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운동은 백인 남성 악동들의 브로맨스를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공동 작업에 들뜬˝ 남자들, 이제 신성한 성지가 된 술집에서 ˝수십 년 진탕 퍼마신 남자들의 위업은 빠짐없이 기록되었다. 젊었을 때부터 이 남자들은 자신들이 남길 유산을 미리 예상하고 행동했으며 평론가들은 그 미술가들이 원숙한 경지에 이르기 전에 미리 그들의 작품을 열렬히 사들였다. 반면에 여성 미술가들은 중요성을 늦게 인정받는다. 여성 미술가의 명성은 사후에 소급하여 주어진다. 고고학자들이 지하묘지를 파헤쳐 생전에 과소평가된 또 한 명의 천재를 발견했다고 선언해야만 비로소 주목받는다.
마이크 켈리, 폴 매카시, 짐 쇼의 우정이나 데 쿠닝과폴록, 베를렌과 랭보, 브르통과 엘뤼아르의 우정에 관해 읽을때면, 나는 여성, 더 절실하게는 유색인종 여성이 우정을 통해 미
술가와 문인으로 성숙기를 맞은 이야기를 간절히 읽고 싶어진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수많은 페미니스트 문인과 미술가가 등장했지만, 그들이 함께 미적 원리를 기반으로우정을 맺는 이야기를 글로 접하기란 여전히 흔치 않은 일이다.
문학사와 미술사를 깊이 파면 팔수록 나는 더욱더 고독해졌다.
하지만 삶에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에린과 헬렌과의 우정을통해 이미 그런 종류의 유대감을 체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p160.161

부채 의식은 감사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로스게이는 자기 시에서 무화과의 "벨벳처럼 부드러운 속살을맛보거나 녹슨 빨간 펌프로 끌어올린 차가운 물을 마시는순간처럼 삶의 소소한 순간에 감사한다. 그는 심지어 못생긴발에도 감사한다. 맨발일 때 못생긴 것이 너무 신경 쓰여 "스무마리의 꼬마 타조처럼 모래 속에 발가락을 파묻을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은 현재의 밝은 빛속으로 팔다리를 마음 편하게 쭉 뻗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게행복이다. 부채 의식이 있으면 생각이 미래에 고착된다. 나는 어쩌다. 행운을 얻으면 쉽게 흥분하는 조그만 강아지처럼 긴장한다. 이 행운은 누구 것이지? 물론 내 것일 리 없어! 나는 행운을거저 받는 선물이 아니라 앞으로 매주 악운을 당함으로써 할부상환해야 하는 융자처럼 취급한다. 내가 이 모양인 것은 잘못키워져서 - 억지로 고마워하도록 욱지름을 당해서 - 그런 것이틀림없다. 저를 위해 인생을 희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대가로부모님을 위해 제 인생을 희생하겠습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반항했다. 그 결과 나는 배은망덕이라는최악의 인간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도 배은망덕한 책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부채 의식을 지닌 작가는 환심을 사려는이야기를 쓸 확률이 높다. 나도 이 나라에 그야말로 빚을 졌지만나는 오히려 항상 배은망덕할 것이다. - P248
1996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유리 고치야마는언명했다. "인민은 폭력 행동을 할 권리, 반항할 권리, 저항할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서구 세력이 제3 세계에 자행한일을 고려하면 … 그 나라들은 저항해야 합니다." 그를 인터뷰한 한노리미쓰 오니시 기자는 그 말에 바로 이어 고치야마가 "현재정치적 비주류 소수로 국한되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라고언급함으로써 인용문의 의미를 축소해 버렸다. 나는 잘 알아보지도 않고 이런 설익은 논평을 전부포용했었다. 그들이 어떤 정치를 도모했는 지금은 한물갔다고생각했다. 고치야마의 국제적 인종 관계 정치는 결코 하찮지않건만 수많은 "전문가"가 정체성 정치의 하찮음에 대해거만하게 떠드는 소리만 듣고 운동가 선배들의 노고를 냉큼묵살했던 일이 나를 괴롭힌다. 미래가 걱정스럽고, 이 나라의타고난 망각 능력이 걱정스럽고, 항상 승리해 서사를장악한 자가 권력을 쥔다는 것이 걱정스럽다. 깨어 있다는것은 일회성 자각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평가를 통해 에너지를얻는 장기적인 서약일진대 "woke (깨어 있음을 뜻하는 형용사awake의 흑인 방언 - 옮긴이)라는 구호는 이제 조롱받는 일개해시태그로 전락했다. - P255
