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여자, 현대문화를 발톱으로 찢어발기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사람."
몹시 진지하고 젊은 수전 손택은 작가로서 누구보다도 특이한데뷔를 했다. 『뉴욕 타임스』 서평은 은인을 가리켜 "피카레스크식반(反)소설"이라고 불렀다. 칭찬의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판매에는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예순 살 남성 화자인 히폴리트가파리에서 보헤미안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죽 따라가며 묘사한다. 그의 이야기는 옆길로 새기 일쑤고, 자기도취적이다. 나중에 손택은 "삶에 대한 미학적 접근의 귀류법, 즉 유아론(唯我論)적인 의식을묘사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아론을 묘사하려다가 그저 자신의머릿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버린 것 같기도 하다. 모든 독자가 이런 정신 속으로 길을 찾아 들어갈 수 있는 것은아니다. 『은인』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십중팔구 이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출판사가 아렌트에게 책을 보내 감상을들려달라고 했을 때, 아렌트는 크게 찬사하는 글을 썼다. - P239
미스 손택의 소설을 방금 다 읽었는데, 대단히 훌륭한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어쩌면 귀사가중요한 작가를 발굴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스 손택은몹시 독창적이며, 프랑스 학교에서 그 독창성을 이용하는 법을배웠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나는 특히 그녀의 엄격한 일관성이감탄스럽습니다. 자신의 상상력이 마구 뻗어나가게 내버려두는 - P239
경우가 단 한 번도 없더군요. 꿈과 생각으로 진짜 이야기를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 정말 기쁩니다! 출판기념 파티에 기꺼이 가겠습니다.
손택이 그때까지 아렌트의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물론, 아렌트의 어떤저작도 손택이 공책에적어둔 읽을 책 목록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손택이 UCLA에기부한 문서와 책 중에는 『라헬 판하겐』(Rahel Varnhagen)이포함되어 있다. 여백에는 연필로 쓴 "하!"라는 감탄사도가득하다(아렌트가 산문에서 내보이는 페르소나를 재미있게 생각한사람은 역사상 손택이 유일할 것이다). 아렌트를 직접 만났을 무렵, 손택은 이미 아렌트에게 감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1967년에메리 매카시가 아렌트와 어떻게든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손택의모습과 관련해서 아렌트를 놀릴 정도였다. - P240
지난번 로웰의 집에서 손택을 지켜봤는데, 분명히 당신을 정복할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당신과 사랑에 빠졌을 수도있고요. 다 같은 얘깁니다만. 어쨌든, 정말 그런가요?
장난스러운 묘사였지만, 매카시와 손택은 서로 라이벌로 규정될운명이었다.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매카시가 손택을 가리켜 "내 모조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가장 극적으로각색한 버전에서는, 1960년대 초에 어느 파티에서 매카시가 손택에게다가가 "네가 새로 등장한 나라고 하던데"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손택은 자신도 이런 이야기를들었다고 썼으나, 매카시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한 기억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P240
그녀는 다층구조를 통해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문장들을써서 이런 뜻을 전달하고자 했으며, ‘안티테제‘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같이 거창한 단어들을 시원시원하게 사용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름다워 보이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속내를 더기꺼이 드러내는 1인칭 화자의 친근함을 대체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방법이 이것이었다. 「캠프에 대한 단상」과 「해석에 반대한다」가 모두 큰 반향을일으킨 뒤, 은인』의 출판사인 파라, 스트로스 앤드 지루가 기회를포착하고 이 비판적인 글을 모아 1966년에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손택의 그 유명한 에세이 제목을 따서 책 제목 또한 해석에반대한다』가 되었다. 이 글은 손택의 소설보다 훨씬 더 많은 서평을받았으므로, 주류 언론이 손택에게 감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되어주었다. 『보그』에 실린 무기명 기사의 지적처럼, 손택의 글은 "역사를 새로 만드는 글이거나 아니면 대담한 사기극"이라는 "말다툼의 대상"이 되었다. 주류 언론에 서평을 쓴 대부분의사람들은 손택을 사기꾼으로 보았다. "예리한 여자, 현대문화를발톱으로 찢어발기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학부생 메리매카시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 P256
