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했던 길고 때로는 힘들었던 세월 뒤, 오키프는1940년대 초반 "알프레드를 내가 아주 좋아하는 노인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노먼이 스티글리츠를아무리 우러러보아도 그녀의 카메라 역시 그를 늙고 너무나지친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사진가나 그 피사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면 그 사진들을 손녀가 찍어 준 할아버지의 사진이라고 추측했을 것이다. 노먼이 아무리 애정을담아 관대하게 그를 보았대도 그의 결점을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 P146

두 사람은 대부분의 삶을 대륙의 반대편에서 보냈다. 그들은 두 번 만났지만, 서로를 한 번도 찍지 않았다. 서로에게한 말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진의 대체물이다. 그렇게 볼 수도있고, 다르게 보자면 그들은 그들의 사진 속에서 계속해서 만났다고 할 수도 있다. - P149

그렇지만 어쩌면 나중에 일어나게 될 일, 오키프를 찍은스티글리츠의 사진에서 보이는 일에 대한 예감이 벌써 느껴질 수도 있다. 즉, 무엇이 화를 불러올지, 채리스가 1930년대후반 웨스턴을 따라 미국을 돌아다니고 난 뒤(이에 대해서는나중에 더 이야기하겠다) 어쩌다 그를 떠나야만 한다고 느끼게 될지에 대한 - 단지 그뿐이거나 아마 그마저도 아닌 - 힌트다. - P163

시간은 흐른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사랑이 식으면서각자의 길을 간다. 채리스와 웨스턴은 1934년에 만나 1939년에 결혼했고, 1945년 가을 채리스가 웨스턴에게 그를 떠나겠다고 편지를 쓴 후 1946년 이혼했다. 웨스턴은 1948년 마지막사진을 찍고 1958년 죽었다. 이게 그 날짜들이다. 끊임없이 날짜를 정하고 확인해야 하는 것이 이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다. 날짜들이 모두 정확하기를 바라지만 어떤 면에서 날짜는 중요하지 않다. 삶의 가치는 연대순이나 시간순으로 평가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경주의 결승점처럼 - 죽기전 몇 초 동안 어떻게 느끼는지가 유일하게 중요한 문제일것이다.  - P163

1927년 - 또 날짜다! 그새!-웨스턴은 여자의 뒷모습을 감정이 배제된 조각처럼 보이게 하는 사진들을 촬영했다. 물론 누드 사진으로, "대상이 윤이 나는 강철이든 살아 숨쉬는 살갗이든, 카메라는 삶을 기록하고 사물 그 자체의 본질과 정수를표현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그의 굽히지 않는 믿음을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그는 또한 사진은 "눈앞의 현재, 그리고 그 현재의 한순간만을 다루기 위해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그 결과로 그의 피사체들은 역사적 맥락이 결여되어 있거나사회적 논의와 동떨어진 경향을 띄었다. 에번스는 그의 작업에어떠한 이념적인 요소도 완강히 거부했다. ("정치적인 것은 전혀없다.") 웨스턴에게는 이런 부인조차도 불필요했다. 뒷모습을찍은 사진은 웨스턴의 작업을 이렇게 확장하고 결정하는 단계를 상징한다. - P164

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랭의 사진을 비스듬히 -말하자면, 측면에서 - 바라보고 싶다.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여인의 옆모습을 찍은 그녀의 유명한 사진 고원지대 여인High Plains Woman」은, 얼굴을 명확하게 직시하게 하는, 같은 여자의 정면 클로즈업 사진보다 훨씬 더 풍부한 감정을 담고 있다. 옆모습에서 보이는 버지니아 울프와의 유사성 - 귀족적또는 예술적 고뇌와 함께 결과적으로 생략된 고난은 후자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이는 꾹 다문 입술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빠져나간 얼굴에 몸이 가진 우아하고 풍부한 언어는 남아 있지 않다. 1952년 뉴욕에서 랭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며 본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매혹적인 신비를 가진 한 여자의 다시는 찾을 수없는 옆모습을 촬영했다. 카메라 쪽으로 더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그저 특색 없이 평범하고 불안한 사람으로, 고원 지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누군가처럼 쓸쓸한 희망을 품은 채 거리를 돌아보고 있다.  - P165

랭과 디캐러바가 걸어온 길이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에서만 교차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또다시 만난다는 사실은 그런 만남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사진적으로 다뤄졌어야만 하는 분야를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당신이 모자로 할 수 있는 일- 리처드애버던

폭넓게 일반화하자면 사진에서 여자와 모자의 역사는 화려함과 패션의 역사다. 반면에 남자와 모자의 역사는 사실주의와(패션의 일시성과는 반대로) 지속성의 역사다. 물론 이런 구분이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문제는 대공황을 다룬 고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이 나중에 가서는 세월의 흔적을 담은고유의 매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패션의 세계에서 이런 이미지는 미국의 ‘작업‘에 특화된 칼하트나 그외 브랜드 안에남아 끈질기게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 P175

