으면 싶은 사건들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가 결국 부인되고 만다. - P192

객관적 사실에 대한 무관심은 세상의 일부가 다른 일부로부터 완전히차단되는 바람에 더욱 부추겨지며, 그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다보면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정말 벌어지고 있는지를 의심하는 경우도 흔히 생겨나곤 한다. 예를들어 지금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수백만 아니 수천만 단위로도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계속해서 보도되는 참화들(전투, 학살,
기근, 혁명)은 일반인들에게 비현실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그들로선 사실을 검증할 만한 방법이 없고,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도 어려우며, 항상 각기 다른 출처에서 비롯된 서로 완전히 다른 해석들만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 P193

지금까지 나름의 분류를 해봤는데, 내가 좀 과장도 하고, 지나친 단순화도 하고, 근거 부족한 추측도 하고, 그럴싸한 동기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 에세이에서 내가 따로 떼어놓고 규명하고자 한 경향들은 우리 모두의 심리에 존재하면서 우리의 정상적인 생각을 방해하는데, 그게 딱히 순전한 상태에서발생하거나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대목에선 내가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어느 정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먼저, ‘모두가 아니면 모든 지식인이 민족주의에감염된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 P202

지금까지 나는 민족주의자가 이렇게 한다느니 저렇게 한다느니 하는얘기를 했다. 그것은 마음속에 중립지대라곤 없으며 세력 투쟁 외에는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극단적이고 거의 광적인 민족주의자를 예로들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런 사람은 실제로 꽤 흔하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애써 언급할 가치는 없다. 실생활에서 엘튼 경이나 ID. N. 프릿Pritt,
휴스턴 준남작 부인, 에즈라 파운드, 반시타트Vansittart 경, 코린Coughlin 신부 등과 같은 지겨운 족속들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지만,
그들의 지적 결함은 여기서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다. 편집은 재미가없으며, 상대적으로 더 고집불통인 민족주의자치고 몇 년 뒤에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는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어느정도 악취를 제거하는 노릇을 한다.  - P203

이 모든 사실들은 각 당사자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때에는 명명백백하다. 하지만 각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그런 사실은 ‘용인‘이 불가능한 것이므로 부인되어야 하며, 그런 부인을 바탕으로 잘못된 가설이 세워진다. 앞에서 언급한 지금 전쟁의 잘못된 군사적 예측 이야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내가보기엔 지식인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전쟁의 진척 상황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게 더 많으며, 그것은 그들이당파적인 감정에 더 휩쓸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은 것 같다. 예컨대일반적인 좌파 지식인들은 1940년엔 전쟁은 이미 진 셈이라 여겼으며,
1942년엔 독일이 이집트를 차지할 것이라 믿었고, 일본은 점령한 땅에서 절대 밀려나지 않을 것이며 영미 연합군의 폭격은 독일에 별 인상을남기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 P205

그렇게 믿었던 건, 영국 지배계급에 대한미움이 워낙 커서 영국의 계획이 성공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감정에 휩싸인다면 어떤 바보짓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다. 예컨대 나는 미군이 유럽에 진주한 게 독일군과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국의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서였다는 발언을확신을 갖고서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식의 말을 믿는 사람은 틀림없이 지식층에 속할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그런 바보 같은 말을 믿을리가 없다.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정보부 관리들은 러시아가6주 안에 점령당할지 모른다는 경고를 일종의 ‘배경 지식‘으로 내놓은바 있다. 그에 비해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의 매 국면을 러시아의 승리로여겼으며, 러시아인들이 거의 카스피 해로 내몰리고 포로 수백만 명이 - P205

