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과 글쓰기를 할 때, 집에 빗댄 설명을 종종 한다. 단어를 벽돌로, 문장을 벽으로, 문단을 방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의 문단에는 하나의 생각만 들어가야한다는 것을 잠자는 방, 부엌, 화장실을 구분하는 데 비유하면 설명하기가 좋다. 집의 크기나 식구 수에 따라 방의 개수가 달라지듯이, 글도 상황에 따라 단락 수가 달라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어린이들이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있게 내 경험을 덧붙인다. "지금 우리 집에는 방이 세 개야. 그런데 선생님은 전에방이 한 개인 집에서도 살아 봤어. 모두 집이야. - P97
"아니, 선생님이 어렸을 때는 네 식구가 방이 한 개인 집에서 살았어. 나중에는 혼자서 방이 한 개인 집에서 산 적도있고, 그런 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글도 비슷해, 한단락으로 쓰더라도 내용이 잘 정리되면 좋은 글이 돼." 짐짓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 다음 주제를 설명하고 글쓰기를 시작하게 했다. 칠판에 그린집 그림을 지우고, 뒷짐을 딱 지고, 어린이들 주변을 한 바퀴돌았다. 나의 한 부분이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았다. - P103
5년은 어린이의 발달 단계에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를 만든다. 뭘 해도 언니가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게다. 가 우리 언니는 워낙에 손이 야무져서 만들고 그리는 건 무엇이든 잘했고, 나는 그쪽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만들기 숙제를 할 때마다 언니 손을 빌리는 게 자존심 상했지만, 혼자힘으로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아 별수 없었다. 그럴 때 옆에서 얼쩡거리면 거치적거린다고 혼나고, 그러다 물도 쏟고종이도 찢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이 언니에게는참으라고 하고, 나에게는 말 잘 들으라고 하니 이만저만 속상한 게 아니었다. 나는 정말이지 은지가 너무나 이해가 간다. 은빈이는 너무한다! - P107
우리가 조금씩 가까워진 건 언니가 결혼하고 조카들이 태어난 뒤의 일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 결혼을준비하면서였다. 언니는 내가 결혼할 때 혼자서 친정 역할을 다 해 주었다. 친척들에게 연락하고 잔치를 준비하는 일부터 시댁에 이것저것 챙기는 것까지, 나는 언니 손을 빌렸다. 어렸을 때처럼 별수 없었고, 어렸을 때와 다르게 조금도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었으니 이제 5년 차이는예전만큼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지붕아래 나는 혼자 있지 않았다. 언니한테 미안하고 고마워서그때 나는 여러 날 잠을 설쳤다. - P110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만나는 전문가이고, 때로는 유일하게 만나는 지식인이다. 어떤 어린이에게는 자기가 아는 가장 친절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밀려드는 크고 작은 업무 때문에 어떤 부분에는 소홀할 수 있다. 어린이와 밀착한 생활을 하는 만큼 사적으로 감수할 일이 많으니, 때로는 냉정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개인적인 한계로 어린이나 보호자를실망시킬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선생님들의 실수에 너무 엄혹한 것이 아닐까? 한 명의 노동자이기도 한 ‘교사‘ 에게 ‘스승‘ 의 모습만을 요구하는 것 아닐까? 특히나특수학교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그 길에 들어선 것 자체를 ‘헌신에 대한 약속‘으로 여기고 그분들의 희생을 당연하게여기는 것은 아닐까? - P118
그때 나는 『말하기 독서법, 원고의 개요를 잡고 작업 일정을 세운 참이었다. 독서교실 수업과 글쓰기를 나란히 하려니 ‘아이고, 당분간 큰일 났구나‘ 싶었다. 시간도 에너지도.. 넉넉하게 필요했다. 그중 시간은 차라리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있었다.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지만, 노는 시간을 줄이고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에너지, 생산적인 힘이었다. 글을 쓰다 막힐 때나 쓰기에 지쳤을 때 어떻게 창의성과 집중력을 유지할까. 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새로운 것을 배워 보기로 한것이다. 일이나 글쓰기 말고 완전히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 지금껏 매워 보지 못한 것. 읽고 쓰는 일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 피아노였다. 집 앞 피아노 학원 간판에 ‘성인 취미반‘ 이라고 적힌 것을 눈여겨보았던 터였다. 동네 사람으로서 선생님과 안면도 있었다. - P130
"어린이들이 훨씬 유연하기는 해요. 대신에 어른은 음악을 조금 더 알아서 재미있게 배울 수 있어요. 이 곡이 어떤곡인지, 대강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니까요." 힘이 되는 말씀이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뒤로 피아노 연주곡을 듣는 일이 더 좋아졌고 귀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밝아졌다. 전에는 그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연주가이제는 ‘훌륭하다!‘ ‘황홀하다!‘ 하는 느낌까지 준다. 그래서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게 바로 문제예요, 선생님, 제 귀는 그걸 아는데 제 손이 그걸 몰라요. 그래서 손보다 귀가 더 괴로워요. ‘ 그럴 때 선배님들의 조언을 다시 떠올린다. - P137
나는 웬지 조마조마했다. 혹시 주이가 모르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들은 게 이상하다거나 오히려 기분 나쁘다고각하면 어떡하나 하고,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어땠어?" "뭐라고 해야 하지? 위로가 됐어요. 그런 날은 운이 좀 좋은 것 같아요." "위로가 됐어요"라고 할 때 주이는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 장면이 이따금 생각난다. 평소 주이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린이에게는 어른들이 환경이고세계라는 사실을 그날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네 식당에서 어린이 둘과 함께 와서 식사하는 어머니에게 사장님이 "아기들 덜어 먹을 그릇 따로 드릴까요?"라고먼저 물어보시는 것을 보았을 때, 아파트 1층 현관으로 자전거를 끌고 다가오는 어린이를 보고는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 자동문이 닫히지 않게 붙잡아 주시는 아랫집 할머니를보았을 때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어린이들에게 세상에대한 좋은 인상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보는 듯하다. 어린이도 어른에게 호의를 베푼다. - P146
돌려서 말하려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이상하게 들릴 것 같지만 할 수 없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쓰고 나니 후련하다. 그렇다고 누군가 나더러 각박하다고 한다면 다른 어떤 오해를 받을 때보다도 억울할 것 같다. 나는 마음이 아주 헤프다. 누구든 무엇이든 좋아하기를 잘하고, 그러기 시작하면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채로 한정 없이 마음을 준다. 그 마음을 늘 돌려받는 것도, 애초에 그러기를 바라고 주는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상처도 받지만 그럴 때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이 나의 덕이라면 덕이다. - P149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나 자신의 사훈이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 윤리와 진실한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노력한다. ‘사랑‘이란 내가 다루기에 너무 크고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마음이 드러날지도 모르니 늘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 P151