영화감독들은 한 인물이 영화 내내 같은 옷을 입으면 나중에 장면을 편집하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지속성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이야기를 잘라 내고 바꿀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1930년대에 대한 계속되는 영화(수많은 스틸 이미지로 만들어진 영화) 속 모자라는 단순한 기표는 많은 사진 속에서 우리가 얼마든지 같은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해도, 엄밀히 말하면 다 같은 사람이다. 이 ‘같은‘ 사람은 비단 랭의 사진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진가의 작업에도 나타난다. - P179

더 힘든 시간이 오면 - 그 시대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상황은 언제나 더 힘들어질 수 있다-모자는 베개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랭은 1934년 샌프란시스코의 빈민가에서 두 남자가 하워드가의 딱딱한 바닥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는 모습을 촬영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그들이 이제는 보도 위에 머리를 뉘었다. 하지만 모자가 여전히 편안함을 주는 듯 보인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 - P184

사진가들은 때때로 서로의 사진을 찍는다. 가끔 서로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찍기도 한다. 그보다 더 자주 서로의작업 - 또는 그 형태 - 을 촬영한다. 의식하든 아니든 그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동료들 그리고 선배들과 소통하고 있다.
1950년대 언젠가 위노그랜드가 찍은 무제 사진이 일종의 랭을 향한(물론 여기서 랭은 랭과 연관된 주제들을 의미한다) 존경의 표시나 랭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P188

 그러나 바로 지금, 이 모자의어떤 면이 그에게 강한 느낌을 주었고 나에게도 그랬다. 우연일까? 이 질문은 말이 안 된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한 대로
"모든 것이 우연이다."
여기 또 다른 예가 있다. 1952년 디캐러바가 지하철 계단에서 기다릴 때……….
그런데 잠깐 멈춰 보자. 모든 우연이 그러하듯, 이 사건역시 이 일이 일어나기까지 있었을 수많은 조건과 가능성을따져 보면 훨씬 더 놀랍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결국 또 다른 - P191

질문을 불러올 것이다. 우연은 우연이 아닌 게 될 때까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나? 우연은 순간적이어야만 하는가? 얼마동안이 순간이고, 지속되는 순간인가?

언제나 같은 계단.
- 진 리스

외젠 아제는 계단을 자주 촬영했다. 그가 만든 파리의 사진 목록에 눈에 띄게 등장하는 길들과 통로들처럼, 계단 역시 우리를 사진 속 깊이 이끌어 사진 밖으로 그리고 사진 너머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듯하다. 순수하게 형태의 관점에서만 보면화면 속 계단이 올라가면서 그 수평선들이 - 기찻길 위의 침목처럼 - 원근법적으로 멀어지는 효과를 고조시킨다. 아제가촬영한 계단은 튀렌가 91번지에 있는 낡고 복잡한 장식의, 화면 밖으로 굽이쳐 나가는 실내 계단일 수도 있고(1926년 만 레 - P192

계단은 대개 위로이어진다. 아제는 계단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적이 거의없다. 예외 없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계단은언덕이 되고 앞에 놓여 있는 계속되는 고난에 대한 은유가 된다.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 아마 더 나은 -풍경, 또 다른 사진이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브라사이의 사진에서 계단은 항상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기분이다. 실제로 늘 그런 것은 아니다-그가 항상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는 계단 아래에서 찾을 수 있는 도시에 대한 더 내밀한 사실, 도시 아래의 도시, (보통 굴욕의 장소인) 지하에서 발견되는 진실에 대한 느낌이 언제나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진은 1930년대 중반 몽마르트르에서 촬영한 것으로, 나무로 뒤덮여 끝이 안 보이는 계단을 위에서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다.  - P193

브라사이와 달리 케르테스는 내리막이 가지는 심리학적인 의미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올라가는 계단에 대해서는잘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이미 나이가 들어 피곤한 상태를 이해하고 있던 그가 파리에서 찍은 초기 사진은 그가 뉴욕에서 보내게 될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1928년파리의 소Sceaux 공원에서, 아제가 생클루에서 찍은 나뭇잎이 뿌려져 있는 사진을 의도적으로 암시하는 듯 보이는, 둥그렇게 닳은 계단의 사진을 찍었다. 늘 그렇듯이 계단의 곡선과 사선에 대한 케르테스의 집착은 어느 정도는 형태와 기하학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낙엽으로 뒤덮힌 계단은 - 경력과 인생의 봄을 맞이하는 - 아직 20대밖에 되지 않은 사진가치고는 지나치게 가을 분위기를 풍기는 동시에 조숙한, 차분한 우울감에 흠뻑 젖어 있다.  - P195

디캐러바는 계단을 올라오거나 내려가는 사람들을 즐겨 찍었다. 디캐러바에게 계단은 삶을 이루는 기본 요소 중 하나다. 당신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이유로 - 계단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온다. 다만, 산에는 오르지 않아도 되지만, 계단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없으면 언제든 계단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온통계단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 P196