목숨을 잃을 때조차도 그랬다. 더 많은 사례를 예로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요는 두려움, 증오, 질투, 그리고 세력에 대한 숭배가 개입되자마자, 현실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무엇이옳고 그른가에 대한 감각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우리‘ 편이 저지른 짓이면 어떤 범죄도 용서받지 못할 게 없다.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걸부인하지는 않는다 해도, 다른 경우엔 비난했던 범죄가 똑같이 저질러졌다는 걸 알았다 해도, 그것이 부당하다는 걸 지적인 차원에서 인정한다 해도-그것이 잘못됐다고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충성이 개입되면 연민이 기능을 멈춰버리는 것이다.
민족주의란 게 생겨나고 확산되는 이유는 여기서 제기하기엔 너무나큰 주제다. 영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양상으로 보건대 민족주의는 외부 세계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싸움의 왜곡된 반영이라고, 민족주의가 더없는 우매함을 낳은 건 애국주의와 종교적 신앙이붕괴된 탓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 P206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일종의 보수주의나 정치적 정적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이를테면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에 대한 일종의예방책이고, 군주제는 독재 정권에 대한 보호 장치이며, 조직화된 종교는 미신에 대한 안전장치라는 주장이 그럴듯해지는 것이다(어쩌면 옳을지도 모른다). 편파적이지 않은 관점이란 불가능‘ 하며, ‘어떤‘ 신조나 대의든 다를 바 없는 거짓과 우매와 야만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나올 수 있다. 그리고 정치는 아예 멀리해야 한다는 근거로 그런 주장이흔히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의 세계에서는 지식인이라 할 만한 그 누구도 무관심해진다는 의미에 - P206

서 정치를 멀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나는 지식인이라면 정치에(넓은 의미의 정치를 말한다) 개입할 수밖에 없으며 나름의 선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즉, 똑같이 나쁜 수단과 더불어 제시된다 하더라도, 어떤 대의가 다른 대의보다는 객관적으로 낮다는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민족주의적 애증에대해 다시 말하자면, 그런 애증은 우리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우리들 대부분이 가진 기질의 일부인 것이다. 그런 기질을 없앤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은 가능하며 그런 투쟁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노력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과연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감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는 문제이며, 그다음으로는 불가피한 편견의 여지를 두느냐의 문제다.  - P207

러시아를 증오하고 두려워한다면, 미국의 부와 세력을 부러워한다면, 유대인을 경멸한다면, 영국 지배계급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고 있다면, 그런 감정을 생각만으로는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인식할 수는 있으며, 그것 때문에 사고 과정이 오염되는 일은 방지할 수 있다. 피할 수 없으며 어쩌면 정치적 행동을 위해 필요하기까지한 정서적 충동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병존할 수 있어야 한다.
단, 거듭 말하지만 거기엔 도덕적 노력이 요구되는데, 우리 시대의 주요한 문제에 대하여 최소한 죽어 있지는 않은 동시대 영국문학만 놓고봐도 우리들 가운데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이는 너무나 적다는 걸 알수 있다. - P207

그게 사실이었다면 역사의 모든 흐름은 갑자기 바뀌었을 것이다. 대국과 소국의 차이는 사라졌을 터이고, 국가가 개인에게 갖는 힘은 크게 약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의 발언과 그에 대한 다양한 논평으로 보건대 원자탄은 터무니없이 비싼 무기인 듯하다. 그리고그것을 제조하는 데 어마어마한 산업적 노력이 필요해서 만들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서너 국가밖에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원자탄의 발명이 역사를 역전시키기는커녕 지난10여 년 동안 명백해 보였던 추세를 강화할 뿐이라는 의미일 수 있기때문이다.
문명의 역사는 대체로 무기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주장은 이제는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특히 화약의 발명과 부르주아에 의한 봉건제 전복의 연관성은 누차 지적된 바 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일반적인 사실로 판명될 것이라 생각한다. - P210

과학은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무엇을 뜻한다. 달리 말해 과학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그래프나 시험관, 천칭, 분젠버너, 현미경 같은 그림을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생물학자, 천문학자, 어쩌면 심리학자나 수학자까지도 과학 하는 사람‘으로 불리는데, 누구도 그 말을 정치인이나 시인, 언론인, 심지어 철학자에게도 적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자라나는 세대에게 과학교육을 더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예외 없이, 더 정확히 생각하는 법보다는 방사능이나 천체나 자기 몸의생리에 대해 더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어의 의미가 애매모호해진 것은 어느 정도 의도적이기도 하거니와 그 자체로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과학교육을 더 해야 한다는요구에는, 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모든 분야에 대하여 더 현명한 접근을 하게 된다는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테면 과학자의 정치적 견해는, 사회학적인 문제나 도덕, 철학,
심지어 예술에 대한 견해도 일반인에 비해 나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것이다.  - P216

