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깜깜할 때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젖은 채로, 소총과 탄약통까지 들고는 절대 될 수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오십 명에서 백 명 가량 되는 무장 군인들이 쫓아온다고 생각하니 언제라도 뛸 수 있다는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빨리 뛸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빨리 뛸 수도 있었다. 열심히 달아나고 있는데 마치 한 줄기 유성 같은 것이 빠른 속도로 내 옆을 스쳐갔다. 전진시 나보다 앞서 나아갔던 세 명의 스페인 병사였다. 그들은 아군 흉벽에 돌아가서야 발을 멈추었고, 나는 그때서야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는 다섯 명이 뭉쳐있으면 눈에 잘 띄어도, 한 명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을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다시 수색에 나서기로 했다. 나는 적의 외곽 철조망까지 갔다. 최선을 다해 그곳을 수색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수색은 아니었다. 줄곧 기어다녔기 때문이다. 호르헤나 히들스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기어서 돌아왔다. 호르헤와 히들스톤은 가장 먼저 응급 치료소로 후송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호르헤는 어깨에 경상을 입었고히들스톤은 심한 부상을 당했다. 그의 왼쪽 팔을 관통한 총알이뼈를 몇 조각으로 부수어 버렸다. 그렇게 꼼짝 못하고 땅바닥에누워 있는데 옆에서 또 다른 수류탄이 터지며 그의 몸의 다른부분들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다행히 그는 회복되었다. - P134
날이 많이 밝아졌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계속 내리는 비처럼 전선 몇 킬로미터에 걸쳐 무의미한 사격이 계속되면서 귀에 거슬리는 큰소리를 냈다. 모든 것이 황량해 보였다. 진흙으뒤덮인 늪지, 흐느끼는 포플러, 참호 바닥에 고인 황톳물. 지친 병사들의 얼굴은 면도를 못해 꺼칠했고, 뺨에는 흙탕물이줄줄 흘러내렸으며, 연기 때문에 눈까지 시꺼멨다. 개인호로돌아왔을 때 나와 참호를 함께 쓰는 세 사람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군장을 그대로 걸친 채였다. 진흙 범벅인 소총도 꼭움켜쥐고 있었다. 모든 것이 비에 젖었다. 참호 안이나 밖이나다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여기저기 뒤진 끝에 나는 간신히 불을 지필 만한 마른 장작 조각들을 모을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아껴두었던 시가를 피웠다. 그런 밤을 겪었는데도 시가가 부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중에 우리는 그 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P135
배급받은 식량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한 일이라고는 기껏 추위와 수면부족을 견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대부분의 전쟁에서 대부분의 병사들이 겪어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와서 좀더 긴 안목으로 그 시기를 돌아보면, 전선에 간 것이 다후회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페인 정부에 좀더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개인적인입장에서 볼 때, 그러니까 나 자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전선에서 보낸 처음 서너 달은 내가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무익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일종의 휴지 기간이었다. 이전에 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으며, 아마 앞으로 살게될 어떤 삶과도 다를 것이다. 그 시기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는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lll 고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 P139
요점은 내가 이 기간 내내 고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선은 바깥 세계와 거의 완전히 단절되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지는 일들조차 어렴풋이 짐작해 볼 뿐이었다. 대충 혁명가라 불러도 무방한 사람들 사이에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것은 의용군 체제의 결과였다. 아라곤 전선에서 이 체제는 1937년6월 무렵까지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 노동자 의용군들은노동조합에 근거를 두고 있었으며, 각각의 의용군은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가장 혁명적인 정서를 한곳으로 모으는 효과를 가져왔다. 나는 우연히 정치적 의식과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그 반대의경우보다 더 정상으로 취급되는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제법 규모를 갖춘 것으로서는 서유럽에서 유일했다. 이곳 아라곤에 모여든 사람들의 수는 만 명 정도였다. 전부는 아니지만 주로 노동 계급 출신이었다. 모두들 똑같은 수준에서 생활하였으 - P139
