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이 나라에서 아시아인으로 사는 굴욕은 잘 알려져 있지않다. 우리는 아시아인은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에 주눅이들어 있다. 근면성을 발휘하면 존엄성으로 보상받으리라 믿고묵묵하게 열심히 일하지만, 근면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만들 뿐이다. 우리가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심은억압적인 아시아 문화와 우리가 떠나 온 나라가 초래한 것이되고 미국은 우리에게 오로지 기회를 주었을 뿐이라는 신화를영구화하게 된다. 아시아인이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은너무나 은근히 퍼져 있어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도 남들에비하면 나쁜 처지가 아니었다는 의심에 시달린다. 그러나 인종적트라우마는 누가 앞서고 뒤지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문제는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이례적이 아니라 실은 오히려전형적이었다는 데 있다.
- P112

시인 바누 카필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극우파가 득세하면어떻게 될지 상상하려면 그냥 눈만 감으면 된다. 그리고 내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된다." 친구들도 그 심정에 똑같이 공감했다.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촉발되었다고했다. 아이들은 잔인하다.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에게 들은인종차별적인 개소리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직설적인 방식으로앵무새처럼 재생한다. 트럼프 행정부 밑에서 요즘 인종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아이들 사이에서 인종주의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 기억의 촉발은 꼭 특정한인종차별 사건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을 되살린다.
한 오라기의 두려움과 수치심, 동물처럼 바짝 긴장한 경계심같은 것 말이다. 순수한 상태로 향수에 젖어 회귀하는 것이든불안과 걱정을 갑작스럽게 떠올리는 것이든 간에, 어린 시절은하나의 정신 상태다. 어린 날의 순수가 보호받고 위안받을때의 정신 상태라면, 어린 날의 불안은 그 사람이 최소한으로만보호받고 위안받는다고 느낄 때의 정신 상태다.
- P113

이런 일도 있었다. 동생이 아홉 살이고 내가열세 살일 때였다. 쇼핑몰에 갔다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어느 백인 부부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유리문을 열었다. 나는우리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줄 알고 남자가 마지못해 문을붙잡고 있는 동안 재빨리 그리로 나왔다. 문이 닫히기 전에 그가고함쳤다. "난 중국놈들한테는 문 안 열어줘!"
동생이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 남자가 왜 그렇게 못되게구는지 동생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처음 당해봐." 동생이울었다.
나는 쇼핑몰로 되돌아가 그를 죽이고 싶었다. 나는 어린여동생을 보호하지 못했으며, 증오 때문에 우리를 아이로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성인 남자에게 살인적인 분노가 솟구치는 - P116

내가 백인성 문제를 거론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아시아게미국인들이 이 나라의 자본주의적 백인우월주의 위계질서 속어디쯤에 위치하는지 명명백백하게 따져봐야 하는데 여태그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꼼꼼히 따져보기는커녕, 일부아시아인은 인종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고 "문제되지 않는다고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백인들이 하는 똑같은 소리 못지않게잘못된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인종 정체성 때문에차별만 받은 것이 아니라 혜택도 누렸기 때문이다. 인종을나와 무관하게 여기는 이 아시아인들이 바로 내 사촌이고, 내옛 남자친구이며, 브루클린에 안락하게 틀어박혀 맑고 포근한날 불현듯 나는 인종에 영향받지 않아도 되고 그저 자진해서 그문제를 생각할 뿐이라고 여기는 나 자신이다. 나 또한 오로지나와 내 직계 가족만을 위해서 살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전부 누르고 앞서가라는 이 나라의 신자유주의 정신과 일치된생존 본능을 갖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을 옥죄는수치심은 묻어버린 채 말이다. 정도는 조금씩 달라도 미국에서자란 아시아인은 모두 내가 묘사한 수치심을 익히 알고 있으며,
그 기름진 불길을 느껴봤다.
- P122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왔건, 아프가니스탄에서왔건, 한국에서 왔건, 1965년 이후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역사는 미국을 넘어서 각자의 출신국으로 확장된다. 그곳에서우리의 동족들은 서구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미국이 세우거나지원한 독재 정권에 의한 대량 살상을 겪었다. 미국의 일원이되기 위해서 애쓰느라고 우리는 인생에서 제2의 기회를 선사받은양 황송해한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뿌리는 이 나라가우리에게 부여한 기회가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의 자본주의적확장이 우리의 조국의 피를 빨아 부를 챙긴 방식이다.
우리가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백인 순수의 유아론을 뒤집어,
우리의 국민 의식이 그 이란계 미국인 소년 같은 아이들의정신과 더 비슷한 모습이 되도록 일조할 작정이다. 그 아이의정신은 글도 깨치기 전에 벌써 이 나라가 어떤 폭력을 가할 수있는지를 인지하는 무방비 상태의 의식이며, 역사에 시달리는아이의 의식이 언젠가 다수를 차지할 때 새하얀 이미지들을퇴색시킬 것이 틀림없다.
- P126

