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적인 소원. 사건이 글쓰기가 되고 글쓰기가 사건이 되는 것. -미셸 레리스


기억이 사물들을 끝까지 바라보는 것만은 아닐지도. ㅡ쓰시마 유코







바르베스 역에 내렸다. 지난번처럼 지상에 있는 지하철역사 아래로 남자들이 무리 지어 기다렸다. 사람들은 저렴한타티 상점의 분홍색 쇼핑백을 들고 인도를 걸어 다녔다. 마젠타 대로로 접어들자, 밖에다 점퍼를 걸어 둔 빌리 의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한 여자가 나를 향해 걸어왔는데, 건장한 다리에 굵은 무늬로 짜인 검정스타킹을 신었다. 병원에 가까워질때까지 암브루아즈파레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궁륭형태로 장식한 엘리자관의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유리로 막힌 긴 복도를 따라가느라 처음에는 뜰에 자리한 야외 음악당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병원을 나설 때,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일까 생각했다. 15번 문을 밀고 들어가서 3층으로 올라갔다. 검진 창구에 번호가 적힌 종이를 제출했다. 여자는 카드상자를 뒤져 서류가 들어 있는 크라프트지 봉투를 꺼냈다. 손을 내밀어 봤지만 봉투를 내게 주지는 않았다. 그녀는 봉투를책상 위에 놓고, 잠시 앉아 있으면 호명하리라고 말했다.
- P9

과제물 검토가 끝났다. 흐릿하지만 똑같은 장면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7월의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 섹스하는 몸의 움직임과 사정. 여러 달 동안 잊고 있었던 이 장면 때문에 나는여기 있었다. 벗은 두 몸이 얼싸안고 움직이는 자세가 죽음의춤처럼 여겨졌다. 보채는 바람에 다시 만나기로 했던 그 남자는 오로지 내게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고자 이탈리아에서 온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를 하는 몸짓과 부드러운피부 그리고 정자, 이 모든 것을 내가 병원 대기실에 있다는사실과 결부시킬 수는 없었다. 무엇도 섹스와 연결시킬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 P11

의사가 내 번호를 불렀다. 진찰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의사가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은 징조이리라 생각했다.
진찰실 문을 닫으며, 그녀는 아주 빠르게 "음성이에요."라고말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다음부터 진찰실에서 의사가늘어놓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사는 유쾌하고 호의적인 인상이었다.
아주 빠르게 계단을 내려왔고,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한 번 더 구원받았다고 생각했다. 금발여자도 마찬가지일지 알고 싶어졌다. 바르베스 역에 밀집한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분홍색 무늬가 인쇄된 타티 상점의 쇼핑백을 들고 양방향 플랫폼에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 P12

1963년, 라리부와지에르에서, 지금과 똑같은 공포와 불신 속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N. 의사의 판정을 기다렸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내 삶은 오기노 방식‘과 1프랑짜리 자판기 콘돔 사이에 자리한다. 이것이 삶을 가늠하는 적절한 방법이다. 심지어 그 무엇보다 더 확실한 - P12

1963년 10월, 루앙에서 생리가 시작되기를 일주일 이상기다렸다. 쾌청하고 온화한 날들이었다. 너무 이르게 외투를꺼내 입었고, 몸은 무겁고 무기력했다. 개강을 기다리며 빈둥거리다가 스타킹이나 사러 다녔던 백화점 안에서는 특히 더그랬다. 에르부빌 거리에 있는 여학생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며, 팬티에 비친 피를 볼 수 있기를 내내 바랐다. 매일 저녁마다 수첩에 또박또박 ‘아무것도 없음‘이라고 쓰고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자다가 깨었던 밤에도 곧바로 ‘아무것도 없음‘
을 알아차렸다. 작년 이맘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일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마치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 P13

