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에 아직도 동의하는 이들이 있을까. 교육이나 환경 문제는 중대한 일이어서 당장 필요에 따르기보다는 멀리 보고 큰 틀에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들말한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지구 멸망이 눈앞에 있는데 언제 백년 후를 생각한단 말인가. 마르크스는 1883년에 사망했다. 마르크스의 사후 백 주년인 1993년이 PC통신 시대였던 걸 생각하면 지금 ‘발전‘ 속도는 얼마나빠른가. 백 년 전 지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장매일 집계되는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코앞의 뉴스다. 2021년에는 북미 대륙 서부 기온이 49.5도까지 치솟으면서 수백 명이사망했다. 교육이 아니라 하루의 생존이 큰일, 대계(大計)다. - P129

학교의 역할은 공부를 가르치는 데만 있지 않다. 학교는 ‘가정처럼‘ 미래 세대를 위한 돌봄 기관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가족도 학교도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다. 정말 때가 왔다. 학교를없앨 수 없다면, 다른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 P133

융합은 초월적 위치에서 여러 가지 지식을 합하는 관념이 아니다. 현실에서 출발해 (rooting) 필요한 실천으로 옮겨 가는(shifting) 이동의 사고이자 해결책을 찾는 전술적 사고(실사구시)다. 현실 인식이 너무 늦으면 우리의 자리(뿌리)는 썩는다. 이글은 "타인의 편집된 삶과 나의 전체 삶을 비교하는 불행"이라는 문장을 읽은 후의 감상이다. 나는 근래 이보다 정확한 현실인식과 통찰을 읽은 적이 없다. 앞에서 말한 김영우 작가의 책에서 인용한 것인데 그의 중학교 3학년 자녀가 쓴 글이다. - P133

방송인이나 정치인의 학위 논문 표절은 일상의 뉴스다. 청문회에서 표절이 문제 되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있었던가. 우리사회는 표절을 관례(ritual)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통과 의례(ritual, ‘儀式)도 있다니! 의례가 아니라면 이 관대함을 설명할길이 없다.
대개 표절을 윤리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표절로받은 학위를 근거로 삼아 방송에 나와 큰돈을 벌거나 평생 고용의 수혜를 입는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공정거래행위가 아니므로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학계의 표절은 대중적으로 잘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횡행한다. 관련 전공자들은 알고 있지만 동료를 고발해서 좋을 일이 없다. - P134

인생 공부를 포함해 공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상, 읽기, 여행, 경험과 그 해석, 인간관계, 쓰기………. 그중에서도 나는 ‘쓰기‘가 공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도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중 쓰기가 가장 어렵다.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실험외에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은 많지 않다. 생각과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수학 공부의이치와 비슷하다. 남이 풀어놓은 것을 이해하는 능력(읽기)과자기가 직접 푸는 능력(쓰기)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수학 점수가 안 오르는 지름길이다. - P138

이럴때는 글쓰기를 정지하고 모든 것을 재점검해야 한다. 쓰다가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최초의 문제의식과 다른 내용을 쓰고 있거나,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사유 틀(‘이론‘)을 찾지 못해 ‘이론을 창시하는 고통‘을 겪고 있거나, 사례가 적절하지 않거나,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가 틀렸다거나….
이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것, 부족한 것을 깨닫고 쓰기를 반복해야 한다. 겪어야만 깨달을 수 있고, 이때 새로운 지식이 생산된다. 과학자는 실험을 반복하고, 글쓴이는 쓰기를 반복한다. - P139

프로 운동선수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은 연습을 거듭한다. 연습을 훈련(訓練)이라고 하는 이유다. ‘훈(訓)‘은 해석,
풀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몸에 도장을 ‘새길 만큼‘ 익힌다는 뜻이다. 우리는 위대한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의 영광을 보지만 사실 그들의 영광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연습한 몸의 결과다. 연습이 예술(art, 기술)이다. 공부는 쓰기가 연습이다. 글쓰기의 좌절에 익숙한 나는 ‘완벽한 글은 없어도 완벽한인생은 있지 않을까‘하는 망상에 자주 빠진다. - P139

새로운 글, 익숙하지 않지만 뭔가를 시도하는 글, 논쟁적인 글을 쓰려는 이들에게 표절 문화는 우주로 떠나고 싶을 만큼의 절망이다. 한국 지식 사회의 절도 문화는 왜 이리 당당할까.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중세가 안착했다. - P140

"아버지(master)의 연장으로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
이 말의 주인공인 미국의 시인 오드리 로드는 페미니스트, 흑인, 동성애자, 유방암 환자로 살았다. 로드는 자기만의 언어로현실을 인식하고 변화를 추구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그에게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언어는 ‘중층‘의 억압 속에 살았던 로드뿐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조건이다. - P143

언어의 역할이 분명히 있지만, 기본적으로 언어는 매일 마주치는 삶의 장벽이다. 나는 소통의 불가능성에 희망을 걸겠다. 소통이 가능하다는 환상은 절망과 분노로 바뀌기 쉽다. 세상에서통용되는 말들은 대개 나와 무관한 이들이 만든 말, 소위 이데올로기이다. 물론 그런 말조차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인생이대다수다. "속 시원히 한번 말해봤으면" 같은 소망을 품어보지만, 그 말을 누가 들어줄 것인가도 문제다. 이 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이들의몸부림이 아닐까. 코로나 시국에 이른바 유명인들이 모여 와인을 마시든 파티를 하든 누가 알겠는가. 그들 자신의 업로드로알려진다. 욕을 먹어도 좋으니 자기를 봐 달라는 이들의 표정은행복하다. - P144

말이 안 통하는 세상이니 ‘아버지의 도구‘조차 제대로 그 기능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아니, 그래서 ‘아버지의 연장‘일까.
정확한 인식을 방해하는 단어가 산더미다. ‘노동 시장 유연성‘
‘성희롱‘ 같은 노동과 젠더에 관한 번역어들은 현실을 완전히왜곡한다. 기존의 언어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검열과 사회적 검열까지 겹치면 침묵이 답이다(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내게 침묵은 완벽한 좌절 혹은 들끓었던 몸이 소진된 상태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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