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는 하루하루를 대개 이와 같이 보낸 듯하다. 7시쯤일어나 긴 터키 망토로 몸을 감싸고, 궐련에 불을 붙인 뒤 난간에 팔꿈치를 기대곤 했다. 그렇게 서서 도취된 듯 발아래펼쳐진 도시를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는 안개가 너무 짙게끼어서 산타 소피아 성당의 반구형 지붕과 다른 건물들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개가 차차 옅어지면서 본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단단히 뭉친 물방울들이 보이기도 했다. 저기에 강이 있고, 저기 갈라타 다리가 있다. 저기에 눈이나 귀가 없는 순례자들이 녹색 터번을 두르고 동냥을 하고있다. 저기에 잡종 개가 죽은 동물의 내장을 파헤치고 있다.
저기에 숄을 두른 여자들이 있다. 저기에 수많은 원숭이들이있다. 저기에 긴 장대를 들고 말을 탄 남자들이 있다. 오래지않아 온 도시가 채찍 소리, 징소리, 기도를 올리는 외침 소리, 당나귀를 내리치는 소리, 놋쇠로 보강된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로 깨어났다. 그동안 발효된 빵과 향, 향신료에서나는 시큼한 냄새가 페라의 고지까지 올라왔는데, 그것은 피부색이 다양한 야만적 주민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내뿜는 숨결 같았다. - P126

거기에는 목사관도 없고, 영주의 저택도 없었다. 오두막도,
참나무도, 느릅나무도, 제비꽃도, 담쟁이도, 들장미도 없었다. 양치류가 타고 오를 산울타리도 없고, 양들을 방목할 초윈도 없었다. 집들은 달걀 껍데기처럼 하얗고 아무런 꾸밈도없었다. 뿌리부터 속속들이 영국인인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친 전경에서 마음속 깊이 환희를 느끼고, 멀리 저 산길들과 고원을 거듭 바라보면서 예전에 염소들과 목동들만다녔을 저곳을 혼자 걸어 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절기에맞지 않는 화려한 꽃들에 열렬한 애정을 느끼고, 너저분한잡종 개를 고향의 사냥개보다 더 사랑하고, 거리의 매캐하고톡 쏘는 냄새를 열렬히 콧구멍에 들이마신 것은 스스로에게도 놀라웠다. 그는 십자군 전쟁 시절에 자기 조상 중 한 사람이 체르케스족의 소작농 여성과 어울리지 않았을지 궁금했다.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하며 자기 얼굴이 약간 거무스름한 편이라고 상상하고는 몸을 씻으러 안으로 들어갔다. - P127

그 소문들은 이제 인생의 전성기에 이른 그가 사람들의애정을 불러일으키고 눈길을 사로잡는 힘을 갖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 힘을 보존하기 위한 보다 지속적인 자질들까지모두 잊힌 후에도 그것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 힘은아름다운 외모와 혈통, 그리고 희귀한 천부적 자질이 혼합된신비로운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매력이라고 부르고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사샤가 말했듯이 그는 촛불 하나를밝히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의 내면에서 1만 개의 촛불이타올랐다. 자기 다리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아도 그가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수사슴 같았다. 그가 평상시의 목소리로 말해도 그 메아리는 은으로 만든 징처럼 울렸다. 그런 까닭에 그를 둘러싼 소문이 무성했다. 많은 여자들과 몇몇 남자들이 그를 흠모했다. 그들은 그에게 말을 걸 필요도, 그를볼 필요도 없었다. 특히 낭만적인 경치가 펼쳐지거나 해가지고 있을 때 그들은 실크 스타킹을 신은 귀족 신사의 모습을 눈앞에 떠올렸다. 올랜도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부자들에게 그렇듯 똑같이 매력을 발휘했다. - P130

신사들은 모두 정중하고…… 너와 사랑하는 벳시가 이곳에있기를 수천 번이나 바랐고……… 그런데 모든 이들이 바라보고, 모든 눈들이 주목한 대상은.....… 그 점을 부정할 만큼 고약한 사람은 없으니까 모두들 인정했듯이 그건 바로 대사님이었어. 그토록 멋진 다리를 갖고 있다니! 그토록 멋진 얼굴이라니! 그토록 기품 있는 태도라니! 그분이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그분이 다시 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런데 그분의 표정에 어딘가 관심을 끄는 구석이 있어서, 왠지 모르지만 그분이 고통을 받았다고 느끼게 되더구나! 사람들 말로는어떤 숙녀 때문이래. 몰인정한 괴물 같으니! 다정한 존재라고일컬어지는 우리 여성 중 한 명이 어찌 그리 뻔뻔스러울 수 있는지! 대사님은 미혼이고, 그곳에 모인 숙녀 중 절반은 그분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어...….  - P135

