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통섭》은 내가 읽은 번역서 중 번역자의 문화(적) 번역, 문제의식, 열정이 가장 잘 표현된 책이다. 융합 혹은 통섭을논할 때 번역자인 최재천 교수와 장대익 교수 이야기를 빠뜨릴수 없을 것이다. 번역은 다른 사회와 나의 현장(Local)을 동시에읽어내는 작업인데 이 책은 그 노고가 역력히 보인다. 번역자들은 몸부림쳤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회에서 《통섭>은 ‘최재천의책‘으로 더 유명해졌다. 나역시 통섭(統攝)이 ‘consilience‘의가장 가까운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른 표현을 제안해본다. 바로 ‘섭(攝)‘이다. 섭은 ‘당기다‘ ‘거느리다‘ ‘다스리다‘ 등 통섭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뜻을 - P44

담고 있다. 손(手) 하나와 귀(耳) 세 개가 결합한 ‘‘의 생김새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중 섭)은 소곤거리는, 가까이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귓속말을 뜻한다. 그러므로여기에 ‘手‘를 결합해야 한다. 잘 들리지 않으므로 귀에 손을 대어 ‘끌어들이는‘ 일이 통섭인 것이다. 여기서 ‘잘 들리지 않는 소리‘는 소수자의 목소리, 가시화되지 못한 진실, 보이지 않는 현실, 특정한 시각에서만 발명(‘발견‘이 아니다)되는 사실 등으로해석 가능하므로 ‘‘섭"은 멋진 글자가 아닐 수 없다. - P45

여전히 윌슨의 《통섭》에는 명문이 즐비하다. 융합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다음이 아닐까. "과학 이론은 반례들에 직면하면 폐기되도록 특별히 설계되어 있다. 그것이 이왕 틀린 것이라면, 빨리 폐기되면 될수록 좋다. ‘실수는 빨리 할수록 좋다‘라는 격언은 과학적 실천에서도 하나의 규칙이다. 과학자들도 자신이 만든 구조물과 사랑에 빠지고는 한다. 물론 나도 예외는아니었다. 불행히도,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평생을 헛수고하는 과학자들도 있다.....이론은 거듭되는 장례식을 통해 진보한다." - P47

선구안은 지식 전반, 국가 경영, 사회의 성숙, 개인의 인생 등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비유다. 비슷한 말로는 판단력, 안목, 착목, 문제의식, 질문이 있다. 공동체의 운명은 지도자와 구성원들의 선구안에 달려 있다. 타석의 선수가 매번 공을판단하듯 스트라이크존은 앎과 삶의 범위를 상징한다. 인생은거창하지 않다. 일상이다. 지식은 일상의 매 순간 필요한 수많은 양식(樣式糧) 중 하나일뿐이다. ‘학자‘도 다르지 않다. - P49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한다고 해서 비정규직 문제와 고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게 아니고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고 해서 난민을 반대하고 박근혜 씨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를 설득할 수 있는게 아니다. 우리의 현실은 당면한 볼 카운트에 있다. 지식은 ‘야구장‘이 아니라 ‘스트라이크존‘에서 요구된다. 얇은 스트라이크 존이라는 타자의 포지션에서 시작된다. - P54

야구에서 1루수는 오가는 공을 가장 많이 상대하는 포지션이다. 야구 인생의 끝자락에서 가난한 구단에 겨우 입단한 그에게 ‘1루수‘는 경기장에서 주어진 포지션을 넘어 생계 수단이자 운명이다. 하지만 그가 언제 어디서나 1루수인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그의 포지션은 다양할 수 있다. 내가 많이 권하는 책,
<가만한 당신>의 저자 최윤필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요컨대 나는 국적 · 지역·성·젠더 · 학력 차별의 양지에서 살았다. - P55