사람들은 사진에 찍히고, 죽는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와 다시다른 사람의 사진에 찍힌다. 일종의 환생이다. 20년 전 랭의 사진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남자가 갑자기 디캐러바의 사진에 다시나타난다. 그동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 긴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들은 말이 안 된다. 케르테스로 돌아와 그가 헝가리, 뉴욕에서 찍은 아코디언 연주자의 사진에 대해 다시생각해보자. 사진에 그동안이라는 것은없다. 그때는 그 순간이 있었고 지금은 이 순간이 있을 뿐, 그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진은, 어떤 면에서, 연대순에 대한부정이다. - P199

계단은 쉽게 의자가 된다. 때에 따라서는 침대로도 변한다.
1890년 젊은 스티글리츠는 코르티나의 건물 앞에 있는 네 개의 계단 위에 누워 몸을 뻗은 자신의 사진을 찍었다. 걱정 없는자유로운 영혼의 이미지라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평평한 바닥이라면 몰라도(1937년 웨스턴의 사진 속 채리스 윌슨은 결국옷을 벗은 채 이와 꽤 비슷한 자세를 취하는 처지가 되었다) 완전히 술에 취한 게 아닌 이상, 이런 계단 위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있기는 힘들다. 스티글리츠의 자세는 예술적인 염원을 표현 - P203

하고 있지만, 계단 위에서 잠자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상황에는 어쩔 수 없이 처해지는 것이다. 현관 계단이나 층계위에 앉는 것은 자연스럽고 편하지만, 그 위에서 자는 것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 거의 자포자기의 상태를 의미한다. - P204

벤치에는 본질적으로 슬픈 면이 있다. 버스 정류장의 벤치는버스에 앉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억지로 앉아 떠나기를 기다리며 느낀 좌절과 초조함이 남긴 여파 그리고 체념을 받아들여왔다. 벤치의 본질적인 특징 - 그 절대적인 부동성은 버스나 기차역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좀처럼 앉아서 쉬려고 하지 않는다. 차라리 주머니에있는 잔돈을 잘그락거리며, 절대 변하지 않지만 믿을 수도 없는, 어쩐지 수상한 시간표를 계속해서 바라보며 앉아 있다. 벤치에 앉는 것은, 포기하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며 사실상그 상황의 참을 수 없는 벤치성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19

벤치에게는 그들의 때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그런데 어찌 보면 공원에 있는 벤치에게 그때는 항상 가을인 듯하다. 케르테스는 두말할 것 없이 공원 벤치를 각별히 좋아했다. 그의 가장 초기 사진 중 하나는 1913년 부다페스트 네플리게트 숲의 벤치에 앉아 있는 동생 예뇌를 찍은 것이다. 예뇌는 외투를 입고 있고 그의 모자는 벤치 위 그의 옆에 놓여 있다. 바닥에는 낙엽이 흩뿌려져 있다. - P220

케르테스의 사진에서 자주 보이는 검은 윤곽의 인물들이모두 죽음을 향하고 있거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하면 지나친 것이겠지만, 그들이 항상 벤치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벤치는 일종의 죽음을 상징한다. 벤치는………… 벤치 신세다. 참여하지 못하고 주변에서지켜보기만 해야한다.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은 삶을 관찰만할 뿐 더 이상 삶에 관여하지 못하는 케르테스 본인의 대리인적이다.하지만-브라사이와위지의 사진 속 사람들처럼어도 그에게는 벤치가 있다. 멸시와 모욕의 세월을 견디고 난후, 1962년 9월 20일 뉴욕에서 케르테스는 자신의 처지를 - - P221

에번스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시각 구성에대해 프랭크가 대놓고 드러낸 무관심은 너무 도전적이어서 처음에는 미국 내에서 그의 책을 출판해 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1958년 프랑스에서 성공적으로 책이 출간되고 난 다음 해에야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나올 수 있었다. 그다음 해에 오넷 콜맨Ornette Coleman은 앞으로 올 재즈의 형태The Shape ofJazz to Come》를 대담하게 선언하는 앨범을 발매했다. 비록 각자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지만 음악과 사진의 역사에 있어 결정적인 이 순간들은 서로를 조명하고 있다. - P270

재즈의 역사는 처음에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음악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사람들의 역사다. 프랭크의 사진과 콜
‘맨의 음악은 형식의 경계를 벗어남으로써 경계를 탐색하고자
‘하는 욕구를 공유한다. 콜맨이 도입한 프리 재즈에 대한 거부감은 자연스럽게 프랭크에게 이어진다. 프랭크의 작업은 전통적 기준에 따르면 구도도 맞지 않고 구성도 제대로 되지 않은사진으로 평가되었다. 1950년대 후반 콜맨의 음악은 획기적이며 전례가 없었다. 지금 들으면 이 색소폰 연주자가 텍사스포트워스에서 자라며 들은 블루스에 그의 음악이 흠뻑 젖어있다는 것을 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프랭크도 마찬가지다.
그의 사진 자체가 전통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진들이 어떻게 이전 단계의 전통에서 곧바로 발전해 나왔는지 볼 수 있다. 아무리 프랭크의 사진이 전례가 없다고 해도보통 그의 사진에도 무언가 친숙한, 포장이 의도적으로 훼손되긴 했지만 이전의 더 안전한 회화 논리의 흔적이 어느 정도남아 있다. 빔 벤더스에 따르면, 프랭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찌 수 있는 능력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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