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융합의 산물이며 이미 세상은 융합되어 있다. 독자적이고 순수한 형태의 문화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현실을알 수 없는 이유다. 코언 형제의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온다. "독일의 프리츠인가 워너인가 - P145
하는 학자의 이론에 따르면, 어떤 현상을 과학적으로 테스트하려면 관찰을 해야 하는데 관찰을 하면 관찰을 하는 행위 자체가 현상을 변화시킨다는 거죠. 그래서 현상의 실체를 알기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현실은 잡히는 대상이 아니다. 매 순간 변화하고 이동한다는의미에서 태양 아래 모든 것은 새롭다. 그러므로 융합 그 자체는 중요하지도 않고 무조건 추구할 가치도 아니다. 문제는 어떤 가치를 위한 융합인가이다. 진짜 융합은 인간의 필요에 따른 대단히 목적의식적인 작업이다. 안보 신화를 종식할 수 있는논리, 무의미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논리, 한국 현대사에서 ‘검사 집단‘을 파악할 수 있는 논리・・・・・・ 이런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융합이다. 주류 언어가 나의 삶을 삼켜버릴 때, 현실이 교착 상태에 빠져 공동체가 고통받을 때 새로운 말을 찾는 과정이 융합이다. 융합은 창의적 사고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 P146
지금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융합‘은 융합의 반대말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융합 개념은 ‘절합(折合, articulation)‘에 가깝다. 모든 질서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절합이다. 이 단어는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지만, 현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이 단어는 관절(joint)이란뜻의 라틴어 ‘articulus‘에서 온 말이다. 하나하나 구분되는 마디를 뜻한다. - P147
하나로 화(化)하여 합친다는 ‘융합‘으로 차이를 분명히 하자는 ‘절합‘을 설명하려니, 다시금 아버지의 연장-언어의 식민성-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가장 실천과 거리가 먼 단어는 ‘연대‘와 ‘성찰‘이 아닐까? 연대는 융합에 대한 최악의 이해다. 통용되는 연대 개념은 "우리가 99퍼센트(?)이니, ‘나쁜‘ 1퍼센트(?)를 제거하자"는 논리다. 문제는 99퍼센트 안에 광범위한 갈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갈등의 교차 영역에서 발생한다. 오로지 한 가지 억압이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는 것이 아니다. 노학 연대, 청년 빈민연대, 성소수자 연대, 사회적 약자와의연대…………. 그런데 연대 과정에서 각 집단은 등가 사슬(chain ofequivalences), 즉 하나의 ‘마디 (article)‘가 되지 못하고 약자는연대에 동원된다. 인구수가 많은데도 여성이나 장애인 이슈는대동단결, 일치단결의 ‘대의‘에 종속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대의를 약자와 대립시킨다. 예를 들면 "민족 문제냐, 여성 문제냐"가 있다(이 말 자체가 여성을 민족에서 배제한다). 장애인 문제는 시혜적이고, 성소수자 문제는 ‘나중에‘다. - P148
만물 중에 같은 것은 없다. 우주는 차이들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 많은 차이들 중에서 우리가 아는 차이는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건 의외로 쉽다. 사회가 선택한 차이만차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차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인간의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차이는 분업이나 차별이 필요할 때 발명된다. 그래서 어떤 차이는 다양성으로 인식되지만, 어떤 차이는 차별의 ‘이유‘가 된다. 인간이 만든 차이를 두고 "차이는 인정하지만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언설이다. 이 언설은 사회적 구성물인 차이를 본질적인 속성으로 전제한다. 이때 차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공정함이 아니라 배려와 관용이다. 차이는 해소하거나 인정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융합은 차이의 발생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사유, 즉 권력과 지식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자연스러운 차이는 없기 때문이다. - P151
더구나 인류는 공통어가 없다. 외국어는 물론이고 수어, 방언도 존재하는데 이는 축복이다. 만일 한 가지 언어(지금은 영어)만 있다면 끔찍할 것이다(완벽한 지배는 완벽한 소통 상태일 때만가능하다). 또한 소통 불가능한 구조의 핵심은 말하는 사람마다젠더, 계급, 인종 등 사회적 위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가 매일 겪는 일이다. 저마다 자기 입장이 있다. 지배자의 입장을 내면화하는 통념과 상식을 자기 생각이라고 믿든, 모든 개인은 입장이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상황에서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무섭다. 이것은 생각하지 않는 상태, 폭력이다.소통은 가능하지도 않고, 어떤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 P153
