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만남
1923-1925


1922년 12월 14일 런던에서 처음 만난 비타 색빌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는 비타가 리치먼드의 호가스 하우스를 방문한 후급격하게 가까워진다. 비타는 버지니아의 지적 능력과 문필가로서의 재능에, 버지니아는 비타의 아름다움과 귀족적인 아우라에매료되었다. 1924년 3월 울프 부부가 블룸즈버리 타비스톡 광장으로 이사하면서 두 사람이 설립한 호가스 출판사도 함께 이전한다. 버지니아는 비타에게 출판을 제안하고, 비타는 《에콰도르의 바람둥이》를 써 보낸다. 비타는 이 책을 버지니아에게 헌정한다. - P7

친애하는 비타하하! 당신이 《댈러웨이 부인》을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한편 《평범한 독자》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정말 좋았다고 하니 기쁘네요. 특히 로건 P. 스미스가 그 작품이아주 실망스럽다고 전한 직후라 더 기뻐요. 그런데 친구들이란늘 얼마나 당황스러운 존재인지요! 생각해보니, 부분적으로는두 권을 동시에 써서 벌어진 일인 것 같아요. 저는 불쾌한 의견을 무시하거나 친구들의 의견에 따라서 소설과 비평서를 경쟁붙이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때로는 《댈러웨이 부인》이, 때로는《평범한 독자》가 앞섭니다. - P30

미사여구는 우연히 만들어질지 몰라도, 거름을 듬뿍 준 토양에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서야 가능하답니다. 오래된 불꽃이 사그라들듯 내가 쓴 시에 관심을 잃던 참이었는데, 당신이 잉걸불에 부채질한 덕에 이제 제법 활활 타오르고 있어요.
왜 다른 사람들의 원고에 그토록 많은 수고를 쏟으시나요?
런던에서 당신은 당신의 머릿속에 적어도 여섯 편의 소설이 들어 있지만, 로드멜에 갈 때까지 자중하고 있다고 하셨죠? 이제로드멜에 계신데, 여섯 편의 소설은 어찌 되었나요? 오토라인,거트루드 스타인, 그리고 당신이 기절할 것 같다던 여자들 사이에서 버지니아를 위한 시간은 언제 나나요? 게다가 <보그>며 그비슷한 잡지들의 사교 모임까지 쫓아다니니 말이에요. 물론 이모든 일들 사이에서도 《평범한 독자>를 써냈고, 특히나 겐지를관찰한 바를 쓴 부분은 정말 마음에 들지만요.  - P33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소택지를, 습지를, 조약돌을, 동부해안을 몇 척의 배가 떠 있는 강을 잡초의 거친 냄새를 파란 저지스웨터를 입고 개를 붙잡고 있는 남자들을 간단히 말해 풍경전체를 마치 모두 그 작품에서 읽은 것처럼 생각한답니다. 그러나 크래브의 책을 펼치면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묘사라고는 여기 한 단어, 저기 한 단어, 그게 다예요. 그러니 만약 당신시‘가 당신 말대로 전부 솜진디 이야기라면, 저는 별과 남양을 꿈꾸며 저 멀리 떠나렵니다. 하지만 서둘러요, 어서 써요.
여기서 그만 줄여야겠네요 아니면 이제 왜 나는 환상을 품어도 되고, 당신은 엄밀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나는 산문을 쓰고, 당신은 시를 쓰죠. 시는 둘 중에서 더 단순하고,
더 투박하고, 더 기본적이면서 운율과 음보로 우연한 매력까지갖추었지만, 산문이 전달하는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없어요. 우쫄거릴 건 없답니다. 당신은 말하겠죠, 아름다움을 정의하라고하지만 싫어요 전 자러 갈래요. - P36

친애하는 버지니아
당신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좋은지.
편지를 받으면 하루를 얼마나 활기차게 맞이하게 되는지.
당신 편지를 받는 일이 너무 좋아서 아침 우편물을 열 때면가장 마지막까지 남겨두곤 해요. 아이가 마지막 초콜릿 조각을남겨두듯이.
하지만 당신이 일주일간 아팠다는 부분을 읽으니 좋은 마음이 좀 식네요. 내가 정원가꾸기나 테니스치기 같은 별볼일없는 것들을 좇으면서 원기 왕성하게 잘 보낸 매 순간에 죄책감이들어요. - P37

