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에 대해 한 일을 음악에 대해 할 기회를 갖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음악이라는 예술의 원리를 노정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이 그렇게 적다는 사실은 우리가 새로운 음악을 판단하려 할 때 만나게 되는 어려움을 설명해준다. 전부터 있던 음악에 대해서는 그저 당연히 여기고 프리마돈나가 감기에 걸렸다든가 하는데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날 단 한 시간에대한 평가이며, 내일이면 그런 인상은 잊히고 만다.
그러므로 음악의 본질까지 천착할 생각은 없어도 그렇다고 비평의 부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필자에게는한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즉, 아마추어로서 자신의 인상을적어 보는 것이다. 바이로이트의 음악회장 좌석들은 그런 아마추어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사람만큼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은밀한 믿음을 갖고 있지만, 감히 자기생각을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들이 음악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 P102

그렇지만 바이로이트에 모인 청중, 그중 상당수가 멀리서부터 찾아온 순례자들인 이 청중이 온 힘을 다해 경청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명이 꺼지면 그들은 좌석에서 숨을 죽이고 음악의 마지막 여운이 사라지기까지 꼼짝도 하지않는다.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라도 날라치면 다들 흠칫하는 반응이 마치 수면의 파문처럼 음악회장 전체로 퍼져 나간다. 막간에 햇볕 속으로 나설 때면, 음악에서 받은 인상을떨어내 버리려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특히 「파르치팔Parzifal은 너무나 막강한 충격을 주기 때문에, 몇 번이고다시 들은 다음에야 그것을 이리저리 되새겨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어서 그 부분들을 전체로 융합시킬 수가없는 것이다. 우리는 극적인 상황이 대개 남녀 간의 사랑이나 전투 같은 것으로 설명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막연히 어떤 위기 상황을 기다리게 되는데,  - P103

그리고 아마추어가 전문가의 경멸을 불러일으키는것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미술의 경우 프라 안젤리코‘가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선호하는 비평가도 있고,
문학에서는 일찍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을 좋아하는이들도 있다. 음악회 프로그램에 실린 논평들을 읽다 보면가망 없이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음악적 인상을 문학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의 어려움이나 언어의 환기력 때문에 문학적인 감각에 호소하게 되는 경향 말고도, 음악의 경우에는 다른 예술보다 그 경계가 명확치 않다는 데서 생겨나는 어려움이 있다. 어떤 악구가 아름다울수록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동은 더 풍부해지는데, 우리는 그 형식을 잘 모르기 때문에해석에서도 별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다운 음악을자신의 어떤 경험과 연관 짓거나 일반적인 어떤 개념을 상징하게 만들거나 하게 된다. 어쩌면 음악이 우리에게 그처럼놀라운 힘을 행사하는 것은 이처럼 그 효과를 정확히 표명하기 어렵다는 데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음악이 표현하는 것에는 일반화의 모든 장엄함과 동시에 우리 각자의 감정이 담겨 있다.  - P108

그러면서 우리는 말로써 음악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정지의 순간이 지나고 활들이현 위를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의 추상적인 사들은 다 흩어지고 말도 달아나 버린다. 그 안도감은 엄청나지만, 마침내 마법이 깨지고 나면, 우리 자신의 도구인 말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어떤 예술에 한계를 부여하고우리의 감정을 규정하려는 이 모든 정의들은 실로 자의적이다. 음악이 노천의 공중으로 스러져 가는 여기 바이로이트에서, 에르미타주‘ 정원의 꽃들이 다른 마법의 꽃들처럼 피어나는 곳에서, 음악은 색채가 되고 색채는 언어가 된다. 이곳에서 우리는 일상의 세계를 잠시 벗어나 그저 숨 쉬고 보도록 허락받았을 뿐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감정과 다른감정을 나누는 격벽들이 얼마나 얇은지, 우리의 인상들에는구분할 수조차 없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이 섞여 있는지 깨닫게 된다.  - P109