진료대에서 내려온 바로 그 순간, 품이 넓은 녹색 스웨터가 허벅지 위로 내려왔고, 산부인과 의사는 임신한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위가 안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입덧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생리를 할 수 있게끔 주사를 처방했지만, 효과가있을 거라 믿지 않는 눈치였다. 문 앞에서 그는 명랑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생아는 늘 예쁘더군요." 소름 끼치는 말이었다.
걸어서 기숙사로 돌아왔다. 수첩에 이렇게 적혀 있다. ‘임신. 끔찍하다.‘ - P17

대학 생활 지원 센터의 간호사는 그날 저녁 아무 말 없이주사를 놔주었고, 그다음 날 아침에 또 한 대를 놓았다. 11월11일, ‘1차 세계 대전 휴전 기념일 휴일이 낀주말이었다. 부모님 댁으로 갔다. 그때 불그죽죽한 피가 빠르고 짧게 흘렀다.
눈에 확 띄게 얼룩이 묻은 팬티와 면바지를 빨랫감 위에 올려놓았다. (수첩: ‘피가 나오다 말았다. 엄마에게 대신 뭘 줘야 하나?‘)루앙에 돌아와서 N. 의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는 내 상태를확인해 주었고, 임신 진단서는 보냈다고 말했다. 그다음 날 임신 진단서를 받았다. 마드무아젤, 아니 뒤세느 출산 예정일:1964년 7월 8일. 나는 여름과 태양을 떠올렸다. 임신 진단서를 찢어 버렸다. - P17

그 후 몇 달의 시간은 흐릿한 불빛에 잠겨 있다. 끊임없이거리를 배회하는 내가 보인다. 이 시기를 생각할 때면 매번,
‘출항‘이나 ‘선악의 저편‘ 혹은 ‘밤의 끝으로의 여행‘ 같은 문학 작품의 제목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제목들은 매번내가 그 당시 체험했던 느낌,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아름다운 무언가에 부합하는 듯했다. - P18

그런 생각을 떨칠 수도없으면서 저항했다. 그 생각에 빠져들면 끔찍했다. 한편으로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겠다는생각도 들었다.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바로 그 일이었을 거다. 어느 밤, 나는 임신 중절 경험에 대해 쓴 책을 두손에 들고있지만, 서점 어디에서도 그 책을 찾을 수 없고, 도서목록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 꿈을 꾸었다. 책 표지 아래에 큰 글씨로
‘절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꿈이 책을 써야만 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런 경험을 글로 쓰는 일이 쓸데없는 짓이라는의미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 P19

법. 이들은 금고형과 벌금형을 받았다. ① 몇 건의 임신 중절 시술을 집도한 자. ② 의사들, 산파 전문의들, 약사들 그리고 임신 중절 시술을 추천하고 용이하게 한 이들. ③ 스스로 임신 중절에 나선여성 혹은 그에 동의한 여성. ④ 임신 중절을 선동하고 피임을 선전한 자. 더불어 범법자들에게는 체류도 금지된다. 2번 조항에 속하는범법자들은 고려할 것도 없이 직업 활동을 일시적으로 금지하거나자격을 완전히 박탈한다.
『새로운 라루스 백과사전』, 1948년판,

시험을 준비하고 여름방학을 기다리며 수업과발표, 카페와 도서관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왔다. 이제 시간은 이런 일들로 채워지는 의미 없는 나날의 연속이 아니었다. 시간은 내안에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괴해야만했던, 형태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문학과 사회학 수업을 들었고, 학생 식당에 갔고, 점심과저녁엔 학생들만 다니는 파뤼쉬 바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제그들과 같은 세상에 있지 않았다. 배 속에 아무것도 없는 여자애들, 그리고 내가 있었다. - P21

막연하게 내가 태어난 사회 계층과 내게 일어난 일을 연관 지어 생각했다. 노동자와 소상공인 가정에서 고등 교육을받은 첫 번째 수혜자였기에 나는 공장이나 상점 계산대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칼로레아 합격도, 프랑스 문학 학사학위도, 알코올 중독과 같은 취급을 받는 임신한 여자아이가상징하는 가난이 물려주는 운명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섹스때문에 나는 다시 따라잡혔고, 그때 내 안에서 자라나던 무언가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이었다. - P22