며,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어울렸다. 이론적으로는 완전한평등이었다. 실제적인 면에서도 완전한 평등에 가까웠다. 사회주의를 미리 맛보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곳을 지배하는 정신적 분위기가 사회주의적이었다는 뜻이다. 문명화된 생활의 여러 가지 일반적인 동기들, 예컨대 속물 근성이라든가, 돈을 악착같이 벌어 모으려는 태도, 상관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자본주의 사회에 일반적인 계급 분리는 돈에 물든 영국의 분위기에서는 거의 상상도 할 수없을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곳에는 농민과 우리만 있었다. 누구도 주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게임 속에서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한 국면일 뿐이었다. - P140
그러나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만큼은 지속되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아무리 욕했을지라도 나중에는 뭔가 신기하고 귀중한 어떤 것과 접해보았다는 사실을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냉담과 냉소보다는 희망이 더 정상적인것으로 취급되는 공동체, <동지〉라는 말이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허위가 아니라 진정한 동지적 관계를 의미하는 공동체에속해 있었다. 우리는 평등의 공기 속에서 숨을 쉬었다. 지금은사회주의가 평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임을 나도 잘 안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상당한 수의 어용 문사(文士)와 말주변 좋은 교수들이 사회주의란 약탈적 동기를 그대로 놓아둔 계획적인 국가 자본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와는 아주 다른 사회주의에 대한 비전도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고사회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즉 사회주의의 〈비결〉은 평 - P140
등 사상에 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란 계급 없는 사회일 뿐이다. 그것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용군에서 보낸몇 달이 나에게 귀중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스페인의용군은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일종의 계급 없는 사회의축소판이었다. 아무도 자기 이익에 급급해하지 않는 공동체,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특권이나 아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사회주의의 서막을 막연하게나마 감지했던것 같다. 결국 나는 그것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대신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사회주의의 수립을 갈구하는 내 욕망은 전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 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내가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있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타고난 품위와 변함 없는 무정부주의적기질 때문에, 기회만 얻는다면 사회주의의 초기 단계조차도 견딜 만하게 만들어줄 사람들이다. - P141
물론 당시에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던 변화를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주로 느끼는 것은 권태, 더위, 추위, 더러움, 이, 궁핍, 이따금씩의 위험 따위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그토록 무익하고 지루할 정도로 평온하게 느껴지던 시기가 지금은 매우소중하다. 그 시기는 내 인생의 다른 시기들과는 워낙 달라서, 빌써부터 마술 같은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속성은 보통 오래된 기억에만 생기는 것인데 말이다.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지만, 이제 그 기억은 내 마음이 뜯어먹기 좋아하는 좋은 풀밭이되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의 앞장들에서 조금이라도 전달됐기를 바랄 뿐이다. 내 마음의 모든기억들은 겨울 추위, 의용군 병사들의 넝마가 된 제복, 스페인 - P141
사람들의 달걀 같은 얼굴, 모르스 신호 같은 기관총 소리, 지린내와 빵 썩는 냄새, 더러운 접시에 담아 후루룩 들이키던 함석내 나는 콩스튜 등에 연결되어 있다. 고양이만한그 시기 전체가 이상하리만큼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는 되돌아볼 가치도 없을 정도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다시 살고 있다. 나는 다시 몬테 포세로의 개인호 속에 들어가 침대 역할을 하는 석회암 선반에 누워 있다. 내 어깨뼈 사이에 코를 처박고 자는 젊은 라몬이 시끄럽게 코를 곤다. 더러운 참호 안을 비틀거리며 걷는다. 안개는 차가운 증기처럼 내주위에서 소용돌이친다. 산비탈의 갈라진 틈 사이로 반쯤 기어올랐다. 균형을 잡고 땅에서 야생 로즈메리의 뿌리를 캐려고 애쓴다. 머리 위 높은 곳에서는 의미 없는 총알들이 노래를 한다. 나는 몬테 오스쿠로 서쪽 저지대의 자그마한 도금양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엎드려 있다. 옆에는 콥과 보브 에드워즈, 스페인 병사 셋이 있다. - P142
