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기에 내 모든 인생을, 내 모든 꿈을 길고 있다는 것,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완벽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라는 것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일곱번째공은 언제나 나의 노력을 벗어났다. 걸작은 도달할 수 없는 채 영원히 잠재 상태로 남아 있었고, 영원히 예감되었으며, 그러나 항상 능력 밖에 있었다. 나는 내 모든 의지를 다 기울였고, 내 모든 유연성과 내 모든 민첩성을 다 동원하였다. 공중에 던져진 공들은 정확하게 연달아 날아갔다. 그러나 일곱번째 공을 던지자마자 구성 전체가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체념도 포기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망연히 거기에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시작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공에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었다. 결코, 결코, 내 손은 그것을 잡는 데 이르지 못했다. 나는 평생을 노력하였다.  - P133

이렇다 할 문학적 영향을 받지 않고, 본능적으로 나는 유머라는 것을 발견해내었다. 현실이 우리를 찍어 넘어뜨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현실에서 뇌관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완전히 만족스럽고 능란한 방법 말이다. 유머는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의 우정어린 동료였다. 진정으로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머 덕분이었다. 누구도내게서 그 무기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또한 나는 기꺼이, 그 무기가내 자신을 향하게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나나 자아를 통해 그 유머가 바로 우리의 근원적 조건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유머는 존엄성의 선언이요. 자기에게 닥친 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의 확인이다.
완전히 유머를 잃은 내 친구들 중의 어떤 이들은 나의 글, 나의 말속에서 내가 이 중요한 무기로 하여금 내 자신을 향하게 하는 것을보고 슬퍼한다. 유식한 그들은 마조히즘과 자기 혐오에 대하여 말하며, 나아가서는 내가 가까운 사람을 이 해방 작업에 끌어들이기라도하면, 노출증과 상스러움에 대해 말한다.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 사실인즉, 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P165

이렇게 하여 나는 어머니가 이 년 동안 내게 숨겨왔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당뇨병 환자였고, 매일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전에 인슐린 주사를 맞았던 것이다.
비참한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잿빛 얼굴, 약간 옆으로 기울어진 머리, 감긴 눈, 고통스럽게 가슴 위에 놓인 그 손에 대한 기억은그때부터 한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게 기대하고 있는것을 이루어내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정의를 보지도 못한 채, 무게와 척도의 인간적 법칙을 하늘에 투영하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어머니가 지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에겐 양식에의,
양풍에의, 순리에의 도전이요, 일종의 형이상학적 강도 짓이요,  - P179

서둘러야겠다는 것을, 어서 빨리 불후의 명작을 써야겠다는 것을느꼈다. 나를 전무후무한 최연소 톨스토이로 만들어, 즉시 어머니의고생을 보상해주고, 어머니 일생에 왕관을 가져다줄 수 있게 할 걸작을.
나는 사력을 다해 작품에 매달렸다.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나는 학교를 잠시 쉬고, 완전히 내 방에틀어박혀 승부에 매진하였다. 나는 내 계산에 따라 <전쟁과 평화>와맞먹는 양인 삼천 장의 백지를 앞에 놓았고, 어머니는 옛날에 발자크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옷을 본떠 아주 헐렁한 실내복을 만들어주었다. 하루 다섯 번씩 어머니는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와 음식 접시를 테이블 위에 놓아 두고는 발끝으로 걸어나갔다. 그때 나는 프랑수아 메르몽이라는 가명으로 글을 썼다. 그러나 내 작품들이 편집자들에 의해 규칙적으로 반송되었으므로 우리는 그 가명이 나쁘다는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음 책은 루시앙 브륄라르라는 이름으로 썼다. 그 가명 역시 편집자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당시N.R.F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높으신 양반들 중 한 분께서 다음과같은 말과 더불어 내게 원고를 돌려주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정부를 하나 만들고, 십 년 후에 다시 오시오. 내가 파리에서 배가 고파 죽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정말 십 년 뒤인 1945년 내가 다시 갔을 때, 불행히도 그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누군가가 벌써 총살해버렸던 것이다.
- P180

그리고 그 갈망은 마침내,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내가 써야 할 작품의 발치에 던져놓았던 것이다. 그 갈망이 아들로서의 나의 애정에 그 고통스런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점점 자라고 커지면서 나의 전 존재를 포박하였다. 마침내 문학적 창조가 내게, 그것이 진정성을 갖는 위대한 순간이면 항상 그러한 바, 즉 견딜 수 없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허구요. 살아 남기 위해 영혼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될 때까지 .
눈을 감고 옆으로 기울인 그 잿빛 얼굴, 가슴 위에 얹은 그 손을보았을 때, 처음으로, 삶이란 신용할 만한 유혹인가 하는 의문이 불현듯 떠올랐었다. 그 질문의 답은 즉각적으로 나왔다. 아마도 나의생존 본능이 불러준 답이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열에 들뜬 듯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썼다. 그것은 지금도 내게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진실로 남아 있다.
- P181

