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슬픔과 기쁨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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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맞아. 나는 차를 좋아했지.'

  그는 1995년에 쌍용자동차에 입사했다. 도장반에서 일했다. 그는 일을 좋아했다. 그는 맑은 날의 차와 흐린 날의 차, 여름날의 차와 겨울날의 차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차를 칠하는 날의 기온·습도가 차의 색깔에 미치는 영향도 알게 되었다.

  온도는 24도에 습도는 70퍼센트. 봄가을에는 그런 습도가 유지되니까 좋고, 안 좋은 계절은 여름하고 겨울. 여름은 온도가 너무 올라가서 신나가 빨리 증발해요. 자동차 신차 나오면 보면 알아요. 언제 만들었는지. 어느 것은 색이 매끈하고 어는 것은 안개 낀 것처럼 뿌옇고. 겨울은 반짝이고, 봄가을은 금방 칠한 것처럼 보이고, 여름에 은색은 얼룩이 있는 것 같고.

  그는 해고되었을 때 믿지 않았다. "저놈이 있어야 완벽한 차가 나온다." 그를 자랑스럽게 하던 칭찬들을 그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파업에 이틀 늦게 합류했다. '해고는 실수야!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해고는 착오가 아니었다. 그는 해고되었다.

  '설마 내가 정리해고를 당할라고?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내가? 저놈이 아니면 차가 완벽해질 수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내가? 설마 아니겠지. 아니겠지.' 하고 계속 부서장에게 전화해 봤어요.

  "나는 차를 좋아하니 차와 함께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는 담담히 말했다. 그는 차를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무거운 짐을 떨어내려는 듯 엑셀을 밟았다. 속도를 높였다. 무거움은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은 '조상님'들의 무덤 옆에서 며칠씩 자곤 했다. '왜 해고되었을까?' 그는 묻고 또 물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대답을 구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돌아오는 답은 없더라고요. 단지 신이 날 선택 안 한 건지, 나에게 뭔가가 부족했었는지……. 질문이 나에게 와도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모든 것이 우연인가? 모든 것이 신의 장난인가? 그는 자신의 전 삶을 걸고서라도 대답을 찾아야 하는지, 체념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는 해고 후 택시 운전을 했다. 그렇지만 그 일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눈앞으로 하루에도 수백 대씩 쌍용 차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택시 안의 룸미러로도 사이드미러로도 보였다. 그는 그 차들을 몇 년도에 만들었는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특별히 애착을 가진 차는 이스타나와 무쏘였다. 그는 "이스타나가 나를 입사시켰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향수'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유치원생을 태우고 다니는 노란색 이스타나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신나 냄새를 한 번 맡는 것만으로도 '향수'가 밀려왔다. 정혜윤【그의 슬픔과 기쁨 】 p12~14

  이미 읽기도 전부터 예상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부터 흔들릴 거는 짐작도 못해서 링에 오르자마자 가격 당한 린치에 휘청 거린다. 26명을 만나야 하는데 첫 번째 주자한테 벌써 너덜너덜해졌다.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앞에 '무조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만큼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무모하고 맹목적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한다는 것은 그 일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그 일이 무엇이었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매사에 신중하고 책임감이 있다는 것이라는 억지 논리를 스스로 가지고 있어서다. 그런데, 바뀌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많았다. 천성적으로 손이 재고 눈부시게 빠른 사람들은 도처에 포진해있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를 존중하고, 닮으려 노력하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을 잘한다고 해서 모두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을 즐기는 사람들만이 그 일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일을 하는 얼굴이 빛나고 그 일을 대하는 몸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처음엔 표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숨은 고수들이 있다. 세상에서 정하는 일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정하는 일의 가치는 더욱 중요하지 않다. 어느 자리, 어느 곳에서나 그런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쌍용자동차 도장부에 근무하는 김대용 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저만큼만 읽어도 그가 자기 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즐겼는지 알 수 있어서 심장이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자동차 만들기의 마지막 공정인 '도장'에서 자부심으로 빛나던 그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해고'라는 웅덩이로 내쳐진 것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도장부라는 부서도, 차가 여름의 색인지, 봄가을의 차인지도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김대용이라는 사람을. 또한 윤충렬, 박호민, 이현준, 박정만, 김정욱, 최기민, 김득중, 한윤수, 서맹섭, 이갑호, 정형구, 고동민, 이창근, 김정운, 김상구, 문기주, 복기성, 한상균, 김남오, 유제선, 박주헌, 염진영, 오석천, 김성진, 양형근. 그렇게 쌍용자동차 선도투 중 스물여섯 명의 사람을.