서투른 영어는 한때 부끄러움의 원천이었지만,
이제 나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서투른 영어는 나의 유산이다.
나는 완벽한 영어에서 일부러 멀어질 것을 외치는 작가들과 -영어를 탈취해 도망자의 언어로 비틀으로써 영어를 어지럽히고,
뒤흔들고, 난도질하고, 괴랄하게 만들고, 타자화하는 작가들과 -문학적 계보를 공유한다. 영어를 타자화하는 것은 듣는 사람이 그언어에 박힌 제국주의 권력을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이며, 영어를절개하여 그 어두운 역사가 비어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
시인 너새니얼 매키는 에세이 타자 : 명사에서 동사로에서타자라는 명사는 사회적 의미를 띠고, 타자화하다라는 동사는예술적 의미를 띠는 것으로 구분한다.

예술적 타자화는 문화적 건실성과 다양성 증진의 기반인혁신, 발명, 변화와 관계 있다. 사회적 타자화는 권력,
배제, 특권과 관계 있다. 즉 한 명사를 중심에 놓고 그것을기준으로 타자성을 측정, 배분, 주변화하는 것이다. 나는후자에 예속되는 사람들에 의한 전자의 실천에 초점을둔다.
- P136

우리 부모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어떤공부를 하고 어떤 직업을 고를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신것이다. 빚과 일주일 내내 일하는 고된 처지에서 부모님을구제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던 다른 한인 타운 아이들은 나와같은 처지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녀의 도움이 필요 없는부유한 한국 부모들도 오로지 자랑할 권리를 누리고 싶다는이유로 자식들의 경력과 결혼을 가차 없이 관리했고, 그러다가애들의 인생을 망쳤다.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은, 아버지도 한때시인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오벌린 대학에서 시과목을 수강하기 시작하자 처음으로 그 사실을 밝히셨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풀려서 내가 10대가 됐을 때 우리가족은 교외 백인 거주지 내 수영장 있는 집에 살았다. 나는참새가 염소 소독제 섞인 수영장 물을 한 모금 마시러 획내려왔다가 다시 획 올라가는 모습을 창문으로 내다보곤 했다.
거기로 이사했다고 해서 우리 집에 감돌던 불행이 지워지지는않았지만, 우리의 그런 고립된 생활 환경이 모종의 안도감을주었다. 내 사춘기 불행의 원인을 분석하려면 엄마에 관해 써야하는데, 이 책에서 그 작업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 이야기를하지 않고서 내 안으로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을까? 아시아계미국인의 내러티브는 항상 엄마로 귀결되어야 하나? - P164

"우리 사는 데 어딘지 알잖아." 내가 성이 나서 말했다.
헬렌이 말했다. "어디 가서 좀 앉자." 이상하리만치 따뜻한날이어서 우리는 콘크리트 우주선처럼 생긴 오벌린 대학교 도서관 바로 앞에 펼쳐진 와일더 보울 잔디밭에 앉았다. 헬렌이눈물을 글썽여가며 강의 시간에 쓰기에도 지나치게 지적으로다가오는 온갖 어휘를 동원해 내 시를 논했는데 걔가 그렇게말하니까 왠지 진정성 넘치고 심오하게 들렸다. 헬렌은 그토록감동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시에서 뭔가 매우 핵심적인것을 포착했다고 했다. 영혼을 포착했다고 했다. 시 속에서내가 춤을 춘다고 했다. 그것이 헬렌에게 창작에 대한 영감을주었다고 했다. 걔가 밤새 내 시를 전부 읽은 다음 다시 반복해서읽으며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했다고 했다.
나는 행복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누군가를 감동시키는것이, 헬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글을 쓰는 의의라고생각했다. 나는 다시 진정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진정했다.
나는 그 감정 속에서 헬렌과 잔디 위에 앉아 있었다.
- P197