그리고 이 힘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이 쓰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그 열망에 불을 붙이는 능력도 작동하죠. 적어도 저는 그렇더라고요. 내 안에서 불꽃을 일으키려면 책장에서 어떤 책을 꺼내야 할지 딱 안답니다, 그렇지 않나요? 아니면 당신은 부싯깃인 동시에 부싯돌인가요? 그럴 것 같네요.
레너드가 아주 짜증낼만한 메시지를 좀 전해줄래요? 사과도요. 이거예요. 존 드링크워터 리뷰는 못쓰겠어요. 그 사람을너무 잘 아는데, 기분을 엄청나게 상하게 하지 않고는 쓸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네요. 레너드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알려주면, 그가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라도 존 드링크워터의 책들을 보낼게요. 이런 게 편집자를 괴롭히는 전형적인 시험 중 하나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 P39

이것이 증명하는 바는, 내가 길게 쓸 수있는 문제인데, 우리는 그 누구도 잘 모른다는 것, 움직임과 몸짓들만 알 뿐, 연결되고 연속적이고 심오한 것은 알지 못한다는사실이에요. 하지만 간청하건대, 내게 힌트를 주세요.
..."공인되다"는 단순한 단어였는데, 이제 "항의받은 불성실한언행"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네요. 적어도 내게는 그러니까 죄악 속에서 시들어가고, 인정하건대 좋은 영어에 원래 없는 의미를 전가하는 내게는 그래요. 하지만 변치 말고 당신의 애정 어린 악당에게 편지를 보내주시길. - P42

내 스패니얼이 새끼를 일곱 마리 낳았어요. 내 고양이는 다섯마리를 낳았고요. 스패니얼이 새끼 고양이를 훔쳐서 입에 아주조심스럽게 물고 나르더니 강아지 바구니에 넣어놨어요. 그러고나서 산책을 나갔는데, 새끼를 찾던 고양이가 바구니 속에 몸을말고 들어가 강아지들에게 젖을 먹였죠. 스패니얼이 돌아와서고양이를 쫓아내고는 바구니 안에 몸을 말고 들어가 새끼 고양이들에게 젖을 물렸어요. 이 상황을 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고양이들은 짖고 강아지들은 야옹거리고, 이게 앞으로 벌어질 일이잖아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주 사랑스러운 가족을이룬 따뜻하고 보드랍고 어린 털뭉치들이랍니다. - P44

그래요 당신에게 내 농경시를, 더 일관성을 갖춰서 보낼게요.
지금으로서 여기에는 거미, 저기에는 새끼를 낳은 암퇘지 - 전혀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예요. 염치없지만 당신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여 도움을 받을게요. 하지만 여전히 당신이모든 걸 어떻게 다 해내는지 궁금하네요.
집 전체가, 그리고 바깥세상이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 방 하나에만 불이 켜져 있는 느낌을 좋아해요. 불빛 하나만 내 종이 위로 떨어지는 느낌, 집중력과 내밀함을 만끽하게 해주죠. 편지란얼마나 안 좋은 수단인가요 당신은 이걸 햇빛 아래서 읽을 테고,
그러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겠죠. 당신이 인간 존재가 분리되었다고 느끼는 만큼 나는 밤을 절절하게 느낀다고 생각해요. 너무나 개인적이고, 너무나 날카로워서 아릿한, 그런 확신 중 하나죠. 나는 해가 지고, 별이 뜨고서야 숨쉬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비타 - P49

리비에라나 이탈리아, 아니면 이집트가 아니라 더 거칠고, 아름답고, 투박한 나라라는 것만 알려줄게요. 거리상으로는 아니지만, 시간상으로는 중국보다도 더 먼 곳이에요. 이상적인 여행 편지는 주소를 안 적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방주로부터 날아온 비둘기처럼 도착하겠죠. 어디서 왔는지 아무런 실마리도 담지 않으면, 풍경을 낭만적이고도 아름답게 그려내지만 지리적으로는 두루뭉술하겠죠.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일이 얼마나 즐거울까요. 잉크가 유일한 소통 수단임을 체감하며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요. 부재중인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부담을 당신에게 지우는 나는 얼마나 무자비한가요. - P52