손택에 관한 글 중 그녀의 외모와 관련된 글이 얼마나 많은지는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녀를 아주 진지하게 다룬에세이에도 그녀의 외모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산더미 같은 언급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녀는 보기드문 미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구경꾼들이 보여준 열광과사진작가들의 훌륭한 솜씨와 달리 손택과 미모의 관계는 더 복잡했던것 같다. 손택의 공책에는 목욕을 더 자주 해야 한다는 자책의 말이가득하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그녀가 후줄근해 보일 때가 많다고지적했다. 보통 그녀는 머리카락을 완전히 뒤로 넘기고 다녔지만, 그외에는 손질을 하지 않아서 모든 것이 제멋대로 날아다녔다. 심지어대중매체에 나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빗질도화장도 하지 않은 손택의 모습이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단정한단발과 철저한 대조를 이뤘다. - P257
처음부터 손택은 홍보 전문가들이 대중에게 내보이려고 하는자신의 이미지를 걱정했다. 사진이 손택본인을 압도하기 시작한탓이었다. 영국의 한 출판사는 라우션버그의 사진을 실은 『해석에반대한다』 한정판을 내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손택은 거절했다.
이것은 초(超)시크한 계획인가. "라이프』와 『타임』에 기사가실리고 ‘현대적인‘ 여자, 새로운 매카시, 매클루핸 이론+캠프의여왕이라는 내 이미지를 확인하게 될 계획, 내가 지금 그것을무산시키려 하는 건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대적인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대한손택의 저항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의 인터뷰 기사에는 그녀가 "미국 아방가르드의 내털리 우드"가 되었다는 누군가의 말이되풀이되었다. 손택은 두 번째 소설인 ‘데스 킷(Death Kit)을발표했지만, 에세이 작가로서 점점 커져가는 명성을 덮을 만큼의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은인과 마찬가지로 데스킷도 플롯이라고할 만한 것이 없다. - P259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손택은 『에스콰이어』의 한 필자에게프로필을 써도 좋다고 허락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설은 꼬리와같습니다. ... 무자비하게, 어색하게 쓸모없이 우리를 따라다니죠. 자아와 기본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으면서 겸손함에는 물론언제나 자신을 신파적으로 과장하는 느낌이 조금 들어 있지만, 자신의 손에 이미 전설이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전설을 쉽사리거부할 수 있다. 그래도 손택의 말이 옳았음을 우리는 금방 알 수있다. 1960년대 말 무렵 손택의 페르소나는 그녀의 작품과는 별로관계가 없었다. 아마도 그녀로서는 편안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것이다. - P261
손택은 이 모임의 패널이 아니라 청중이었다. 토론 중에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메일러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먼, 아무리선의에서 하는 말이라 해도 당신 같은 말투는 여자들이 보기에 부위에서 내려다보며 선심을 베푸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녀는차분하면서도 분명한 권위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가지지적하자면, 당신이 ‘레이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나는 ‘레이디 작가‘로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먼, 당신 귀에는매너가 있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귀에는 틀린 말로 들립니다. - P268
여성 작가라는 말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단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당신도 아실 겁니다. 우리는 글을 쓰는사람들이니까요." 나중에 손택은 『보그』에 실린 긴 인터뷰 기사에서 자신이 작가로살아오며 직접 차별을 느낀 적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인터뷰를맡은 기자는 그 전까지 손택이 "메일러처럼 여성 지식인을 무시하는편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겁니까? 내가 알고 지내는 지식인 중적어도 절반이 여성입니다. 나는 여성문제에 대해 더할나위 없이 공감하고 있고, 여성의 현실에 대해서도 더할나위 없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해묵은 분노라서일상생활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죠.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야말로세상에서 가장 해묵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 P269
