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먹는다. 이 말 자체는 승리의 진술이지만 음식과의 더 평화로운 관계이는 당연히 내 몸과 나 자신, 나를 괴롭히는 것들과의 더 평화로운 관계를 의미한다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빙빙 둘러가는 기나긴 길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좋있겠지만) 동행자들로 가득한 길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를 굶기로 내몰았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두려움과 감정, 압박에 시달려보지 않은 여자가 있을까. 르누아르가 표현한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기쁜 마음으로 인간 갈망의 전 범위를 경험한 여자가 있으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하기 어렵다. 많은 여자에게 갈망을 충족하고 대상을 취하고 육체적 쾌락을만끽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며, 나와 음식의 괴로운 관계는긴 연속체 상에서 한 극단일 뿐이고, 수많은 장소 중 한 곳일뿐이다. 음식, 섹스, 쇼핑, 당신의 독이 무엇인지 불러보라. 욕구, 특히 여자들이 경험하는 욕구는 으스스할 정도로 변신에 능하고외적인 것들에 요령 좋게 찰싹 달라붙는다. 한 전투가 다음 전투로 이어지고, 어떤 약속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또 다른 약속이 빛을 발하며 지평선 위로 솟아올라 별처럼 신호를 보낸다. - P31
내 경우엔 굶기가 음주로 이어졌는데, 그러자 (내가 통제력이대단히 강하고 꽤 우월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던 식욕 거부가 점차 더욱 전면적인 자기 존재에 대한 거부로 넘어갔고, 술이 음식을 밀어내고 내가 특별히 선택한 물질의 자리를 차지했다. 다른 여자들이 각자 선택한 물질이 무엇인지는 내 경우처럼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개는 그에 못지않게 강한 악력으로 그들을 움켜쥐고있고 욕구라는 더 폭넓은 주제와도 똑같이 연결되어 있다. 남자들과의 강박적인 관계, 통제되지 않는 쇼핑과 빛, 삶 전체를좌지우지할 정도의 외모에 대한 집착, 온갖 종류의 ‘이름‘들. 이 모든 것이 허함과 관련되어 있고 내면의 공백을 잘못된 방향에서 메우려는 노력과 관계있으며 모두 똑같은 어두운 감정에서 비롯된다. 많은 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감정은, 갈망은 그 자체로 어쩐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릴 권리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스스로 노력해 얻어내야만 한다는 생각, - P32
모두 ‘하지 마‘의 세계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이런 메시지들은훨씬 더 간접적으로 전달될 수도 있고 헷갈리거나 모순적일수도 있지만, 당신이 20세기 후반에 성년이 된 여자라면 어떤형태로든 분명 그 말을 들었을 것이다. 너무 많이 먹지 마. 너무 커지지 마. 너무 멀리 가지 마.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마. 너무많이 원하지 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 마. 이런 명령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지만, 문제는 그것들이 누적되면서 여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대개 파편화된 렌즈를 통해서만, 한 번에 한 가지 병폐만 따로떼어 검토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P34
굵기의 미끼는 그 불가해하면서도 유혹적인 낚싯바늘은 위안이었다. 나를 인간의 갈망이라는 평범하면서도 온갖 위험이가득한 세계에서 끄집어내어 그보다 더 높은 곳에, 고요함의내밀한 왕국에 데려다놓는 듯한, 그 안전함과 억제가 주는 온화한 위안. 이런 초월적 위안의 감각이 즉각 생겨났던 것은 아니며, 그런 위안의 상태에는 그 어떤 행복한 느낌도, 심지어 오래 지속되는 느낌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굶기는 고통스럽고 인정사정없는 경험이자 욱신거릴 정도로 따분한 경험이며, 삶 전체가 단 하나의 감각(육체적 허기)과 단 하나의 집착(음식)으로 졸아드는 일이다. - P55
여자들은 수학에 자신감이 없고시공간 지각 능력이 변변찮으며 아무튼 숫자를 다루는 데 남자들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설 말이다. 이 이론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널리 도전받아왔고, 여자들이 대수나 미적분을 처리하는 데 신경학적으로 부적합하다고 말할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 그러나 나는 그와는 다른 근거에서 이 신화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여자들은 실제로 수학에 아주 뛰어나다. 단지 그수학이 그들만의 특수한 종류의 수학, 즉 욕망들을 서로 낱낱이 떼어내 분리하고 저울질하고 균형을 맞추고 흥정하고 평가하는 복잡 미묘하고 사적인 수학인 것뿐이다. 이 욕망의 수학은 욕구는 잘 봐줘도 위험한 것이고 최악의 경우 용납할 수없는 것이며 마음껏 만끽하려면 사거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바탕에깐, 자제와 감시의 체계다. 그리하여다음과 같은 규칙과 경고가 생겨난다. 점심 메뉴판을 살펴보거나 치즈 버거를 주문하거나 크림 케이크를 그대로 먹기 전에 먼저, 마음의 계산기를 꺼내서 예산을 잘 살펴보라는 것. - P61