생각 실험을 하나 해보자. 만일 백인이비백인에게 00(빈칸에 국가나 대륙을 기입)으로 돌아가라고소리 지를 때마다 그들의 소원이 즉각 이루어진다면 어떻게될까?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에콰도르인이 갑자기 멕시코에가 있거나, 내 경우에는 중국에 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나라를 정확하게 지목해서 갑자기 내가 서울로 순간 이동한다면어떻게 될까? 나는 2008년 이후로 서울에 가지 않았지만, 당시 100 세인할머니를 뵈러 갔더니 열악한 요양원에서 천천히 노쇠해지고계셔서 지금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화가 난다. 그요양원은 기괴한 탁아소처럼 벽을 온통 분홍색으로 칠하고아이들이 합창하는 섬뜩한 찬송가 녹음을 온종일 틀어놓았다. 10인 1실로 꽉 찬 방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은 방문한 자녀들에게자주 좀 오라고 투정했다. 중증 치매인 우리 할머니를 돌보기에나머지 친척들은 너무 노령이었기 때문에 내 동생이 1년 동안서울에서 할머니를 돌봤다. "늙어서 가족이 나를 버리기 전에죽고 싶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서울에서 못 산다. 그곳은 여자들이 살기 좋은 곳이 못된다. 많은 여성이 선천적으로 넓은 몽골형 얼굴을 성형수술로깎아 하얗게 표백한 하트형 얼굴로 만든다. 교육제도도무자비하다. 금융위기 수습을 위해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이한국에 58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그 조건으로 - P256
국 투자자에게 시장을 개방하고,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해노동자의 고용과 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탄소 배출 기준을해 미국 자동차 수입을 허용하도록 했다. 이제 실질 임금은체되었다. 실업률도 심각해졌다. 대학생들은 억압적 봉건체제였던 조선왕조의 이름을 따서 자기 나라를 "헬조선"이라부른다. 탁하고 뿌연 미세먼지가 서울 전역에 내려앉는다. 그먼지는 육안으로는 안 보여도 목 뒤로 느껴지며 장기적으로 암같은 병을 일으킨다. 한국인들은 특정한 몇 개월 동안은 밖에도잘 안 나가고 나갈 때는 수술용 마스크를 쓰지만, 그것도 그들을충분히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미국에 사는 것을 은혜로 여겨.
테레사 학경 차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척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에 연속적인 굴절을 초래하는 장치를저지하라"고 적는다. 서구의 가장 파괴적인 유산은 누가 우리의적인지 규정하는 권력이며, 이 권력에 의해 우리는 남북한이그랬듯 동족을 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나의 적으로삼는다. - P257
지도를 놓고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었고, 과적으로 이 분단은 우리 할머니의 가족을 비롯해 수백만 가족을 갈라놓았다. 그 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역에서 일본군에게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과 네이팜을자유의 기치 아래 좁은 우리 땅에 투하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잘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사실 하나는 당시 한국에서 복무하며화상 피해자를 치료했던 미국 외과 의사 데이비드 랠프 밀러드가바로 아시아인의 눈을 서구적으로 만드는 쌍꺼풀 수술을 창시한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수술법을 한국 성노동자들에게시술하여 미군 병사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오늘날쌍꺼풀 수술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수술이다.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그러니까나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 P259
미국에 돌아오니 공기가 희박했다. 숨이찼다. 학자 서영 주의 표현처럼 나는 기묘한 골짜기로 다시유배되었다. 거기서 나는 실리콘 틀 속에 다시 넣어졌으며, 그안에서 쌍꺼풀 없는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곧 나를 내용물로 채우는 것이다. 나자신을, 그리고 나를 통해 대리되는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을 더인간화하고 미국 문화에 좀 더 유의미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시는 영어와 힘든 관계를 맺어온 누구에게나 너그러운 표현매체다. 말을 더듬는 사람도 노래를 부를 때는 문제 없이 단어를발음하는 것처럼 이민자도 시를 통해서는 영어로 아름답게글을 쓸 수 있다. 시인 루이즈 글릭은 서정시는 폐허라고했다. 폐허로서의 서정시는 인종적 조건을 탐구하기에 최적의형식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형언하기 어려운 상실을 서정시의 - P260
파편 속에 담긴 침묵을 통해 포착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러한 침묵에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의지해왔으며, 상실의 슬픔이 자칫 단어 몇 개로 축소되지않도록 늘 여백을 남겼다. 시인 조스 찰스는 "자본 안에서감지되는 것은 끔찍하다"라고 했다. 나는 내 고통을 소비용으로쉽게 요약하느니 차라리 여백으로 남겨놓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산문체를 택함으로써, 인종 정체성에 대한내 감정을 해부하며 그 침묵의 빈자리를 어수선하게 채우는중이다. 그 감정을 검토할 때면 작가로서 특정 인종 범주에들어앉아 나를 외부와 차단해버리는 손쉬운 길을 택하고말았다는 초조함이 어김없이 뒤따른다. - P261