우리의 삶은 수많은 차이의 교차로에 놓여있다. 융합은 차이들을 재배치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사유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기존 인식과 갈등 상황에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다른 목소리가 유리하다. 이것이 뉴 노멀이다. 뉴 노멀은 특정 시기에만 요구되는 기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하는 생명의 본성이다. 인생무상이다. 삶에는정상(正常), 노멀(normal)한 상태가 없는 법이다. - P156
당연히 하나의 기준(uni/versal)이나 다양한 기준(poly/versal)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와 ‘여러 개‘를극복하는 융합으로서 횡단의 정치(trans/versal), 연대의 정치(coalition), 유목적 사유(과정적 사유)가 등장했다. 이것이 융합이다. 니라 유발 데이비스, 퍼트리샤힐 콜린스, 로지 브라이도티가 대표적인 학자들인데 모두 페미니스트이다(이들의 책은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있다). "통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여럿이 되는것이다"(둘은 적대적 공존이라는 통치 세력 간의 ‘하나된 상태를 말한다)는 한국 현대사에 기록될 명언이다. 1984년에 창립된 여성운동단체 ‘또 하나의 문화‘가 외쳤던이 주장을 생각하면 지금의 여성주의 언어는 후퇴했다. ‘또 하나의 문화‘의 영어 표기(Alternative Culture)에서 보듯, ‘또 하나‘는 다양성 중의 하나가아니라 대안이라는 의미다. - P162
모든 지식이 저절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노력이 없 - P162
으면 보수 이데올로기로 전락한다. 그래서 나는 보수의 반대말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진보‘도 공부하지 않으면 보수적, 방어적이 된다. - P163
하지만 세상은 복잡한 법. 인간사는 합리적이지 않고 법칙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한 가지 시각으로는 문제를 파악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없다. 아니, ‘해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해결인가? 피해의 기억은 투쟁을 통해 재해석할 수있지만,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나마 자기 갱신만이해결에 가까울 뿐이다. - P167
‘독도‘와 ‘위안부‘는 다른 이슈다. ‘우리‘는 논쟁하지 않았다. 군 위안부 운동 논란의 쟁점인 ‘돈, 피해자, 조직, 역사 쓰가. 전반에 걸쳐 비위(非違) 제보가 넘쳤는데도 명백한 사실조차 발설이 금기시되었다. 금기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아무도! 그 영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다. 중산층 가족의 계급 재생산, 남성 세력간의 갈등으로 변질된 여성에 대한 폭력, 여전한 일본관. 세 사건은 한국 사회를 파악하는 새로운 지식 생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 P170
실업, 기후 위기에 시달리고 미세 플라스틱이 몸에 축적되는시대에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나 엄청난 부자를 제외하곤 나이 불문하고 모두가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더워서 미칠 지경이다. 그러니 누가 더 억울한가를 두고 경쟁하지 말자. ‘적‘은 따로 있다. 나는 조금은 비굴한 태도로 젊은이들에게 부탁한다. 당신들은 시간이 있지 않은가.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애정어린 조언을 잊지 말라. 나이 들었다고 모두 ‘설명충‘은 아니다. 당신들이 적대해야 할 이들은 청년층의 ‘취업‘을 ‘시간당 최저임금‘ 논의로 변질시킨 정치인과 자본가들이다. 사회 변화를 원하진 않으면서 당신들에게 아부하는 이들을 믿지 말라. 우리는 각자 나이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가난하고 나이든 이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간주되는 이들을존중하자. 이것이 공정이다. - P177
문명은 여성의 타자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남성을 인간의 대표로 만들기 위해 다른 인간은 배제되어야 했다. 겉보기에 남성과 다른 존재, 타자(the others)가 필요했고 ‘바로 옆에 있는‘ 대상인 여성이 가장 적합했다. 백인과 유색인종,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대칭을 이루지 않는 것처럼 남성과 여성도 대칭적이지 않다. 단지 가부장제가 인간을 남녀로 구분했기 때문에 여성이 인구의 반이라는 현실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타자 중에서가장 큰 집단이기에 대칭적으로 보이기 쉽다. - P182