그렇다면 그런 협소한 의미의 ‘과학자‘가 비과학적인 문제에 대하여남들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별로 없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를테면민족주의를 견디는 능력이 그렇다. 막연하게 과학은 국제적‘ 이란 말을흔히들 하지만, 실제로 만국의 과학 종사자들은 작가나 예술가에 비해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며 자국 정부 쪽에 줄을 선다. 독일의 과학계 전반은 히틀러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독일 과학계의 장기적인 전망을 망쳐버렸는지는 모르나, 합성석유나 제트기, 로켓, 원자탄 같은 것들에 대하여 필요한 연구를 할 재능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들이 없었다면 독일의 군수품들은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 P217

100년 전에 찰스 킹즐리는 과학을 실험실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일"이라고 했다. 1~2년 전에 젊은 공업화학자 한 사람은 내게 잘난체하며 자기는 "시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추가 왔다갔다하는 셈인데, 내가 보기엔 어느 쪽도 더 나은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지금 현재 과학은 오름세에 있고, 그래서 우리는 대중이 과학교육을 더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마땅히 듣게 된다. 그러니 반대로 과학교육을 적게 하는 게 과학자들 자신에게 오히려 이롭다는 주장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미국의 한 잡지에서 영국과 미국의 많은 물리학자들이 원자탄 연구를 애초부터 거부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그것이 어디에 쓰일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치광이들의 세상 속에이렇게 정신 멀쩡한 사람들도 있다. 구체적으로 거명된 건 아니지만, 나는 그들 모두가 일종의 종합적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역사나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식견을웬만큼 갖춘, 간단히 말해 지금 쓰이고 있는 뜻에서 순전히 과학적이지만은 않은 데에도 흥미를 느낄 줄 아는 이들일 것이다. - P219

수백 명이 모인자리에서 (아마도 그중 절반은 문필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들이었으리라) 언론의자유 문제를 건드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게 무언가를 뜻하기나 한다면, 달리 말해 무언가를 비판하고 반대할 자유를 뜻한다면 말이다. 의미심장한 건, 정작 기념한다는 팜플렛을 인용하는 연사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전쟁 동안 이 나라와 미국에서 ‘살해 당한 여러 책들에 대한언급도 전혀 없었다. 최종적인 결과만을 놓고 말하자면, 이 대회는 검열에 찬성하는 시위였던 것이다."
3하지만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우리 시대에 지적인 자유라는 개념은 두 방향으로부터 이미 공격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에는 이론적 적인 전체주의 옹호자들이 있고, 또 한쪽에는 직접적이고 실질적 적인독점과 관료 지배 체제가 있다. 게다가 성실성을 지키고자 하는 작가나저널리스트라면 적극적인 박해보다는 사회의 대세 때문에 좌절당하고만다.  - P222

지난 10년 동안 지속된 전쟁 분위기 (그로 인한 왜곡 효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를 들 수 있다. 우리 시대엔 모든 게공모하여 작가를, 또 그 밖의 모든 예술가를 하급 관리로 만들어버린다.
그리하여 위에서 내려준 주제만을 다루도록 하며, 사실의 전모全貌로 보이는 것들을 절대 언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가 이런 운명에 저항하며 발버둥을 친다 해도 자기편의 도움을 받을 수조차 없다. 그가 옳다는 확신을 심어줄 규모 있는 여론 자체가 없는 것이다.  - P223

전체주의 국가들이 행하는 조직적인 거짓말은, 이따금 주장되는 것처(183)럼 군사적인 속임수와 같은 성질의 임시방편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주의에 필수적인 무엇이며, 강제수용소와 비밀경찰이 더 이상 필요하지않게 된다 해도 계속될 무엇이다. 지적인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지하의전설처럼 떠도는 얘기가 있다. 러시아 정부가 지금은 거짓 선전이나 조작된 재판 같은 것들을 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을 몰래 기록하고 있으며때가 되면 그것을 공포하리라는 것이다.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심성은, 과거란 바뀔 수 없으며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당연히 값진 것이라 믿는 자유주의 역사가의 심성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배우기보다는 창조해야 하는 무엇이다. 전체주의 국가는 사실상 신정국가이며, 그 지배계급은 자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결코 실수가 없는 존재로 인식되어야 한다.  - P228

