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함께 꾸는 꿈의 힘을 믿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을 잘 알기에, 차마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부모님이 저에게바라시는 꿈을 저도 꾸었습니다. 마침 부모님과 함께 꾼 꿈이제 적성에 맞아 후회 없이 21년째 검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때 외모와 가난에 대한 열등감으로 좌충우돌 방황하기도 했지만, 대개 부모님과 선생님께 칭찬받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사법시험도 그리 늦지 않게 합격하여 20대에 ‘영감님‘ 소리를 들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P13
결과를 보고할 날이 언젠가 오겠지만, 저와 이 책을 읽는 모든분에게 ‘일취월장은 못 해도 그날까지 한결같겠노라‘는 다짐을담고, 흐뭇한 결과를 담은 결과 보고서를 빠른 시일 내에 썼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꾹꾹 눌러 담습니다. 내부 고발자로서 지난 10년간의 주저함과 흔들림, 선택과 결단을 돌이켜 보니, 아쉬운 순간들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쌓여 산이 되고, 벅찬 순간들에 대한 보람과 감사가 넘쳐 바다가 됩니다. 후회와 반성을나침반으로 삼고, 보람과 감사를 동력으로 삼아 새로이 출발선에 선 듯 더욱 씩씩하게 가겠습니다. - P16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으려면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사실대로 말해야 합니다. 검찰 내부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던 암막 커튼을 걷어내고 치부가 드러나야 무엇이 문제인지를정확히 판단할 수 있고,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전도 효과가 있겠지요. 검찰을 속속들이 다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없겠지만, 검찰에서 나름 인정받던 검사가 흔들리고 방황하다 결국 내부 고발자로 거듭나 차이고 밟히며 겪은 검찰과 검사들의 모습을 여기에 담습니다. - P23
2007년 3월 12일 오늘 내가 특히 예민해하는 성폭력 사건 재판이 있었다. 6시간에 걸친 증인신문, 이례적으로 법정은 고요하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 어렸을 적부터 지속되어온 짓밟힘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도 있고. 눈물을 말리며 그 손짓을, 그 몸짓을, 그 아우성을 본다. 변호사들이 증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내가 막을수가 없다. 그들은 그들의 본분을 다하는 것일 텐데, 어찌 막을 수가 있을까. 피해자들 대신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것. 이들 대신 싸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들에게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 변호사들이 피고인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해야 할 일 - P25
을 당연히 해야겠지. 해야만 할 일이다.
2009년 9월 20일 《도가니》. 베스트셀러란 말을 익히 들었지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잘 아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걸 알기에. 어제친구들을 기다리며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결국 구입하고, 빨려들 듯 읽어버렸다. 가명이라 해서 어찌 모를까. 아, 그 아이구나, 그 아이구나……… 신음하며 책장을 넘긴다.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면 한발 물러서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하지만, 더러는 피해자에게 감정 이입이 돼버려 눈물을 말려야 할 때가 있다. 그 사건 역시 그러했고. 1심에서 실형이선고되었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로 피고인들이 풀려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2심에서 어떠한 양형 요소가 추가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성폭력에 관대한 선고 형량을잘 아는 나로서는 분노하는 피해자들처럼 황당해하지 않지만, 치가 떨린다. 나 역시. - P26
2007년 외압이나 내압이 없었던 광주 인화원 성폭력 사건재판에서 정의를 외치는 것은 수뇌부가 격려하고 장려하는 일이라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외압과 내압,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외치는 것이 검사의 의무지요. ‘도가니 검사‘라는버거운 별명에 다소 걸맞은 검사가 이제 되었구나 싶어 고통스러운 와중에 뿌듯했습니다. 피해 아이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조금 갚았습니다. 평생 갚아 나가겠습니다. - P30
