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글을 한편 쓸 때마다쓰지 않는 글이 더 많이 있고, 우리가 무언가를 글로 털어놓을 때마다 그보다 더 많은 것이 비밀로 혹은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혹은 기억되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다. 글을 쓰는 의도가 무엇이든
심지어 주제가 무엇이든, 우리는 자신이 겪은 혼란스럽고 유동적인 경험 중 일부만을 선별하여 종이 위에 모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글쓰기는 대리석 덩어리를 깎아내는 것이 아니다. 거친 강물에서 겨우 몇줌의 부유물을 건져내는 일이다. 그 찌꺼기를 어떻게 잘늘어놓아볼 수는 있겠지만, 강 전체를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내 앞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누락된 것이 많지만, 그래도 이제 나는 내 조부모들이 내 부모에게 물려준 상처가 부모에게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고, 우리가 공적으로 물려받은 역사가 우리의 사적인 삶에도 여러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안다. 나는 이제우리 집안의 다섯 세대를 목격할 만큼 오래 살았다. 내 앞의 두 세대에게 벌어졌던 역사의 무게가- 굶주림, 집단 학살, 가난, 참혹한 이민과정, 차별, 여성혐오가 -내 뒤의 두 세대에게도 여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목격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여자가 내게 준 작은 책상에서 나는 부모의 부고를 썼고, 그들이 세상을 뜬 뒤 내게 찾아온 평화를 누리며 살아왔다. 내가 유년기의 혹독함에 대하여 쓸 마음이 없는 것은 그 이야기라면 지금까지 많은 이가 누누이 곱씹어왔지만 유년기 이후에 찾아오는 혹독함에 관해서는 아직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p164.165


여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거부한 뒤 나는이내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읽고쓸 줄을 알게 된 해에 매일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라는 이유로사서가 되고 싶어했던 시기가 잠시 있었지만, 곧 그 책들을 누군가가 썼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그거라고 정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인생 목표를 굳게 정한 탓에 삶이 단순해졌지만, 글쓰기 자체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작가가 된다는 것 - P163

은 우리가 누구나 살면서 접하는 과제를 형식화한 일이라고 할 수있다. 세상의 지배적인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일,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아내는 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담아낼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새로쓸 수 있는지 알아내는 일이다. - P164

간간이 곁가지를 내거나 몇갈래로 갈라지며 여러 방향으로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할 때 실처럼 풀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표현이다. 하지만 여러가닥의 섬유가 꼬여서 하나의 실오라기를이루는 점을 고려할 때 한 실오라기를 따라간다는 것은 그것을 풀어 헤쳐보거나 그것을 이룬 여러가닥들을 구별해보는 일이라고말할 수 있을 테고, 그런 의미에서는 실의 비유를 써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게는 이런 경험이 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작은미술 잡지에 편집 조수로 취직했다가 곧 편집자가 되었다. 말은 편집자였지만 실제 하는 일을 보면 거의 편집장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교정의 규칙,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일을지시하는 법, 간행물을 만드는 법, 그리고 현대미술 특히 캘리포니아 미술에 대해서 배웠다. 부고, 리뷰, 가끔은 특집 기사, 몇편의 심층 취재 기사, 수많은 지면 때우기용 기사를 썼다. 월요일마다 들어오는 십여편의 글, 대체로 최악이었던 글들을 발행인과 함께 편집하여 목요일 오후에 인쇄기에 걸 수 있도록 만들었다.  - P165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시각예술의 영역을 거쳐왔다는 사실은 내가 한없이 고맙게 여기는 일이다. 당시 시각예술의 창작자들은 근원에 다다를 만큼 깊고 사방팔방으로 뻗는 질문들을 던졌다.
거의 모든 것이 시각예술이 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곧 예술가들이모든 가정을 의심할 수 있고 모든 문제를 탐색할 수 있고 모든 상황에 관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수단으로 행하는 철학적 탐구. 나는 시각예술을 그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몇몇 예술가의작업에 관심을 쏟고, 다른 예술가들과 대화하고, 또다른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그 세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참고문헌을 뒤지면서 배웠다. 프랑스 철학,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등의 난해한 텍스트에서 유용한 아이디어들을 수집했다.
- P166

