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
스칸디나비아는 인구 밀도가 희박하고, 주민들이 나란히 모여지내며 집단 crowd을 형성하는 경우에도 좀처럼 대중 mass을 이루지는 않는다. 그들은 가장 물리적인 의미에서, 뭉치지 않는다. 한데 모이는 것에 대한 이러한 거부감, 혹은 따로 지내야 할필요는 단순히 개인주의의 표현만은 아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또한 가장 순종적이고, 시민의식이 높으며, 관습적이기 때문이다. 칼뱅파 교리의 자의식도 어느 정도 관련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칼뱅파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다른 요소도 있다.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제 나름의 행복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이상은 그들이 공유하는 기억에 의해 유지된다. 부분적으로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기도 한 그 기억은 어린 시절에 보냈던 여름에 대한 기억, 햇빛과물결과 끝날 것 같지 않던 하루에 대한 기억이다. 모든 문화권은 자신들만의 아르카디아arcadia (목가적 이상향―옮긴이)를만들어내는데, 이 아르카디아는 해당 지역의 기후나 지형과 밀 - P39
접하게 이어져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길고 어두우며, 해마다 두 달 동안 지속되는 여름은 정확한 경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백야 덕분에, 마치순수함이 드러날 때처럼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보상받은 기분을 들게 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갑자기 스벤이 십여 년 전 브리타니 해안앞 벨 아일에서 그렸던 그림들이 떠올랐다. 발가벗은 몸들, 파도, 바위 사이의 바닷물, 그 모든 것에 눈부시게 쏟아지던 햇빛, 끝없이 펼쳐진 시야. 그 작품들은 사실 앞에서 말한 제 나름의행복, 어린 시절의 여름에 대한 이미지들이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여름이 되면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옷을 벗는다. 그렇게 햇빛과 물, 그리고 보상을 받는 몸이라는 세 개의 순수가 서로 접촉한다. - P40
다. 그는 절대 물러나지 않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일도 절대 없다. 그는 쉬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까지, 한 번에 이십 센티미터씩만 움직일 수있고, 오 미터 정도의 거리도 불가능할 정도로 먼 거리로 느껴질 때에도 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잠시 쉴 때는, 눈을 감고 다시 나아갈 힘을 모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평생을 미술에 바치고도 천재성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그런 끈질김에서 드러나는 고귀함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죽었다, 홀로, 심장마비로,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 과일들을 배열하곤 하던 주방 식탁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망했다. 일년 중 낮이 가장 길었던 날이었다. 2003년 6월 21일. 그가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낮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 P45
십오 년 전 바로 그 배가 다니는 항로를 따라 운행하는 여객선을 타고 여행했던 적이 있다. 나는 헬싱키의 사층짜리 노란·색 건물 앞에서부터는 오토바이를 탔다. 그때는 소설을 쓰고있었고, 그 배를 쓰고 있던 소설에 담았다. 나는 그 배를 죽은 이들을 싣고 저승의 강을 건너는 배로 묘사했다. 우리의 삶이 이야기대로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다른 이야기를 쓰게 될까. 내 생각엔 아니다. 하지만 당시 배 위에서 나는 이야기꾼으로서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다. 내가 정하는 대로 가는 거였다. 심지어 선장실에 초대되기까지했다. 반면 지금 푸루순드 섬의 나는 똑같은 배가 지나가는 것을 올려다보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아주 작게느끼고 있다. 승객들 중 몇몇이 마치 현수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처럼 우리를 내려다본다. 그들 사이에서 스벤을 알아보는 건 나뿐이다.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며 바닷가에서 자라는 나무들에서만나는 특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 P50