지금까지 나는 문학 전반이 아니라 정치 저널리11즘 분야에 대한 검열의 영향만을 다루었다는 인상을 심어준 것인지도모른다. 만일 소련이 영국 언론에서 일종의 금단의 영역이라는 것을, 폴란드나 스페인내전이나 독소불가침조약 같은 문제는 심각한 논의의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통념과 상충되는 정보를 입수했을 경우 그것을 왜곡하거나 함구하는 것을 모두 당연시한다 하더라도, 보다 넓은의미의 문학이 굳이 영향 받을 필요가 있는가? 모든 작가가 정치인이고, 모든 책이 단도직입적인 ‘르포‘ 일 수밖에 없는가? 아무리 엄혹한독재 치하라고 해도, 작가 개개인은 내면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며, 통념을 벗어난 자기 생각을 어리석은 당국에 간파당하지 않을 정도로 걸러내거나 위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설령 작가 자신이 통념에동의한다 하더라도, 왜 통념 때문에 속박당한다는 느낌을 굳이 받아야하는가? 문학은 아니 그 어떤 예술도 견해의 큰 충돌이 없으며 예술가와 일반 대중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는 사회에서 가장 번성하기 마련아닌가? 모든 작가는 반항아라고, 심지어 그 자체로 예외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야만 하는가? - P230

하지만 전체주의는 신앙의 시대보다는 정신분열의 시대를 약속한다.한 사회는 그 구조가 노골적으로 인공적인 것이 될 때, 달리 말해 지배계급이 그 기능은 잃었지만 강압이나 사기로 권력을 고수하는 데 성공할 때 전체주의화 된다. 그런 사회는 아무리 오래간다 한들 관대해지거나 지적으로 안정될 여유를 가질 수 없다. 문예창작에 요구되는 사실의정확한 기록도, 감정적 진실도 결코 허용할 수 없다. 하지만 전체주의에의한 타락이 꼭 전체주의 국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생각이 유행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독이 퍼질 수 있으며, 그 때문에 문학적인 목적으로 쓸 수 없는 주제들이 잇따라 생겨나게 되는 까닭이다. 강요된 통념이 있으면(흔히 그러하듯 두 가지 통념이 있어도) 어디서든 좋은 글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 P233

전체주의가 운문에 끼치는 영향이 산문에 끼치는 것만큼 치명적인지는 확실치 않다. 단, 왜 권위주의 사회에서 산문작가보다는 시인이 좀더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일련의 이유들이 있다. 먼저, 관료나 그 밖의 ‘현실적‘ 인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하는 말에 너무심취하는 시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시인이 하는 말은즉 그시를 산문으로 풀이할 경우 뜻하는 바는 시인 자신에게도 상대적으로 덜중요한 것이다. 한 편의 시에 담긴 생각은 언제나 단순하며, 그 생각이시의 주된 목적이 아닌 것은 한 폭의 그림이 담은 일화가 그림의 주된 목적이 아닌 것과 같다. 그림이 붓 자국의 배열이라면, 시는 소리와연상의 배열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시는 노래의 후렴 같은 짧은 토막에서의미를 완전히 무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시인의 입장에서 위험한 주제와 거리를 두고 이단적인 발언을 피하는 건 꽤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발언을 한다 해도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할 수 있다.  - P234

물론 인쇄물은 계속해서 이용될 텐데, 완고한 전체주의 사회에서 어떤 유의 읽을거리가 살아남을지 추측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신문은 아마도 텔레비전 기술이 더 고도화될 때까지 존속할 것이나, 산업화된 나라의 다수 대중이 신문 외에 어떤 유의 읽을거리를 필요로 할지는지금도 의문스럽다. 아무튼 그들은 읽을거리에 대해선 몇몇 다른 취미에 드는 만큼의 돈을 쓸 의향이 조금도 없다. 아마 소설은 장·단편을 막론하고 영화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완전히 자리를 내추고 말 것이다.
아니면 인간의 자주성을 극도로 축소시키는 컨베이어 벨트식 제작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모종의 저급하고 자극적인 소설이 살아남을지도모른다. - P236

