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옮긴이 황현산 
1945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받았다. 아폴리네르를 중심으로,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대시를 연구하는 가운데 〈시적인 것〉, 〈예술적인 것>의 역사와 성질을이해하는 일에 오래 천착했으며, 문학 비평가로도 활약했다. 번역과 관련된여러 문제에도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이와 관련하여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였으며,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우물에서하늘 보기』, 『밤이 선생이다」, 『잘 표현된 불행」, 『말과 시간의 깊이』, 『아폴리네르-알코올의 시 세계』, 『얼굴 없는 희망」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파리의 우울』, 아르튀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 기욤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 등이 있다. 2018년 타계했다.

레옹 베르트에게

나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나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하나 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귄 가장 훌륭한 친구가 바로 이 어른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사정이 있다. 이 어른은 모든 것을, 어린이들을위해 쓴 책까지도 이해할 줄 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사정이 있다. 이 어른은 지금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데, 거기서굶주리며 추위에 떨고 있다. 그를 위로해 주어야 한다. 이모든 사정으로도 부족하다면, 지금은 이 어른이 되어 있는예전의 어린아이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어른들도 처음엔 다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들은 별로없다.) 그래서 나는 헌사를 이렇게 고친다.

어린이였을 때의 레옹베르트에게 - P7

옛날 옛적, 한 어린 왕자가 자기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한별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친구가 갖고 싶어서……… 삶을이해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훨씬 더 진실하게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 책을 가볍게 읽어 버리는 것이 싫어서 하는말이다. 이제 그 추억을 이야기하려니 그만큼 슬프기도 하다. 내 친구가 양을 가지고 떠난 지도 어언 6년이 되었다.
내가 여기에다 그의 모습을 그리려고 애를 쓰는 것은 그 애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친구를 잊어버린다는 것은슬픈 일이다. 누구에게나 다 친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숫자밖에는 관심이 없는 어른들처럼 되어 버릴지 모른다. 내가 이제 다시 그림물감 한 갑과 연필 몇 자루를 사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나이에 다시 그림을 시작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여섯 살 적에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을 그려 본 것밖에 달리 그려본 것이 없는 처지에! 물론 힘이 닿는 한 그의 모습과 가장많이 닮은 초상화를 그리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성공할 수있을는지 정말 자신이 없다. 어떤 그림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어떤 그림은 영 딴판이다. 키를 어림잡는 데도 좀 서투르다. 이쪽 어린 왕자는 너무 크고 저쪽은 너무 작다.  - P25

아! 어린 왕자, 너의 초라하고 쓸쓸한 생활을 나는 이렇게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네 마음을 달래 주는 것이라곤 아늑하게 해가 저무는 풍경밖에 없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나는 너의 말을 듣고 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너는 이렇게 말했지.
「난해넘이가 정말 좋아. 지금 해넘이를 보러 가요…….」「하지만 기다려야 하는데…….」「기다리다니, 뭘?」「해가 지기를 기다려야지.」너는 처음에 아주 놀란 얼굴을 하더니, 곧 네 자신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너는 말했지.
「나는 아직도 내 별에 있는 건 줄 알았어.」그렇다. 미국이 한낮이면 누구나 다 알다시피 프랑스에서는 해가 저문다. 해가 저무는 것을 보려면 단 1분 동안에라스로 갈 수만 있으면 될 텐데, 불행히도 프랑스는 너 - P33

무 멀리 떨어져 있지. 그러나 그처럼 작은 너의 별에서는의자를 몇 걸음 당겨 놓으면 그만이었지. 그래서 넌 네가원할 때마다 석양을 바라보곤 했었지…….
「어느 날 난 마흔네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어!」그리고 잠시 후 이렇게 덧붙였지.
「아저씨도 알 거야……. 그렇게도 슬플 때는 누구나 해가 저무는 게 보고 싶지.」「마흔네 번 해넘이를 본 날, 그렇다면 너는 그만큼 슬펐단 말이냐?」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P34

수백만 년 전부터 꽃들은 가시를 만들어 있어,
년 전부터 양은 바로 그 꽃들을 먹어 왔고, 그런데 외 불이 아무 소용도 없는 가시를 만드느라 그렇게 고생을 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 그래 중요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과 꽃들의 전쟁은 중요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 뚱뚱하고 시뻘건 어른의 덧셈보다 더 중요하고 진지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내 별을 떠나선 어디를 가도 찾아볼 수 없는 이세상에 단 한 송이밖에 없는 꽃을 생각해 봐. 어느 날 아침조그만 양이 멋도 모르고 이렇게 단숨에 없애 버릴지도 모르는 그 꽃을 내가 사랑한다고 해봐. 그런데 그게 중요한일이 아니란 말이야?」그는 얼굴이 빨개져 가지고 다시 말을 이었다.
「수백만 또 수백만이 넘는 별들 속에 그런 종류로는 단한 송이밖에 없는 꽃을 누군기가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별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할 거야. 저 하늘 어딘가에내 꽃이 있겠지.……….) 이렇게 혼자 말하겠지. 그런데 양이그 꽃을 먹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그에겐 그 모든 별들이 갑자기 꺼져 버리는 것 같을 거야! 그래도 그게 중요한일이 아니란 말이야!」 - P38