버마 북부의 만달라이에서 기차를 타면 마이미오까지 갈 수있다. 마이미오는 샨 고원 지대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중요 주둔지이다. 그 기차 여행은 묘한 경험이었다. 기차는 동양 도시의전형적인 분위기 속에서 출발한다. 이글거리는 태양, 먼지 낀종려나무, 생선과 양념과 마늘 냄새, 질퍽한 열대 과일, 떼를지어 몰려다니는 시커먼 얼굴의 사람들. 이런 분위기에 너무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기차 안에서도 그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되는 느낌이었다. 기차가 해발 천이백 미터의 마이미오에 이르렀을 때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만달라이에 있게 된다. 그러나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마치 지구의 반대편에 들어선 기분이든다. 갑자기 영국에서와 같은 시원하고 달콤한 공기가 코로 들어온다. 주위에는 푸른 풀밭, 고사리, 전나무가 펼쳐져 있다. 뺨이 발그레한 고지의 여자들은 바구니에 담은 딸기를 판다. - P144
전선에서 석 달 반을 보내고 바르셀로나로 돌아가자 그 기차여행이 생각났다. 그때처럼 분위기가 놀랄 만큼 갑자기 바뀌어버린 것이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줄곧 전선의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흙, 소음, 불편함, 넝마가 된 옷, 궁핍감, 동지애와 평등, 바르바스트로를 떠날 때부터 이미 의용군으로 만원이던 기차는 역에 설 때마다 농민을 더 태웠다. 어떤농민은 야채 꾸러미를 들었고, 어떤 농민은 겁에 질린 닭의 발을 쥐었고, 어떤 농민은 배낭을 들고 탔다. 바닥에 놓인 배낭들은 둥글게 말리며 꿈틀거렸는데, 알고 보니 그 안에는 살아 있는 토끼들이 가득했다. 마지막에는 양떼가 밀려 들어와 빈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의용병들은 혁명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노랫소리에 열차의 덜그덕거리는 소리도 묻혀버렸다. - P145
군중의 변화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의용군 제복과 푸른 작업복들은 거의 사라졌다. 모두들 스페인 재단사들이 만든 멋진여름 양복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를 가나 뚱뚱한 부자, 우아한 여자, 늘씬한 차들이 눈에 띄었다. (아직 자가용은 없는것 같았다. 그래도 한다하는 사람들은 차를 마음대로 부렸다.) 내가 바르셀로나를 떠날 때는 거의 없던 새로운 인민군 장교들이놀랄 만큼 많이 돌아다녔다. 인민군은 장교가 열에 하나꼴이었다. 이 장교들 가운데 일부는 의용군에서 복무하다가 기술 교육을 위해 후방으로 불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의용군에 입대하는 대신 전쟁 학교를 택했던 젊은이들도 다수 있었다. 이들장교와 부하의 관계가 부르주아 군대와 똑같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분명한 사회적 차이가 있었다. 이것은보수와 제복의 차이로 표현되었다. 사병들은 거친 갈색 작업복을 입었고, 장교들은 우아한 카키색 제복을 입었다. 영국군 장 - P146
교복처럼 생겼는데, 허리가 좀더 잘록했다. 아마 스무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전선에 가본 적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모두들허리에는 자동권총을 차고 있었다. 우리가 전선에 있을 때는 애걸로도, 돈으로도 구할 수 없던 것이다. 우리가 거리를 걸어갈때마다 사람들이 우리의 더러운 외관을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물론 전선에 몇 달 있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몰골은 형편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허수아비처럼 비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가죽 저고리는 넝마나 다름없었다. 모직 모자는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자꾸밑으로 내려와 한쪽 눈을 가렸다. 군화 밑창은 거의 다 떨어져나가고, 윗덮개도 끝자락이 옆으로 벌어져 보기 흉했다. 우리모두 대체로 비슷한 몰골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더러웠고 면도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도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지난 석 달 동안 그곳에뭔가 야릇한 일들이 일어났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 P147
