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걸었다. 갑자기 불안이 엄습하면서 자신이 안전하지 않은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타운은 지난 몇 년 사이 급변해서, 사람들은 더이상 지금의 그처럼 밤에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는 꽤 오랫동안 도리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다. 예전에는 많이 생각했다. 머리 위에서 달빛이 내리비치고 있었고, 그 빛은 계속 환했다. 마치 도리에 대한 기억이 혹은 도리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처럼. "분명 너희 집은 조용하지 않겠구나." 그녀는 말했다. 그러다 데니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 그의 집은 조용했다. 해가바뀌고 또 바뀌면서 점점 조용해지고 있었다. 애들이 결혼하고떠난 뒤로 그의 집은 서서히 조용한 집이 되어갔다. 마리는 지역학교에서 교육공학자로 일하다가 몇 년 전에 은퇴해서 더이상어떤 하루를 보냈는지에 대해 할말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뒤에 그도 가게에서 은퇴해서 역시 할말이 많지 않았다. - P233
  구급차가 떠났고, 경찰 하나가 데니에게 말했다. "음, 오늘밤한 생명을 구하셨군요." 그러자 다른 경찰이 차에 타며 말했다. "일단 지금은 말이죠." 데니는 재빨리 집으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자신의 자식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그 생각이 점점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자식들은 불쌍한 도리와는 달리 안전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자식들은 약을 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게있다면 그건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사위는 것이 서글펐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그는 서둘러 집 앞 계단을 올라갔고, 코트를 벗어던졌다. 마리는 아직 잠들지 않고 침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를 보자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는 책을 침대에 내려놓고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왔어?" 그녀가 말했다. - P236
  11월이었다. 메인주 크로스비에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다. 바로 이날 수요일에는 해가 나서 세상에는 선뜩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오크나무에 매달린 잎은 금색으로 변해 시들어갔고, 상록수는 추위를 느끼는 것처럼 차렷 자세를 하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잎을 벗어내고 검은 가지만 남은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고, 뾰족한 우듬지는 끝이 더욱 가늘어졌다. 길은 황량했고, 들판은 싹 베어져 깨끗해 보였다. 비스듬히 떨어지는 햇살 아래에서 만물은 얼마간 오싹하면서도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지만 빛은 하늘 꼭대기까지 가닿지 못했다. 하늘은 검은빛이 도는 푸른색이었다. - P237
  죽은아내 벳시가 그 여자가 쓴 걸 다 읽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올리브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이제 강을 따라 달리고 있었고, 풍경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삭막한아름다움, 길 바로 오른쪽으로 강물이 회색 리본처럼 흘러갔다. "오늘 드라이브 나오길 잘한 것 같아." 잭이 말했다. - P245
  그날은 그런 식이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뒷길로 돌아다니며이야기를 나누었다. 잭은 이미 한 적 있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다시 했다. 올리브의 어린 시절 집을 보자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베어 외곽에 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집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시 그 이야기를 올리브의 집만큼 작지는 않았지만어렸을 때조차 작게 느껴졌던 그 집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했다. 좁아터진 느낌이었다고, 그는 지금 그렇게 표현했다. 올리브는들으면서 "아, 뭐"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저것 좀 봐." 잭이 모퉁이를 돌자마자어두워지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11월의 석양이 눈앞에 모습을드러냈다. 지평선을 가로질러 노란색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헐벗은 나무들이 잎을 떨군 짙은 색 나뭇가지를 하늘을 찌를 듯뻗어올리고 있었다. "굉장하다. 잭이 말했다. - P249
  하지만 시내에서 빠져나와 개방도로로 나오는 동안 올리브는그의 옆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잭 역시 할말이 없었다. 여전히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길에 그어진 흰 선말고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고 강을 따라 달리면서, 올리브가그의 아내라는 사실과 오늘밤 일레인을 만나기 전까지 그들이함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더이상 올리브와 함께한 시간이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행복은 이제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그들이 함께한 날은 저물었다, 끝났다 사라졌다.
  어두운 차 안의 침묵 속에서 잭은 올리브-그의 아내의 존재를 느꼈다. 물리칠 수 없는 존재감이었다.  - P263
  잭은 너무 무서워서 의자에 앉아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무서운 것은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혹은 뭘 - P266
  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이 그의 내면에전율을 일으켰고, 그는 그것을 자신이 느낀 대로 정확히 표현할단어조차-스스로 잘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방식에 대해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고 느꼈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 큰 맹점이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어떻게 보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정말로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 P267
  하지만 이제 그는 기억 속에서 벳시를 생각했다. 그녀의 정적인 아름다움을, 단순함을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그녀는 캐시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오, 벳시!) -아니, 벳시는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밤 그는 그녀가살아서 그와 함께 있기를 바랐다. 그 생각이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들의 삶 전체가 허비되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많이 웃었고달콤한 순간도 많았으니 삶 전체는 아니었다. 오늘밤 그런 순간들이 책의 마음속을 스쳤다. 그는 주말에 자신이 크레페를 만들던 모습을,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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