이튿날 아침에 이제는 공작으로 불려야 할 올랜도가 잠옷엉클어진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그의 비서들이 발견했다. 침실은 약간 어수선했고, 그의 보관은 굴러떨어져바닥에 뒹굴었고, 망토와 가터 훈장은 의자 위에 무더기로던져져 있었다. 탁자에는 서류가 흩어져 있었다. 전날 밤의피로가 상당했기에 처음에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가 되어도 그가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의사를불러왔다. 의사는 연고와 쐐기풀, 구토제 등 예전에도 사용했던 비법을 써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올랜도는 계속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비서들은 탁자 위의 서류들을 검토할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를 갈겨 쓴 종이가 많이 있었는데, 참나무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 P138

그가 수면 상태에 빠져든 지 이레째 되는 날(5월 10일 목요일), 브리그 하사가 그 징후를 처음 감지했던 무시무시하고 유혈 낭자한 폭동의첫번째총성이 터져 나왔다. 술탄에 저항해서 봉기한 터키인들이 온 도시에 불을 지르고 눈에띄는 외국인들을 칼로 찌르거나 태형에 처했다. 몇몇 영국인들은 가까스로 달아났지만, 영국 대사관의 신사들은 예상할수 있는 대로 정부 서류함을 지키다가 죽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열쇠 더미를 이교도에게 넘기느니 차라리 삼켜 버리는쪽을 택했다. 폭도들은 올랜도의 방에도 쳐들어왔지만 겉보기에 죽은 듯 쭉 뻗어 있는 그를 보고는 손대지 않고 내버려둔 채 그의 보관과 가터 예복을 빼앗아 갔을 뿐이었다. - P139

그의 기억은 그런데 앞으로는 관례에 따라 <그의> 대신 <그녀의>라고 말해야 하고, <그> 대신 <그녀>라고 말해야 하니 그녀의기억은 아무런 장애도 맞닥뜨리지 않고 과거 생애의 온갖 사건들을 생생히 되돌아볼 수 있었다. 기억의 맑은 연못에 검은물방울 몇 개가 떨어진 것처럼 약간 흐릿한 부분이 있을지도모른다. 어떤 일들은 조금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고통 없이 완벽하게, 올랜도 스스로도 놀란 기색이 전혀없게끔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성의 변화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 것이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입증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1) 올랜도는 언제나 여자였다. (2) 올랜도는 이 순간도 남자이다.  - P144

인간의 성과 성징을 다루는 일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자.
우리는 그런 불쾌한 주제에서 가급적 빨리 발을 빼려한다.
이제 올랜도는 몸을 씻었고, 성별과 무관하게 입을 수 있는터키식 코트와 바지를 입고 나서 자기 처지를 생각해 보아야했다. 지금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따라온 독자라면그녀가 몹시 위태롭고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으리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귀족인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보니 신분 높은 아가씨에게는 더없이 난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벨을 누르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기절해 버렸다 해도 우리는 그녀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올랜도는 혼란스러운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극히 용의주도해서,
미리 계획한 징후를 드러낸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 P145

산꼭대기에서 저 멀리 마르마라 바다 너머의 그리스 평원을 바라보면서(그녀의 시력은 놀라웠다) 분명 파르테논 신전일 것이라 짐작되는 희고 기다란 줄한두 개가 보이는 아크로폴리스를 알아보았을 때, 그녀의 동공과 더불어 그녀의 영혼도 확장되었다. 그녀는 자연의 신도들이 모두 그렇듯이 산의 장엄함을 공유하고 초원의 평온함을 나눌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러고나서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면 붉은 히아신스와 자주색 붓꽃에 마음이 동해서 자연의 선함과 아름다움에 황홀해하며 소리쳤다. 다시 눈을 들어날아오르는 독수리가 보이면 그것이 느낄 환희를 상상하며자기도 그런 환희를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별과봉우리, 횃불이 제각기 자기에게만 신호를 보내 준 듯이 인사를 보냈다. - P149

올랜도는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집시들을 떠나 다시 대사가 되는 것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잉크도, 종이도 없고, 탤벗 가문에 대한 존경심이나 수많은 침실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도마찬가지로 불가능했다. 어느 맑은 날 아침에 아토스산의 비탈에 앉아 염소 떼를 돌보면서 그녀는 이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그녀가 신봉하는 자연이 아마도 어떤 속임수를썼거나 기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 P155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해 눈 속에서 벌레를 쪼아 대는 까마귀도 볼 수있었다. 그러고 나서 자줏빛 그림자가 서서히 짙어지더니 수레와 잔디밭과 방대한 저택을 뒤덮었다. 모든 것을 완전히삼켜 버렸다. 이제 그 초록색 구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초록색 잔디밭이 아니라 눈부시게 빛나는 산비탈뿐이었고 수천 마리의 독수리가 쪼아대서 풀 한포기 없이 헐벗은바위 같았다. 그러자 그녀는 격렬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 집시들의 야영지로 돌아가서, 바로 이튿날 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 P157