  그들은 단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의 자리에 충실한 선량한 공장 사람들 중의 한 명에 불과했었다. 각각의 가정에서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있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노동의 유일한 즐거움인 술자리도 참고, 조립라인의 단조롭고 기계화된 일상의 탈출을 꿈꾸면서도 익숙한 일과 월급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나이가 되기도 하는 세상의 평범한 구성원 중의 1인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엄인섭, 황대원, 이윤형, 임무창, 김철강을 비롯한 쌍용 해고노동자 중 사망자는 서른에 이른다. 이름이 불린다는 것, 김춘수 시인이 우리에게 이미 알려주었다. '꽃'이 되는 것이라고. 이름을 알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오래 좋아했던 차, 코란도 밴 290이 어떻게 세상의 도로로 나와서 그토록 멋지게 달리게 되었는지.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살면서 배신하지 않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매일 어떤 타협인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타협하면서 사는 우리는 어떤 선택이 배신인지 배신이 아닌지, 어떤 선택을 배신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기가 결코 쉽지 않다. p35

  대기업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계열사를 몇 거느린 회사에서 노조활동을 몇 해했다. 주류였던 적도 있었고 비주류에 머문 적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지만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꽤 오랫동안 하면서 가장 많이 시달린 루머는 '사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더라'였다. 그렇기에 정혜윤의 위문장은 여운이 길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가 삼십 년이 다 되어가고 그 회사조차도 몇 번의 이름이 바뀌고 산산조각으로 공중분해되어 어디서 그 흔적을 찾아야 할지 모르게 시간이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랬어도 저 말을 들었을 때의 비참함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오래 곱씹어 보았다. 과연 옳은 선택들이었을까. 거대 집단에 맞서는 개인에게 도대체 옳은 선택이 있기나 한 걸까. 누군가를 담보로 잡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소수를 포기하고 다수를 향한 옳은 선택은 소수를 배신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타협하면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고 싶었던 마음이 만들어 낸 배신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 낸 실적들 보다 우리가 옳은 선택이라 믿었던 선택지 때문에 고통받았을 이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편치 않다. 모두를 위한 좋은 선택은 없다는 말은 위로를 주지 않는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만지던 기계 속 부품처럼 교환되고 버려진 것이다.

  나는 단지 선량하게 묵묵하게 자기 일을 사랑하고 자신의 구성원들 속에서 평온하게 사는 사람들을 좀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하고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만들어버리는 사회의 시스템은 우리를 모두 가해자로 만들어가고 있다. 진짜 가해자들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데.

  우리 모친은 나한테 그러죠. "이 미친놈아, 그냥 처음에 가만히 있지 뭐가 잘났다고 나섰냐." '산 자였을 때 가만히 있지.' 그 말이죠. 집사람 보기 미안해서 하는 말이죠. 내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걸 그만두고, 이 해고를 인정하고 다른 일을 찾아서 한다? 그럼 나는 돌아 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내가 그때 그렇게 후배들이랑 평택 공장으로 파업 참여하러 올라온 게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나는 너무 억울한데 그렇다고 법이 보호해 주는 것도 아니고, 모든 변호사들이 그랬어요. 법대로 하면 복귀된다고. 회사가 잘못한 게 밝혀지고 있는데 잘못한 놈이 해고시켜 놓고, 그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하면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더 처절해지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한 것인가? 그걸 알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내가 미친놈인가 알고 싶어서.

  그렇지만 대한문에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2009년에는 다 우리 보고 잘못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이게 쌍차만의 문제가 아니더라. 우리 가족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그런 말 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도 그렇게 살지 않았거든요. 누가 해고돼도 상관 안 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해고당하고 보니 억울해죽겠는데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여겨 주는 것 보면서 '난 세상을 잘못 살았구나.' 하고 배웠어요. 지금은 미사 때문에 버티는 것 같아요. 수녀님들이나 신부님이나 신도들, 굳이 매일 저렇게 할 필요 없잖아요. 이번 달에 비 얼마나 많이 왔어요? 폭우 맞고 기도하더라고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하더라고요. 자기 일도 아닌데 그러는 것 보고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의 미사는 2013년 11월 18일까지 225일간 계속되었다. 마지막 미사 때 대한문에 걸린 플래카드엔 이런 구절이 써있었다.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라는 《로마서》5장 5절의 말씀이 써있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한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능력 없는 신자들을 기꺼이 동료로 맞아준, 그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쌍용자동차 동지들께 감사합니다." p210,211

  2021년이 며칠 안 남은 지금의 쌍차는 어떨까?

  우리의 무관심으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의 슬픔과 기쁨' 속의 그들의 삶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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