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세 번째 봄이다.
최은미의 <여기 우리 마주>는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첫 번째 봄의 이야기다. 처음 읽을 때는 생생한 감정선이 살아났는데 이만큼 지나고 나니 당시에 비해 어마 무시한 확진자 숫자들이 비현실적이다. 우리 모두가 지금을 상상하지 못했듯, 그때의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향하던 표창 같은 비난들이 섬뜩하다. 우리들 마음이 다 그러했음에.
살구 꽃이 피었는데, 연락 없는 그들에게서는 소식이 왔을까?
모두 조금은 평안한 세 번째 봄이었으면.

맘 카페에 들락거리는 그 마음을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는 마음. 너무 사랑해서 말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아서 말할 수없고, 가까워서 말할 수 없고, 멀어서 말할 수 없고, 구차하고 혼해서 말하고 나면 별게 아닌 게 되어버리는 얘기들, 힘내라는 댓글 딱 하나만 보고 내리려고 올리는 글들, 아무리 억지스러운 얘기를 올려도 수십만의 회원 중에 한 명은 호응을 달아주는 사람이있었다. 거기선 모두가 거침없었다. 재판관과 상담사와 의사와 친구 역할을 돌아가며 했다. 당장 이혼하세요. 안 봐도 뻔해요. 그런엄마 그냥 차단하세요. 그걸 왜 참으세요?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에궁, 토닥토닥. 하트를 날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격하게 껴안는 브라운과 코니, 즉각적인 공감과 위로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며글을 내린다. 하지만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 앞에선 에어 프라이어에 뭘 해 먹을까만 얘기하는 것이다. - P23
돌담 불빛을 따라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윤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 유치도 다 안 빠진 것들이" 하며 조금 웃었다. 비슷한 길이로 자른 두 윤이의 머리카락이 어깨쯤에서 찰랑거리며 멀어졌다. 지금은 유치도 다 안 빠진 저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는 영구적으로 써야만 하는 이를 가지고 살아가겠지. 지금보다 기다란 팔다리로 허우적거리면서 누군가한테 다가가고, 멀어지고, 사랑이 가져오는 것들을 모른 채로 사랑하고, 알고도 사랑하면서, 윤이들이시기마다 겪어갈 상실감의 무늬들을 생각하자 가슴 제일 깊은 곳이 아려왔다. - P37
휴대폰으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진아씨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볼 생각이었다. 처음엔 진아씨, 라고 썼다. 지우고 다시 지나씨, 라고 썼다. 하지만 지나라고 부르자 아무 말도 써지지가 않았다. 내가 진아씨한테 갖고 있던 어떤 느낌도 살아나지 않았다. 세 살 윤이들을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출근길 지하철역으로 같이 뛰던 사람, 잠들기 전에 한 번씩 내 집 쪽을 살펴봐주던 사람, 작은 쪽지 하나도 그냥 버리지 못하던 사람, 폭염과태풍을 함께 겪은 사람이 진아이지 어떻게 지나란 말인가. 하지만 그 사람은 착한 모범생이던 시절에도 김팀장이던 시절에도 산모님이자 윤이 어머니일 때도 은행에서도 운전면허 시험장에서도 지나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 P43
"살구꽃이 피면 톡 하겠대."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기약만 있다면 더 오래도 기다릴 수 있다고, 겨울이 다가온 창밖을 보면서 생각하고 생각한다. - P45
그리고 병원이 있다. 병원에 가던 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땐 5월이었다. 4월도황금연휴도 다 지난 5월, 병원까지는 자차로 팔 분이 걸렸다. 종합병원 앞 사거리, 병원 지하주차장, 병원 엘리베이터, 발열 체크대,로비에서 웅성이던 사람들, 지금도 나는 그 봄에 내가 받았던 질문들을, 혹은 받지 않아도 됐던 질문들을 떠올린다. 어디서부터였을까. 아이들 교과서가 일제히 학교에서 집으로 보내지던 때, 우리의 봄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수미의 딸이 새경프라자에 와서 울던 그날부터? 수미는 자신의 재난지원금을 나에게 와서 썼다. 그리고 나는 지금 수미를 만날 수 없다. - P51
수미는 늘 여러 탕을 뛰었다. 서하를 내 홈 공방으로 처음 보내던 무렵에는 은채가 다니는 미술학원의 차량 기사를하고 있었다. 그때도 수미는 선 캡을 쓰고 있었다. 패딩 모자를 쓰는 한겨울을 빼고 수미는 늘 선 캡을 쓰고 다녔다. 각도를 조금만조정해도 코까지 빠르게 가려버리는 선 캡. 들키기 싫으면 고개만살짝 숙여도 되는 선 캡. 자기는 편할지 몰라도 주위 사람들은 속터지게 만드는 선 캡. 정수리가 뻥 뚫린 선 캡을 쓰고 어딘가를 빠르게 걸어가는 깡마르고 키 큰 여자가 보인다면 그건 아마도 수미일 것이다. 12인승 스타렉스에 아이들을 태우고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는 여자가 선 캡을 쓰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수미일 것이다. 진료소에 갈 때도 수미는, 선 캡을 썼을 것이다. - P57