"나의 위치에서 생각한다." 이 말은 ‘네 주제(능력, 형편, 조・・・・)를 파악하라‘거나 ‘너 자신을 알라‘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정의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나의 위치에서 생각한다는 건 성별, 계급, 인종, 지역 등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 속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만물은 결국 ‘나‘라는 렌즈를 통해 인식되기 때문에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삶은 무의미하거나 대개는 사회악이다.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모르는 인간이 여론을 주도하거나 지도자가 될 때 공동체는 위험해진다. - P59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페미니스트를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 페미니스트, 쉽지 않은 포지션이다. 이들은 남성 사회에서도 여성 사회에서도 배척당하기 쉽다. 그래서 R. W. 코넬 같은남성성 연구자는 여러 차례 성전환 수술을 받기도 했다. 다른성별의 몸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성별은 역지사지가어렵다. 자신의 자리(地)가 포지션이라면 이를 인식하거나 이동하는 과정이 역지(易地), 포지셔닝이다. 역지사지는 공감을 넘어서는 권력과 자원의 문제다. 기득권자는 자신이 손해 보는 역지사지가 싫고, 피억압자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지속적으로인식해야 하는 상태 자체가 고달프다. - P60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은 실상 자기 커뮤니티로의 커밍인(coming in)이다. 팬데믹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필수다. 그러나 집(home)은 안전한가?
집(부동산)이 있는가? 탈코르셋 운동(외모주의 반대 운동)은 백번옳지만 중년 여성, 장애여성, 트랜스젠더 여성에게도 같은 의미일까? 지독한 위치성을 인식하는 일, 이것이 삶의 본질이다. - P61

자연,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중요한 성격으로 여겨졌던 합리성은 근대성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서 여전히 멈추지 않는 홀로코스트는 이성의 예외 상태(공기)가 아니라 권력의 의지로서 이성의 실현이다. 전쟁은 기획된다. 이를테면 가정 폭력, 성폭력 가해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후 여성주의, 현상학, 인류학 등은 인간에 대한 연구 주제를 몸으로 이동시켰다. 모든 개인은 ‘몸‘이다. 그 몸은 사회적이다(mindful body, social body). 마음은 몸의 ‘일부‘다. 마음이 몸을 빠져나갈 때 우리는 죽음을 맞는다. 사회적 몸으로서 인간개념은 개인과 구조의 이분법을 반박한다. 구조는 개인에게 큰영향을 끼치지만 개인의 대응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이 같은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자유주의 모두 사회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융합의 산물이다. - P73

말하기와 듣기가 존중받는 사회에서는 개인도 덜 아프고 사회도 건강하다. 이것이 사회 윤리, 공중 보건으로서 상담이다.
자신의 취약함을 타인에게 말하는 행동은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일‘과 같다는 인식,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강박의 결과는우울과 자살의 사회다. 외로운 침묵, 말하기를 포기한 불신, 소통을 대신하는 물리적 폭력……. ‘환자‘의 말에 사로잡힌 ‘의사‘
프로이트를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예비 내담자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된다. 좋은 사람은 타인을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장점과 자원을 알아내는데 주력하고 삶의 대처 능력을 함께 모색한다. - P81

하지만 서민의 입장에서는 재벌만큼이나 부자였고 재벌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부패했다. 그런데 재벌을 비판한 공으로 진보라는 명예와 함께 정권에 입성했다. 그 택시 기사는 세상을 알았다.
역사 발전을 가능케 하는 적대와 긴장이 사라진 시대에 기후위기가 겹쳤다. 이제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고 몸 아프고 나이든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계속될 것이다. 비참하고 고난이 가득한 삶이 확실한 사람들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파국은 굉음을 내며 등장하지 않는다. 흐느끼는 소리라면 슬픔이 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영‘, 부자와 동일시를 넘어 과시로 내지르는 ‘플렉스‘는 파국보다 더 비극적이다. - P91

말은 ‘나의 마르크스주의는문해력은 자신의 가치관과 무지에 대한 자기 인식의 문제다.
그러므로 문해력 향상의 첫걸음은 에포케 (epoche, 판단 정지)이다. ‘나는 모른다‘는 자세가 공부의 시작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력부터 의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 몸에는 이미많은 의미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지하다고 가정하는 데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가 중노동인 이유다.
잠깐의 판단중지. 그 잠깐의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삶은 자기 진화의 과정이지 시비를 판단하는 행위가 아니다. 지식을 하나의 고정된 정보로 여기는 이들은 타인을 ‘가르치려 들지만, 알아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들은 우리를 가르친다‘. - P98