며칠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증거들을 통해 내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도시 전체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사람들, 즉 민간인들이 전쟁에 관심을 잃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빈부 상하의 계급 구분이라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무관심은 놀랍기도 했고, 또 좀 역겹기도 했다. 마드리드나 심지어 발렌시아에서 온 사람들조차 그런 무관심에 혐오감을 느꼈다. 우선 바르셀로나가 싸움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 한 가지 원인이었다. 나는 한 달후 타라고나에서도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 멋진 해변 도시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 P147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충분히 살 수 있었다. 빵은 예외였다. 매우 엄격하게 배급되는 편이었으니까. 어쨌든 빈부간의 이 같은 노골적인 격차는 노동 계급이 지배하던 몇 달 전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단지 정치적 권력의 이동 때문이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바르셀로나가 안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이따금씩 벌어지는 공습 외에는 전쟁의 위협이 거의 없었다. 마드리드에 있던 사람들 누구나바르셀로나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마드리드에서는공통의 위험 때문에 거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일종의 동지애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뚱뚱한 사람이 메추라기를 먹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빵을 구걸하는 모습은 역겨운 광경이다. 그러나 총소리가 들리는 곳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 P153
5월 1일 노동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국노동자연맹과 노동자총연합이 모두 참여하는 엄청난 규모의 시위가 벌어질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자신들의 추종자들보다는 더 온건한 전국노동자연맹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노동자총연합과의 화해를 시도해 왔다. 실제로 그들의 정책 기조는 두 단위의 조합을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전국노동자연맹과 노동자총연합의 조합원들이 노동절에 함께 행진함으로써 단결력을 대외에 과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시위는 취소되었다. 폭동이 일어날 게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 1일에는 아무런 행사도 치러지지 않았다. 묘한상황이었다. 파시스트에게 장악되지 않은 유럽에서 그날 기념식을 열지 않은 도시는 이른바 혁명 도시라는 바르셀로나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안심이 되었다. 영국의독립노동자당 대표단은 통일노동자당 쪽에 끼어 행진하기로 되어 있었다. 누구나 일이 터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의미 없는 시가전에 휘말려드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사기를고취하는 구호들이 적힌 붉은 기 뒤에서 거리를 행진하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거리의 창문에서 쏜 기관총에 맞아 죽는 것-이것은 내가 보기에 가치 있게 죽는 방식이 아니었다. - P158
관측소의 작은 창문으로 주변 몇 킬로미터씩을 내다볼수 있었다. 높고 날씬한 건물들에 이어 유리 돔, 밝은 녹색과구리색 타일을 얹은 환상적인 나무결 모양의 지붕들이 끝도 없이 뻗어나갔다. 멀리 동쪽으로는 푸르스름한 바다가 희미하게반짝거렸다. 스페인에 온 후로 처음 보는 바다였다. 그러나 인구 백만의 거대한 도시가 일종의 광포한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었다. 동작은 없고 소리만 있는 악몽이었다. 햇빛이 비치는 거리들은 완전히 텅 비었다. 바리케이드나 모래주머니를 댄 창으로부터 총알이 물줄기처럼 날아오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리에는 차량도 없었다. 람블라스거리 여기저기에 전차들이 꼼짝 않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전투가 시작되자운전사들이 달아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옥 같은 소음은수천 동의 석조 건물들을 울리며 끝도 없이 이어졌다. 열대의폭풍우 같았다. 땅땅, 덜컹덜컹,우르릉. 때로는 몇 발의 총성으로 잦아들었다가 때로는 귀가 멍멍할 정도의 일제사격으로바뀌었다. 그러나 해가 지기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 P171
그러나 해가 지기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동이 트는 것과 동시에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누가 누구와 싸우는 것이고 누가 이기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기가 무척힘들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시가전에도 익숙하고 동네 지리에도 밝아서 어느 정당이 어느 거리와 건물들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이 점에서 외국인은 불리하기 짝이 없었다. 관측소에서 보니 바르셀로나의 중심 거리들 가운데 하나인 람블라스가 경계선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람블라스 오른쪽의 노동 계급 거주지는 무정부주의자들의 견고한 터전이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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