깨어 있음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는 친구를 만나 술잔을 나누고 싶은, 자신이좋아하는 술집이 있다. 나는 친구들과 집에서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시립 수영장은 있다. 거기서나는 나만의 속도로 레인을 오르내리고, 모르는 사람들을 스쳐지난다. 그렇게 스쳐 지날 때면 눈길을, 가끔은 미소를 주고받기도 한다. 수영모를 쓰는 것은 필수다. 다이빙을 하기 전에, 혹은 모퉁이의 사다리를 통해 풀에 들어오기 전에 비누로 몸을 씻는 것도마찬가지다. 다이빙을 하고 물 밑에서 첫번째 스트로크를 내뻗기 전, 나는 다른 시간 단위에 접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어린이가 집 안의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 P53
하늘을 찌를 듯 위로 뻗은 나뭇가지들 때문에 나무 전체의 형태는 나뭇잎 하나하나와 닮았다.(대부분의 나무들은 어느 정도는 이런 경향을 보인다.) 단풍잎이 깃pinnate처럼 생겼다. ‘깃털‘을 뜻하는 라틴어가 ‘피나pinna‘다. 잎의 앞면은 샐러드의 녹색이고, 뒤쪽은 녹색빛이 도는 은색이다. 단풍잎이 깃 모양이 되는 건 운명이다. 풀에서 나오자마자 그 잎을 그리기로 마음먹는다. 종이 한장에 나무 전체와 가까이에서 본 나뭇잎 한 장을 함께 스케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풍나무의 유전자 코드에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계속 수영을 하며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그건 일종의 사탕단풍나무의 텍스트가 되는 거라고. 그런 텍스트는 말없는 어떤 언어에 속한다.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언어, 하지만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언어말이다. - P55
참수 장면이 공개되었다는 소식, 남자, 여자, 어린이가 포함된서른다섯 명의 인도 출신 불법 이민자들이 런던에 정박하기 위해 이제 막 북해를 건넌 화물선의 컨테이너 안에서 질식사했다는 소식을 읽었다. 새털구름은 북쪽, 수영장의 끝을 향해 흘러간다. 나는 물에뜬 채로 가만히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구름을 지켜보며, 눈으로 그 넘실거리는 모양을 기록한다. 그때 풍경이 보여 주는 확신이 변한다. 변화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그 변화는 분명해지고, 내가 받는확신도 더 깊어진다. 하얀 새털구름의 털들이 손을 머리 뒤로깍지 낀 채 물 위에 떠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본다. 이젠 내가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바라본다. - P57
만남의 장소
나의 두 손으로 과거와 미래로부터 두 개의 돌멩이를 집어 들어 그것들을 쥐고 달리지. 가장 가벼운 산들바람에도 나는 날아올라, 더 큰 바람을 불러오지, 이리 오라고 그리고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린 후 그리고 나는 고아처럼 길가에 앉아, 애도하지 나의 두 돌멩이를.
최근에 이라크 시인 압둘카림 카시드Abdulkareem Kasid의 시를읽기 시작했다. 그의 시를 읽고 또 읽는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인상적이고, 오늘날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아주 관련이 많다. - P59
역사에 대한 어떤 감각, 과거와 미래를 잇는 그 감각은 완전히 말살되었거나 있더라도 주변화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종의 역사적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프랑스어에는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S.D.FSans Domicile Fixe (‘일정한주거지가 없는‘이라는 뜻ㅡ옮긴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역사적 S.D.F가 될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압박 아래 살고 있다. 죽은 자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받아들이는 인정된 의식이 이제 더 이상 없다. 매일매일의 삶은 있지만 그걸 둘러싸고 있는 건 공백이고, 그 공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는 오늘홀로 있다. 그리고 그런 고독은 죽음을 벗 삼을 수도 있다. - P61
카시드는 역사를 -마치 만남의 장소라도-되는 것처럼 드나든다. 그건 어떤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가아니라, 함께할 이를 찾기 위해서다.
