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동과 동석

남들은 아무리 미운 엄마라 해도 엄마가 암에 걸려 결국 병원 의사로부터 사형선고(의사는 엄마가 지금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다 했다)를 받게 되면,그간 쌓아뒀던 원한을 풀고 화해를 한다는데, 그건 남 얘기. 동석은 엄마와 그럴 맘이 추호도 없다. 엄마의 사형선고를 듣고 동석은 오직 한 생각만했다. 마지막으로 대차게 한번 붙어보리라. 그간 살면서 나한테 미안은 했는지, 날 사랑은 했는지, 나에게 상처 준 걸 알기는 하는지, 내 인생이 이렇게 망쳐진 게 엄마 당신 때문인 걸 인정은 하는지, 꼬치꼬치 물어서, 답을 들으리라. 그래서, 기필코 미안했다 잘못했다 사과 받으리라. 그런데, 내 엄마강옥동씨, 낼모레 죽는다는데, 나한테 할 말 없냐니까, 없단다. 미안은 하냐니까, 염병 지랄을 한단다. 그러며 죽기 전 소원이니, 나보고 이복형제 (내겐 웬수 같은) 집에 자신을 데리고 가달란다. 와, 썅! 이건 선전포고다. 좋다.
썅, 살아 있는 모든 날 어디 한번 악랄하게 피 터지게 붙어보자, 그래! 동석은 죽음을 앞둔 엄마와 이길 수도 없는 싸움에 기꺼이 뛰어드는데..
- P42

강옥동 (여, 일흔 중반, 작은 밭에 이런저런 고추, 감자, 깨농사 등등을 지어서, 오일장에 내다 판다, 동석의 엄마)

남들이 벙어리라 할 만큼 말수 적고(혼자선 자주 구시렁대지만), 투박하고, 감정없는 사람처럼 무뚝뚝하며, 그저 일만 한다. 남들 눈엔 순해 보여도, 동석에겐 살갑지도 그닥 순하지도 않다. 취미라곤 종일 바다를 보거나, 하늘의 구름, 밭의 꽃이나 보며 앉아 있기가 전부 무학에 일자무식, 목포 태생.
뱃일하는 엄마 아버지를 열 살 때 집에 화재가 나 잃고, 동생과 단둘이 남의집 일이나 식당 일을 하며 살다(동생은 목포서 살다, 몇 달 전 암으로 죽었다. 죽기 전그렇게 언니 옥동을 찾았다는데, 글 모르고 길 모르는 옥동은 갈 엄두가 안 났다. 그리고부고를 들었다), 동네 사람이 막일하는 동석아버질 소개시켜줘 제주로 시집와 지 - P42

금껏 산다. 동석아버진, 제주에 와 남의 배를 탔다. 그는 남들한텐 호인이었지만,
여잘 너무도 좋아했다. 살림 차린 여자만 해도 족히 열둘, 옥동은, 첨엔 울고불고여자들과 싸우고, 동석아버지 팔을 물고 뜯었지만, 나중엔 포기했다. 치매 걸린시어머니와 애들 건사를 해야 했다. 근데 태풍에 남편이 죽었다. 미운 남편도 죽으니 아쉬웠다.
이후, 물이 무섭다는 딸년을(자신도 무서워, 그동안은 일만 했는데) 끌고 바다로 들어가 함께 해녀가 됐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근데, 이게 또 무슨 일, 딸년도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물질 시작할 때 바다에선 욕심 내면 안 된다고 그렇게 무던히 상군 할망들이 가르쳤는데, 딸년은 전복에 욕심내다 그만 물속에서숨을 거뒀다. 고작 열아홉에 죽어가면서도 뭐 하러 지랄한다고 전복은 쥐고 있었는지.. 남편 죽인 바다는 안 무섭더니, 딸년 죽인 바다는 정이 떨어졌다. 어떻게 살지? 거친 동석이 저 새낀 어찌 키우지. 그때였다.  - P43

더는 삶에 자신이 없어진건. 그래서, 남편의 친구 박선주가 같이 살자는 말에 덥석 그러자 했다. 그와 산단 건 첩이 된단 거고, 그의 병든 아내 수발(거의 식물인간)을 해야 한단 거고, 남의 자식을 내 자식처럼 키워야 한단 거고, 동네에서 남편친구와 붙어먹는 걸레같은 년 소릴 들어야 한단 거였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동석일 키울 수 있고, 다시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됐다. 그까짓 개 · 쌍 * 창녀 소리듣지 뭐. 옥동은 야멸차게 시어머니, 근처 사는 시동생에게 보내버리고, 그길로거적때기 같은 짐을 리어카에 싣고 박선주의 집으로 향했다.
근데 인생의 환난은 이후로도 끝나지 않았다. 이복형제의 원망(나중에 사업한다고 박선주의 집이며 논을 다 팔아, 육지로 나감), 본처의 병수발, 이후 선주의 죽음, 밑도 끝도 없는 동석의 포한 그래서일까, 병원 의사가 슬픈 눈으로 ‘할머니,
병원에서 더는 해드릴 게 없네요. 맛난거나 많이 드세요‘ 할 때, 슬프기보단, 아프던 속도 편했다. 아, 이제 끝나는구나, 이 지겨운 인생. 근데, 아들 동석이 새끼가 시비를 걸어온다. 제 인생이 엿 같고 지랄 같은 건 다 엄마 때문이라나. 그러든 말든, 옥동은 개의치 않았다. 사실이 아니니까. 미안하다고 말하란다. 미안할게 없는데.. 짧게 남은 인생 한두 달도 시끄럽게 생겼다. 조용히 가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하게 된 이 별난 인생.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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