메리델이 뉴멕시코에서 소개해준 사람들은내 중요한 친구들이 되었고, 나는 이후 거의 매년 여름 그곳을 찾으면서 그곳 여름 풍경을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로 여기게 되었다.
제리가 어언 80년 넘게 머물면서 애정으로 화폭에 담아온 그 장소를 내가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은 제리 덕분이었다. 캐서린은 그 몇년 뒤에 뉴욕으로 옮겼고, 나는 어른이 된 뒤로는 처음으로 그 도시를 방문할 때 캐서린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젊은 미술 비평가였던 나는 미술계에 더 깊이 투신하거나 업계에서 경력을 닦으려면뉴욕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결국 서부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자 내 앞날에서 그 운명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이 그렇게 맘 편할 수가 없었다).
- P171

이 여러 사람의 손을 빌려서 만든 작품은 제목이 결핍과 과잉이었다. 거대한 동전 카펫 한구석에는 연기자가 있었다. 흰 셔츠를 입은 그는 꿀이 가득 든 챙 넓은 펠트 모자를무릎에 올려두고 앉아 있었다. 그가 해야 하는 퍼포먼스는 아득히 먼 곳을 응시하면서―관람자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면서ㅡ두 손으로 꿀을 쥐어짜는 일이었다. 연기자를 포함시키는 것은 작품이 이미 다 만들어진 과거 시제가 아니라 한창만들어지고 있는 현재 시제임을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앤이 이후에 만든 작품들에서는 연기자가 무언가를 원래대로 되돌리거나,
풀어내거나, 지우곤 했다. 그럼으로써 작품은 전시 기간 도중에 만들어지는 동시에 해체되었다.
나중에 앤은 동전 중 일부를 화폐로 바꿔서 내게 건네면서 작품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서 연기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돌아보면, 그가 나를 지속적인 대화와 침묵 양쪽 모두에 초대했다는 점이 매혹적이다.  - P175

어릴 때 우리는 끈적끈적하게 묻히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 먹을 것으로 장난치면 안 된다. 어지럽히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자란다. 그래서인지 손목까지 꿀에 파묻는 것은 감각적 쾌락일뿐더러 그 모든 금지를 위반하는 멋진 행위로 느껴졌다. 만약 내가
"그날의 첫 연기자라면, 처음에 꿀은 차갑고 좀 단단했다. 하지만금세 내 손의 온기로 데워져서 흐르기 시작했다. 꿀을 두손 가득히 퍼 올릴 수도 있었다. 그래도 곧 꿀은 똑똑 떨어졌지만 어차피내가 작품에서 할 일은 꿀을 움켜쥐고 있는 게 아니라 흘리는 것,
꿀을 모자에서 퍼 올렸다가 도로 똑똑 떨어뜨리는 것, 몸의 나머지부분은 꼼짝하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치 1킬로미터 밖을 보는 듯 멀리 응시하면서 꿀만은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 P176

사방치기처럼 말하기. 뒤로 살짝 물러나서, 같은 영역을 다시밟아가기. 1987년 초, 아버지가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던 중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죽자, 나는 이제 충분히 안전해졌다고 느꼈다. 굳은 것을 풀고 닫아뒀던 것을 열어도 된다고 느꼈다. 오래전에 겪었던 사건들에 대한 감정을 그제서야 느끼기 시작했다. 으스스했던시절에 꽁꽁 얼었던 감정이 그제야 녹은 것 같았는데, 비로소 내가그 사건들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잔인하고 잘못된 일로 규정할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역시 그해에,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해서 떠났다.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도감당하기가 유난히 어려웠다. 나는 미술 잡지를 나와서 들어갔던직장에서 잘리고서 받기 시작한 실업급여, 약간의 저축, 가끔 지역 잡지에 리뷰나 에세이를 쓰고 받거나 샌프란시스코 여기저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받는 쥐꼬리만한 돈으로 살고 있었다.
나는 더 잃을 것이 없는 때야말로 자유로운 때라고 생각했다.
- P177