멀리 있는 카페 - 지금 나무처럼 보이네 가지와 잎으로 지붕을 삼고 의자들은 그 목재로 만들었지. 그곳을 찾는 이들은 거기 앉는 걸 좋아하지 가볍게, 그 가지 위에. - P62
노래에 관한 몇 개의 노트 야스민 함단을 위하여
지난주 당신의 공연을 지켜보고 귀를 기울일 때, 야스민, 당신을 그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말이 안 되는 충동이었지요, 너무 어두웠으니까요. 내 무릎에 놓인 스케치북도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따금 스케치북을 보지 않고, 당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끼적이기는 했지요. 그 끼적임에는 리듬이 있습니다. 마치 나의 펜이 당신의 목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펜이 하모니카나타악기는 아닌 까닭에, 지금 침묵 속에서 다시 보니 그 끼적임에는 아무 의미도 없네요. - P71
한 곡의 노래는, 불리거나 연주될 때 하나의 몸을 얻는다. 실재하는 몸을 취하여 그 몸을 순간적으로나마 소유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더블베이스의 몸체는 줄이 튕겨지는 동안꼿꼿이 서 있고, 두 손에 쥐어진 하모니카의 몸체는 한 마리 새처럼 연주자의 입 앞에서 맴돌거나 그 입에 가서 닿는다. 드럼을 치는 드러머의 상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노래는 반복해서가수의 몸을 취한다. 그리고 얼마 후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들의 몸은, 그 노래를 듣고 몸짓으로 따르는 동안 무언가를기억하고 예측한다. 실재하는 몸을 취하지 않는 노래는 시간과 공간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노래는 과거의 경험을 전한다. 하지만 그것이 불리고 있는 동안 노래는 현재를 채운다. 이야기도 같은 작용을한다. 하지만 노래에는 노래만의 또 다른 차원이 있다. 노래는현재를 채우는 동시에 미래의 어딘가에 있는 청자의 귀에 닿기를 희망한다. 노래는 앞으로 다가간다. 이런 끈질긴 희망이 없다면 노래는 존재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노래는 앞으로 다가간다. - P73
삶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는 이름이 없는데, 이는 우리의 어휘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을 큰 소리로전하는 것은, 이야기꾼이 그렇게 이야기를 전하는 행위를 통해이름 없는 어떤 사건을 익숙하고 친숙한 것으로 바꾸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밀함을 가까움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고, 또한 가까움은 함께 나누었던 경험의 양과 연관시키곤 한다. 하지만현실에서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 서로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도 친밀함을 공유할 수 있다. 주고받는 눈빛에 담긴 친밀함, 끄덕이는 고개, 미소, 어깨를 으쓱하는 행동에 담긴친밀함. 몇 분 동안 노래 한 곡이 불리고, 거기에 함께 귀를 기울이는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가까움. 삶에 대한 어떤 합의. 아무런조건도 없는 합의. 노래 주위에서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공유되는 어떤 결론. - P83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는, 또한 점점 늘어나는 인류의 가난과 계속되고 있는 지구에 대한 착취도 유토피아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정당화되고 있다. 그 유토피아는 자유시장방식이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작동할 때 보장되는 것이다. 그건,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넥타이 색깔을 놓고 투표하는‘ 세상이다. 어떤 유토피아에 대한 전망이든 희망은 필수다. 그 말은 곧현실에서는 희망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논리에서동정심은 곧 약점이다. 유토피아는 현재를 경멸한다. 유토피아는 희망을 독단적 교리로 대체한다. 독단적 교리가 각인되고, 그와 대조적으로 희망은, 촛불처럼 가끔씩만 깜빡거린다. - P89
우리를 둘러싼 원에는 석기시대 이후로 선조들이 우리들을위해 남겨 둔 증언들이 있고, 꼭 우리를 향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 있다. 자연과 우주의 텍스트. 그 텍스트들이 대칭적인 것과 혼란스러운 것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가혹한 운명을 극복하는 기발한 방법들이 있음을, 욕망의대상이 언제나 약속의 대상보다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 다음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과 우리가 목격한 것들을보며 버텨 온 우리는 아직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 저항하고, 계속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우리는 연대 안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울 것이다. - P110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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