그 단편소설로 나는 천프랑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 이전에 한 번도 그런 큰 액수의 돈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내가 잘 알던 누구처럼 곧장 극단까지 가버려서는,죽는 날까지 돈의 필요에서 해방된 것처럼 느꼈다. 내가 처음으로한 일은 블라자 식당으로 가서 두 개의 양배추 절임과 커다란 비프스테이크를 음미한 것이었다. 나는 항상 대식가였으며, 내가 자신의가치를 하락시킨 정도에 따라 더욱더 많이 먹는다. 나는 거리를 향해 창이 난 육 층 방을 하나 얻어 어머니에게 매우 느긋한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나는 내가 다른 여러 개의 작품 게재와 더불어 『그랭구아르와 영구 계약을 맺었으며 돈이 필요하거든 내게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난 어머니에게 소포로 커다란 향수 한 병과 꽃다
발을 부쳤다. 나는 시가 한 상자와 운동복을 샀다. 시가는 심장을 아프게 하였지만, 잘살기로 결심한 나는 끝까지 피웠다.  - P223

나는 마침내 프랑스도 천 가지 얼굴로 만들어졌고, 아름다운 얼굴도 미운 얼굴도 있고, 고상한 얼굴도 흉측한 얼굴도 있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나와 가장 닮은 것 같은 얼굴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정치적 동물이 돼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노선을 정하고, 내게 행해지는 충성 서약과 성의 약속을 가려 선택하고, 더 이상 깃발에 눈이 어두워지게 하지 않으며, 그것을 들고 있는 자의 얼굴을 분간해내려 애썼다.
어머니가 남아 있었다.
나는 낙제 소식을 어머니에게 알릴 결심이 서지 않았다. 어머니는 얼굴에 발길질을 당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아무리 되씹어 생각해도 소용없었다. 어쨌거나 그 발길질을 어떻게 요령 있게 하느냐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262

나는 느리게 흐르는 나일을 굽어보며 내 발코니에서 이 편지를 백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그 편지 속에는 거의 절망한 것 같은 억양이, 전에 없던 장중함과 어떤 억제가 있는데다, 처음으로 어머니는프랑스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가슴이 죄어들었다. 무엇인가가 잘 되어가고 있지 않다. 무엇인가 말하지 않는 것이 이 편지 안에 있다. 그리고 또 이제 점점 더 어머니의 편지 속에서 강조되며 반복되는 약간 이상스러운 격려도 있었다. 그것은 약간 화가 나게 만들기조차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전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었고, 제시간에 어머니에게 도착하고자 하는 희망은 하루 해가 뜰 때마다 점점 커져만 갔다.
- P393

나는 비행 점퍼와 털 장화를 신고 침대 위에 앉아 새벽이 될 때까지 썼다. 손가락들이 곱았다. 입김은 얼어붙은 대기 중에 수증기 자국을 남겼다. 내 소설의 배경인 폴란드의 눈에 덮인 평원의 분위기를 재구성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새벽 서너 시경에 나는 만년필을 내려놓고, 자전거에 걸터앉아 하사관 식당으로 가서 차 한잔을 마셨다. 그런 다음 내 비행기에 올라 잿빛 여명 속에 굳세게 방어되고 있는 목표물들과 싸우러 떠나는 것이었다. 거의 매일, 돌아올 땐 동료 하나가 빠지고 없었다.
한번은 샤를르루아를 향해 가던 중 연안을 넘다 한꺼번에 비행기 일곱 대를 잃고 말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일이었다. 사실 난 그것을 불평하지 않았다. 나에겐 그 모든 것이 같은 투쟁의, 같은 작품의 일부분이었으므로, 동료들이 잠들어 있는 밤이면 나는 또다시 글쓰기에 몰두하였다. 프티 비행사가 격추되었을때 딱 한 번을 빼고는 한 번도 막사 안에 혼자 있어본 적이 없었다.

- P395

그리하여 어머니가 죽은 지 삼 년이 넘도록 나는 계속 내가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힘과 용기를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탯줄은 계속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끝났다. 빅서 해안은 텅 빈 채 백 킬로미터까지나 뻗어 있다. 그렇지만 가끔씩 고개를 들어보면 내 앞에 있는 두 바위 중 하나에 앉아 있는 물개들과 다른 하나에 앉은 수천 마리의 가마우지, 갈매기,
펠리컨들이 보이며, 또 때로 바다 가운데를 지나가는 고래들의 물기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모래 위에 한두 시간을 꼼짝 않고 있으면 독수리 한 마리가 내 위를 느리게 맴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미 나의 추락이 다 끝난 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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