시티라이트 출판사에 출간 제안서를 보냈다. 제안은 1988년 초에승인되었고, 나는 첫 책의 선금으로 1,500달러를 받았다. 앞에서말한 비혼 다짐 작문을 썼던 1학년 때 이후로, 나는 줄곧 책 쓰는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을 세상에서 거의 제일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책을 현실에서 걸리는 마법으로 여겼기 때문이었고, 책을 쓰는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그 매혹적인 마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글로 일하고 싶었고, 글이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파편들을 모아서 새로운 패턴으로 배열하고 싶었다. 책이라는 별세계의 온전한 시민권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으로써, 책 속에서, 책을 위해서 살고 싶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 내내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품었을 때는 그 목표 혹은 지향이 그저 사랑스러웠지만, 막상 그것을 하려니… 음, 산봉우리를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오르려면 힘든 법이다. 작가가 되는 일에는 어엿한 인간이 되는 일의핵심이 담겨 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그 이야기를 어떻게할지, 이야기와 나의 관계는 어떠한지, 내가 선택한 이야기는 무엇이고 선택당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그 바람에 얼마나 귀 기울여야 하고 또다른 것들에는 얼마나 귀 기울여야 하는지, 이런 문제들을 더 깊게 더 멀리 생각해보는 일이다. 하지만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실제로 써야 한다. - P178

책을 쓰면서, 나는 캘리포니아가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바다 건너로 아시아에 면하고 있고 유럽의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더 멀다는 점이 왜 고마워할 점인지를 스스로 깨우쳤다. 사람들은 유럽의 영향이 적통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볼때는 그것이 관습화하는 힘으로도 작용하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마크 트웨인Mark Twain, 수전 손택, 셰이머스 히니 seamus Heaney, 알렉산더치 Alexander Chee 등등 많은 작가가 이곳에 와서 어떤 자유를 얻고 달라져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몇년 뒤, 뉴욕에서 살다가(그 전에는 뭄바이에서 살았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만으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이 내게 더는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 말에는 중심만이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날 집에 가서 주변부의 가치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희망과 사회 변화에 관한 책에서 주변부의 가치를 역설한 적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관찰한 바에 기초한 의견이었다. 나는 어떤 사상이 그늘진 가장자리에서 태어나서 중심부로 옮겨가는 것을 많이 보았고, 중심부가 사상의 기원을 쉽게 잊거나 무시하는 것을 보았다.  - P182

호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삶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졸업 후 4년 만에 첫 책을 쓰기 시작한그때, 나는 내가 두번 다시 취직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후 쉼 없이 일하고, 책을 많이 쓰고, 에세이와 기사도 많이 쓰고, 더러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학생들도 가르칠 터였지만, 상사를두고 봉급을 받는 직장 생활은 두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었다.
- P184

북극성은 지구에서 워낙 멀리 있기 때문에, 그 빛이 우리에게도달하는 데는 300년이 넘게 걸린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의빛이 우리에게 오는 데도 4년이 걸린다. 책은 별과 좀 비슷하다. 독자가 지금 읽는 것은 저자가 오래전에 열중했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가끔은 그저 책을 쓰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배포하는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해도 말이다. 책을 만드는 데 그렇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곧 그 내용이 글쓰기에 앞서 있었던 관심의 잔류물이라는 뜻이다. 1980년 말에 나는 벌써 옛 관심사 대신새 관심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연, 경관, 젠더, 미국 서부에 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P184

이들의 이상주의에는 그것을 가능케 한 토대가 있었다. 그 시절의 풍요함, 그들의 검소함, 백인들이 도심에서 교외로 이주함에따라 도심에 싼 집이 많이 나왔던 것, 파트타임 일자리 하나만으로도 커플이나 심지어 가족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만큼 임금이 높았던 것. 1980년대 초만 해도 더이상 그렇지 않았으니, 터전을 내키는 대로 옮기고, 집세를 몇달씩 체불하다가 더 쾌적한 집을 구하고 필요에 따라 경제 체제에 들락거리는 자유는 과거의 자유인들이나 행했던 괴상한 습속으로 보였다. 내 책의 주인공들은 비트족의 변두리에서 활동하거나 한때 그 동아리를 거쳤다. 보통 동부 출신 남성 작가들의 동아리로 묘사되는 비트족이 실은 이런 시각예술가들, 실험 영화 제작자들, 다른 운동에 몸담았던 시인들,  - P185