순간적으로 그는 벌어진 두 다리 사이로 드러난 성기를본 듯 호기심과 음탕함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어제의모범생이 궁지에 처한 여자로 갑작스레 변한 상황을 보면서즐거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와, 그리고 언제 임신을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내 상황을 털어놓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 순간 그에게 아무런 해결책이 없을지라도,
그의 호기심이 일종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그는 루앙 외곽에 있는 자기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기숙사 방에 홀로 있고 싶지 않았다. - P24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나자, 장 T.는 의자에 앉아 치아를 다드러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먹으니 좋네." 구역질이 났고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 일에 너무 얽매이고 싶지 않아 함을 알게 되었다. 그가 속한 단체에서 가족계획 명목으로정해 놓은 도덕적 범주에는 임신 중절을 원하는 여자아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일등석에 앉아 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계속 알고 싶은 것뿐이었다. 이를테면 돈 한 푼안 내고 전부 다 보고 싶어 하는 것. 계획된 임신을 지지하는협회의 일원이기에 그는 ‘윤리적인 문제로‘ 불법 임신 중절을하려는 내게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선수를 쳤다. (수첩에 ‘T.와강변에서 식사. 문제만 쌓여 감.‘ 이라고 쓰여 있다.) - P26

(Perm 484, nos 5 et 6, Norm. Mm 1065. 당시 사용하던 주소록간지에 이런 분류 기호가 적혀 있다. 낯설고 뭔가에 홀린 듯한 감정에젖어 파란색 볼펜으로 휘갈겨 쓴 흔적을 쳐다본다. 침투할 수도 파괴할수도 없는 물질적인 증거들은 기억과 글쓰기의 불안정한 속성 탓에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현실을 간직한 것만 같았다.) - P28

1960년대 대부분의 개인 병원들이 그렇듯이 보부와진 광장 부근, 이제(I‘Yser) 대로에 있는 일반 진찰실에는 양탄자가깔려 있고, 유리문이 달린 책장, 고전적인 책상이 놓인 부르주아 가정의 거실과 비슷했다. 왜 내가 우파 국회 의원 앙드레마리가 사는 부자 동네로 방향을 돌렸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밤이었고, 어쩌면 아무런 시도도 못 한 채 집에돌아가기 싫었던 것 같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의사가 나를맞았다. 의사에게 몸이 피곤하고,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했다. 고무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진찰한 후에, 그는 임신한 게확실하다고 단정 지었다. 그에게 중절 시술을 해 달라는 말을할 수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생리를 다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답이 없었다. 그러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사내자식들은 자기 좋은 일만 하고 여자들을 내팽개친다며 으레 독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는 칼슘제와 에스트라디올 주사를 처방해 주었다. 내가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마침내 태도가 누그러졌다.  - P30

나 같은 여자들은 의사의 하루를 망쳤다. 돈도연줄도 없는-그렇다고 무턱대고 의사들을 찾아가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런 여자들은 자기들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고, 영영의사 면허증을 앗아 갈 수도 있는 법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고 의사들은 감히 진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여자들을 죽게 방치하는 법을 위반하느니 차라리 당신들이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솔직하게 나서지 않는 한, 임신할 정도로 멍청한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눈 때문에 자기가 이룬 모든 걸 잃고 싶지 않다고말이다. 어쨌든 그들은 하나같이 여자들의 임신 중절을 막더라도, 그녀들이 알아서 방법을 찾아낼 거라 생각했으리라. 부서질지도 모르는 자기들 이력에 비하면, 여자들이 질 속에 뜨개질바늘을 넣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 P31