죽음, 남편의 사망, ‘남편과 ‘사망‘을 연결시키다보면 그날이 떠오른다.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표를 열어보던 임신 막달의 어느날이. 남편 몸의 각종 수치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건 무엇이까. 이 남자가 쓰러지면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망한다는 공포였을까? 분명한 건 남편의 혈관 수치에 일희일비하며 야채주스를 갈아바치는 여자들을 내가 오랫동안 혐오해왔다는 것이다. 남편을 죽여야 할 때 죽이지 못하는 여자들, 죽여 마땅한 순간에 남편을 빠는 여자들, 남편을 죽이는 대신 애를 잡는 여자들, 정말이지 좆같은 여자들. 좆빨러라는 욕을 먹어도 싼 여자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자기혐오가 아니다. 좆빨러가 되지않으려고 피오줌을 싼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나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마음 붙일 곳 없는 낮에 대해서. 눈을 붙여도 잠들 수 없는 밤에 대해서. 남편과 노동을 나누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뺏긴 채로 ‘행복한 아이를 키워내는 다른 여자들‘과 ‘편하게 사는 다른 여자들을 가위눌리듯 떠올리던 것에 대해서. 우리가 서로를 욕심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떻게 다시 고립되어갔는지, 그 외로웠던 봄에 대한 얘기를. - P72
곧 끝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했다. 잘 참아왔다. 이전의 일상을 이제는, 정말이지 이제는 반토막이라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차로 개학이 연기되었을때, 2차로 연기되었을 때, 3차 연기, 다시 4차 연기, 일정표에 쓴 개학/ 개학/ 개학/ 개학이 네 번 다 무효가 돼도, 어쨌든 지나왔다. 코로나 시대에 대한 진단 어디에서도 거론되지 않는, 아침밥/설거지 학교 온라인 수업/ 점심밥/설거지 / 학원 온라인 수업/ 저녁밥/설거지로 하루가 가도 어쨌든 지나왔다. 2020년 5월 4일, 교육부는 5월 13일부터 순차적인 등교 개학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교과서를 다시 학교로 보낼 수 있었다. 이제 학모들은 미회신 알림 11 / 미확인 알림 39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집에 혼자 있는 아이에게 배달의민족으로 밥을 시켜주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마침내,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너네들이 클럽에서 처놀지만 않았어도, - P77
건물 외벽 사이 주차공간만한 어둑한 바닥에 접이식 의자 하나가 놓여 있던 것이 떠오른다. 전자 문진대 앞에서 모든 문항들에사실 그대로 답을 하자 내겐 위험 대상‘ 이라고 체크된 출입증이나왔다. 진료소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몇 개의 질문을 더 거친 뒤 나는 그 의자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검체를 채취하기 전, 아주 잠깐 나는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중앙 출입구에서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적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줄지어 선 택시들과 막 들어오고 있는 마을버스, 주차 꼬깔콘, 통화를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센터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 나는스물두 시간 전에 수미가 이 의자에 앉아 이 풍경을 봤을 거라고생각했다. 딱 십 초만, 이 의자가 저 풍경들로부터 나를 가려주는 - P88
곳에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흰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다가와 말했다. 십초면 됩니다. 마스크를 내리고 고개를 젖히세요." 면봉이 콧구멍을 지나 비인두에 닿았을 때,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고였다.
여덟 시간 뒤 나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수미는 기정시 67번 확진자가 되었다. - P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