집은 그들을 단단하고 독립된 개별적존재로 만들어 주는 껍질과도 같았으니, 이제 집을 떠나 노출된 그들의 뇌 속에는 광범한 일반화의 공식들이 자리 잡는다. 바퀴 소리, 창문에 블라인드가 부딪히는 소리가 인생에대한 그럴싸한 경구들의 리듬으로 바뀌고, 산문의 단편들을되는대로 떠올리게 한다. 그리하여, 멍해진 여행자들은 극도로 울적한 눈길로 풍경을, 지루할 뿐인 프랑스 중부의 풍경을 내다본다. 프랑스인들은 체계적이지, 하지만 인생은 간단해 프랑스인들은 산문적이지, 프랑스인들은 도로를 갖고 있어. 그래, 그들은 저 날씬한 포플러 나무에서부터 빈으로, 모스크바로 뻗어 가는 도로를 가지고 있는 거야. 톨스토이의집을 지나, 산악을 오르고, 그러고도 행진하여 유명한 도시들의 한복판에 있는 화려한 상가들을 지난다. 하지만 영국에서 도로는 절벽에 이르고, 바다 가장자리에서 모래 속으로빠져든다. 영국에서 산다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 시작한다. - P115

보르도를 벗어나 점점 더 드넓은 들판이 나타나자,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생각을 하는 데 필요한 집중력마저도남아나지 않는다. 마치 장갑이 커다란 손을 쑤셔 넣는 바람에 찢어져 버리는 것과도 같다. 붓과 물감, 캔버스를 가지고작업하는 화가들은 복이 많다. 반면 말 취약하기 짝이은없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다가오기만 해도 뒷걸음질 치고만다. 사람을 가장 문자적인 의미에서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구렁 속에 빠뜨린다. 그 구렁 속에는 새하얀 소읍들과 외줄로 줄지어 가는 노새들과 외딴 농장들, 거대한 교회들, 저녁이면 창백하게 바스러지는 광대한 들판들, 불어 끈 성냥처럼 삐뚜름히 타오르는 과일나무들, 오렌지들로 불타는 듯한나무들, 구름과 폭풍들이 가득하다. 눈이 이 모든 것을 그 안에 들이붓는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함몰시키고, 우리는 그물속에서 허우적거린다.  - P116

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흔한지, 그것이 가져오는 정신적 변화가 얼마나 엄청난지, 건강이라는 빛이 꺼지고 나면 그제야드러나는 미답의 영역들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저 독감‘
가벼운 습격만으로도 영혼의 어떤 황무지와 사막이 눈앞에전개되는지, 조금 체온이 오르기만 해도 어떤 낭떠러지와 꽃떨기 흩뿌려진 풀밭이 드러나는지, 병고라는 것이 우리 안에서 어떤 굳건한 참나무 고목을 뿌리 뽑는지, 이를 한 개 뽑고 - P121

치과 의사의 팔걸이의자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려 그의 입을헹구세요, 입을 헹궈요> 하는 말을 천국 대청에서 몸을 굽혀우리를 맞아 주는 신의 인사말과 혼동할 때면 어떤 사망의 구덩이로 내려가 멸망의 창수(水)가 머리를 덮는 것을 느끼다가 천사와 수금(竪琴) 타는 이들의 면전에서 깨어나는 듯한지,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면 - 그리고 자주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ㅡ 병이 사랑이나 싸움, 질투 등과 함께 문학의 주요 주제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이 이상하게 여겨진다. 독감에대한 소설, 장티푸스에 대한 서사시, 폐렴에 대한 송가, 치통에 대한 서정시 등이 진작 쓰였어야 하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드퀸시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Confessions of an English Opium-Eater』에서 그 비슷한 일을 시도했고, 프루스트의 작품에도 여기저기 병에 대한 대목이 한두 권 분량은 될 터이지만 ㅡ 문학은그 주요 관심사가 정신임을 견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 왔다. - P122

그것들이 모아지면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이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상태를 환기하게끔 해놓은 것이다. 병석에 있는 우리에게는불가해함이 지대한 힘을, 아마도 멀쩡한 자들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미친다. 건강할 때는 의미가 소리를 잠식한다. 지성이 감각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병들었을 때는의무의 감시가 해제되므로, 우리는 말라르메나 존던의 난해한 시, 라틴어나 희랍어의 어구들 밑으로 기어들게 되며,
그러면 설령 우리가 마침내 의미를 포착한다 하더라도, 말들은 마치 미묘한 향내처럼 입천장과 콧구멍을 통해 감각적으로 먼저 다가왔기 때문에 한층 더 풍부한 것이 된다. 아직 언어가 서투른 외국인들은 우리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 중국인들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가 어떻게 들리는지 우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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