짧은 머리 여성과 김건희 씨를 향한 비난을 여성 혐오라고 보는 것은 환원주의지만, 세 남성의 결혼의 성격이 같다는 주장은 환원주의에도 미달한다. 성차별주의 같은 ‘쉬운 지배 이데올로기‘도 실천할 줄 모르는 분별력이 없는 경우다. 말로 인해 화(禍)를 부르거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일을 면하는 방법은 침묵뿐이지만, 침묵 여부를 결정하는 일도 판단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 P185
요약하면 융합은 원래 존재했고(혼종성, hybridity), 대화가 필요하며(learning), 기존의 지식을 넘어서야 한다(trans~). 물론세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경제학의 예를 들어보자. - P191
기본 소득은 지구 전체의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위한 생명 자체의 권리이다. 기본 소득은 자본 중심이 아니라 자연 중심 글로벌주의의 일례다. 대개 기본 소득을 부의 재분배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사회적 관계속 존재 자체에 대한 대가다. 물론 그 액수는 사회마다, 구성원마다 다를 수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을 ‘노동‘보다 ‘기여분‘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기본 소득을 받게 되면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손해본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임금 노동자의 ‘억울함‘은 사회 전체의 부를 나눔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자본가의 횡포, 금융 자본의 ‘장난‘으로 인한 것이다. - P195
그런 의미에서 한글(Hangeul)도 전 세계 수많은 언어 문자중 하나의 지칭이지, 한글 자체가 우리글/말(이하 우리말)은 아니다. 아마도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겠지만 최근 몇몇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대신 ‘한국어문학과‘라고 표기하는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말과 한국어는 다른 단어다. 우리말은 ‘나(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현지어‘다. 한국어는 우리말의 일부일 뿐이다.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자주 하는 말, "한국어를 잘하시네요"와 "우리말을 잘하시네요"는 한국어와 우리말의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어를 잘하시네요"가 맞다. ‘우리말‘에서 누가 우리인가? ‘우리‘는 이미 상대방을 배제한 말이다. 또한 칭찬일지라도 타인의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표현도 실례에 속한다. - P204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인종, 계급, 젠더를 둘러싼 고정 관념이 있다. 물론 흑인, 여성,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견이 강하고 대개 ‘생물학‘이 근거로 동원된다. 고정 관념에는두 가지로 대응이 가능하다. 하나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차이는 개인차일뿐, 집단 전체를 특징지을 수 있는 동일성은 없다. 또 하나는 ‘현실‘임을 인정하고 이를 재해석하는것이다. 여성은 주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는 그만큼주변을 살피는 안전한 운전자라는 의미다. - P210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은 자신의 입장을 경유한 부분적인 것이다. 진실을 전제하면 부분성, 상황성, 맥락성은 드러날 수 없다. 두 ‘백서‘의 사례 중에는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건도있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일, 무관심한 사건도 있다. 이것은 회색인의 관점이 아니라 나의 이해(利害)와 관련한 사안별접근이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사안마다 설득력이 다르고, 내가 아는 ‘팩트‘와 달랐다. 흑백으로 나누지 말고, 사안별 횡단이필요하다. 흰색과 검은색은 본디 명도 차이가 커서 조화가 잘된다. 색상 차이가 클수록 조화롭다. 그래서 도로의 위험 경고 표지는검은색과 조화롭지 않은 노란색을 사용한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나온다. - P223
융합이 왜 융합일까. 융합적 사고가 왜 필요한가? 자본은 융합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핵심 방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학생을 유치한다고 다양한 학과 이름을 만든다. 나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이를 위해 어떤실천이 필요한지를 아는 데 융합이 중요한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융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다. 가치관, 당파성이 문제를 인식하는 범위와 초점을 정한다. 문재인 정부 내내 우리 사회는 검사 한 명이 의제를 장악하고전 국민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공동체 구성원의 안목이 부족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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