최선의 형태일 때, 논픽션은 세상을 도로 짜맞추는 행위다.
혹은 세상의 한조각을 뜯어냄으로써 세상의 통설과 관행 밑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행위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는 파괴와 비슷한 데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열렬히 흥분되는 것일 수있다. 뜻밖의 정보를 발견해서 그럴 수도 있고, 조각들을 조립해보니 차차 어떤 패턴이 드러나서 그럴 수도 있다. 잘 몰랐던 무언가가 차츰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세상이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혹은 기존의 통설에서 틀린 것이 발견되고, 그래서내가 새로 쓰게 된다. - P188

첫 책의 주제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었다. 예술사, 영화사,
문학사의 선형적 서사에서 대체로 누락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그 대신 영화와 시와 시각예술의 관계,
마약과 신비주의적이거나 비서구적인 철학과 정치적 반대 의견과퀴어 문화의 관계, 반문화 내에서 촉매 역할을 했지만 기본적으로아방가르드라고 불릴 만한 파격적 집단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였다. 내 예술가들은 구술사적 인터뷰 외에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않았고, 훗날 대부분이 특히 드페오와 코너가 주목을 훨씬 더많이 받기는 했어도 원래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 P189

콜라주는 말 그대로 변두리의 예술이다. 서로 다른 두가지가대면하거나 스며들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차이의 연접에서 어떤대화가 생겨나는지, 차이가 어떻게 새롭고 온전한 전체를 낳을 수있는지를 탐구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 예술가들에게 콜라주는 또한 가난의 예술이었다. 주변의 흑인 동네에서 철거된 빅토리아 양식의 집에서 슬쩍해온 재료, 중고품 가게가 내버린 물건, 잡지에서 오린 종이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너는 첫영상 작품을 파운드 푸티지‘로 만들었다. 카메라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그처럼 기존 영상의 맥락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자신의 주력 장르로 선택했다. 파운드 푸티지와 새로 찍은 영상을 섞어서 만들기도 했다. 그의 그런 영상 작품들은 창의적인 편집과 페이싱 으로 널리 영향을 미쳤다.
내가 사는 곳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일, 더군다나 나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점에 존재했던 세계를 재구성하는 일은 아이디어와 패턴 인식의 낙원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그런 작업을 그렇게 - P190

큰 규모로는 처음 해봤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도시와 지역의 과거를 알아간다는 것은 내가 몸소 경험한 장소들에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진다는 뜻이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시점까지의 세계에 대해서 쓰고 있었고, 그 글쓰기는 그 세계에서 내가앞으로 나아가는 데 발판이 되어줄 작업이었다. 나는 내가 속한 세상에게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안겨주는 문화사를 쓰고 있었다. 또한 한 주제의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고, 이점으로부터도 보상을 얻었다. - P191

비트족에 대해서 글을 쓰기 몇년 전, 긴즈버그의 사진 전시회개막식에 갔다가 이보다 더 강렬하게 내 존재가 지워지는 경험을한 적이 있었다. 전시장에는 긴즈버그가 자기 남자친구들을 다양한 장소에서 찍은 흑백 사진에 손수 설명문을 써서 덧붙인 작품이수십점 걸려 있었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모험을 즐기고, 서로를 즐기고, 세상을 제 것처럼 즐기고 있었다. 또 피터 올로브스키의 어머니와 누이를 찍은 사진이 한장인가 두장 있었는데, 정신 질환을 앓던 그들이 슬프고 고립되고 희망 없는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사진이었다. 내 기억에 전시장에 걸린 여자는 그들뿐이었다. 길위에서」와 「풀 마이 데이지에서처럼, 그들은 이동성이 곧 자유라고 여겨지는 환경에서 이동성을 갖지 못한 물체였다. - P199

글쓰기는 예술이지만, 출판은 사업이다. 나는 첫 책을 쓰면서크고 작은 출판사들과 갖가지 사건을 겪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혼자 방 안에서 생각, 자료, 언어를 가지고 하는 일이었고 대체로잘 굴러갔다. 한편 출판은 다른 조직과 협상하는 일이었는데, 그조직들은 늘 나보다 머릿수도 힘도 더 많았으며 가끔은 나를 지지하고 기꺼이 협업했지만 가끔은 오히려 적처럼 굴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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