「낯선 자들의 수직 심문에서 저자 바누 카필은 무작위로만난 남아시아 여성들에게 일련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어머니가 겪는 고통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와 같은 날카로운질문과 더불어 "당신은 어떤 체형입니까?"라고 질문한다. 나만해도 비소처럼 남은 어린 시절의 잔여물인 신체이형장애의흔적을 노출하지 않고서는 그 질문에 도저히 대답할 수가없다. 의기양양한 페미니즘 서사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탈환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신체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조심스럽게 바라본다. 큰 머리통, 어쩌면 한때는 중성적으로깜찍한 매력이 있었을 수도 있는 아담한 몸. 하지만 이제 내 몸은무심하게 방치되어 늘어지고 있다. 유방은 소파에 누워서 서핑할때 쓰는 노트북 받침대다.
차라면 어떻게 답했을까? 가톨릭교도이자 한국인으로자랐으니 억압은 이중으로 작동했다. 공연 영상 속 그는 항상흰 옷을 입고 있다. 백색은 한국 문화에서 죽음을 뜻하지만,
무속 문화에서는 평화를 뜻한다. 차의 어머니는 차를 임신한 지8개월째에 가족과 부산으로 피난했다. 그날 앙고라 토끼처럼커다랗고 하얗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내렸고, 차의 어머니는드물게 평화로운 순간을 체험했다. 차는 육체를 육감적으로현시하기보다는 소거하는 일을 더 흥미롭게 여겼다. 그래서자신을 희생하는 여성들에게 매료되었다.  - P234

슬픔은 우리 눈을 속이고 시각을 왜곡할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들이 가까이있음을 재확인받는다. 물론 그들은 차가 아직도 현존하여 그들을그 방으로 인도했고, 차의 손의 기운이 여전히 그 장갑 속에,그들의 꿈속에, 『딕테 속에 남아 저승에서 그들을 부른다고주장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물론 그들은 차가 죽어서도여전히 작품을 만들고 있으며 그의 영혼이 참혹한 죽음을초월하여 존속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할 것이다. 장갑이발견된 바로 그날 아티스츠 스페이스에서 전시회가 열렸고 차가작업한 손 사진들이 유작으로 전시되었다.
- P238

살면서 내내 부채 의식의 무게를 느꼈다. 나는부모님의 죽은 아들을 대체할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으므로태어날 때부터 결손 상태였다. 이후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는인생 선택을 할 때마다 내 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했다. 빚을졌으면 조심하고, 자제하고, 내 차례가 아니면 입을 다물어야한다. 내 선택이 전혀 아닌 선택에 의해 구속되는 삶을 살아야한다. 저녁 식사 모임에서 좌중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편하게여기는 남녀는 긴 문장으로 말하면서 극적인 순간에 멈추어이야기의 효과를 고조시키고, 아무도 감히 중간에 끼어들지못하도록 한다. 그와는 달리 나는 그저 초대받은 것이 황송하여남이 끼어들기 전에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하려고 재빨리잘려지고 압축된 문장을 내뿜는다.
부채 의식을 지닌 아시아 이민자가 자기들이 이만큼사는 것을 미국 덕분으로 여긴다면, 그 자녀 세대는 자기들이먹고사는 것을 고생한 부모 덕분으로 여긴다. 따라서 부채의식을 지닌 아시아계 미국인은 이상적인 신자유주의적 주체다.
역사의 무게는 오롯이 내가 짊어지는 부담이고 부모님이 잃은것을 보상받는 일은 내게 달렸다고 받아들인다. 그러기 위해서불평은 접어두고 직업전선에서 내 능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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