이는 곧 섹슈얼리티와 사랑과 자존감에대한 자격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욕망들이 서로 충돌하고, 먹고 싶은 마음과 날씬해지고 싶은 마음이 서로 부딪치며, 마음껏 누리고 싶은 욕망과 절제해야 한다는 명령이 대립한다. 음식이 여자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건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방정식에서 식욕을 경험한다는 것은 곧 불안을경험하는 것이고 그건 일종의 부담이며 위험이다. 허기에 굴복하는 일은 특정 조건하에서 허용될 수는 있지만, 대부분 그허용은 대가를 치르고 얻어내야 carn 하며, 그러려면 감시하고monitor 통제해야control 한다. 그리하여 e=mc. - P63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그나마 속삭임으로 들리던 이 명령의 소리가 이제는 훨씬 더 커져서 으르렁거림이, 울부짖음이, 포효가 되었다. 매일 쏟아지는 광고의 폭격을 받는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평생 약 3년의 시간을 텔레비전 광고를 보는 데 쓰고 있으니, 그 이미지의 홍수가 여성의 신체와 그들의 허기에 관해 어떤 말을 하는지는 특별히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날씬함을 위한 선결 조건인 통제된 식욕은 아름다움, 욕망의 대상이 될 자격, 가치 있음을 함축한다. 통제되지 않은 식욕-뚱뚱한 여성 - 이 함축하는 바는 그 반대여서, 뚱뚱한 여자는 추하고 역겨우며 근본적으로 무가치하게 취급된다. 이런 인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는 뚱뚱함에 대한 문화적 태도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 기사를 보면 잘 알 수있다. 성인 중 태아가 자라서 치료할 수 없을 정도의 비만이될 것임을 미리 알게 된다면 낙태를 선택하겠다고 한 사람이16퍼센트였다는 기사다 - P71
선택지들이 폭발적으로 열어젖혀진 세계에 이처럼 복잡하게 뒤엉킨 유산이 전해졌으니 모든 예스는 과거의 노와 충돌할소지가 다분했고 여기엔 당연히 엄청난 혼란이 따른다. 욕구의 밑바닥에 깔린 질문들도 어마어마하다. 무엇이면 만족하겠는가? 당신이 필요로 하는 건 도대체 어느 만큼이고, 무엇인가? 진정한 열정은, 아름다움 혹은 날씬함이라는 외적 목표 뒤에감춰진 진짜 허기는 무엇인가? 비교적 최근까지도 여자들은 이런 질문을 탐색해보라는 권고를 받은 적이 없었거나, 적어도깊이 있고 일치되는 견해에 따라 사회가 지지하는 방식으로권고받은 적은 없었다. 우리는 한 세대에 걸쳐 열어젖혀진 문들과 기존 사회구조의 몰락이 자극하고 장려한, 이른바 포스트 페미니즘적 욕구를 품게 되었지만, 이런 욕구를 갖는 일에대해 항상 명백하고 확고한 지지나 허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전통적으로 욕구에 늘 따라붙던 경각심과 경고가 완전히 제거된 것도 아니며, 욕구를 지지해줄 심층적 권리 의식도 아직 갖지 못했다. 자유는 권력과 같지 않다. 이걸 짚고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 - P77
권리와 자격이 본능적이고 영속적이며 실질적인 수준에서느껴지려면 그것은 자아를 넘어선 영역에 존재해야 하고, 더폭넓은 차원에서 알려지고 인정되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자들은 여전히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다. 지난 40년 동안이뤄낸 그 모든 개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저 바깥세상을 거의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의회는 여전히 남자들이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최상위 기업 경영진의 98퍼센트가 남자다.19 오늘날 벤처 창업 투자금의 95퍼센트가 남자들의은행 계좌로 흘러들어간다.20 미국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받는 최고경영자 200명은 전부 남자다. - P79
나는 이 격차, 즉 한쪽에 있는 개인적 자유와 다른 쪽에 있는 정치적 힘 사이의 이 끈질긴 불균형이 욕망 뒤에 자리한불안이라는 요인을 증폭시킨다고 생각한다. 이 격차는 여자들에게 뭔가 계산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남기고, 선택들이 편파적이며 단서들을 잔뜩 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오늘날 여자는 신경외과 의사도 될 수 있고 천체물리학자도될 수 있다. 자기 의지에 따라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며, 배우자와 헤어지고 짐을 꾸려 대륙의 반대쪽 끝으로 이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들에서 한 걸음 더, 아니두 걸음 더, 아니 열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을까? 단순히 천체물리학자인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음식과 섹스와 쾌락과찬사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완전한 권리가 있다고 느끼 - P80
