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장수 멘토가 이상해요? 저는 인생에서 사회적지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원래부터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저도 우리 애들한테나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고, 성공해야 서럽지 않다고닦달했으니까요. 어느 날 언니가 그걸 지켜보더니말했어요.. "빛이 안 나도 괜찮아. 하지만 따뜻해야 해." 어라, 그 말이 꽤 좋게 들렸어요. 그날 당장 집에 가서우리 애들한테도 그렇게 말했는데 제가 진심으로말하고 있더라고요. 언니는 배움은 짧지만 제 눈엔누구보다도 인생에 대해 아는 게 많아 보였어요. 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시할머니부터 모시고살았어요. 대가족의 맏며느리면서 시장에 와서장사하는데 저보다 훨씬 힘들 거예요. 언니는 체구도 - P116
고 맨날 아파요.. 그래도 언니는 내가 힘들다고 하면께 말해줘요. 상대방 입장에 서서 한번 생각해볼래?" 언니랑 있으면 평온해져요.. 내가 뭔 말을 하든 언니입으로 들어가면 더 괜찮은 걸로 변해서 나와요.. 언니랑 이야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아니고 사는 게 더 쉬워지지도 않아요. 하지만 언니랑있으면 사는 것이 더 괜찮은 일이 돼요. - P117
"쓰는 게 참 신기한 일이죠?"
네. 처음에는 무작정 썼어요.. 사실 나 같은 사람의하루하루가 무슨 쓸 가치가 있나 싶었는데요.. 집에돌아가면 뭔가를 쓸 거란 걸 나 스스로 아니까조금씩 마음가짐이 바뀌더라고요. 일하다가 잠깐 본구름이라도 조금 더 기억해두고 싶어지고 그랬어요. 사실 내 삶은 기록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고, 매일매일똑같고, 내일도 똑같은 날이 될 것이고, 쓸 가치도, 살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그런 생각을 안하게 되었어요. - P120
우울증을 이겨낸 두 번째 방법은 동화책을 읽는거에요. 아이들 어렸을 때 자기 전에 옆에 누워서동화책을 읽어주곤 했어요.. 우울증이 심할 때 어려서아이들에게 읽어주던 책들을 다시 꺼내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어린애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던엄마의 마음이 찾아왔어요. 동화책 읽을 때 제 자식잘못되라고 읽어주는 사람 없잖아요. 자식 잘되길바랐던 내가 정작 이러면 안 되겠구나, 내가 이러면애들이 힘들겠구나, 그런 마음이 들 때는 어떻게 내가지난 몇 달간 그런 생각도 못하고 살았나 싶기도하고 그랬어요. - P121
글이 적힌 종이는 두 가지 시간을 살게 한다. 하나는 과거, 하나는 미래. 나는 그처럼 출판할 목적이 아니라 혹은 좋아요 버튼이 목적이 아니라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둘 글을 쓰는 사람에게 애정이 있다. 돈과 시선과 관계되지않은 자기만의 창조적인 일을 해보는 것 자체가 자율적인인간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표현할 단어를 모색하게 된다. 오늘 있었던 일을, 감정의 복잡함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자기가 결정한다. 어떤 문장으로 끝맺을지도 자신이 결정한다. 내적인 자유다. 독립성을 무엇보다도 중시한 모네가 수련과 정원 호수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를 그리면서 "여기서는 적어도 남들과 닮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네. 내가 경험한 것만 표현하면 되니까" 라고 한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삶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우리는 쓰면서어렴풋하게, 그래 바로 이거야 혹은 이것인가 봐 같은 자기만의 해답 비슷한 것을 ‘감 잡을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찾아낸 해결책이 좋은 것이면, 그것이 올바른 것이었음이 밝혀질 날을 기다린다. 그렇게 종이 위에 쓴 것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 P123
달이 그들을 지켜보기 전에 그들이 먼저 달을 찬양했다. 간월도(看月島) 란 이름은 섬에 달이 뜨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들이 일을 마치고 굴을 바구니에 담아 돌아갈 때 소나무 가지 끝에는 학이 앉아있고 그 위로 차가운 달이 떠오르곤 했다. 하루 종일 정직한노동을 한 사람들의 등판 위로 보름달은 찬 바다에서 갓 나온 싱싱한 굴을 닮은 젖빛을 뿌려대곤 했다. 지상에서의 삶이 고달플수록 그들은 달을 사랑했다. 떠오르는 달과 함께나는 새는 그들을 몽상에 젖게 했다. "날아다니니까 좋지? 자유롭잖아." - P156
