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떤 사회인가. 나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가 아니라한국이 가장 모르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에 관심이없고, 한국은 일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내가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일은 거리에 아무렇지 않게 나붙은 ‘공산당(共産)‘ 포스터였고, 둘째가 자판기였다. 물론 일본 공산당은 망한 지 오래고, 재일 교포와 오키나와인들과 연대하기를거부하고 자본가들에게 고용을 부탁하러 다니는 ‘단체‘다.
자판기는 몇 미터 간격으로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닥다닥,
거리의 가로수보다 많은 것 같았다. 음료, 담배, 라면, 인스턴트식품은 기본이고 여고생이 입던 팬티 냄새가 사라지지 않도록캔에 봉인한 섹스 관련 상품을 파는 자판기도 있다. 일본은 ‘한때‘ 전자 제품의 나라이기도 했지만 빵, 치즈, 잉어, 옷감, 디자인, 와인, 종이, 두부, 국수(麵), 건축, 음악, 다신(多神), 화장품,
그리고 세습, 서브컬처의 사회이기도 하다. - P193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다)를 꿈꾸었고 실현했다. 유럽 문화에 정통한 인문학자가 수두룩하다. 탈아입구를 실현한 정도가 아니라 일찍이 메이지 유신을 시작으로 해서 국민국가 체제를 완성하고, 세계 제패를 기획해 미국,
중국과 전쟁을 치렀다. ‘작은 나라(倭)‘가 아니다. 노벨상,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1950년대에 이미 ‘성취했다‘.
일본의 문학, 인문학, 역사학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이들은 남을 침략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연구했고 이미정상(頂上) 국가 또는 정상(常) 국가를 경험했다. 그래서 한국의 지식인처럼 식민지 콤플렉스에 시달리거나 ‘나라 만들기‘에열중하기보다 지금 당장, 자국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모든 담론이 되어야한다(should be)"이다. 현재는 지나가고 있는데, 오지 않을 미래를 설계한다. 자본주의와 발전주의, 민주주의가 같은 의미로 쓰인다(대표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대신한 스마트폰 사용이 그것이다). - P195

일본의 현재를 살펴보는 것은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소중한예술가 혹은 윤리적인 예술가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자기사회를 직면하고 고민을 담되, 그 상황이나 인물을 대상화하지않고 껴안는다. 이것이 그의 영화가 지닌 소구력이며, 관객은그가 재현하는 특정한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가 <좀도둑가족>에서 가난한 일본인을 그렸다고 해서, 일본을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거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는다. - P197

한다.
이 책의 ‘위대한 업적‘은 상상의 공동체로서 국가를 실체(entity)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국가를몸에 비유한다.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는 관계와 제도이지 주권, 영토, 국민의 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 내 모든영토는 평등하지 않다. 모든 국민도 평등하지 않다. 어디가 국가인가? 서울? 전라도 완도? 경상도 언양? 누가 국민인가? 여성? 장애인? 영토나 국민 개념은 가정해서 상정한 것이지실제가 아니다. 다만 특정지역이 국가로 대표될 뿐이다. 어느때는 서울이 어느 때는 독도가 어느 때는 한라산이・・・・・.
주권은 어떠한가. ‘국가의 영혼‘이라는 주권은 하나(singularity)가 아니다. 나는 식량주권, 검역 주권에는 찬성하지만 군사 주권에는 회의적이다.  - P201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국가주의에 ‘도‘ 도달하지 못한 사회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존경이 없는 기회주의자들의 나라다. 여기서 내가 반민특위 역사를 들먹이며 흥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윤리적이지 않다. 윤리적인 국가는 보훈에 충실해야 한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경의를 표하는 일은 공동체 유지와 후세대 교육을 위해 필수적이다.
여기서 국가의 모순이 발생한다. 정상 국가는 건강한 비장애인 남성의 몸으로 재현되지만, 실제 정상 국가는 외적과 투쟁을거쳐 쟁취한 공동체이므로 부상당한 몸이 정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상이용사(傷勇士)‘나 장애인의 몸이 정상 국가를 상징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국가는 거의 없다. - P205

인간의 역사에서 기차의 가장 큰 의미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변화시켰다는 데 있다. 철도와 기차는 근대 자본주의의 기본인프라이자 근대성을 상징한다. 기차는 물자 수송과 인간의 이동,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기차 시간은 정확해야 한다. 승객은제시간에 기차에 승차해야 한다. 10초도 늦어서는 안 된다. 출발 시간에 늦어 역 부근부터 숨이 차도록 달리는 사람들. 우리자신도 경험했다. 비행기의 연발과 연착은 흔한 일이지만 기차는 그렇지 않다. 기차를 놓쳐본 이들은 알 것이다. 인간은 아직하늘을 정복하지 못했지만 지상은 장악했다. 기차 시간의 정확성은 한 사회의 발전과 기술, 질서를 의미한다. 에릭 홉스봄도적었듯이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제시간에 왔다." (나중에 이 말은 ‘사실‘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었다.) - P209

지금도 "하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없진 않지만, 인간의 의지는 질주하는 자본주의 구조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안다. 인생은 해도 안 되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특히 높은 이유는이 진실을 너무 빨리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인간의 의지, 불굴의의지,
‘그놈의 의지・・・・・…. 나는 인간의 의지가 개인과 사회를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저 사는 만큼만 생각하면 된다.