는 강력하고 활기 넘치는 거물급 천체물리학자일 수 있을까? 나라의 반대쪽 끝으로 갈 수는 있지만, 그와 함께 여자란 원래 어떻게 보여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존재여야하는지에 관한 뿌리 깊은 모든 감정을 떨쳐내고 떠날 수 있을까? 외적인 자유들은 케케묵은 내면의 수많은 금기들과 여전히 충돌할 수 있고, 여자는 아직도 가장 권한이 미약한 인구집단이라는 희미할지는 몰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인식과 충돌할 수 있다. 이런 충돌은 오늘날 욕구가 유독 큰 문제로 대두되는 이유를 어느정도 설명해준다. 욕구들은 가능성과 제약, 힘과 무력함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밀고 당겨지는대단히 모호한 맥락 속에,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맥락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P81
세상은 남성의 욕구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의성장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남성 욕망에 대한우리 문화의 상투적 이미지는 그것이 현대의 소년들과 성인남자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바를 담고 있는 그렇지 않든 간에(그러나 상투적 이미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 속에 일말의 진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 편리하게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것과 관련된다. 어머니들은 먹이고(먹어! 먹어!) 아버지들은 독단적 자기주장과 노골적 경쟁심의 모범을 보이며 교사들은 거침없는 허세를 북돋운다. - P81
여자들의 삶에도 기회가 엄청나게 늘어났다고는 하나 여성의 욕구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노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저런 이미지들에 비할 수 있는 봉사와 제공의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고, 다수의 타인들이 우리의 필요를 충족하거나 우리의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심성의를 다해줄 거라는 기본적인 기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남자들의 자기중심적 추구에 익숙하고, 그들의 사정을 너그럽게 헤아려주며, 그들의 위반과 부적절함은 이해해주고 용서해준다. 뭐, 당신도 그 사람이 요리를 하거나 아이들을 돌볼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잖아요. 그가 체중이 좀 는다고 누가 신경 쓸 것이며, 그가 남들을 통제하려 하거나 나르시시스트라고 한들 어떻겠어요. 그는 바쁜 사람이고, 업무들을 처리하고, 상황을 이끌어가고, 회사를 운영하고, 국가를운영하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줄줄 이어지는 이해의 말들이 여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 P82
즉 한쪽의 광범위한 선택의 폭과 또 다른 쪽의 깊은 불확실함의 감각 사이에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일련의 복잡한 갈등에 관한무언가를, 그리고 이 자유는 불완전한 동시에 꽤 많은 단서들을 달고 있으며 위험들로 가득할 것 같다는 느낌을 잘 포착했던 것 같다. 아직 제대로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20대 초반의나는 분명 그렇게 느꼈다. 마치 어떤 조리 도구도 숟가락도 없이, 그것들을 맛보거나 실험하거나 마음껏 즐기거나 나 자신의 메뉴를 개발해도될권리가 정말 나에게 있다는 실질적인확신도 없이, 가능성들만 가득 쌓인 거대한 식탁 앞에 서 있는것 같았다. - P85
이름 붙이지 못한 허기는 무시무시한 허기가 되고 자기 불신의 근원이 된다. 이는 욕구가 지닌 또 하나의 황금률이다. 우리는 논의하거나 탐색할 수 없는 것은 두려워하게 되고, 금지된 것에는 끌리는 동시에 겁을 먹게 된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이해에 대해 은밀함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정교한 순화의 형식을 택하는 것으로도 반응했던 것 같다. 욕구를 지하로 몰아가 더 안전한 곳들로, 덜 두려운 경로로 빼돌린 것이다. - P91
"소녀들은 존재하기를 멈추고 보기를 멈춘다." 나는 이 생각에 진실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문화는 이미 억눌린 채 뜨겁게 이글대고 있던, 나 자신의 믿음, 판단, 바람을 불신하는 마음의 불씨에 부채질을 해서 불을더 키운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이기적이고 자기 이익만 챙기며 공격적인 욕구들은 많은 소녀들에게 무서운 것으로 느껴지고, 특히 그런 특성들이 여자답지 않고 부적절하다는 믿음을갖도록 길러진 소녀들에게는 더욱더 무섭다. 또한 수수께끼같은 장막에 싸인 채 위험한 기미를 띠고 있는 욕구들, 당신을식탁에 앉은 한 명의 외계인처럼, 오래 머물기에는 너무 무섭고 너무 외로운 행성의 궤도를 돌고 있는 외계인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욕구들은 한층 더 무섭다. - P93