1925년 10월 13일 화요일
런던, 타비스톡 광장 52번지


친애하는 비타
하지만 얼마나 오래요?
영원히?
나는 질투와 절망으로 가득 찼어요. 페르시아를 본다는 생각에, 당신을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의사가 나를 침대로 보냈어요. 글을 쓰는 건 절대 안 된다고합니다. 그러니 이게 내 백조의 노래 예요. 하지만 와서 나를 만나요 - P54

1925년 12월 10일
타비스톡광장 52번지


내 사랑 비타
당신은 화요일 오후 괜찮아요?
금요일이나 토요일까지 머물러도 될까요?
레너드가 와서 나를 데려가도 될까요?
드레스 가운을 한 벌만 가져가면 당신이 싫어할까요?
침대에서 아침을 먹으면 귀찮게 구는 걸까요? - P66

1925년 12월 15일
세븐오크스, 롱반, 월드


내 사랑 버지니아
당신을 수요일까지 못 만나게 되어서 너무 유감인데, 일하는사람 하나가 아파요. 내일이면 다 괜찮아질 거예요. 전에 말한기차를 타고 오나요? 세븐오크스에 4시 18분에 도착하는 차였던 거 같은데.
아뇨, 당신이 원한다면 아침, 점심, 저녁 다 침대에서 먹어도돼요.
아뇨, 드레스 가운은 한 벌만 가져와요.
그럼요, 레너드는 언제고 좋을 때 오면 돼요.
당신이 일요일까지 있을 수 없어서 어찌나 안타까운지. 내가일요일 아침에 올라가니까 당신을 태워주면 좋을 텐데.
당신이 오면 정말 즐거울 거예요. 당신이 누구 방해도 받지않게 내가 훌륭히 모시도록 하죠.

늘 당신의
비타 - P67

2부
사랑
1926-1933


런던에서 자주 만나면서 비타와 버지니아는 점차 서로에게끌린다.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책에도 애정이 각별했다. 비타는 외교관인 남편 해럴드를 따라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버지니아에게 편지를 쓰고 책을 집필한다. 버지니아 역시비타와 꾸준히 서신을 교환하며 여러 작품을 출간한다. 두 사람의 많은 대표작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특히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버지니아의 <올랜도》는 비타를 모델로 한 소설이다. 하지만 올랜도》 출간 이후 비타의 마음은 조금씩 변했고,
각자의 생활 환경이 바뀌면서 두 사람 관계에 거리가 생긴다. - P71

눈은 내게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어. 눈은 내게 지붕에 쌓인눈을 삽으로 퍼 아래에 있는 마당으로 던질 때 들리는 둔탁하고 부드러운 푹푹 소리를 의미해. 사슴에게 먹이를 주려고 ‘이리와‘ 하고 부를 때 묘하게 우수에 젖은 소리, 공원의 모퉁이에서사슴들을 불러 모으는 그런 소리를 의미해. 이런 것들은 누군가의방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무엇인가를 의미하듯 내밀한방식으로 의미를 지니지. 이것은 개인의 일부야. - P85

나는 버지니아를 원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미물로전락했어. 잠 못 이루는 밤의 악몽 같은 시간에 당신에게 아름다운 편지를 한 통 썼는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네. 그냥 당신이보고 싶어, 여느 인간 존재라도 느낄 법한 단순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당신, 말주변 좋은 당신은 편지 어디에도 이렇게 기초적인 문장은 절대 안 쓰겠지. 어쩌면 당신은 이런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지도 몰라. 그래도 당신이 빈자리를 조금은 느낄 거라고 믿어. 하지만 당신이라면 그 감정에 너무나 아름다운 표현을입혀 현실감을 다소 잃어버리게 하겠지. 반면 내 경우에이심정은 상당히 혹독해. 당신이 꽤 그리우리라고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정도로 당신이 보고 싶어. 그래서 이편지는 고통에 차서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이나 다름없어. - P88

베니스.
정차역이 많긴 했는데, 역들에 서지 않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일 줄은 몰랐네. 우리는 이제 베니스에 도착했는데 겨우 10분정차한대. 뭔가 쓰기엔 형편없는 시간이지. 이탈리아 우표를 살시간도 없어서 트리에스테에서 보내게 생겼네.
스위스의 폭포는 딱딱하게 얼어붙어 무지갯빛 얼음 커튼처럼바위에 걸려 있었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탈리아는 온통 눈으로 뒤덮였고.
다시 출발한다. 트리에스테에 도착할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겠네. 이런 우울한편지 보내는 나를 용서해줘. - P89