홀로코스트, 하나의 질서만 유일한 진리가 되는 보편성(uni/versal)의 폭력이 실제로 실현된 대량 학살이다. 프리모 레비의시 기차는 슬프다>는 이를 정확히 표현한다. 첫째 연이다.

단 하나의 목소리와 단 하나의 노선으로
정해진 시간에 떠나야 하는 기차보다
더 슬픈 게 있을까?
그 어떤 것들도 이보다는 더 슬프지 않다. - P210

MB 시대의 정신을 체화한 ‘MB 캐릭터‘는 이 영화의 최고 악역(김의성)이 아니다. 그는 평범한 생존자다. 문제는 그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들이다. MB 시대의 대표적 모델은 전 경찰청장 조현오다. 그가 저지른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등은 MB가
‘지시‘한 것이 아니었다. MB는 그런 문제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다. 이 사건들은 조현오 개인의 과잉충성의 결과였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실력이 있으면 굳이 비윤리적이지 않아도 되는 능력주의 사회다. 그러나 이들은 실력이 없으므로 한편으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편으로는 극도로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살 - P216

아간다. 이들에게 죄의식이나 수치심은 인생의 낭비다.
이 시대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보편적 윤리가 아니라 약자가 사는 방식이 되었다. 인사불성(人事不省) 상태에서부끄러움 없는 사람의 활기(氣)는 그 자체로 흉기다. 한마디로 지금 이곳은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다. 정의는커녕 의리마저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 평범한 사람도오염된다. 오염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한국 사회를 기차 안에 압축해 두고 모두가 나쁜 사람이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조현오‘가 된다.
다시 쓴다. 이 영화는 보통 사람들이 ‘조현오‘가 되지 않으면생존할 수 없는 과정을 그린 몸서리쳐지는 영화다. 다른 선택은없다. 오염의 주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 P217

이중 삼중의 노동으로 힘겹기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나와 그들의 차이를 글로 썼다. 그래서 그들에게 수많은 나 같은 이들의 존재를드러내고, 차이를 규정하는 주체가 되고 싶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나와 다른 것이니까.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나의 타자이며, 나의 글쓰기 대상이니까. 그들이 없다면, 나는 글을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기질과 가치관, 계급, 성별 등의 이유로 나는 궤도 안의 주류로 살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타자임을 선택했다. 누가 어떻게 규정했든 간에 나는 나의 타자성을 사랑한다. 내인생에서 유일하게 중요한사실이다. 모든 다름은 공동체의 진실을 드러낸다. - P220

내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감독 자신이, 예술가 자신이스스로 타자가 될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그들은 왜 항상 주체이고, 주체를 구원할 수 있는 대상조차 지정할 수 있는 조물주인가. 여성이고 아이들이라고 해서 ‘착하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새로운 주체는 기차 밖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주체는 스스로 ‘꺼지면 안 되는가. 자리에서 내려오라. 인류와 지구를 해방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방하라. 팬데믹 시대의 구원은 우리 모두 ‘섬싱(something)‘이 되고자 했던의지를 버리고, 자연의 일부인 ‘낫싱(nothing)‘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갈팡질팡하는 삶의 한가운데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의 의지가 부끄러울 뿐이다. - P221

국가 내부에서 모든 사람이 국민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국민이기보다는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지방 사람이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봉합될뿐이다. 이봉합은 일상적으로 찢어지고 다시 꿰매지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터져서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고 주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나라의 사정은 식민지배와 함께 찾아온 자신도 모를 운명의비극을 맞았지만, 구한말 개인들의 사정은 모두 달랐다. 바로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었다.  - P226

여성이 자아실현을 하는 데 일본인의 도움을 받으면 ‘친일 행적‘이고 그런 인물을 다루면 ‘친일 영화‘인가? 당시 남성 지식인대부분은 일본에서 공부했다. <청연>은 여성에게 ‘친일‘과 ‘민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여성은 민족의 주체가 아니라민족을 재현하는 대상일때만 유용하다. 유관순은 종종 ‘열사‘
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봉창 열사‘에 비해서는 그 경우가 훨씬적다. 거의 대부분 ‘유관순 누나‘로 불린다. (나는 "유관순 언니"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떤 남성이 "레즈비언이세요?"라고 물었다.) - P228

박경원과 비슷한 시대를 산 마리 퀴리는 첫 노벨상을 수상한뒤에도, 남편 연구실에서 더부살이했고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핵분열 현상을 발견하여 베를린 과학아카데미 첫 여성 회원이된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는 연구소에 여성이 출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남자들 때문에 정문을 이용하지 못하고 청소부용지하 뒷문으로 다녀야 했다. 나사(NASA)의 프로젝트에 선발된
"‘흑인‘ 여성 과학자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히든 피겨스>(2016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당시는 무려 1960년대, 우리는 미국 사회의 합리성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 P229