그와는 정반대로 나는 식욕으로 먹고 자고 숨 쉬었다. 항상 음식 생각을 했고, 포르노 더미를 앞에 둔 10대 소년처럼 음식관련 잡지들과 레스토랑 리뷰를 열심히 읽었고, 색인 카드에빵과 케이크, 초콜릿 디저트, 더할 나위없이 풍성하게 속을채워 넣은 파이들, 내가 갈망하지만 절대 나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는 음식들의 조리법을 옮겨 적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대형 트럭 사이즈의-음식과 인간적 연결과 육체적 쾌락을 향해 돌진하고 끊임없이 열망하는 욕구들을 갖고 있었으나, 바로 그 욕구의 힘이 내가 상대해서 겨루기에는 너무 위협적이고 무시무시하게 여겨졌기에 세계를 더없이 엄격하게 흑과 백, 예스와 노의 장소로 나누었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거나 모든 것을 먹고자 했고, 식욕을 제압하거나 식욕에 완전히 굴복하고자 했다. - P102
다시 말해서, 음식과 쇼핑과 외모 같은 것에 엄청나게 골몰하는 것은 허기에 진심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허기를 한껏 채워주고, 허기를 이해하고, 허기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라기보다는 허기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어마어마한 노력이다. 더 날씬해지고, 더 예뻐지고, 옷을 더 잘 입고자 하는, 그러니까 다른 존재가 되려는 이 충동은 무엇일까? 이 다른 존재는, 그가 입고 있는 재킷 혹은 그가 먹지 않는 음식을 제쳐둔다면, 정확히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보이는 사람인가? 우리가 육체의 이미지에 관해 다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 이런 질문들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스물세 살 때의 나 자신을, 뼈만 남은 몸으로 작은 접시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작디작은 사각형으로 자른 사과와 치즈를 조금씩 오물오물 먹고 있던 그때의 나를 떠올릴 때 나를 괴롭히는 질문들이다. 나는 무엇을 느끼고있었을까? 무엇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토록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던 걸까? - P109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술렁임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그런 규칙들을 확고히 지지했다. 어머니는 제도로서의 모성이 성인의 수준까지 끌어올려진 시기에, 여성의 야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정생활을 일구고 유지하는 일을 통해 표출되어야한다고 기대되던 시기에 결혼했다. 이런 이상들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었지만- 여성의 욕망은 수 세대에 걸쳐, 어떤 사회들에서는 수 세기에 걸쳐, 앞치마 끈에 묶이고 가정성이라는망토에 가려 있었다-내 어머니의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해당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년 동안 더욱 강력해지고 특유의 외양과 느낌을 부여받았으니, 어머니가 그런 것들에서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중산층이교외로 빠져나간 일이 엄청난 수의 젊은 여자들을 말뚝 울타리 뒤에 감추고 그 과정에서 고립을 조장하며 그러한 흐름에무대를 마련했다. - P124
동시에 어머니는 내가 알았던 모든 여자 중 가장 지적이고정보에 밝은 사람 중 한 명이자 열렬한 독서가였고, <선데이 뉴욕 타임스>의 십자말풀이를 연필이 아닌 잉크로 20분도 안 돼서 쉽게 풀어내고, 렌치를 뜨개바늘만큼 능숙하게 휘두르고, 강한 정치적 견해를 지녔으며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강력하게 몰두하는 여자였다. 서로 모순되는 특성들이 기이하고 상반되는 병치 가운데 드러났다. 우선 어머니 작업실의 이미지, 캔버스와 프레임과 유화물감이 복잡하게 들어차 있는곳, 탈수기 딸린 세탁기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던 주방 바로 옆 작은 방이 어머니의 작업실이었다. 그리고 <우먼스 데이>와 <뉴욕 리뷰 오브 북스>가 함께 흩어져 있던 어머니 침대의 모습.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서면 유화에서 나는 톡 쏘는 테레빈유 냄새와 스파게티소스 냄새가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내게는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어머니의 특성보다 모성적이고 남들을 챙기던 어머니의 특성에 대한 인상이 더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무심하게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아버지에게는 직업이, 어머니에게는 취미가 있다고 생각하며자랐다. - P128
프리단과 동시대 페미니스트들은 그 감정을 매우 명료하게묘사했다. 그러나 그 세대가 소리 죽인 욕망과 벌인 힘겨운 분투가 그 자식들에게, 특히 딸들에게 어떤 식으로 전해졌는지(그리고 어쩌면 여전히 전달되고 있는지)는 그만큼 명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자신의 필요들은 뒤로 미뤄두도록, 자신의 욕망과 추구는 남들을 돌보고 먹이는 일로 승화시키도록, 자신의실망은 삼켜 삭이도록 교육받고 자란 여자는 자신에게 없는그 권위와 권한의 감각을 딸에게 어떻게 전해줄까? 아마도 여자는 딸에게 그런 감각을 전해주지 않을 것이다. 한 학파는 젠더 정체성이나 젠더 사회화에 관한 교과서에서이들에 관해 읽을 수 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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