당신이 트리에스테에서 보낸 편지가 오늘 아침 도착했어. 하지만 당신은 어째서 내가 감정을 느끼지 않거나 표현들을 지어낸다고 생각해? 당신은 ‘사랑스러운 표현들‘이 사물들에서 현실감을 빼앗는다고 했지. 그 반대야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나는 내가 느끼는 대로 말하려고 애써. 그러면 당신이 지난 화요일 떠난이후, 정확히 일주일 전에, 내가 손풍금을 찾으러 블룸즈버리 빈민가를 돌아다녔다는 걸 믿어주려나? 그래도 기운이 나진 않더라..… 그리고 그 이후로, 중요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어. 어째서인지 따분하고 축축해. 나는 침울해졌고, 당신이 보고 싶어. 정말 보고 싶어. 앞으로도 보고 싶을 거야. 그래도 당신이 이걸 못믿는다면, 당신은 칡올빼미에 멍청이야. 사랑스러운 표현이지? - P90

또 뭐가 있지? 당신이 지독히도 보고 싶어. 그게 아니라도 당신이 여기 올 수만 있다면 이 나라에서 정말로 대단한 걸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도 때도 없이 분해. 그러니까 당신이 꼭 와야 해. 근데 이 문장은 꼭 내가 쓸 법한 편지를당신이 패러디해서 쓴 것 같으니까, 이 말은 참을래. - P98

실크로 만든 옷과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당신의 질투를 불러일으킬까? 아니겠지, 못된 사람, 당신은 예의 그 안개 낀 글룸즈버리 * 당신의 런던 광장들을 더 좋아할 테니까. 버지니아를훔치고 싶은 소망이 나를 집어삼켜. 그녀를 훔쳐 와, 그녀를 데리고 도망가, 그리고 위의 알파벳 순서대로 말한 사물들에 둘러싸인, 태양 아래로 그녀를 데려오자. 그리스가 당신 마음에 들었던 건 당신도 기억하잖아. 당신이 스페인을 좋아한 것도 알지. - P98

・・・ 어제가 당신이 떠난 지 4주째였다는 거 알아? 그래, 나는자주 당신 생각을 해. 소설 생각은 안 하고 말이야. 여름에 당신을 데리고 강가 목초지를 걷고 싶어. 당신에게 들려줄 수백만가지 일을 생각해. 나를 여기 남겨두고 페르시아로 사라지다니당신은 악마야! 그리고 소중한 비타, 우리는 수세식 화장실을두 군데 만들 거야. 하나는 ‘댈러웨이 부인‘이 지불하고, 다른 하나는 어느 ‘평범한 독자‘가 내는 거야. 둘 다 당신에게 헌정했지. - P101

내 사랑 버지니아당신에게 긴 편지를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끝없는 편지.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는 편지. 근데 할 말이 너무 많아. 감정이너무 복잡하고, 이집트도 지나치고, 흥분도 지나쳐. 그리고 이모두가 완벽하게 단순한 단 하나의 사실로 귀결돼. 당신이 여기있으면 좋겠어.
당신이 타비스톡 광장에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정말 쉽겠지. 하지만 시나이 해안을 보면서 동시에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내게 너무 어려워 그리고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사방에서 버지니아의 형상을 발견하는 동시에 시나이 해안을 보는일도 아주 어렵고.
이 조합 때문에 내 편지가 평소보다 말주변이 없는 거야.
당신은 마음을 더 깔끔하게 정리하고 상황을 더 잘 다스리지. - P103

아, 나의 소중한 버지니아. 런던이란 곳이 정말 존재해? 거기당신이 있고? 아니면 내가 유령 도시를 생각하며, 유령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걸까? 아프지 마. 성가신 사람들에게는 딱딱하게 굴어. 소설은 어때? 뜨거운 강풍이 불어서 나는 한 단어도 못쓰겠어. 하지만 남십자성 아래서 내 작은 저장고가 채워지면 좋겠다. 봄베이에서 당신 편지를 받지 못한다면, 실망해 죽고 말거야.
레너드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줘.

V.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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