(이야기가 나를 이끌고 가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가피하게 진행되는 불행의 의미를 내게 강요하는 느낌이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앞으로는 나아가지 않고 단지 두터워지기만 하는 시간이 끝없이 지체되도록 온갖 방법으로 - 세부적인 요인들을 찾아 메모하고, 반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사건을 분석하는 일 - 노력해 가며, 나는 몇 날, 몇주를 훌쩍 뛰어넘고 싶은 욕망에 맞서야만 한다.) - P32

이제 ‘이념의 천국‘에는 다가갈 수 없어 보였고, 그 아래로 구토하며 진창에 빠진 내 육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 어떤때는 내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다시 그런 것들을 고민해 볼 수있길 바랐고, 또 어떤 때는 지식이란 습득해 봐야 결국엔 무너져 내릴 뿐인 허울 같은 구조물처럼 보였다. 어쨌든 논문을 쓰지 못하는 상황은 중절을 해야만 하는 필연성보다 더 끔찍했다. 논문을 쓸 수 없음은, 보이지 않는 내 타락의 명백한 징표였다. (수첩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공부도 되지않는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지식인‘이 아니었다.  - P33

(내 출신이며 심한 정신적 피로‘를 두려워하는 육체노동자의 세계, 혹은 내 육체, 내 육체에 새겨진 그런 기억과 연결된 먼 과거의 무언가에 붙잡혀 있기라도 한 듯, 내가 사물들을 탐구하기 위해 더 깊숙이들어가지 않았다는 생각을 여전히 종종 한다.) - P34

그해 9월에 찍은 사진 속 나는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는데, 목의 팬 부분에는 머플러를 두르고,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짙은 구리빛 피부에, 미소를 지으며, 생기 있는 표정으로앉아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서 변화하지만 끊임없이 실재하는 유혹이라 부를 만한 청춘 시절의 마지막 사진이라 생각했다. - P35

그 전날 밤, 「나의 투쟁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숙사 친구들과 보러 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엄청나게 동요했고,
끊임없이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영화는 나에게 명백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나 자신에게 가하게 될고통은 강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생각은 용기를 주고 결심을 하게 했다. - P37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분노나 혐오감을 자극할 수도 있을 테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켜 비난을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 P38

(지난밤, 1963년 상황에 처해서 중절할 방법을 모색하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자,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압박감과 무력감을 그 꿈이 정확하게 되돌려 주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이 절망적인시도처럼 여겨졌다. ‘모든 게 다 있다.‘라고 여기는 아주 짧은 오르가슴을 느낄 때처럼, 꿈을 떠올리자, 내가 단어들로 찾아보려 하는 것이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 낸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의 기억은 내글쓰기의 시도를 무용하게 했다.
그런데 깨어나면서 꿈꿀 때 느낀 감정이 사라진 이 순간, 글쓰기는꿈이 정당화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필연성을 되찾는다.)고 2 - P38

지난 일요일, 루앙을 경유해서 노르망디 해변을 다녀왔다. 그로스오를로주 거리를 걸어서 성당까지 갔다. 새로 조성한 ‘레스파스 뒤 팔레‘ 쇼핑몰에 위치한 카페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집필하던 책 탓에끊임없이 1960년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벽을 닦아 내고 새로 색을칠한 루앙 시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았다. 도시의 색채를 벗겨내고, 거리 벽에 본연의 어둡고 음산한 색을 씌우고, 인도에도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만들어 가며, 공상이라는 힘겨운 노력을 통해서만 1960년대에 다가갈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책에 들어간 풍경 삽화 속에서 인물들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어쩌면 1963년 당시의 옛날 학생들 한두 명쯤은 있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르지만, 지금은 만나 볼 수 없는 사람들.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 옆에는 거무스레한 얼굴에 갈색 머리를 지닌, 작지만 두툼한 입술의L.B.를 떠오르게 하는 예쁜 소녀가 있었다. 소녀가 그녀의 딸이리라 생각하고 싶었다.) - P45