삶이나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나에게는 주제넘는 일로 느껴진다. 신성하게 여긴다거나 금기시한다거나 해서는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더 많이 알거나, 차라리 더 적게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 생각을 하지않으려고 노력했다. 걷고, 영화를 보고, 반찬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또 걷고, 씻고, 음악을 듣고, 걸었다. 그런데 무엇을 하든 계속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써 보기로했다. 이 글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누군가에게 보여 줄 수는있을지, 다 모르는 채로,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죽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 P158
힘들었던 어느 시기를 뭉뚱그려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마음이 물러서 그런 건지, 실제로 그럴 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삼십 대의 나는 힘 쓸 일, 감정 쓸 일이 많았다. 내내 퍼석한 얼굴로 사는 나를 보다 못한 선배 언니가 밥을 사주다가 드라마 대사를 빌려서 물어 주었다. 너도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지? 그랬다. 무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잠자리에 들면서 아침에는 죽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죽고 싶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죽겠다는 것은, - P159
가해자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일을 범행을 정당화하는 데소비하는 것은 학대 피해 생존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학대 대물림‘은 범죄자의 변명에 확성기를 대 주는 낡은 프레임이다. 힘껏 새로운 삶을 꾸려 가는 피해자들을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예비 범죄자‘로 보게 하는 나쁜 언어다. 가정에서 아이를 학대해선 안 되는 이유는 아이를 아프게 하고, 존엄을 무너뜨리고,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이유는 충분하다. 가해자의 잔인한 범행을 나는 ‘악‘이라는 개념 말고 다른 것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악행의 기승전결은 전혀 알고 싶지 않고, 합당한 벌을 받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러니까 칼국수를 먹다가, 빨래를널다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는 것은, 다섯 살 어린이의 삶이다. 모든 인간이 소중하다거나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인간은 소중한지 아닌지 따질 수 없는 존재라고 배웠다. - P162
내가 아는 삶은 그런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은 새싹이 나고 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다섯 살 어린이의 이름은 무엇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목소리는 어떨까. 자꾸 그런 생각이 난다. 그 어린이의 삶을 떠올리려면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무슨 만화를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생각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에게 그런 것이 존재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차마 혼자서라도 궁금해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감히. 또 생각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살고 싶었을까, 죽고 싶었을까.. 혼자 밤 산책을 하면서 어찌할 도리가 없이 울었다. 우는것도 자기만족인 것 같아서 참으려고 걷기 시작한 건데 소용이 없었다. 세상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 P163
그런데 이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아있는 어린이들이 있지 않나. 대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야나 하나가 경멸해도, 나 하나가 사랑해도 세상은 그대로 있고 누군가는 살아 있다. 다섯 살 어린이에게는 삶이나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의지로 인해 죽었다. 나는 삶을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날마다 살기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나처럼 선택의 순간을 가졌는 아니든 간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아가려면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나아가려면 맞서야 하니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어린이의 명복을 빈다. 떠나던 순간에 인간은 상상할 수없는 자비로운 손길이 함께했기를 마음 깊이 빈다. 천국이꼭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는 어린이가 좋은 음식을 먹고 마음껏 뛰놀며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 있으면 좋겠다. - P164
나는 ‘남의 집 애‘라는 말이 좋았다. 그러면 나는 ‘남의 집엄마‘ ‘남의 집 아빠‘ ‘남의 집 이모 삼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고 좋아하고 샘내고 안심하고 걱정하면서 ‘남의 집 애를 같이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어떤 어린이의 ‘남의 집 할머니‘도 될 수 있다. 어린이의초콜릿을 지퍼백에 넣어 주고, 어머니에게 어깨를 빌려 드리면서 나도 한몫을 할 수 있다. 양육자가 아니어도 ‘남의 집어른‘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엄마가 된 친구와 나는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간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끝까지 제대로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 역시 아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나의 삶을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우리 자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 예전처럼 서운하지 않다. 언제든지 손 내밀 수 있는 자리에, 잘 보이는 곳에 내가 가있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내가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해도 상관없다. 어른은 그런 데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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