나는 빚진 상태를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과거에 투쟁한 운동가들에게 빚지고 있다. 나는 학경차에게 빚지고 있다. 윤리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역사에책임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는 세상이 자기에게 빚지고있다고 여기는 부류의 백인 남자가 되느니 차라리 빚을 지겠다. 또한 나는 무리 부모님께 빚지고 있다. 하지만 내 삶을 비밀로유지하거나 내 것을 챙기는 사유화의 꿈을 뒤쫓는 방식으로부모님께 진 빚을 갚지는 못하겠다. 엄마는 내게 감사할 것을거의 매일 요구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미국에 온 거라고 거의 매주 말했다. 그러고는 물었다. "너는 왜그렇게 힘들게 사니?" - P266
저자와 공감한다는 것은 저자와 동일한 체험을 공유한다고주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주장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나는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계 미국인은 아니다. 그러하니 저자가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겪어온 일에 대해내가 과연 얼마나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미국 생활을꽤 오래 했고 교포 친구들을 사귀었던 경험도 있으니 완전히문외한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히 내가 미국에서 삶을영위하는 한국계 미국인 공동체의 실태를 온전히 이해하는 척할수는 없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살아보고, 잠시 직장에도 다녔지만, 그과정에서 아무리 친숙해지고 정들었다고 해도 내게 미국이라는나라는 어디까지나 싫으면 떠나면 되는 곳이었지 소속감을갈망하거나 여기가 내 나라라는 의식은 별로 없었다. 그런의식이 없으니 소외나 차별에 좌절감이나 분개심이 일어도저자와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정도에 큰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사회에 대한 저자의관점이나 감정을 이해하는 내 역량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을것이다. - P272
앞서 말한 대로 미국에서 생활할 때는 차별적인 언사를들거나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깔린 헛소리를 들어도 내, 내 나라에서 타자화되는 체험이 아니어서 상처가 덜했다. 그러나 외국인, 더 정확히 말하면 스위스 국적의 백인 남성과결혼하고 아시아 여성 이민자로서 백인이 절대다수인 남편의나라에서 몇 년 생활한 이후로 나의 외부자로서의 촉수는지극히 예민해졌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위스를 제2의집으로 삼게 된 이후부터는 은근한 차별, 따돌림, 타자화가 미국시절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이 문제는 미국에 비해서 유럽이 전반적으로 소수자 집단과함께 살아가는 일에 덜 익숙하고, 소수자와 관련해 정치적올바름을 발휘하는 일에 훨씬 덜 예민하다는 점 때문에 한층더 현저히 발현됐다. 중국 관광객이 쓰는 돈이 도시의 엄청난수입원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대로에서, 성인 한 무리에게칭챙총 소리를 반복해대는 놀림을 받고서 나는 겉으로는 쿨하게무시하고 지나쳤지만, 속으로는 그 자리에서 한마디했어야 하는것이 아니었나 갈등이 일었다. 저자가 지하철에서 인종차별적언사를 한 남자를 대담하게 야단치는 대목을 번역하면서, 나도그때 그랬어야 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 P273
그것은 주류 다수 백인 남성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스트레스다. 바로 이 인구 집단에 속하는 남편은 지금이야나만큼이나 이 문제에 예민하지만 결혼 초기에는 내가 일상에서느끼는 바를 구체적으로 일일이 설명해주어야 비로소 그것을인식했다. 그렇게 설명하면서 느끼던 내 심정, 그것이 바로 "소수적 감정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나는 저자가 겪은 일들을 내 일처럼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분명히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을 옮기는 동안, 저자의 이야기에 가슴을 졸이고, 슬퍼하고, 분개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에이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내가20~30대에 겪었던 미국 사회를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보았다. 거기에 사는 한국 교포, 아시아 이민자, 그리고 다른 소수자집단들을 생각해보았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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