그녀는 생각했다. <여자들이 (내가여자로서 짧은 기간에 경험한 것으로 판단하자면) 순종적이거나 순결하고, 향기롭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천성이 아니니까. 여자들은 삶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이런 매력을 더없이 따분한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어. 머리치장만 봐도 그래.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오전에 한 시간은 걸릴 거야. 거울을 들여다보는 데 또 한 시간이걸리고. 코르셋을 하고 끈을 졸라매고 몸을 씻고 분을 바르고, 실크 옷을 벗고 레이스를 입고, 레이스를 벗고 실크 드레스를 입고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와도 순결해야 하고…….〉이런 생각을 하다가 짜증이 나서 그녀는 발을 휙 쳐들었는데,
종아리가 몇 센티미터쯤 드러났다.  - P163

 <가난과 무지에 휩싸여 있는 편이 나아. 그건 여성의 검은 옷이지. 세상의 규칙과 원칙을 남들에게 맡기는 편이 나아. 호전적인 야심이나 권력욕, 온갖 남성적인 욕망에서 벗어나는 편이 나아.
인간의 영혼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황홀함을 더 속속들이느낄 수 있으려면 말이야. 그녀는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을때 습관적으로 그랬듯이 소리내어 말했다. 사색과 고독, 사랑을 만끽할 수 있으려면.」「고맙게도 나는 여자야!」 그녀는 이렇게 소리쳤고, 자신의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극단적인 어리석음에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이보다 더 애처로운 일은 없다―빠져들 뻔했다. 그런데 그때 제자리에 집어넣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마지막 문장 끝에 기어 들어온 한 단어, 사랑에서 멈췄다. 「사랑」그녀가 말했다. 그 즉시 - 사랑은 이렇게나 성급하므로사랑은 인간의 형태를 띠었다.  - P167

선원들이 <안녕히가세요, 안녕히, 스페인의 숙녀들>이라고 노래하기 시작했을때, 그 가사가 올랜도의 슬픈 가슴에 메아리쳤다. 뭍에 오르는 것이 아무리 크나큰 안락과 풍요, 높은 지위와 신분을 의미한다 하더라도(의심할 바 없이 그녀는 어떤 귀공자를 선택하고, 그의 배우자로서 요크셔 절반을 지배할 테니까) 그래도 만일 그것이 인습과 노예 상태, 기만을 의미한다면,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고 자신의 팔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입술을오므리고 혀를 억제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렇다면 그녀는 다시 그 배를 타고 방향을 돌려 집시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 P170

그녀가 가슴 속에 간직한 것은 부적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의 성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위의 성적 혼란이 가라앉았다.
이제 그녀는 시의 찬란한 아름다움만 생각했다. 말로와 셰익스피어, 벤 존슨, 밀턴의 위대한 시행이 웅장하게 울리고 메아리쳤다. 그녀의 마음이라는 성당 탑의 황금 종에 황금 추가 부딪힌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이 처음에 아주 희미한 형체를 포착했고 시인의 이마를 연상시키면서 일련의 무관한 생각들을 불러일으켰던 그 대리석 돔의 형상은 사실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체였다. 배가 순풍을 받아 템스강으로 올라가면서, 온갖 연상을 불러일으켰던 그 이미지가 진실을 드러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번개무늬로 세공된 흰 첨탑들 사이에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성당의 반구형 지붕이었다.
「세인트 폴 성당입니다.」 - P171

하인들은 돌아온 올랜도가 자신들이 예전에 알던 올랜도가 아니라는 의혹을 한순간도 품지 않았다. 혹시 인간의 마음에 어떤 의혹이 있었다 해도, 사슴과 개들의 행동을 보면그런 의혹이 말끔히 사라졌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말 없는 동물들은 정체나 특징을 인간들보다 훨씬 더 잘 감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주인님이 레이디가 되셨다면그분보다 더 사랑스러운 숙녀는 본 적이 없고, 또한 그 두 분이 엇비슷해서 어느 쪽이 더 낫고 말고 할 것이 없다고 그림스디치 부인은 그날 밤 차를 마시며 더퍼 씨에게 말했다. 주인님이나 마님이나 똑같이 잘생기셨고, 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복숭아 두 알 같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럴지 모른다고 늘 의심해 왔기에 (이 부분에서 그녀는 아주 은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지 않은 일이며(이 부분에선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에게는 매우 큰 위안이 되는 일이라고 그림스디치 부인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수건들을 손질해야 하고, 목사님 응접실의 커튼 가장자리에 좀이슬어서 집 안에 마님이 계셔야 할 때라는 것이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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