그를 조용히 흔들어 달랬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꽃은 이제 위험하지 않아……. 양의 입에우도록 내가 부리망을 하나 그려 줄게….. 네 꽃을 위해 내가 갑옷도 하나 그려 줄게………. 내가….」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말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난 내가 아주서툰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그를 달랠 수 있는지, 어디를가야 그의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없었다. 눈물의 나라, 그건 그렇게도 신비롭다.
- P39

「내 생활은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고 닭들은 모두 그게 그거고, 시람들도 모두 그게 그거고,
그래서 난 좀 지겨워. 그러나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을 받은 듯 환해질 거야. 모든 발자국 소리와는 다.
르게 들릴 발자국 소리를 나는 듣게 될 거야. 다른 발자국소리는 나를 땅속에 숨게 하지.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어. 밀밭을 보아도 떠오르는 게 없어. 그래서 슬퍼! 그러나 네 머리칼은 금빛이야.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밀은, 금빛이어서, 너를 생각나게 할거야. 그래서 나는 밀밭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될 거고…」여우는 입을 다물고 오랫동안 어린 왕자를 바라보았다.
「제발……… 나를 길들여줘!」 여우가 말했다.
「그러고는 싶은데,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시간이 없어. 나는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 수 없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어느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미리만들어진 것을 모두 상점에서 사지. 그러나 친구를 파는상인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로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 P94

이튿날 어린 왕자가 다시 왔다.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걸. 여우가 말했다.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거야….. 의례가 필요해.」「의례가 뭐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도 모두들 너무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이를테면 사냥꾼들에게도 의례가있지.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 처녀들하고 춤을 춘단다.
그래서 목요일은 경이로운 날이지! 나는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가지. 만일에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이 다 그게 그거고, 내게는 휴일이 없을 거야.」 - P95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하고 딜빛 아래 주름을 짓고는 모래 언덕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사막이 아름다워」 그가 덧붙였다.
사실이다. 나는 늘 사막을 좋아했다. 모래 언덕 위에 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정적 속에 빛나는 어떤 것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딘가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나는 모래밭이 왜 그처럼 신비롭게 빛나는지 문득 깨달았다. 어렸을 때 나는 고가(古家)에서 살았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그 집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했다. 물론 아무도그 보물을 발견하지 못했고, 어쩌면 찾으려 하지도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그 보물이 우리 집 구석구석을 황홀하게만들었다. 우리 집은 그 깊숙한 곳에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그래.」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집이나 별이나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아저씨가 내 여우하고 같은 생각이어서 기뻐.」 그가 말했다.
어린 왕자가 잠이 들어 나는 그를 품에 안고 다시 길을걸었다. 나는 감동했다.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 P106

119창백한 이마, 그 감긴 눈, 바람에 흩날리는 그 머리칼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다. 내가 여기 보고 있는 것은 껍질에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그의 반쯤 벌린 입술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소를 보고나는 또 생각했다. 잠든 어린 왕자가 나를 이렇듯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한 송이 꽃에 바치는 그의 성실한 마음 때문이다. 비록 잠이 들어도 그의 가슴속에서 등불처럼 밝게타오르는 한 송이 장미꽃의 영상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그가 더욱더 부서지기 쉽다는 걸 알아차렸다.
등불들을 잘 지켜야 한다. 한 줄기 바람에도 꺼질지 모르는….
그리고 나는 이렇게 걸어가 동이 틀 무렵 우물을 발견했다.
- P107

이것은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풍경이다. 앞면의 풍경과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분에게 똑똑히 보여 주기 위해 이걸 다시 한번 그렸다. 어린 왕자가 이땅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곳이 바로 여기다.
어느 날 아프리카의 사막을 여행하게 되면 이곳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이 풍경을 자세히 보아 두라. 그리고이곳을 지나가게 되거든 제발 서두르지 말고 바로 별 아래서 잠시 기다리라! 그때 한 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오면,
그 애가 웃고, 그 애의 머리가 금발이면, 물어도 그 애가 대답하지 않으면, 그 애가 누구인지 여러분은 잘 알리라. 그때는 친절을 베풀어 달라. 이다지도 슬퍼하는 나를 그대로버려두지 말고, 이내 편지를 보내 달라. 그 애가 돌아왔노라고….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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