그녀는 테이블을 앞에 두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내 다리 사이로 커튼이 내려진 창문과 길가 반대로 난 다른 창문들, P.-R. 부인의 흰머리가 보였다. 이런 곳에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에 학교에서 몸을 숙이고 책을 보는 여학생들을, 콧노래를 부르며 다림질을하고 있을 엄마를, 보르도 거리를 거닐고 있을 P.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자기 주변에 두고 싶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래 봐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은이전처럼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만을 깨달을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계속 내게 ‘대체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거지?‘라고 묻게 할 뿐인데. - P54

(이 글을 쓰던 시기에, 코소보 난민들이 칼레를 거쳐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밀항업자들은 엄청난 돈을 요구하고, 때로는 밀항전에 잠적해 버린다. 그럼에도 코소보 난민을 비롯하여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은 밀항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구원받을 다른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밀항업자들을 쫓는다. 삼십 년 전에 임신 중절시술가에게 그랬듯이 밀항업자들의 존재를 몹시 못마땅해한다. 누구도 그 존재를 부추기는 법률이나 국제 사회의 명령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그리고 마치 오래전 임신 중절 시술을 해 주었던 이들처럼, 이민자들의 밀항을 돕는 이들 중에 다른 사람보다 더 올바른 이들도 분명있으리라. - P59

루앙으로 돌아왔다. 춥지만 햇볕은 좋았던 2월이었다. 나는 똑같은 세계 속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느낌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자동차들, 학생식당 테이블 위의 식판들.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의미가 넘쳐 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넘쳐 난다는 바로 그 이유로 단 하나의 의미를 포착할 수없었다. 한편에는 너무나 의미가 많은 존재와 사물이 있었고,
다른 편에는 아무 의미 없는 말들과 단어들이 있었다. 언어를넘어서는 순수한 의식이 흥분된 상태 속에 있었다. 밤도 어쩌지 못했다. 깨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얕은 잠을 잤다. 내 앞에서 작고 하얀색의 아기 인형이 떠다녔다. 쥘베른의 소설 속우주 비행사들을 계속해서 쫓아다니며 하늘에 떠다니는 개의시체 같았다. - P74

신성한 무엇처럼 1월 20일과 21일 밤의 비밀을 내 몸속에간직한 채 거리를 걸었다. 내가 공포의 끝에 있었는지, 아름다움의 끝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긍심을 느꼈다. 어쩌면 고독한 항해자들, 약물중독자들과 도둑들, 혹은 다른 이들은 결코가려고 하지 않는 곳까지 경험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자긍심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감정의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이 이야기를 쓰게끔 이끌었다. - P75

이른바 정상이라고 부르는, 모호한 진술이지만 다들 그의미를 아는, 즉 반짝이는 세면대와 기차 안 여행객들의 머리를 보는 일이 더는 문제가 되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세계로 되돌아온 게 언제인지 모른다.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중절에 들어간 돈을 조금씩 갚기 위해 저녁에는 아이들을 돌봤고, 심장병 전문의의 전화를 받는 일도 했다. 오드리 헵번과 케리 그랜트가 주연한 「샤레이드」, 잔느 모로와 벨몽도가 나오는 바나나 껍질」과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영화들을 보았다. 긴 머리카락을 잘랐고, 안경을 콘택트렌즈로 바꿨는데, 렌즈를 끼는일은 질 속에 페서리를 넣는 것만큼 어렵고 불확실했다. - P78


여러 해 동안, 1월 20일에서 21일 밤은 기념일이었다.

이제 아이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이런 시련과 희생이 필요했음을 안다. 내 몸속에서 재생산이라는 폭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내 차례가 되어 세대들이 거쳐 가는 장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 P78

삶과 죽음, 시간, 도덕과 금기, 법을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경험, 육체를 통해 극과 극을 오간 경험으로 여겼던 사건을 단 - P78

어들로 표현하는 일을 끝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 사건에 대해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유일한 죄책감을 지웠다. 재능을 받았지만 낭비해 버린 듯. 경험한 사건에서 찾을수 있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모든 이유를 넘어서서 무엇보다 가장 확실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하나 있다.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있는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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