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후에 치우지 않은 식탁, 옮겨진 의자, 전날 밤섹스를 하다가 아무 데나 벗어던져 엉켜 버린 옷들, 나는 줄곧 우리 관계의 시작부터 잠에서 깨어나 그것들을 발견하며매료되고는 했다. 매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각자가 물건을 줍고 분리하며 그 풍경을 허물어뜨려야만 하는 일은 내심장을 옥죄였다. 단 하나뿐인, 우리들의 명백한 쾌락의 흔적을 지우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P9

인터넷에서 유방암에 관한 수많은 웹사이트를 보았다.
예전에 질투의 징표를 봤던 것처럼, 사방에 적힌 죽음의징표를 보았다. 르루아메를랑을 나오면 보이는 영안실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선물로 받은, 작은 추가 들어 있는 잡동사니 등등.
정리에 대한 반감은 극단적이 됐다. 무언가를 정리하고보관한다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더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죽음에 죽음을 더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신발 두 켤레와 캐시미어 니트 두 장을 사면서 지금의 내 상태에는 불필요한 과소비 - 그러나 돈 역시 불필요한것은 마찬가지다 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오베르 역 계단 아래에서 아이를 안고 손을 내미는 집시 여인 앞을 지나가다가 그녀가 젖을 물리는 것을 언뜻 보았다. 가슴이 보라색이었다. 나는 걸음을 돌려 그녀에게 동전을 주었다. 내 가슴 때문이었다.
나는 비올레뜨 르드윅‘을 기억해냈고 그녀의 일대기에서그녀가 유방암을 앓으면서 얼마 동안 생존했는지를 찾아냈다. 7년, 글을 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 P27

처음 퀴리의 문턱을 넘으면서 단테의 문장이 떠올랐다.
"이곳에 들어온 당신, 모든 희망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자 오히려 이상적인 장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날에는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미소를 띤 세심한 인간들이 약한 이들을 따뜻하게 돌봐 주는 곳. 나는 금세, 아무생각 없이 뤽상부르 역에서부터 표시된 경로를 따라 걷게되었다. 라탕 지구 중심에서 학생, 구매자, 연인들의 만남, 관광객들이 교차하는 모든 길 중에, 암 환자들을 위해 표시한 길이었다. 내일 항암치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작년의
‘미용실에 간다‘는 말만큼 자연스러워졌다.
- P28

일기장으로 사진의 날짜를 추정할 수 있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전 마지막 일요일이다. 몇 개월 전부터 계획된 이 전쟁을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며 행진을 했지만, 그것은 태양이 불태운 땅 위에 드리워진 커다란 그림자처럼 계속해서 전진했다. 나는 1991년만큼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에 격렬하게 참여하지 않은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저 발코니에 평화주의적인 반대 운동의 표시로 하얀 천을 걸었을 뿐이다. 프랑스에서는 매우 드물게 이행됐던 행위로, 틀림없이 이웃들의눈에 미친년으로 보이는 효과만 자아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라디오를 켜자 전쟁이 거기 있었다. 그것은 너무 먼 공포였기에 M과 함께 한 이야기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다. 날씨는 더웠고, 태양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아름다운 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의무, 글에서까지도 해방되어 오로지 M과 이 이야기를 살았다. 시간을 낭비하며, 인생의 긴 휴가, 암으로 얻은 긴 휴가를,
- P59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틀렸다. 나는 삶이 글의
‘소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글을 위한 ‘미지의 기획‘을 원한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이 생각은 형식조차도 실제 내 삶에 의해 부여된 텍스트를 의미한다. 나는 우리가 쓰고 있는 이 글을 절대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삶으로부터 나왔다. 다수의 조각들로 이뤄진 그것 자체도 아직은 알 수 없는 M의 글의조각들에 의해 부서지게 되겠지만 사진으로 쓴 글 역시 마찬가지로 다른 무엇보다 이 현실을 담은 ‘최소한의 이야기를만드는 기회를 내게 준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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