다른 사람의 몸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 삶은 몸들의 개별적 화학이다. 요컨대 인생사에서 공부는 혼자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다. 요즘은 의학의 도움으로 생사에도 외부가 개입하지만 공부는 그렇지 않다.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단 한 가지, 공부뿐이다. 취업이 안 되는 시대라면 공부를 하면 된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工夫)는 글자 그대로 특정 분야에자기 몸을 훈련하여 장인(匠人)이 되는 것이다. 거창한 얘기가아니다. 공부는 세상이라는 공방(工房)에서 대장장이에게 망치질을 당하고 불에 녹아 쇳물이 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환을 거듭하며 내 몸에 기(技)와 예(藝)를 새기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으로 대체 불가능한 완벽한 개체다. 사랑하는 이가 아플 때 대신 아플 수 없고,
‘입시 코디‘를 고용해도 안 되는 공부는 안 된다. 그 어떤 경우에도 타인이라는 별개의 몸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폭력과 고문이 인문학(humanities)의 주된 주제여야 하는 이유다. - P102

주변에 어떤 사람을 가까이 두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 P102

이 문제에 관한 한, 공부처럼 좋은 예도 없을 것이다.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만큼 큰 행운이 없다.
공동체를 꾸리거나 도(道)을 맺는 것이 함께 공부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제도 안팎에 동시에 존재한다.
학교, 배타적인 연애, 가족 제도는 제도권 안에서 가능한 대표적인 공부 모임이다.
반면 개인이 조직하고 참여하는 온·오프라인 공부 모임이나제도로부터 자유로운, 두 사람만의 관계인 도반이 있다. 공부에필요한 적대는 일대일 관계이므로 도반은 두 사람이어야 한다.
세 사람이면 대화가 흩어진다. 도반이 ‘유사 연애‘의 모습을 띠는 이유는 검열 없이 대화가 오가고 상대방의 뇌에 출/입할 수있을 만큼 둘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P103

동무(同舞)는 독무(獨舞)가 전제되어야 한다. 운이 좋으면 아름다운 결과가 나온다. 많은 이들이 그 어감 때문에 융합이 무언가를 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융합은 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융합하는 개별적 몸들이 접속하는 상태다. 융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각자의 가치관이 충돌하여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과 충돌할 자기만의 몸이있어야 한다. 이처럼 도반은 믿을 만한, 편한 길동무라기보다는자극과 긴장 관계에 가깝다. - P104

융합은 먼저 내 몸에서 일어나고 그 다음에 공동체나 도반에서 일어난다. 혼자 공부하는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한다. 굶으면서 공부할 수는 없으므로 최소 비용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걸을 수 있는 거리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얼마의 교통비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큰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가방도 필요 없다.
자료를 읽고 조사하면서 필요한 부분은 본인 메일로 보내면 된다. 이런 방식의 공부를 권한다. 누구든 어느 한 분야에도 관심없는 사람은 없다. 본인의 생계를 전문적 지식으로 발전시킬 수있으면 더욱 좋다.
스스로 융합된 몸이 되어야 다른 융합도 가능하다. 그리고그러는 편이 바람직하다. 융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당파성의지속적인 생산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가치관의 충돌과 재생산이 없는 공동체나 도반이 무슨 소용인가. - P105

말할 것도 없이 팬데믹은 인류에 대한 지구의 복수다. 자본가와 발전지상주의자들은 재난이 자기 턱밑에 오더라도 ‘노아의 쪽배‘까지 부술 태세다.
과학 기술에 관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논쟁 방식은 장단점나열이다(예를 들어 ‘세탁기로 여성의 노동이 줄어들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핵심은 인간의 삶과 환경의 변화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 은행은 희망퇴직자를 받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부터과학 기술의 최대 성과는 실업이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구는 79억 명이다. 반면 케냐에서는 지구에 홀로 남은 단 한 마리의 하얀 기린이 발견되었다고한다. 사람이 너무 많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도, 다른 생명체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후 위기는 인간 활동의
‘불가피한 부작용‘ 정도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언제까지 방역 시대를 살 것인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분명히 할시기가 왔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어야한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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