개인의 삶도 복잡한데, 국제정세가 얽혀 있는 나라를 되찾는 일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탈식민주의 이론의 원인츠 파농은 민족 해방투쟁 (독립운동)은 빼앗기기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탈식민주의, 즉 포스트콜로니얼(post colonial)은 과거에 식민 지배를 겪은 국가들이 형식상의 주권은 되찾았지만 여전히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문화적, 사회적으로 가해국에 대한 피해 의식, 동일시 욕망, 경쟁심, 원한 등에 시달리고있는 상태를 말한다.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가장 웃긴‘
사례가 ‘코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전에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이 무슨 정체성인가? 같은 주인을 모신 나라들의 운동 경기? - P230

문이 열리고 내면의 모순이 드러나면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충돌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을 하기는커녕, 나 자신에게조차 말이 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이랬다저랬다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보호하고자하고 뭉개버리고진심을 말하지 않는 한편, 누가 자기 진심을 읽으려고 하면 상대가마음에 드는 가장 위쪽 상태만 드러내고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의식의 수풀 안에 감춘다- 애나 번스 - P231

구한말의 공포와 혼란, 식민지,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한국현대사를 지배하는 주된 문화는 피해 의식이다. 이 피해 의식은다양한 모습으로 한국 사회를 변주해 왔다. 서구를 따라잡아야한다는 추격 발전(catch-up development)의 원동력이었으며, 극단적 반공 · 반일 · 반미 의식의 근원이었다. 부국강병과 정상 국가 건설은 진보와 보수를 불문한 강박이었고, 기후 위기로 지구가 몰락할 이 상황에서도 그러하다. 팬데믹 시대에도 근대 국가의 정상성을 꿈꾸고 있다. - P239

한국과 일본 관계에서 한국의 위치와 한국과 베트남 관계에서 한국의 위치가 완전히 다름에도, 이 장면은 베트남전 증언자와 일본군 위안부의 만남으로, (무조건) 양심과 저항의 연대처럼 언뜻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베트남인에게 한국인의 피해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한국의 양심‘을 두 나라에서 동시에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시민 사회의 단면을 전시하는 방식이 아닐까. 한국의 군 위안부 운동의 ‘성공‘은 피해자를 선별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규제하는 규범적인 피해자 양산과 부패와 연결되어 있고, 이는 이용수 님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 P241

이글 서두에 인용한 이야기는 나의 고통을 대변한다. 내가생각하는 페미니즘은 기존의 정치적 대립 구도가 누구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진상 규명이나 진실보다는 누가 협상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지, 누구의 관심사가 명확히 표현되지 않는지, 누구의 이득이 표명되지 않는지, 누구의 진실이 발언되거나 인정되지 않는지, 우리가 놓치고있는 진실을 찾아내려 한다. - P244

베트남전의 한국인 학살을 겪고 이를 증언한 이들은 돈을 받으면 안 되는가? 선물이든 돈이든 사례하지 않는다면 이중 착취 아닌가? 그들이 왜 한국인의 양심과 진상 규명을 위해 자발적으로 협력해야 하는가. 돈을 받으면 순수한 증언이 아닌가?
이후 한국인의 만행이 베트남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되었을 때, 증언들은 여러 요소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돈, 선물을 넘어 사회적 압력, 한국인과 친분 관계… 이것은 나쁜현상이 아니라 필연적인 논쟁거리다. 증언사가 기록 문서만큼이나 난제인 이유다.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직시하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 P245

한국 사회(정대협)는 "돈을 받으면, 순결한 민족의 피해자가아니라 매춘 여성이 된다"고 피해 여성들을 억압했고, 여기에문제를 제기하는 연구자나 운동가는 매장, 아니 그 이상의 차마 말할 수조차 없는 억압을 당했다. 인생을 ‘날린‘ 이들도 많다는 의미다. 연구는 발전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운동은 피해자를 담보 삼는 반인권적 행위로 타락했다. 정대협 관계 인사들의 돈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성역화되어 아무도 말할 수 없는 사회운동이 아직까지도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기억의 연대‘는 우리의 잘못을 기억하자는 강박이 아니다. 매우 당파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요한 것은각자의 자리를 알고, 차이를 인정하는 기억의 경합이다. 피해사건이 나의 일상이 아닌 이상, 기억 투쟁은 가능하지 않다. - P247

이 작품이 가장 위쪽의 상태만 드러냈다고 평가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기억의 전쟁>이
‘착한 작품‘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도전하는 텍스트가 되기를바란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보고 자기위치성에 근거하여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 작품이 한국인의 양심의 증거가 되는것이다.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폭발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무엇을 몰랐던가, 무엇을 숨겼는가를 아는 실마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기억의 전쟁>이 그 실마리다. 두려운 실마리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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