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에 관해서......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의 일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정원에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손자 다니엘이 달팽이 한 마리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녀석이 나를 돌아보더니,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졌다. 「달팽이는 왜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거예요?」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한동안 우물쭈물했다. 일단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고대답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꼭 대급해 주겠다고 말이다.

달팽이들이 왜 그렇게 느린지 알고 싶어 하던 달팽이는 여느 달팽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이 없었어. 그런데 그 달팽이는 그 문제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었단다.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이름이 없다는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야. 나이 많은 달팽이들은 녀석이 왜 그렇게 이름을 갖고 싶어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물어보면 그 달팽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납매나무는 그렇게 납매나무라고 부르잖아요. 가령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몸을 숨길 때, 우린 납매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한다고 하죠. 그리고 맛있는 민들레도 그렇게 민들레라고 부르잖아요.  - P15

수리부엉이를 만난 후, 달팽이들이 왜 그렇게 느린건지 알고 싶어 하던 달팽이는 또다시 느릿느릿, 아주느릿느릿하게 납매나무가 있는 쪽으로 가고 있었어.
그러던 중, 그들의 말로 <관습>이라고 하던 것에 몰두하고 있는 달팽이들을 만나게 됐단다.
그 일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 어느 날, 갖가지 색깔의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 들판으로 떨어졌다는 거야.
모양새가 반듯하고, 가장자리도 매끈한 게, 그들이 여태껏 본 나무나 풀의 이파리들과는 전혀 달랐어. 그나뭇잎들은 한동안 바람을 타고 떠다니면서 춤을 추듯 하늘하늘 나부끼다가, 결국엔 물기에 젖어 축축한 - P23

단지 느린 이유를 알고 싶었고, 이름을 갖고 싶었을뿐인데, 할아버지 달팽이가 윽박지르자 달팽이는 그만 풀이 죽고 말았어. 더군다나 주변에 있던 달팽이들중 자기편을 들어 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야. 심지어 몇몇 달팽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어. 할아버지 말이 맞고말고. 저 자식만 사라지면 우리도 좀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야.」바로 그 순간, 달팽이는 목을 길게 빼더니, 눈이 달린 더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주변에 있던 달팽이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어. 그러곤 작디작은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단다. - P28

「여러분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제가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달팽이들이 왜 느린 건지 알게 되고 제가 이름을 갖게 되는 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거예요.」 - P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