19일 날 아침에 제 마음으로는 성호가 죽었겠다라로 생각을 했어요." 그는 자신이 나쁜 아빠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었19일 날 아침, 물에 손을 넣어보고 나서는 제 마음속에서는 포기했으니까요. 여기서는 어떤 건강한 사람도 살 수없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빠가 아들을 포기할 수도 있을까? 이성적으로는 그래야만 해도? 아주 오랜 시간 세월호 부모들을 괴롭힐 문제였다. 20일이 되자 성호가 올라왔다. 그때 그는 열여덟 살이된 아들의 얼굴을 처음 봤다. 4월 28일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성호의 컴퓨터로 로그인되어 있던 아들의 트위터를 봤다. 마지막 트윗은 4월 16일 오전 10시 1분. "살려달라고요." 성호가 엄마한테 보낸 마지막 문자는 그보다 조금 늦은10시 6분이었다. "문자를 보냈거든요. 살아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한테는." - P175
추모 공간에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같이 재밌게놀면서 분명히 덜 외로울 것이고… 어쩌면죽은 아이들이 덜 외로운 게 아니라 그곳에 간우리들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덜 외로워지는 것에불과하겠지만… 그래도… 네, 우리 아이들이 외롭지않으면 좋겠어요. - P177
네, 성호도 거기서 나왔어요. 그런데 그걸 매일지켜보고 있어야 되거든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세월호 앞에서 4층 우현 선수에 있는 그 창문을보면 저걸 깨버렸어야 되는데 그 생각밖에 안 들어서... 우리 애들이 4층 우현 선수에 있는 그 창문가에 다모여 있었던 거야. 그래서 처음에는 배를 보는 것자체만으로도 힘들었어요. 계속 맴돌면서 조금씩조금씩 다가갔는데. 배 옆까지 가는 데 한 달 이상걸렸어요, - P179
타워의 1만 장 유리 중에 산산조각 나지 않은 딱 한장의 유리창이 있어요, 딱 한 그루 불타지 않은 나무와함께 그 유리창은 회복력과 희망의 상징이에요.. 깨지지않은 유리창이 있는 이곳은 처음 도착한 구조대와 시민들이 타인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많은이야기들이 있는 곳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희생자는 훨씬 많았을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이곳에와서 그런 것에 대해서 뭐라도 생각을 할 것이라는사실에 위안을 받아요. 사건 당시 건물에 17,000명이있었어요. 이곳엔 17,000명의 생사가 걸린 이야기가너무나 많아요. 9·1!은 대단히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그 당시에 우리가 서로에게 연민을 보여준 방식, 생판 모르는 타인을 위해 자기 삶을 던졌던 것, 같이격려하면서 한 발이라도 내디딘 것, 뭐라도 좋으니도움이 되려고 했던 것, 함께 슬퍼했던 것의 의미는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을 거예요. - P193
이 추모관은 자기희생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에요. 그래서 이 추모관은 사랑이고 이타심이에요. 저는세월호 소식을 알아요. 대부분의 희생자가 살 날이훨씬 많았던 아이들이란 것을 알아요. 그래서 더더욱그 아이들을 명예롭게 하고 아이들의 삶을 우리들의이야기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날 나는 앤서니와 헤어져 유리창을 찾아보았다. 추모관은아주 넓었지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창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잠시 머물렀다. 나도 유리창 앞에 서보았다. 그 유리창 앞에 서 있었을 성호 아버지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성호 생각도 났다. 아이들 생각도났다. 그리고 그날 어느 창가에 서 있었을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날 죽었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그것이 유리창 너머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내 눈앞에 있던 것은 9·11의 어두운 건물 파편들이었다. 지금 존재하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처럼, 그 파편 너머,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상상하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폐허만을 보게 되리라는경고처럼. - P194