제작 방식에서 그보다 훨씬더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주 싼 잡지의 단편소설 연재물, 그리고시다. <작가> 같은 신문들에는 문예학교 광고들이 넘쳐나는데, 하나같이 한번에 몇 실링만 내면 이미 짜놓은 플롯을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플롯과 더불어 각 장의 첫 문장과 끝 문장도 제공한다고 한다. 직접 플롯을 짤 때 쓸 수 있는 공식 같은 걸 알려주겠다는 학교들도 있다. 인물과 상황이 적힌 카드를 몇 벌 제공하며, 그것들을 섞어서 맞추기만 하면 기발한 이야기가 절로 만들어진다고 하는곳도 있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문학은 아마도 이런 식으로 생산될 것이다. 문학이란 게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말이다. 글쓰기 과정에서 상상력은(어쩌면 의식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책은 관료들에 의해 다종다양하게 계획될 것이며, 워낙 많은 손을 거침에 따라 완성될 때면 조립라인 끝에 나오는 포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개인의 작품이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 무엇이든 쓰레기일 터임은 말할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쓰레기가 아닌 건 무엇이든 국가의 체계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 P237

하지만 자연과학이나 음악이나 미술이나 건축이 어떻게 되든 간에,
사상의 자유가 말살된다면 문학의 운명은 (내가 지금까지 밝히려고 한 바와같이) 암울할 게 확실하다.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만그런 게 아니다. 전체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작가, 박해와 현실 조작에 대해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작가,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이는 작가도 같은 운명인 것이다. 그 길로 접어들면 헤어날 방법이 없다. ‘개인주의‘와 ‘상아탑‘을 비난하는 어떤 장광설도 ‘참된 개성은 공동체와의 합일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식의 경건하고 상투적인어떤 주장도,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이라는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어느 순간에 자발성을 갖게 되지 않는 한, 문학 창작은 불가능하며 언어자체가 굳어져버린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인간의 정신이 지금의 것과완전히 다른 무엇이 된다면, 우리는 문학 창작과 지적 정직성을 분리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가 아는 것은,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을 부인하는지금 소련에 대한 거의 모든 찬사에는 그런 부인이 내재되어 있다) 작가나 언론인은 실은 자신의 파멸을 요구하고 있는셈이다. - P240


"물속의 달"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펍물속의 달‘은 버스정류장에서 겨우 2분 거리이지만 샛골목에 있어서, 술주정뱅이들이나 무뢰한들이 토요일 밤이라해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하는 것 같다.
이집 손님들은 꽤 많긴 해도, 대부분이 매일 저녁 같은 자리에 앉는맥주 못지않게 대화를 즐기려고 오는 단골들이다.
어떤 펍을 특별히 왜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맥주 얘기부터 하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내 경우엔 "물속의 달‘이 제일 마음에 드는 건흔히들 말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먼저, 이 집의 건축과 인테리어는 타협 없는 빅토리아 양식이다. 유리판 테이블이나 그 밖의 현대식 재앙도 가짜 보도, 벽난로 옆의 벽감도, 참나무 흉내를 낸 플라스틱 패널도 없다. 나뭇결을 잘 살린 목공품,
바 뒤편의 장식 유리, 무쇠 벽난로, 담배 연기에 검누르게 변한 화려한 - P249

천장, 벽난로 장식으로 붙어 있는 박제 소머리-이 모든 게 볼품은 없어도 견고하고 편안한 19세기식이다.
겨울에는 적어도 바 두 곳은 벽난로 불이 좋고, 공간 배치가 빅토리아양식이라 여유가 있다. 일반 바, 살롱 바, 여성용 바가 있고, 집에서 저녁 먹을 때 곁들일 맥주를 남들 다 보는 데서 사는 게 수줍은 사람들을위한 병맥주 판매 코너가 따로 있으며, 위층에는 식당이 있다.
게임은 일반 바에서만 할 수 있다. 때문에 다른 바에서는 날아다니는다트화살을 피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오가지 않아도 된다.
"물속의 달‘은 언제나 조용해서 대화를 나누기가 좋다. 이곳엔 라디오도 피아노도 없으며,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특별한 날에도 노래를 점잖게들 부른다. - P250

여름날 저녁이면 여기서 가족 파티가 열린다. 그럴 땐 누구라도 플라타너스 밑에 앉아, 미끄럼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이 신나서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맥주나 생사과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아기들이 타고 온유모차는 문 가까이에 세워두면 된다.
"물속의 달‘은 장점이 많지만, 내 생각에 제일 훌륭한 건 바로 이 뜰이다. 아빠만 밖에 나가고 엄마는 집에 남아 아기를 봐야 하는 대신 온가족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아이들은 뜰에만 입장이 허용되지만, 펍에 슬며시 들어가서 부모가 마실 술을 가져오는 수도 있다. 그건 아마 불법이겠지만, 그런 법이야 어겨도 될 만하다.  - P251