여기서 그녀는 자신이 쓴 글의 주제가 페미니즘이 아니라파시스트 미학을 지적하면서, 리치가 자신에게 거슬리는 부분만지적한 것은 여성운동에서 손택 본인이 지극히 혐오하는 둔감함을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중대한 도덕적 진리라고주장하는 모든 사상이 그렇듯이, 페미니즘도 좀 단순하다." 손택은이렇게 주장했다. 두 사람은 나중에 편지를 통해 화해하면서, 탐색해볼 가치가있는 공통점이 자신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데 동의했다. "오래전부터나는 당신의 생각에 관심을 품었습니다. 우리의 출발점이 아주 다를때가 많기는 하지만요." 리치는 손택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러나 손택은 나중에 인터뷰에서 자신이 리치와 주고받은 말을변명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편지에서손택이 페미니즘에 반대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았던 것 같다. 그녀가젠더 정치학과 페미니즘에 대해 글을 썼는데도 이런 인식은 끈질기게남았다. 한 번은 손택이 인터뷰 도중 대놓고 쏘아붙인 적도 있었다. "나도 페미니스트라고요. 그러니까 이걸 나와 ‘그들‘ 사이의 문제라고하시면 안 되죠. - P272
그러나 1975년 가을 손택이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모든 일에제동이 걸렸다. 의사들은 그녀에게 가망이 없다고 데이비드 리프에게말했다. 종양이 이미 4기에 이른 탓이었다. 사람들은 손택에게 그사실을 직접적으로 알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위험한 상태임을알아차렸던 것 같다. 그래서 조직을 필요 이상으로 제거하면 혹시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과격한 형태의 유방절제술을선택했다.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 경험은 그녀를 근본적으로바꿔놓았다. 그녀는 치료를 받고 나서 마치 전쟁의 충격에 시달려지친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면서, 베트남 전쟁을 혼자 몸으로 전부 - P272
겪어낸 것 같았다고 썼다.
내 몸이 나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고 있다. 그들이 내게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기운을 내자.
당시 그녀는 "납작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 자신에게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머니에 대한 분노, 동성애 성향, 예술적인 절망감 등을 억압하고 억누른 것이 혹시 암의 원인인가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런 생각이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은 그녀도 잘알고 있었지만, 병을 겪고 난 뒤 그녀에게 남은 것은 그런 문제들을자신에게서 완전히 정화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은유로서의 질병 (Illness as Metaphor)을 쓴 것이 바로그런 정화 과정이었다. 1975년에 책으로 출간된 이 장편 에세이는엄밀히 말해서 회고록은 아니다. 손택은 자신의 치료 과정이나 직접경험한 감상적인 순간이나 의사들의 잔인함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언급하지 않은 채, 인류가 결핵과 암을 어떻게 완전히 추상적인미학으로만 다뤘는지를 논했다. 그러나 누가 물어보면, 그녀는 자신이이 글을 진심 어린 호소로 생각한다는 점을 아주 분명히 밝히곤 했다. - P273
손택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즉시 그 남자를 돌로만들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노려보았다. 어떻게 그런 멍청한소리를 할 수 있는가? 그녀는 그 에세이에 대해 논하는 것에전혀 관심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이야기를 꺼내다니. 그는 시대에 뒤처졌으며, 지적인 면에서죽은 사람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은 읽어보지도 않았다는말인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단 말인가? 그녀가분노의 어두운 터널에 빠져드는 모습을(우리는 그 뒤 2주 동안그 터널과 몹시 친숙해졌다), 우리는 모두 경악해서 꼼짝도 하지못한 채 지켜보기만 했다.
「캠프에 대한 단상」이 계속 이름 뒤에 붙어다니는 것에 그녀가좌절을 느낀 데에는, 젊었을 때의 작품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사람들이 그 글을해석하는 시각에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 P275
1990년대에 손택은 대중문화에 대한 지적인 관심이 훌쩍 늘어나는반면 고급 예술의 상황은 점차 힘들어지는 현상을 목격했다. 그리고이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꼈으나, 물론 모든 것이 그녀의책임인 것은 아니었다. 대중문화를 옹호한 그녀의 동료들은 더있었다. 그중에서도 적잖은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폴린 케일이라는영화 비평가였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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