그런데 잠시만… 과연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까? 나는 못 끝낼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서둘러 끝내려고 할 때마다 항상 이건 아니라는 느낌에 시달렸다. 어느 아름다운 날에 정신 사나운 악몽 같은 일이 우리처럼 따뜻한 몸을 가진사람들에게 ‘현실‘로 일어났다. 이 이야기의 유일한 위안은인간이 다른 인간을 구하고 도울 수 있다는 것뿐이다. 세월호라는 단어는 아직도 내 가슴에 너무나 생생하다. 나에게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세월호라고 말하는 순간거의 모든 사람의 시간이 잠시 멈춘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이미 우리 가슴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 어딘가로 떠난다. 거의 모든 사람의 눈에 작은 눈물이 맺힌다. 그냥 그 단어만말해도 그렇다. 시간은 흐르고 많은 것은 잊히는데 왜 이 이야기는 우리를 멈춰 세우는가? 이 이야기에는 뭐가 있는가? 세월호 1주기가 지나고 유족들과 함께 광주 5·18 유족들을 만나러 간 일이 있다. 그때 세월호 부모님들은 우선 5·18유족들에게 사과를 하고 - "저희가 너무 오랫동안 5·18에무관심하게 살았습니다. 겪어보니 알겠습니다. 비통하게 가족을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저희의 무관심을 사과드립니다. 저희가 너무 오래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 P195
"구할 수 있는 것을 구하라, 아직 구할 수 있을 때! 크게 봐서는 이것이 유족들의 이야기다. 진실이 그토록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다. 현실을 더 낫게 고치기 위해서다. 아이들을 만나면 부모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너는 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구했어. 나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그날 너를 구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오리오 파머에게 배울 것이 있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존재다. 우리도 그처럼 이 세상의모든 취약한 것, 위기에 처한 것을 구해내고 말리라는 강철같은 의지로, 마음 약해지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꿋꿋하게나아가야 한다. 우리를 꿋꿋하게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많은 것들과 함께, 아무 할 일이 없다는 한가한 목소리에 맞서면서 빨리 올라가야 한다. 나는 성호의 말을 자주 생각한다. "살아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들려준 두 개의 유리창, 이 이야기의 핵심은 모든게 달라질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이 슬픈 운명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었다. 지금과 다른 상황은 가능했다. - P200
성호와 오리오 파머와 소방관들 모두 그렇게 죽지 않을 수있었다. *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모두 그렇게 죽고 싶지는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삶으로 돌아가서 이 세상의 슬픔과기쁨을 맛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유일한 희망의 말은 모든것이 변해야 한다‘이다. 깨버려야 할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않을 것이다‘, ‘아무 할 일이 없다‘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비극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이제라도 ‘사랑으로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구할 수 있는 것 - P201
을 구하기 위해서 계속 주위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각자의자리에서 ‘반복‘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 나라에서벌어지는 일을 깊게 슬퍼할 줄 아는 내 친구는 ‘골든타임놓쳐본 나라의 국민으로서 말한다"는 표현을 몇 번이고 쓰면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려고 하는중이다. 이제라도 너무 늦지 않게 구해내기 위해서. - P202
우리가 동시에 뒤돌아보던 모습은 내 마음 속에 한 장의사진처럼 남아 있다. 이 슬픈 사람들의 마음을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단어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아버지가 여치를집어들던 작은 몸짓 하나만 말하려고 해도 그의 전 생애에걸친 사랑 이야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 몸짓을 보면서 나는 한때 지상에 태어나 살았으나 이제는 없는 한 아이의 존 재를 느꼈다. 이제는 곁에 없는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은이렇게 우리 몸을 통해 무수히 돌아오고 또 돌아와야 한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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