언제부턴가 신문을 도배하는 검찰 뉴스를 읽다 보면 그리스 신화의 카산드라를 떠올리게 됩니다. 예언의 신인 아폴론에게 예언 능력을 선물받았지만, 사랑을 거절하여 불신을 덤으로 받았지요. 아무리 진실을 예언해도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던 가여운 카산드라가 우리인 듯싶어 마음이 아파옵니다. 휴일 없이 매일 출근하여 기록을 끌어안고 고민한 세월을 억울해하는 마음이 고개 들곤 합니다. 그러나 오해를 살만한 일들이 그간 적지 않았고, 얼굴을 차마 들지 못할 각종 부끄러운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그런 동료들의 위태로운행동을 알면서 혹은 동료로서 알아야 함에도 알지 못하여 말리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씨줄과 날줄로 엮여 검사라는, 검찰이라는 조직을 이루는 이상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어디 검찰 내적으로만 적용되겠습니까? - P31
바람에는 13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0인 고요에서부터 12인싹쓸바람까지.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에서부터 바람은 비로소시작됩니다. 참으로 서글프지만, 더 잃을 것이 없는 듯한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늘을 짊어진 아틀라스처럼 우리역시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만큼의 요구와 비난이 있는 것이겠지요. 지칠 때도 많지만 그 고단함 만큼의, 고단함 이상의 보람에 감사할 때 역시 적지 않습니다. - P33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고민이 계속 깊어졌고, 검찰을 바꾸기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지요. 어떻게 할 것인가.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죽어있는 검사게시판을 되살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동료의 말문이 트이면 생각이 살아나고, 생각이 살아나면 행동이 따를 테니까요. 누가 뭐라고 해도삭제하지 않고 바람이 일 때까지 계속 바람을 일으키기로 작심하고, 검사게시판에 올린 첫 글입니다. 첫걸음이다 보니 주저되고 겁이 나 두리뭉실 말을 돌리고, 따뜻하고 온정적으로 썼지요. 그래서 이때는 간부들에게 불려가지 않았습니다. - P35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결과적으로 두 달 뒤 과거사 반성 논고로 간부들에게 불려가 봉변을당할 때 방어용으로 유용하게 활용했지요. 2012년 상반기에 저는 타진요 사건이나 조폭 양은이파 사건 등 실형을 이끌어 낸중요 사건 논고문을 이프로스에 올렸고, 법무부와 대검에 선고결과를 보고할 때도 첨부했습니다. 간부들은 칭찬과 격려만 했을 뿐, 논고문을 사전에 보고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없었습니다. 재판 심리를 마무리 짓는 결심일, 검사는 자백여부, 피해자와의 합의, 피해회복 정도 등 당일 법정에서 확인한 정보까지 모두 종합하여 최종적인 의견을 밝혀야 합니다. 따라서 상급자들은 현실적으로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논고에일일이 관여할 수도 없습니다. - P43
오늘 오전 1974년 유신헌법 반대 투쟁을 주도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배후로 몰려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옥고값苦를 치렀던 박형규 목사의 대통령긴급조치위반 등 과거사 재심 사건 재판이 있었습니다. 당시 법의 이름으로 그분 가슴에날인했던 주홍글씨를 이제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우는 역사적인 순간, 저에게 중요한 배역이 주어진 것에 흥분하여 며칠 동안 많이 떨리고 설렜습니다. 무죄를 구형하고 법정을 나서며그 시절 검사와 판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자는 지금의 잣대로 그 시절을 재단하는 것이 타당하냐고 반론할 수 있겠지만, 역사로 정리된 사건에 대해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평가하는 것은 후세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 P45
너무 지쳐 쉬고 싶을 때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당사자들에게오해를 사 속이 상할 때마다 저는 ‘나는 대한민국 검사다!‘라는말을 곱씹으며 다시 털고 일어서곤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재판을 끝내고 서울중앙지검으로 돌아오며 다시 한번 벅찬 마음으로 다짐합니다. 저는 권력이 아니라 법을 수호하는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 P47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하여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분들의 가슴에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몸으로 민주주의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헌법에위반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 증거를 믿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P48
마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인혁당 2개의 판결‘ 발언과 검찰의 과거사 반성이 대비되면서, 판결문에 실린 제 논고문 일부가 언론 보도를 통해 외부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언론에서 검찰의 과거사 반성을 호평하던 그때, 저는 밤낮으로 불려 다녔지요. 후배들이 저처럼 마음고생하지 않도록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소위 공안통들 역시 저에게 이를 갈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2012년 12월 윤길중의 과거사 재심사건 격돌 전, 그렇게 전초전을 치르며 서로의 결심은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 P51