그런데 이제는, 명민하고 냉정한 독자라면 이미 간파했을 무언가를밝힐 때가 되었다. "물속의 달‘ 같은 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런 이름을 가진 펍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곳에 대힘 모르며, 그런 장점들만 두루 갖춘 펍이 진짜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맥주는 맛있지만 끼니는 때울 수 없는 펍을, 끼니를 때울 순 있지만시끄럽고 북적북적한 펍을, 조용하지만 맥주가 영 시원찮은 펍을 알긴한다. 뜰이 있는 펍은 런던에서 내가 아는 데는 세 곳뿐이다.
하지만 "물속의 달‘에 근접하는 펍을 몇 군데 알긴 한다고 해야 더 공평할 것이다. 앞에서 나는 완벽한 펍이 갖추어야 할 점 열 가지를 언급했는데, 그중 여덟 가지를 갖춘 펍 하나를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흑생맥주와 도자기 머그잔만은 없다.
흑생맥주와 장작불을 제대로 때는 벽난로, 저렴한 요깃거리, 뜰, 인자한 여자 바텐더가 있고 라디오는 없는 펍을 아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정말 좋겠다. 그런 데라면 이름이 ‘빨간 사자‘ 기찻길 문장처럼 무미건조한 곳이어도 좋을 것이다. - P253

정치와 영어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영어란 언어가 위중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우리가 나서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임을 그러니 우리 문명이 퇴폐적인 만큼 우리 언어도 어쩔 수 없이 전반적으로 함께 몰락하게 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 그래서 언어를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한 저항은 옛것을 선호하는 감상적 취향으로, 전깃불보다 촛불을 좋아하고 비행기보다 마차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런 주장의 근지에는 언어란 자연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우리 나름의 목적을 위해만들어나갈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는 반쯤은 의식적인 믿음이 깔려있다.
그런데 한 언어의 쇠락에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원인이 - P255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저런 작가들 개개인이 나쁜 영향을 끼친 탓만으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원인으로 작용하여 본래의 원인을 강화하는 바람에 더 심한 결과를 초래하는 식의 과정이 무한히 반복될 수도 있다. 자신이 실패자라는 기분에 술 마시는 버릇을 들인 사람이 술을마시는 바람에 더더욱 실패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어의 경우에도 그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어리석어 영어가 고약하고부정확해지지만, 언어가 단정하지 못해 생각이 더 어리석어지기 쉬운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이런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영어에는, 특히 글로 표현되는 영어에는 나쁜 습관이 너무많고 그것이 모방되어 퍼져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마땅한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피할 수 있는 습관이다. 그런 습관을 제거한다면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으며, 생각을 명료하게 한다는 건정치적 개혁에 필요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 P256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산문의 경우,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생각할경우 먼저 단어로 표현하지 말고 생각부터 해보자. 그런 다음 머릿속에그려본 것을 묘사하고 싶다면, 거기에 맞을 듯한 정확한 단어를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무언가를 생각할 경우엔 애초부터 단어를선택하는 쪽에 끌리기가 더 쉽다.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존의 표현법이 마구 밀려들어 대신 작업을 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의미가 흐려지거나, 심지어 바뀌어버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가능한 한 단어 사용을 미루고서 심상이나 감각을 이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뜻을 최대한 분명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지 싶다. 그런 다음 뜻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을택할 수 있을 것이고(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P276

그 이후에 반대로 자신이 택한 낱말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인상을 줄 것인지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공을 들이면 진부하거나 뒤섞인이미지. 이미 만들어진 어구, 불필요한 반복, 그리고 허튼소리와 막연함을 대체로 피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글 쓰는 사람이 단어나 문구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느끼는 경우가 흔히 있으니, 직관이 통하지 않을 때는기댈 만한 원칙이 필요하다. 나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대부분의 경우에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 P276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맨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이런 원칙들은 기본처럼 들리며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 유행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데 적응해온 사람에게는 엄청난 태도 변화를요구한다. 그리고 이들 원칙을 다 지킨다 해도 여전히 나쁜 영어 문장을쓸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에세이 맨 앞에서 내가 인용한 다섯 표본 같은글은 안 쓰게 될 것이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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