과유불급이라는데 고쳐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제가 느끼고 깨달은 법의 정신은 36.5도의 체온이담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민입니다. 공판검사에게는 피해자의 고통과 절망, 우리 사회의 분노와 자책, 피고인에 대한 연민과 충고 등을 모두를 대신하여 법정에서 말할 의무가 있지요. 판사, 피고인은 물론 방청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 더러는 법정을 떠돌고 있을 가여운 영혼에게 설명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제 진심을 논고문에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7년 광주지검 근무 시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울면서작성하고, 법정에서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던 아동 상해치사사건 논고문을 소개해 드립니다. - P53
한 아이를 생각합니다. 아빠에게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만을 가진 채 세상을 향해 날갯짓 한 번 못 해보고, 엄마에게 외면당한 채 아빠라고 불렀던 자에게 얻어맞아 방에 갇혀죽어간 한 아이를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영문도 모른 채 아빠에게 구타를 당하며 얼마나 처절한 공포에 떨었을지, 장이 파열되어 죽어가면서, 체했을 거라며 등을 토닥이며 돌아서는 엄마의 뒷모습에 얼마나절망했을지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햇살 한 조각 들지않는 방에서,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처절한비명을 지르며 그렇게 아이는 죽어갔습니다. - P53
또 다른 아이를 생각합니다. 아빠에게 맞아 신음하며 죽어간 오빠 옆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을 한여자아이를 생각합니다. 그 여자아이가 죽어가는 오빠를 지켜보며 얼마나 무서웠을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을지, 누구 하나 와주지 않는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지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여자아이에게 세상은오빠의 시신처럼 가혹하리만큼 차가웠을 것입니다.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6살 어린아이는 생명을 잃어버렸고, 4살 어린아이는 평생 지울 수 없는 가혹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피고인들에게 어떠한 처벌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늘나라로 간 아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에게악몽 같은 그 시간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만, 뒤늦게라도 피고인들에게 그 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우리의 맡은 바 소임이라 할 것입니다. 본 검사의 논고가, 재판장님의 판결이 피고인들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고, 쓸쓸히 하늘나라로 간 피해 어린이에게 바치는 제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본 검사는・・・・・・. - P54
광주지검 근무 이후 검사 생활을 몇 년 더 하다가 논고문을다시 보니, 그간 제 논고에 피고인에 대한 연민이 너무 부족했던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강력 사건 피고인에 대한 연민을 논고에 담아낼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 없네요. 여하튼 논고문에 피해자와 피고인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모두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늘 아쉽고 아쉽습니다. 공판검사의 권한 내에서 의무를 이행한다는 마음으로 작성한 박형규 목사의 대통령긴급조치위반 등 과거사 재심 사건 논고문에 세상이 들썩이는 걸 보니 당황스럽습니다. 제 논고가너무 튀는 스타일인가? 고쳐야 하나? 다시 돌아보고 있습니다. 민망합니다만, 많은 동료와 생각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싶어 예전 논고문까지 끄집어내어 선후배 앞에 늘어놓습니다. - P55
"그들은 빨갱이였네", "자네는 모든 검찰 선배를 권력의 주구로 몰았어!" 등 도저히 수긍하는 체 연기조차 할 수 없는, 과거사 반성을 칭찬하는 검찰 밖 사람들이 결코 들어서는 안 될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지더군요. 견디다 못해 검사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논고 열심히 했습니다. 논고의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나요?‘ 과거사 반성 논고로 인해 빨갱이 검사라며 제사상을 의심하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걱정하고, 총선 출마 등 의도를 확신하는 뒷말들이 검찰 내외에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과 사법연수원, 법무연수원에서 배운 대로 한 것이기에, 제 글에 대한 공개적인 반론은 전혀 없었습니다. 검사의 언행과 결정의무게, 그 파급력을 안다면 생각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없지요. 책임은 위가 아니라 검사가 지는 거니까. 짊어진 하늘을 버거워했던 아틀라스처럼 모든 검사가 검사의 권한과 책임의 무게를 버거워했으면 좋겠습니다. - P56
중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배달 자전거로 등하교했습니다. 사춘기 시절 가난을 들키는 게 너무 창피하면서도, 지각을 피하려고 아침마다 자전거 뒤에 올라탔지요. 나날이 불어나는 딸과책가방 무게로 언덕길에서 아버지가 숨차하는 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면서도, 아침 단잠이 아쉬워 늦잠을 자다 매번 신세를지곤 했습니다. 사춘기 갈등이 최고조로 달아오르던 고등학교2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며칠 말 한마디섞지 않고 걸어서 등하교하던 어느 아침, 아버지가 뒤쫓아와제 이름은 차마 부르지 못하고 언니 이름을 부르며 타라고 했을 때, 못 이기는 체 자전거 뒤에 올라탔습니다. 익숙한 아버지의 숨소리를 다시 바람결에 들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를 제 사춘기가 이제 끝났다는 걸 그때깨달았습니다. - P58
마음을 다잡습니다. 2008년 봄 무렵 제 앞에서 고단한 인생을 한탄하며 이제 손을 씻겠다고 말씀하시던 그분의 회한과 간절함을 아직 기억합니다. 그분은 자신이 내민 손을 제가 뿌리치지 않은 것이 고마워, 일거리 없는 추운 겨울 굶주림과 사투를 벌이며 정직하게하루하루를 견뎌내고 계시지요. 제가 이성을 잃은 한 달 동안 저를 통해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그분‘이 저의 외면에 낙담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아차 싶습니다. 저에게 몹시도 따뜻했던 윤 모 선배 등에게 모진 말을 쏟아낸 것도 죄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미 쏟아낸 것이라 주워 담지는 못하지만, 상처받은 분들에게깊이 사과드립니다. - P60
1. 징계 대상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임은정 2. 처분 일자: 2013년 2월 15일 3. 징계 종류: 정직 4개월 4. 징계 사유: 2012년 12월 28일 다른 검사에게 재배당된 공판사건에 무단으로 관여하여 지시 위반 등 - P65
공안부 주장처럼 ‘동일한 행위와 증거를 놓고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 법원의 판단을 재단하는 것이 옳은지는 의견이 갈릴수 있음‘을 이유로 사실상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법과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요? 의문을 계속 제기했지만 상급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저는 해당 사건에서 배제되었습니다. 하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는 소위 백지 구형이 피고인의 죄에 상응하는 구형을해야 할,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의 구형인지 아직도 납득할 수없습니다. - P67
해당 재심 사건의 무죄 구형은 재량권 행사가 아니라 의무라고 확신하기에, 저는 지금 무죄 구형을 위해 법정으로 갑니다. 절차 위반과 월권의 잘못을 통감하기에 어떠한 징계든 감수하겠습니다. 하지만 공범들에 대하여 이미 무죄가 확정되었고, 공안부 역시도 무죄 선고가 확실시된다고 예상하는 사안입니다. 제 소신이 근거 없는 고집이 아니라는 변명을 사족으로 덧붙입니다. 제가 중징계를 받아 검사의 직분을 내려놓게 되더라도, 이로써 과거사에 대한 검찰의 입장이 전향적으로 재검토되는 전기가 마련된다면, 하여 검찰이 재심 사건을 포함한 모든 사건에서 일관되게 죄에 상응하는 구형을 하게 된다면 검사로서 제가할 도리를 다한 것이어서 여한이 없습니다. - P68
항으일요일 주일 예배에서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고민했습니다. ‘무죄를 무죄라고 하지 않는, 검사들을 앵무새 취급하는 검찰을 내버려 둔다면, 내가 예수를 십자가를 못 박은 본디오 빌라도 Pontius Pilatus와 무엇이 다른가? 내가 이의 제기를 했으니 할 만큼 했노라고 손을 씻고 물러선다고 하여 책임을 피할 수 있나? 본디오 빌라도가 되어 검찰이 과거사 피해자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걸 내버려 두느니, 내가 검사의 십자가를 감당하자‘ 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 P71
그간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고 부족한 저에게마음을 열어준 소중한 가족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개별로전하는 것이 도리겠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급히 사직하게 되어 부득이 고마웠다는 말씀을 게시판으로 우선 전합니다. 제 능력 부족으로 상급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지만, 해당재심 사건의 무죄 구형은 검찰의 마땅한 의무라고 확신하기에, 저는 지금 무죄 구형을 하기 위해 법정으로 갑니다. 절차위반과 월권의 잘못을 통감하기에 사직서를 제출합니다만, 공범들에 대하여 이미 무죄가 확정되었고, 공안부 역시도 무죄 선고가 확실시된다고 예상하는 사안이어서 제 소신이 근거 없는 고집이 아니라는 변명을 사족으로 덧붙입니다. 저의 사직이 과거사에 대한 종래 입장의 전향적인 재검토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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